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 2016에서 망신을 당했던 '축구종가' 잉글랜드가 사퇴한 로이 호지슨 감독의 후임으로 또다시 자국 출신인 샘 앨러다이스 감독을 선택했다.

잉글랜드 축구협회(FA)는 22일 협회 홈페이지를 통해 "앨러다이스 감독을 새로운 사령탑으로 선임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계약기간은 2018 러시아월드컵까지 약 2년이다

'빅샘'으로 불리우는 앨러다이스 감독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감독이다. 앨러다이스 감독은 1991년 리머릭에서 선수 겸 감독을 시작한 이래 볼턴, 뉴캐슬, 블랙번, 웨스트햄, 선덜랜드 등 여러 잉글랜드 클럽을 거치며 프리미어리그 역대 4번째로 많은 467경기를 지휘한 바 있다. 지난 시즌 도중인 10월 딕 아드보카트(네덜란드)의 후임으로 선덜랜드 감독을 맡아 극적인 1부 잔류를 이끌었다.

눈에 띄는 부분은, 앨러다이스 감독의 경력에서 보듯이 그는 현역 시절을 비롯하여 지도자 시절에 이르기까지 영국 밖을 벗어난 경우가 거의 없고, 그나마도 소위 빅클럽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점이다. 로이 호지슨 전 감독만 해도 성공과는 별개로 이탈리아 인터밀란이나 리버풀 감독을 역임한 바 있고 해외 리그나 국가대표팀 사령탑 경험도 여러 차례 였던 것과 비교할 때, 앨러다이스는 출신부터 경력, 성향까지 전형적인 '잉글랜드산 감독'이다.

앵글랜드식 축구의 신봉자, 샘 앨러다이스

또한 앨러다이스 감독은 축구스타일에 있어서도 킥 앤 러시로 대표되는 전형적인 잉글랜드식 축구의 신봉자로 꼽힌다. 킥 앤 러시는 좋게 말하면 선굵은 축구로 불리기도 하지만 나쁘게 말하면 소위 '뻥 축구'가 되기 십상이다. 앨러다이스 감독은 점유율보다는 전통적인 타깃형 스트라이커와, 좌우 윙어의 측면 돌파에 이은 크로스나 롱패스 등 다소 올드한 공격전술을 선호한다. 다만 앨러다이스 감독은 가는 팀마다 "그저 선수 구성에 맞는 전술을 썼을 뿐"이라며 자신의 스타일이 '뻥 축구'라는 비판을 불쾌하게 여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물론 그렇다고 앨러다이스 감독이 마냥 저평가를 받을 만한 인물은 아니다. 오히려 앨러다이스 감독은 동세대 잉글랜드 출신 현역 감독 중에서는 가장 우수한 감독 중 한 명으로 인정받고 있다.

앨러다이스 감독의 장점은 약팀을 맡아서 일정 이상의 성적을 보장한다는 점이다. 거대한 체구에서 나온 '빅샘'이라는 별명과 함께 앨러다이스 감독은 '승격 청부사'라는 수식어로 더 유명하다.

특히 선수와 감독으로서 모두 뛰어봤던 볼턴 원더러스는 앨러다이스 감독의 경력에서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클럽이다. 1999년 2부 리그를 전전하던 볼턴을 부임 1년 만에 프리미어리그로 승격시켰다. 2004/2005시즌엔 볼턴을 프리미어리그 6위까지 끌어올려 UEFA컵 진출권을 선사하는 이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밖에도 2011년에는 2부리그에 머물러있던 웨스트햄을 프리미어리그에 진출시켰고, 강등 위기에 놓여있는 블랙번이나 선덜랜드를 맡았을때는 팀을 결국 1부리그에 잔류시키는 등 중하위권팀의 승격·잔류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업적을 남기며 가격 대비 최고의 효율성을 자랑하는 '생존왕'으로 자리매김했다.

앨러다이스 감독은 지도자로서 대단히 복합적인 면모를 지닌 인물이다. 우락부락한 외모에서 풍겨나오는 거친 이미지나 그가 이끌었던 팀들의 축구스타일을 감안하면 대단히 보수적이고 올드한 이미지만을 연상하기 쉽지만, 그는 정작 잉글랜드 출신 감독중에서는 가장 선진화된 선수관리와 체계적인 훈련방식을 추구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그가 지휘한 팀에서는 한물갔다는 노장 선수들이 철저한 관리 속에 부활했다는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으며, 앨러다이스의 팀은 지독하게 '지루한 축구'라는 비판 속에서도 의외로 종종 강팀들의 덜미를 잡아내며 어떻게든 묘하게 결과물을 끌어내는 실리축구로도 유명했다. 국내로 비교하자면 허정무 감독와 최강희 감독의 장단점을 조금씩 섞어놓은 듯한 인물이라고나 할까.

축구종가의 선택, 이번에는 성공할까

앨러다이스 감독은 과거에도 몇 차례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직에 관심을 보이고도 번번이 낙방했으나 결국 3전 4기 끝에 삼사자 군단의 지휘봉을 잡게 됐다. 잉글랜드는 유로 96을 끝으로 최근 20년간 메이저대회에서 4강 이상의 성적을 올린 적이 한 번도 없을 만큼 축구종가의 명성에 부끄러운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유로 2016에서 졸전 끝에 약체 아이슬란드에 패해 16강에서 탈락하는 망신을 당했다. 이로 인하여 이번엔 다시 검증된 외국인 감독을 영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하지만 잉글랜드 축구협회의 선택은 이번에도 자국 감독이었다. 앨러다이스와 함께 후보군에 올랐던 인물들은 스티브 브루스(헐 시티)와 가레스 사우스게이트(잉글랜드 21세 이하 대표팀), 에디 하우(AFC 본머스) 데이비드 모예스(전 레알 소시에다드) 등이었다.외국인 감독으로서는 위르겐 클린스만(미국 대표팀, 독일)과 아르센 벵거(아스날, 프랑스), 거스 히딩크(전 첼시) 감독 등도 물망에 올랐으나 실제로 제의가 가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처음부터 잉글랜드 축구협회가 자국 감독 선임에 더 무게를 두고 있었으며, 앨러다이스 카드는 그중에서는 그나마 가장 무난한 선택이었다고 할 만하다. 그리고 이는 바꿔 말하면 그만큼 현재 잉글랜드 내에 거물급 감독의 인재풀이 부족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앨러다이스의 선임은 영국 내에서도 냉소와 기대가 엇갈린다. 자국 출신으로 잉글랜드에 대하여 누구보다 잘알고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이라는 것은 장점으로 꼽히지만, 개성 강한 잉글랜드의 젊은 스타 선수들에 대한 장악력이나 월드컵같은 큰 메이저대회를 누벼본 경험이 없다는 점에서 지역 예선에서만 강했던 '호지슨 시즌 2'에 그칠 것이라는 부정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축구종가의 위험한 도박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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