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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나눔 멘토가 되기 위해 1박2일 워크숍교육을 받았다. 광주에서 대전KT인재개발원까지 갔다. 시원스럽게 넓은 연수관, 호텔 같은 숙박시설과 식당, 천연잔디 깔린 대운동장까지, 대학캠퍼스 부럽지 않다.

강사선생님이 '일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 5가지를 써보라' 했다. 전제가 '일생에서'가 아니라 '일상에서'였다. 처음 들을 땐 '일상'이 아니라 '일생'인줄 알았다. 내가 속한 소 모둠 멤버 중 한 분은 발표할 때까지 그렇게 생각했던가 보다.

먼저 호기롭게 발표했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 원하던 직장에 취업했을 때. 첫 승진 되었을 때, 아들이 고시에 합격했을 때…." 나머지 하나는 마저 듣지 못했다. "일생이 아니라 일상이랍니다"라고 곁에서 일러줬기 때문이다.

일상은 늘 되풀이 되는 생활이다. 밥 먹고 청소하고 대소변 보고 일터에서 일하고 티브이 보고 잠자고…. 날마다 반복되는 일들 중에서 행복한 순간을 찾으라는 주문이다. 한 여성분은 '집안 청소 끝내고 커피 한 잔 마실 때. 화분 물줄 때….'

또 어떤 분은 '유등천 천변 걸을 때, 1주일에 한 번 도서관에 들러 책 읽을 때, 친구에게 문자 보낼 때, 공원 흙길 산보할 때, 책 보면서 낮잠 잘 때'라고 했다.

소 모둠은 멤버들과 느낌을 공유하는 자리이다. 어느 순간이 행복한지 느낌을 들을 수 있었다. 행복 순간들은 비슷비슷했지만 커피 맛이 다 다르듯 사람마다 행복을 느끼는 정도는 달랐다.

그러나 왜 커피타임이 행복한가? 왜 산책이 행복한가? 그런 얘기는 듣지 못했다. 사실 '왜 사랑하느냐?'고 묻는 것처럼 행복에 이유를 따지는 게 이상스럽긴 하다. 다 그런 생각들이었을 것이다.

듣다보니 의문이 생겼다. 청소시간을 줄이고 커피타임을 늘이면 행복순간이 늘어날까? 아니 아예 청소나 일을 않고 종일 커피만 마시고 종일 산책만 하면 종일 행복할 것인가. 아무래도 답이 아닌 것 같다. 내가 써놓은 행복한 순간도 돌아보았다.

'새벽잠 깨고 침대에 누워 20여분 뒹굴뒹굴 거릴 때, 차 마시며 아침신문 읽을 때, 마감이 2주 이상 남은 글을 쓸 때, 매주 두 번 서당에 가서 한문 공부할 때--.'

돌이켜보니 우리들 행복 순간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느긋함'이었다. '다급하지 않은, 쫓기지 않는, 천천히'였다.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고 느긋하게 걸어보니 역시 기분이 좋아졌다. 글을 쓸 때도 몇 줄 쓰다 막히면 느긋하게 신문도 읽고 드라마도 보고, 해찰하면서 했더니 행복해졌다. 그렇다면 하기 싫은 일, 돈 벌어야 하는 고된 일도 느긋하게 천천히 하면 행복해질 것인가?

'살아있는 성자'라 불리는 틱낫한 스님은 어떻게 말씀하셨나. 스님이 쓰신 <힘>을 다시 읽어보았다.

"무슨 일이든 일을 빨리 끝내야 한다는 마음이 있다면 일을 하는 동안 행복하기 어렵다. 천천히 일해야 매순간 행복하게 일할 수 있다."

무슨 일이든 일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최대한 빨리…, 꼭 끝내야…, 효율적으로…, 신속하게…, 아주 잘…' 같은 생각을 아예 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참으로 실천하기 어려운 말씀이다. 돈을 버는 일들은 대개 정해진 시간 안에 아니 최대한 빨리, 그것도 잘 해야 되는 일들이다. 그런 일을 맡아 천천히 느긋함을 부린다면 보나마나 돈 주는 사람 눈 밖에 나기 십상이다.

느긋하게 해도 성과를 올리는 달인이거나 돈벌이에 초탈한 도인정도 되어야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말인 것 같다. 역시 보통사람이 일에서마저 행복을 느끼려면 고행(?)이 필요하겠구나!

오는 길, 유성에서 광주까지 고속버스를 탔다. 우등고속이 아닌데도 너르고 편안하다. 40여 좌석에 승객은 10여 명 뿐이다. 두 좌석을 혼자 차지했다. 한여름 짙푸른 녹음 속을 차는 달린다. 다급할 일이 없다. 신문쪼가리를 몇 줄 읽다 졸기도 하고 창밖녹음도 본다. 눈이 시원하다. 두 시간동안 행복했다.


태그:#행복, #느긋함, #천천히 , #산책, #커피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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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글로 쓰면 길이 보인다'는 가치를 후학들에게 열심히 전하고 있습니다. 인재육성아카데미에서 '글쓰기특강'과 맨토링을 하면서 칼럼집 <글이 길인가>를 발간했습니다. 기자생활 30년(광주일보편집국장역임), 광주비엔날레사무총장4년, 광주대학교 겸임교수 16년을 지내고 서당에 다니며 고문진보, 사서삼경을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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