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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경한 성주 군민들이 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평화를 위한 사드 배치 철회 성주군민 결의대회'에서 사전에 나눠준 파란색 리본을 착용하고 집회에 참석하고 있다.
▲ 파란색 리본 착용하고 집회 참석한 성주 군민들 상경한 성주 군민들이 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평화를 위한 사드 배치 철회 성주군민 결의대회'에서 사전에 나눠준 파란색 리본을 착용하고 집회에 참석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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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 지역 사드 반대운동에 대한 보수 주류 세력의 대응 방식이 변하고 있다. 초기에는 사드 레이더 전자파 문제에 초점을 맞추다가 이제는 '외부 세력 개입' 문제로 방향이 전환되고 있다.

보수 주류 세력들이 외부 세력 개입론을 제기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은 성주 지역 사드 반대 운동이 음험한 정치적 의도를 가진 세력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순수하지 못한 의도가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려는 것이다.

외부, 정치, 불순의 3가지 담론은 특정 사회운동의 의미를 약화시키고자 할 때 보수 주류 세력들이 흔히 동원하는 단골 레퍼토리다. 단적으로 1980년 광주 민주 항쟁에 대한 보수 주류 세력들의 대응 방식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각종 활동에 대해서도 동일한 담론을 동원하며 대응하고 있다. 그만큼 매우 뿌리 깊은 현상이다.

이에 대해 성주군민들은 자신들의 사드 반대 운동이 외부 세력과 관련이 없으며 순수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21일 서울에서 개최된 집회에서 파란색 리본을 부착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이와 같은 주류 보수 세력들의 공세 그리고 이에 대한 성주군민들의 대응 담론을 보면 '순수'가 매우 핵심적인 의미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불순하다', '아니다. 순수하다'로 이어지는 이와 같은 담론 공방이 나타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앞에서 보았듯 오래전부터 있었던 이 현상은 왜 나타났을까?

현재 외부 세력 개입론을 제기한 보수 주류 세력을 비판하는 글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원인 분석은 찾기 힘들다. 그래서 필자는 위와 같은 현상이 나타나게 된 원인을 분석하려고 한다. 아울러 필자는 이 현상이 '전쟁정치'라는 한국의 특수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형성된 정치혐오론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판단한다.

불순 세력과 순수 세력으로 구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박 대통령은 지난 21일 사드 배치 논란과 관련 "모든 문제에 불순세력들이 가담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을 철저히 가려내야 한다"면서 "배치가 결정된 지역의 여러분도 대화와 소통으로 최선의 해결 방책을 찾을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21일 사드 배치 논란과 관련 "모든 문제에 불순세력들이 가담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을 철저히 가려내야 한다"면서 "배치가 결정된 지역의 여러분도 대화와 소통으로 최선의 해결 방책을 찾을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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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혐오론은 비단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것이 전쟁정치와 관련되어 있다는 특성이 있다. 김동춘 교수는 실제 교전이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반대 세력을 억압하고 제거하기 위하여 전쟁 수행할 때처럼 이데올로기, 법, 국가 공권력 등을 동원하는 것을 '전쟁정치'라고 개념화했다.

그래서 전쟁정치에서의 정치는 삶과 죽음을 가르고 나누는 극단적 경계선의 설정과 맞물려 있다. 그렇다보니 전쟁정치 상황에서 개인은 생존을 도모하기 위하여 끊임없는 자기검열을 하게 되고 위험대상과의 연계를 회피 혹은 차단하려는 의사를 갖게 된다. 그만큼 사는 게 피곤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전쟁정치는 정치의 내용을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국가와 개인의 존망과 관련된 내용으로 한정한다. 그래서 전쟁정치 상황에서는 '생존' 이외의 다른 정치사회적 가치가 뿌리내리기 어렵다. 그리고 권위주의 국가는 이를 이용하여 자신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에 대해서 전투적 대응을 한다.

그래서 권위주의 세력은 일상적 상황에서도 위기국면를 지속적으로 조성하여 '전쟁정치'의 영속화를 의도한다. 그리고 반대 세력의 일련의 정치적 행위가 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불순한 행위라고 공격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권위주의적 국가는 외부로 드러나는 구체적 표현이나 행위를 제어할 뿐만 아니라 반대 세력의 의식세계까지 통제하려고 한다. 구체적인 정치적 행위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행위를 잉태하게 하는 내면의 '의도성'에 대해서도 통제하려는 것이다.

권위주의 세력은 이를 '정화(淨化)'라고 했다. 그리고 '정화'를 시도하는 권위주의 세력은 일반 국민을 '순수'와 '비순수'라는 담론을 통해서 구분하려고 했다.

'나(우리)는 순수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난 15일 오후정부가 사드 배치 예정지로 지목한 경북 성주를 방문한 황교안 국무총리와 한민구 국방장관이 탄 버스가 성난 주민들에게 가로막혀 성주군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주민들은 날계란과 물병을 던지고, 트랙터로 버스 통행로를 막으며 거세게 항의했다.
 지난 15일 오후정부가 사드 배치 예정지로 지목한 경북 성주를 방문한 황교안 국무총리와 한민구 국방장관이 탄 버스가 성난 주민들에게 가로막혀 성주군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주민들은 날계란과 물병을 던지고, 트랙터로 버스 통행로를 막으며 거세게 항의했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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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공세에 대해서 일반인들은 스스로를 순수한 존재라고 규정하고 국가에 의해서 배제된 세력(불순 세력)과 구분하려고 했다.

이는 생존을 위해서 국가가 설정한 내면세계의 구분선을 내재화한 것이다. 이처럼 전쟁과정에서 일반인들은 생존을 위하여 자신의 머리와 마음속에는 '적'과 연관된 그 어떠한 것도 없다는 것을 스스로 혹은 강압적으로 증명해야만 했다.

이렇게 볼 때 '정화(淨化)'의 주체는 지배세력이 되고 '순수'는 그와 같은 지배 담론에 호응하기 위한 행위자의 생존전략이다. 이처럼 정화와 순수는 동일한 맥락에서 제시된 담론이면서 행위자의 정치사회적 위치에 따른 행위 전략의 차이가 나타난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이 하나 있다. 우선 '순수'와 '불순'을 나누고 '순수함을 증명하는 것' 등의 행위는 추상적이며 순수함의 정도를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방안이 없다. 그래서 이와 같은 상황은 순수함을 증명해야 하는 일반인들에게 대단히 강박적인 심리 상태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일반인들이 매우 불리한 처지에 몰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지배 세력이 순수와 관련된 담론으로 공세를 펼치면 '나(우리)는 순수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행동을 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순수와 관련된 사안으로 프레임의 왜곡이 발생하여 실제 문제의 본질과는 엉뚱한 방향에서 공방을 주고받게 된다.

이렇듯 순수와 관련된 담론 공방은 일반인들에게는 불리하다. 그렇다고 피해가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지금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성주군민들의 마음은 매우 복잡할 것이다. 1980년 광주 시민, 그리고 세월호 유가족들의 심정이 이해가 된다고 언급한 어느 성주군민의 말은 위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외부 세력 개입론도 본질은 아니다, 문제는 정치

이제까지 보수 주류 세력이 '외부, 정치, 불순'이라는 3가지 담론으로 공세를 펴고 이에 대해서 성주 지역민들이 '나(우리)는 순수하다'라고 대응하는 현상이 나타난 원인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담론 공방은 사드 전자파 논란 이후에 나타난 현상이다. 전자파 논란과 '외부세력' 논란, 두 사안은 매우 다른 모습을 띠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동일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사건의 본질이 아닌 두 논란은 결과적으로 사드 배치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실제 핵심은 정치의 부재 및 실패다. 본질이 드러나지 않는 이러한 상황은 앞으로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제의 핵심은 '정치'에 있다는 점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안보 관련 현안이 많은 우리의 현실을 고려해볼 때 '순수한' 성주 지역민들로만 구성된 반대 운동이라고 해도 그 행위 자체는 정치적 의미를 띨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금 진정 필요한 것은 적극적인 소통을 통한 정치적 해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태그:#성주, #사드, #파란색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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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박사이며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사료연구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김대중에 대한 재평가를 목적으로 한 김대중연구서인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시대의창, 2021)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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