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3000안타와 700홈런 대기록에 각각 4개씩만을 남겨 두고 있는 이치로 스즈키(마이애미 말린스)와 알렉스 로드리게스(뉴욕 양키스)의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이치로는 홈 팬들 앞에서 대기록을 달성할 수 있게 배려까지 받고 있지만, 로드리게스는 소속 팀의 사정으로 인하여 선수 생활이 끝날 수도 있는 위기에 처한 것이다.

메이저리그에서 3000안타나 700홈런을 기록한 선수는 많지 않다. 현재까지 메이저리그에서 3000안타를 달성한 선수는 피트 로즈부터 로베르토 클레멘테까지 29명 뿐이다. 이치로가 메이저리그 역대 30번째로 3000안타를 돌파하는 셈이다.

700홈런은 더 드물다. 통산 700홈런을 넘긴 선수는 배리 본즈(762개), 행크 애런(755개), 그리고 베이브 루스(714개) 뿐이다. 뒤를 이어 로드리게스가 현재까지 696개의 홈런으로 역대 4위에 올라 있다.

대기록 달성 축하를 위한 감독의 배려

이치로는 대기록을 홈 경기장에서 홈 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이치로는 지난 18일(이하 한국 시각)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경기에서 3안타를 쳐내며 2994안타를 기록했다.

그러자 말린스의 돈 매팅리 감독은 대기록 달성을 홈 경기장에서 이뤄낼 수 있도록 이치로에게 휴식을 제공했다. 다음 일정이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원정 4연전이었고, 상대 선발투수들이 모두 오른손 투수였다. 물론 홈 팬들도 집에서 TV로 이치로의 기록 달성을 볼 수 있지만, 직접 경기장에서 지켜보는 감동을 놓칠 수 있었다.

이에 매팅리 감독은 처음 3경기에는 이치로를 대타로만 출전시켰고, 마지막 경기에만 선발로 내보냈다. 이치로는 4연전 마지막 경기에서 2개의 안타를 추가하며 2996안타를 기록했다. 이제 홈으로 돌아온 이치로는 23일부터 8월 1일까지 10경기를 홈 구장인 말린스 파크에서 치른다.

이치로는 이미 메이저리그에 온 이후 10년 연속 3할 타율-200안타의 위업을 달성했다. 하지만 2010년 이후 그 역시 세월을 피할 수는 없었다. 2011년부터 3할 시즌을 기록한 적이 한 번도 없었으며, 올해도 언제 타율이 떨어질지 모른다.

게다가 이치로는 첫 시즌을 제외하고 줄곧 하위권에 머물렀던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뛰었기 때문에 월드챔피언 반지가 없었다. 결국 이치로는 팀내 유망주들에게 기회를 주고 자신의 우승 염원을 이루기 위해 트레이드를 요청했다.

양키스로 팀을 옮긴 이치로는 출전 기회가 많이 줄어들었다. 원래 매리너스에서 톱타자를 맡았지만, 양키스에는 당시 캡틴이었던 데릭 지터(통산 3465안타)가 이미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치로의 역할은 하위 타순이나 대타 요원 정도였다.

물론 이치로는 오릭스 블루웨이브(현 오릭스 버팔로스)에서 선수 생활을 하다가 포스팅 시스템을 통하여 만 27세에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시작했다. 일본 기록까지 합하면 이미 로즈(통산 4256개)보다 많은 안타를 기록했다.

이치로의 경력을 감안하여 만 27세 이후에 기록한 안타 기록만 봐도 이 부문에서는 로즈가 1위(3357개)다. 이치로가 2996개로 그 다음이며, 샘 라이스가 2923개로 그 뒤를 잇는다. 미국 태생이 아닌 선수들 중에 3000안타를 넘긴 선수로는 로드 커루(3053, 파나마), 라파엘 팔메이로(3020, 쿠바), 로베르토 클레멘테(3000, 푸에르토리코) 뿐이다.

2014년 시즌이 끝나고 FA가 된 이치로는 결국 양키스를 떠났다. 우승의 염원은 이루지 못했지만 개인 기록을 달성해야 한다는 목표는 남아 있었다. 결국 역사가 짧은 말린스와 200만 달러에 1년 계약을 체결했다. 이치로에게는 기록 달성의 기회를 제공해 주는 팀이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치로는 2015년 3000안타 달성에 아쉽게 실패했다. 무엇보다 이치로는 처음부터 주전으로 뛰었던 것이 아니었다. 벤치에서 항상 대기하고 있다가, 주전 선수들이 부상을 당했을 때 그 빈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 이외에는 꾸준히 출전할 기회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치로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치로는 2015년이 끝난 뒤 1년 옵션이 포함된 재계약을 맺었다. 2017년까지 계약이 되어 있지만 입지는 그대로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톱타자 역할을 맡던 주전 2루수 디 고든이 금지 약물 적발로 인하여 80경기 출장 정지의 중징계를 받으면서 이치로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지난 23일 경기에서 이치로는 대타로 출전했다. 아쉽게 안타를 추가하지 못하면서 여전히 3000안타까지는 4개가 남아있다. 말린스와 매팅리 감독의 배려 하에 홈 팬들 앞에서 3000안타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700홈런 -4, 방출 위기에 몰린 A-로드

이치로와는 달리 로드리게스는 기록을 달성 기회를 잃을 위기에 놓여 있다. 소속 팀 양키스가 포스트 시즌 진출 가능성이 점점 멀어지면서 몸값이 비싼 일부 선수들을 트레이드 시장에 내놓을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양키스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비싼 스타 플레이어들을 긁어 모으며 컴퓨터 게임에서나 볼 수 있는 라인업를 구축하는 등, 이른 바 '악의 제국'으로 불리기도 했던 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키스는 21세기에 들어와서 2000년과 2009년 두 차례 월드 챔피언에 오르는 데 그쳤다.

양키스는 줄곧 스타 플레이어들을 긁어 모으면서, 주축 선수들의 노쇠화는 계속 됐다. 양키즈는 주전 마무리 마리아노 리베라와 주장 데릭 지터 등의 은퇴 때문에 선수단 정비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양키스는 기존 선수들의 계약이 만료된 자리에 유망주들을 불러 올리거나 비교적 젊은 선수들을 영입하여 자리를 채워 나갔다. 로드리게스가 바이오 제네시스 스캔들로 인하여 162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게 되자 3루수 자리에는 트레이드로 영입한 체이스 헤들리가 들어왔다.

로드리게스는 징계 때문에 2014년 시즌을 통째로 날렸다. 양키스는 FA 자격을 취득한 헤들리와 4년 재계약을 맺으며 로드리게스의 3루 자리가 완전히 사라졌다. 양키스는 로드리게스가 스프링 캠프에 참가하는 것은 인정했지만, 로드리게스는 지명타자 외엔 차지할 자리가 없었다.

그래도 로드리게스는 2015년 복귀하여 33홈런을 기록하는 등 여전히 힘이 있음을 증명했다. 로드리게스는 FA 시장에서 1억 달러 이상의 10년 장기 계약을 처음으로 열었던 주인공이었고, 그 계약을 2007년 겨울에 파기하고 다시 양키스와 10년 재계약을 맺은 바 있다.

이 계약은 2017년을 끝으로 만료될 예정이다. 로드리게스는 본즈가 홈런 신기록을 세운 이후에 양키스와 재계약했고, 윌리 메이스(660홈런)와 루스(714홈런), 애런(755홈런), 본즈(762홈런)의 기록을 깰 때마다, 또 신기록(763홈런)을 달성 경우 보너스를 받는 계약을 맺었다.

로드리게스가 징계만 없었다면 계약이 끝날 때까지 보너스를 챙겼을 수도 있지만 부상과 징계로 흐름이 끊겼고, 기록 달성에 회의적인 시선이 많아졌다.

로드리게스는 약물 징계로 이미지가 실추되었고, FA가 되더라도 이치로처럼 기회를 다시 얻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때마침 로드리게스는 2017년 자신의 계약이 모두 끝나면 더 이상 FA를 신청하지 않고 은퇴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로드리게스는 여전히 지명타자로 경기에 나서고 있지만 타율은 0.206에 머물러 있고, 홈런도 9개에 그치고 있다. 내년까지 뛰더라도 본즈의 신기록 경신은 어려울 것으로 보이고, 올 시즌 700홈런을 넘길 수 있을지도 불투명한 상황에 놓여 있다.

게다가 소속 팀 양키스마저 올 시즌 포스트 시즌 진출 가능성이 떨어지자 주축 선수들을 트레이드 시장에 내놓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미 마무리투수 아롤디스 채프먼이나 베테랑 외야수인 스위치 타자 카를로스 벨트란 등은 몇몇 구단에서 눈독을 들이고 있다.

하지만 로드리게스나 마크 테셰이라, 그리고 베테랑 왼손 투수 CC 사바시아의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테셰이라는 올 시즌 부상으로 상당한 시간을 날렸고, 부상이 아니더라도 올 시즌 성적이 형편 없는 수준이다(66경기 8홈런 타율 0.185).

사바시아는 2014년 부상과 부진 등이 겹치며 7년 연속 200이닝 기록이 중단되는 등 급속히 기량이 하락했다. 한때 300승 가능성이 가장 높은 현역 투수로 이름을 올렸지만, 지금은 평범한 선발투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양키스는 가능할 경우 사바시아까지 트레이드 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로드리게스는 22일 양키스 구단주 할 스타인브레너와 면담을 했다. 로드리게스에게는 내년 2800만 달러의 계약이 남아 있는 상태다.

스타인브레너 구단주가 굳이 로드리게스와 면담을 한 이유는 남은 계약과 팀 리빌딩 문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최근 뉴욕 언론에서는 양키즈가 로드리게스와의 잔여 계약을 올 시즌을 끝으로 파기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만일 로드리게스의 방출이 현실화 된다면 로드리게스는 최종 목표를 수정할 수밖에 없다. 18개나 남아 있는 루스의 홈런 역대 3위 기록을 깨기는 사실상 힘들어 보이는 만큼, 4개 차로 접근한 700홈런에 도전할 가능성이 있다. 로드리게스는 통산 안타 부문에서는 이미 3113안타로 역대 19위에 올라 있다.

이치로와 로드리게스 모두 한때는 리그를 대표하던 타자들이었다. 이치로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교타자였고, 로드리게스는 한 때 역대 신기록을 세울지도 모른다는 평을 듣던 홈런왕이었다. 하지만 은퇴가 얼마 남지 않은 두 선수는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두 선수가 얼마 남지 않은 선수 생활에서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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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브랜더/서양사학자/기자/작가/강사/1987.07.24, O/DKU/가톨릭 청년성서모임/지리/교통/야구분석(MLB,KBO)/산업 여러분야/각종 토론회, 전시회/글쓰기/당류/블로거/커피 1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있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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