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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좁아지는 비포장도로
 갈수록 좁아지는 비포장도로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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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덜거리는 봉고차를 타고 더먹을 출발했다. 길이 점점 좁아졌다. 2차선 도로에서 1차선 도로로, 1차선 도로에서 비포장 도로로, 갈수록 길은 더 좁아지고 도로가 패인 곳이 많아졌다.

그래도 6년 전보다는 많이 좋아졌다. 6년 전 처음 이 길을 갈 때는 도로가 유실된 곳도 있고, 너무 깊이 파져서 자동차가 도저히 갈 수가 없었다. 함께 갔던 일행들이 자동차에서 내려 도로 옆 농가에서 삽과 곡괭이를 빌려 움푹 패인 도로를 메우기도 하고 자동차를 밀기도 하면서 겨우 지나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순례자가 따로 없다. 바로 이런 길을 가는 것이 순례자의 길이 아니겠는가?

낡은 봉고차는 마치 심한 기관지염에 걸린 기침 환자처럼 철덕거리며 비포장도로를 기어갔다. 시토울라는 노점 앞에서 잠시 차를 멈추라고 했다. 마실 물을 사야 한다는 것. 저퍼러파리 마을에는 수돗물이 없다. 지하수를 마시면 십중팔구 배탈이 난다고 했다.

길옆 노점상에서 마실물을 샀다.
 길옆 노점상에서 마실물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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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가게에 물이 있어 우선 하룻밤 마실 물을 샀다. 우리가 가는 곳은 워낙 오지라서 물을 파는 가게도 없다고 했다. 순진해 보이는 네팔의 아가씨가 나무로 엮어 지은 점방에서 음료수와 과자 등을 팔고 있었다. 물을 사서 차에 싣고 다시 길을 떠났다.

신작로에서는 농부들이 자전거를 타거나 한가로이 걸어가고 있었다. 길 양옆에는 드문드문 농가들이 들어서 있고, 푸른 벼들이 자라고 있었다. 이 지역은 보통 3모작까지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보통 2모작을 한다고 한다. 워낙 더워서 일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란다. 더운 나라이니 행동이 느릴 수밖에 없다. 오늘의 할 일을 내일로 미룬다고나 할까? 그들은 바쁜 것이 없다.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속이 터질 일이지만, 여기선 그들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우리들이 비정상적이다. 

저 칠판으로 어떻게 공부했을까... 내 어린시절과 비슷한 교육환경

오후 5시. 마침내 첫 방문지인 자나죠티 초등학교에 도착하니 운동장에 아이들과 학부형들이 빼꼭히 들어차 있었다. 지친 모습으로 보아 꽤나 오래 기다린 모양이다. 카트만두에서 하루에 한두 차례 있는 비행기를 타다 보니 너무 늦게 도착한 것이다. 학교 측에 아이들이나 학부형을 동원하지 말라고 그렇게 신신당부했는데 소용없었다. 땡볕에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부모님들이 어린아이들을 끌어 앉고 맨바닥에 앉아 목을 길게 빼내어 우리를 바라보며 우리를 환영했다. 낡은 책상으로 단상을 마련하고 꽃다발도 꽂아놓았다. 교장선생님과 운영위원들이 우리를 단상 중앙으로 인도하며 앉으라고 했다. 아이들이 목에 꽃다발을 걸어주자 모두 환호를 하며 열렬히 박수갈채를 보내주었다. 시토울라 말로는 이렇게 하는 것이 네팔식으로 손님을 맞이하는 예의니 어쩔 수 없단다.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이 손님을 맞이하는 정성을 무시하면 오히려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했다.

우리를 환영하기 위해 모인 학부형들과 네팔의 어린이들(자나요티 초등학교)
 우리를 환영하기 위해 모인 학부형들과 네팔의 어린이들(자나요티 초등학교)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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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선생님이 먼 데서 귀한 손님이 왔다고 말하며 나와 시토울라를 소개를 했다. 나는 간단하게 인사말을 했다. 시토울라가 통역을 해주었다. 순진한 아이들의 눈망울이 별처럼 초롱초롱 빛났다. 맨손에 슬리퍼를 신거나 맨발인 아이들도 많다. 우리나라 같으면 모두가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있을 텐데... 아이들과 부모님들의 손은 홀가분하다.

그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도 홀가분해진다. 하지만 아이들의 눈동자에는 무언가 간절히 바라는 소망이 담겨있다. 그들은 우리들에게 무엇을 바라고 있을까? 또 우리는 저 아이들에게 과연 무엇을 선물할 수 있을까?
 
여섯 개 클래스에 학생 수는 106명. 6명의 교사가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교정의 환경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붉은 벽돌을 쌓아 양철지붕을 이은 교실은 어둡고 칠판은 낡을 대로 낡아 있다.

저 칠판에서 어떻게 공부를 했을까? 하기야 링컨 대통령도 켄터키 옛집에서 삽에다 숯덩이로 글씨를 써서 공부를 했다. 나 역시 어린 시절 몽당연필을 붓 대롱에 끼어 글씨를 쓰면서 공부를 했다. 연필이 워낙 희미해서 연필심에 침을 묻혀 꾹꾹 눌러쓰곤 했던 추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연필 한 자루를 사면 몽당연필이 닳고 닳아져서 더 이상 깎을 수 없을 때까지 사용했다. 지금 이곳 자나요티 초등학교의 환경이 내 어린시절과 비슷하다.

낡은 칠판과 열악한 교실
 낡은 칠판과 열악한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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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기증한 화이트보드. 앞 뒤면을 다 사용할 수 있도록 제작을 했다.
 새로 기증한 화이트보드. 앞 뒤면을 다 사용할 수 있도록 제작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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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공부란 시설이 좋아야 꼭 잘하는 것이 아니다. 네팔의 학교는 대부분 마을 유지들의 기부로 짓는다고 한다. 그래서 학교 운영위원들의 입김이 세다고 한다. 이 학교도 시토울라 친척이 땅을 기부해서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여섯 개의 교실이 있는 이 학교에 화이트보드 6개, 노트북 컴퓨터 5대를 기증했다. 아이들과 학부모님들은 환호를 하며 열렬하게 박수갈채를 보냈다. 이곳 오지에서는 아이들은 물론 학교 선생님들도 컴퓨터 자판을 만져보지도 못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6년 전 버드러칼리 학교에 우리가 기증한 컴퓨터가 이 고을 첫 번째 컴퓨터라고 한다. 그러니 아이들이 얼마나 컴퓨터의 자판을 두들겨 보고 싶겠는가? 들리는 소식으로는 아이들이 가장 하고 싶은 것이 컴퓨터의 자판을 만져보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컴퓨터의 자판을 두들겨보기라도 하기 위해서 컴퓨터가 설치된 버드러칼리학교로 전학을 가는 경우가 허다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그 먼 길을 걸어서라도 가서 컴퓨터를 배우고 싶은 것이 아이들의 소망이다. 이번에 한국에서 기증을 받은 노트북 컴퓨터를 컴퓨터가 없는 학교에 몇 대씩 나누어서 선물을 할 계획이다.

한 번만이라도 컴퓨터 자판을 만져보고 싶은 아이들 

아이들에게는 턱없이 부족한 컴퓨터지만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의 씨앗을 심어주고 싶었다. 허지만 오히려 갈증만 더 심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학교에서는 이 5대의 노트북으로 하루에 여러차례 교대를 하여 아이들의 컴퓨터 교실을 열 계획이라고 한다.

이 학교에 아직 장학금까지는 후원하지 못하고 있다. 교장 선생님은 자기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도 가능하다면 장학금을 후원해주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요청했다.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워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벌써 땅거미가 지려고 했다. 우리는 아이들과 학부형, 그리고 선생님들과 함께 어울려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이 아이들에게 더 많은 컴퓨터를 지원해주고, 아직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장학금을 후원해 주었으면 좋겠다. 신이여, 이 아이들이 더 많이 학교에 다닐 수 있고, 컴퓨터를 배울 수 있게 해주소서.

컴퓨터의 자판을 한 번이라도 만져보고 싶은 아이들과 함께(네팔 자나요티 초등학교)
 컴퓨터의 자판을 한 번이라도 만져보고 싶은 아이들과 함께(네팔 자나요티 초등학교)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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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여행기는 지난 3월 28일부터 4월 5일까지 네팔 동부에 칸첸중가 인근에 위치한 오지학교에 낡은 칠판을 교체해주고 컴퓨터를 후원하기 위해 방문한 봉사여행기입니다.



태그:#컴퓨터의 자판을 만져보고 싶은 아이들, #네팔기행, #한국자비공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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