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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스포츠 브랜드 '엘레쎄(ELLESSE)'가 2016년 봄·여름용 스포츠웨어 광고 4편을 냈다. 상품은 피트니스용 민소매와 7부 레깅스, 기능성 운동화다. 걸그룹 에이오에이(AOA)가 광고 모델이 되어 상품을 착용하고 연기도 맡았다.

광고의 이야기 구조는 4편 모두 비슷하다. 홀로 운동을 즐기는 여성 주인공, 그를 지켜보는 남자들의 모습,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색감 있는 엘레쎄 상품이 주인공의 자아를 대체하는 마무리. 엘레쎄 관계자는 지난 4월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광고를 통해 엘레쎄만의 컬러풀하고 스포티한 매력이 소비자들에게 잘 전달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컬러 앞에 무너지는 '설현'과 '초아'

엘레쎄 광고는 스포츠웨어 상품을 단순한 스포츠웨어를 넘어선 '컬러풀'과 '스포티'라는 이미지가 결합된 기호로 변형시킨다. 광고는 피트니스용 민소매를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피트니스용 민소매에 담긴 '컬러풀'과 '스포티'라는 가치를 구매하라고 부추긴다. 엘레쎄 상품은 소비자가 인지, 주목, 기억, 그리고 회고하는 과정을 이른바 상품의 '의미화 과정(signification process)'으로 데포르마시옹(déformation)시키는 것이다.

광고 속에서 엘레쎄 스포츠웨어는 어떻게 소비자에게 '컬러풀'과 '스포티'라는 이미지로 전달될까. 광고 4편 모두 화려한 색깔의 엘레쎄 스포츠웨어를 입고 스포츠를 즐기는 여자 주인공을 내세운다. 그러나 이내 카메라는 주인공을 바라보는 남자들을 보여준다.

처음에 그들은 제3자처럼 무심하지만 여자 주인공이 시야에 포착되면서 끊임없이 주인공을 '응시'하고 관음하는 주체로 바뀐다. 이제 스포츠웨어를 입은 광고 속 여자 주인공, 설현과 초아는 '바라봄'을 당하는 응시의 대상으로 자리 잡게 된다.

 자전거를 타는 주인공 초아와 넋을 잃고 그를 쳐다보는 두 남성.
 자전거를 타는 주인공 초아와 넋을 잃고 그를 쳐다보는 두 남성.
ⓒ 엘레쎄 광고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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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반응과 대사는 관음적 행태를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1편에서 세 명의 남성은 달리는 설현을 보고 몸매를 감상하고 함께 평가한다. 3편에서는 한 명의 남성이 물을 마시며 쉬던 중 설현을 보고 마시던 물을 흘리면서 정신없이 뒤를 쫓는다.

광고 구조 속에서 설현은 남성의 시각적 욕망과 성적 판타지를 부추기는 존재로 전락한다. 초아도 같은 방식으로 소비된다. 2편에서는 요가하는 초아의 몸을 보고 뒤에서 두 명의 여성이 평가하며 수군댄다. 4편에서는 초아가 자전거를 타며 도심을 가로지르는데, 초아를 본 다수의 시민이 홀린 듯 무작정 그의 뒤를 쫓는 모습이 연출된다.

광고 대사는 이런 영상을 뒷받침한다. '컬러풀'과 '스포티'를 내세웠지만, '스포티'는 사실상 '섹시한 몸매'로 대체된다. 여자 주인공의 자아는 컬러와 몸매로 명명된다.
 엘레쎄 광고 1~3편의 내레이션 비교.
 엘레쎄 광고 1~3편의 내레이션 비교.
ⓒ 박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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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젊은 여성의 몸에 목마른 사회

광고 속 여성은 스포츠를 즐기는 주체로 표상되는 듯하나 실제로는 응시의 대상으로서 존재한다. 관찰자는 주인공 여성의 몸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며 평가한다. 문제는 여성의 신체를 응시하는 문화가 광고 안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영국의 예술사가 존 버거(John Berger)는 "남성은 보고, 여성은 보이려고 한다"라며, 지금까지 여성의 존재가 시선의 객체로서 존재해왔음을 지적했다.

광고에서 드러나는 응시 이후 응시 주체의 대응도 인상적이다. 성별에 따라 대응 방식이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광고 속 남성은 관음과 욕망을 발현하는 주체지만, 여성은 욕망을 표현하기보다는 시기나 질투를 표현하는 데 그친다.

 달리는 주인공 설현을 쳐다보고 먹던 물을 흘리는 남성.
 달리는 주인공 설현을 쳐다보고 먹던 물을 흘리는 남성.
ⓒ 엘레쎄 광고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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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의 취향에 따라 '이상적인 미(美)'를 가진 여성의 몸은 남성 중심 이데올로기 메커니즘 안에서 안전하고도 은밀하게 향유된다. 남성 중심 이데올로기와 연예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활기찬 사회에서는 스포츠웨어 광고가 날씬하면서도 글래머러스한 여성 아이돌을 모델로 내세운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여성에게 이상적인 '몸매'를 강요하는 사회는 이미 여성과 남성 사이에 기울어진 권력을 공고히 하는 수단이 작용하고 있음을 역설한다. 있는 그대로의 한 사람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기준(이를테면 165cm 이상 40kg대의 여성, 동시에 풍만한 가슴과 골반, 홀쭉한 허리와 긴 다리를 가져야 하는 몸) 이상의 미적 기준을 칭송하고 강요하는 것은 신체 자유를 억압하는 또 하나의 폭력이 된다.

우리 사회는 이미 '미스코리아' '연예인' '모델' 등 사회적 기제를 통해 폭력을 자행하고 있다. 소비자로서 개인은 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노출되는 미의 향연을 통해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아름다운 여성'을 소비하고 학습한다. 이로써 우리는 몸의 '정상성'을 판정하고, 순서를 매겨 줄 세운다. 끝내 한 사람의 몸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신체 경쟁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게 된다. 자기계발의 도구 혹은 자신을 나타내는 '사용설명서'쯤이 된 몸은 오직 남에게 보여줄 때 의미 있는 상품이다.

 운동하는 주인공 설현을 색깔로 지칭해 평가하고 관음하는 세 남성.
 운동하는 주인공 설현을 색깔로 지칭해 평가하고 관음하는 세 남성.
ⓒ 엘레쎄 광고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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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소와 산소, 그리고 광고

광고의 영어 단어 'advertising'는 라틴어 'ad vertere'가 어원이다. 이는 "주의를 돌리다" "마음을 어디로 향하게 하다"라는 뜻이다. 독일어 'Die Reklame', 불어 'Reclame' 역시 광고를 뜻하는데, 모두 '부르짖다'라는 의미로 라틴어의 'clamo', 곧 '반복하여 부르짖다'라는 뜻이다. 모아 생각해보면, 광고는 일방적인 소통 행위를 통해 마음을 움직이는 콘텐츠라 볼 수 있다. 한국광고학회에서는 광고를 "광고주가 청중을 설득하거나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 대중매체를 이용하는, 유료의 비대면적인 의사전달 형태"라고 정의하였다.

오늘날 광고는 우리가 사는 사회를 가득 메우고 있다. 형태만 다를 뿐, 영상과 이미지, 음악 등으로 구성된 메시지를 담아 우리의 의식을 파고든다. 프랑스 광고인 로베르 궤링(Robert Gue'rin)은 "우리가 숨 쉬고 있는 공기는 질소와 산소, 그리고 광고로 구성"되어 있으며 "광고는 여러 가지 형태로 온종일 우리를 뒤쫓아 다니며 떠나지를 않는다"고 짚었다.

우리를 따라다니는 광고는 미끼를 던져 소비자의 혼을 빼고 무의식에 침투한다. 소비자가 그리도 쉽게 미끼를 무는 것은 결핍에서 비롯된 욕망 때문이다. 광고는 소비자를 광고 속 세상으로 부르고, 부름을 당한 소비자는 광고와 상품을 소비하면서 자신의 욕망도 채워진다고 믿는다. 그러나 광고는 상품의 본질과 생산관계를 완벽하게 은폐하고 있다.

언제나 상품으로 존재하는 여성의 몸. 타인의 응시 대상으로서 존재하더라도 개의치 않는 여성 주인공. 그가 추구하는 가치를 욕망하고 소비하면서 자신을 동일시하는 소비자.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상품의 생산-소비 과정에서 여성의 자아는 상실되고, 여성의 몸은 타인에게 보이는 '컬러풀'하고 '스포티'한 대상에서 머문다. 이 속에서 광고는 뫼비우스의 띠를 더욱 단단하게 고정하고 윤택하게 보이게끔 덧칠할 뿐이다.

 광고 마지막 장면과 언어 텍스트 '컬러 앞에 무너지다'.
 광고 마지막 장면과 언어 텍스트 '컬러 앞에 무너지다'.
ⓒ 엘레쎄 광고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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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의 마지막 장면은 두 주인공이 허탈해하면서도 이내 긍정하고 스포츠를 즐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어 언어 텍스트로 광고는 마무리된다. '설현·초아, 컬러 앞에 무너지다. 스포츠는 컬러로 기억된다'(1, 2편), '컬러, 그것은 나를 움직이는 힘'(3, 4편)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온라인 미디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태그:#광고, #엘레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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