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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나간 소리 한다고 너무 나무라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속이 뒤틀려 해보는 소리입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꺼림칙하고 끔찍하기 조차 하지만 AI(인공지능)가 실생활에 도입될 거면 법조계부터 대체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도 없어질 거며, 1심에서 유죄였던 재판 결과가 담당 변호사가 청와대 민정수석이라고 하는 막강한 실력자가 되자 2심에서는 무죄가 선고되는 그런 엉터리 재판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공지능 로봇이 법을 기준으로 해 과학적으로 수사하고, 인공지능 로봇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변론하고, 인공지능 로봇이 사회·문화적 가치와 민심을 가늠할 수 있는 빅 데이터에 기초해 법대로 판결한다면 검찰이 '검파리'로 희롱당하고 판결이 이 정도까지 조롱당하듯 의심받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범죄는 예전에도 있었습니다. 판결도 마찬가지입니다. 형식과 절차는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다를지 모르지만 죄를 지으면 조사가 있고 조사가 있으면 그에 따른 심판이 있었습니다.

재판기록으로 살펴보는 조선의 두 얼굴 <조선 민중 역모 사건>

<조선 민중 역모 사건> (지은이 유승희 / 펴낸곳 (주)위즈덤하우스 / 2016년 7월 5일 / 값 14,000원
 <조선 민중 역모 사건> (지은이 유승희 / 펴낸곳 (주)위즈덤하우스 / 2016년 7월 5일 / 값 14,000원
ⓒ (주)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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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민중 역모 사건>(지은이 유승희, 펴낸곳 (주)위즈덤하우스)은 <추안급국안推案及鞫案>과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실려 있는 사례들 중 일부입니다.

<추안급국안>은 임진왜란 후 1601년(선조 34)부터 1892년(고종 29)까지 291년간, 조선시대 특별사법기관인 의금부에서 다룬 재판기록이라고 할 수 있는 기록입니다.

요즘도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게 사건사고이고 그에 따른 판결들이지만 고려나 조선시대에도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없지 않았습니다.

조선시대만 해도 이인좌의 난과 이괄의 난, 동학농민처럼 교과서에 실려 있어 널리 알려진 난들도 있지만 역사서에만 기록돼 있는 민란들도 적지 않습니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사건들은 조선 사회를 뒤흔들었던 변란·역모에 한정하지 않고 정권을 둘러싼 지배층의 권력투쟁, 왕조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언妖言, 난언亂言, 흉서凶書, 왕릉 방화와 천주고·전패작번殿牌作變 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요언이란 '인심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요사스러운 말'로 요즘으로 말하자면 '괴담' 쯤에 해당 할 것이며, 난언이란 '왕실에 대한 비난이나 모독' 등의 유언비어를 말합니다. 

조신시대는 짐이 곧 국가였던 왕정시대였습니다. 왕의 말이 법이었던 시대 같지만 어떤 사건도 왕이 독단적으로 처리하지 않았습니다. 죄인을 조사해 처결하는 과정인 추국 절차가 있었습니다. 사건의 경중에 따라 사건(죄인)을 조사하는 추국청 참여 규모나 추국절차가 다소 달라지게 마련이지만 기준이 있었고 제도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이충경이 <개국대전>에서 제시한 20개 조항의 핵심은 백성을 괴롭혀 그들의 고혈을 짜내는 현재의 정치를 혁파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충경은 당시 백성들의 고역인 군역 및 조세, 신분 문제 등 자신의 생각을 적어 <개국대전>을 작성했다. <개국대전>의 '개국'은 나라를 고친다는 의미다. 그리고 이 법전에는 자신들이 정한 20개조의 개혁안이 들어 있다. 이를 통해 당시 현실에 대한 강한 비판 의식과 세상을 바꾸려는 역모자의 열망을 드러내고 있다. - 103쪽

책에서는 <추안급국안>에 기록돼 있는 331개 사건 중 모반대역, 저주, 조요서요언, 난언, 무고, 대역부도 등으로 분류되는 사례들을 광범위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책에서는 사건을 조사하고 판결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는 추국과 사건을 규명하기 위해 조인에게 가했던 고신(고문)의 종류와 방법, <추안급국안>에 나온 죄인들은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죄인의 재산 국가가 몰수

작금, 법원이 잇단 비리 의혹으로 구속돼 있는 어느 검사장 소유의 140억 재산을 동결조치 했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범죄인에 대한 재산 압류는 요즘만의 법제도가 아니라 과거 조선시대에도 있었습니다.

'적목'은 글자 그대로 장부를 작성해 몰수하는 것이다. 중대한 죄를 범한 죄인의 소유와 관련 있는 일체의 재산을 장부에 기록해 국가의 법에 따라 관이 몰수하는 것을 말한다. 몰수된 재산의 사용과 수익, 처분 등의 모든 권한도 국가가 행사했다. - 263쪽

혼자 빠끔히 올려다보는 하늘은 내 눈을 가릴 수 있는 손바닥만으로 가려질 수도 있을 겁니다. 역모를 모의하고, 요언과 난언을 일삼던 그 옛날 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고 나만 죽으면 다 끝날 일이라고 믿었을 겁니다.

하지만 SNS도 없었고, 별다른 기록매체도 없었던 시대에도 죄는 드러나고 조사와 판결은 이렇게 저렇게 기록으로 남는다는 것을 이 책이 일깨워 줍니다. 가까이는 100여 년 전부터 멀게는 40여 년 전까지, 어떤 사건이 있었으며 그 사건이 어떤 조사를 거처 어떤 판결을 받았다는 역사적 기록을 읽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책에서 찾을 수 있는 더 큰 의미는 자신이 가리고 있는 어떤 진실도 누군가가 하고 있는 기록으로 언젠가는 다시금 평가되거나 거론될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 있다 하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조선 민중 역모 사건> (지은이 유승희 / 펴낸곳 (주)위즈덤하우스 / 2016년 7월 5일 / 값 14,000원



조선 민중 역모 사건 - 재판 기록으로 살펴본 조선의 두 얼굴

유승희 지음,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2016)


태그:#조선 민중 역모 사건, #유승희, #(주)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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