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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이여 창업하라?

청년창업이 이슈다. 청년 실업률이 증가하면서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되자 정부와 지자체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앞 다투어 갖가지 방법으로 청년들의 창업을 독려하고 있으며, 정치권은 그들 나름대로 선거에서의 유불리를 따지며 이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중이다.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창업 교육과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도 얻을 수 있는 창업 초기자본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런 지원 정책들이 청년 창업에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처음 사회에 뛰어드는 청년들이 창업을 하기 위해서는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고, 대형마트로부터 골목상권을 보호할 수 있는 등의 사회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변화가 병행되어야 하는데, 행정은 그와 같은 본질적인 변화는 차치한 채 피상적인 지원만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질적인 사회 변화 없이 청년들에게 창업을 권하는 것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자영업의 양산과 뭐가 다른가. 현재 우리 사회의 자영업은 다른 국가와 비교하여 기형적으로 많은 편이다. 많은 이들이 불안정한 직장을 피해 자영업 시장에 뛰어들어 자영업자의 십중팔구가 망하는 것이 이 시대의 민낯이다.

가죽패션 청년창업은 강동구 사회적경제가 밀고 있는 분야다
▲ 청년창업 가죽패션 청년창업은 강동구 사회적경제가 밀고 있는 분야다
ⓒ 코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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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 지경인데 청년들까지 나서서 창업을 해라? 정부는 교육을 시키고 초기자금만 어느 정도 보조해줄 테니 그 다음은 젊은 너희들이 나서서 책임지고 알아서 해라?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더라?

당연히 이는 무책임한 일일 수밖에 없다. 이제 대한민국은 더 이상 40년 전 고졸 청년들이 열심히 장사를 해서 일가를 이룰 수 있는 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의 빈부격차는 심해졌고 계급사다리는 끊긴 지 오래이며, 사회 안전망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 아무리 젊음이 무기라고 하지만 한 번 넘어지면 일어서기 어려운 것이 현재 대한민국이라는 정글의 법칙이다.

그런데 여기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청년창업을 하고 나선 이들이 있다. 가죽 제조를 앞세운 협동조합 서울가죽소년단이 그들이다. 이들은 현재 강동구청과 마을기업 코이로가 함께하고 있는 가죽패션 협동조합 교육을 받고 있는 중인데, 그 와중에 감히 창업이라는 선택을 했다. 이제 막 창립총회를 마친 서울가죽소년단 남청대, 전형진, 이계선 이사와 그들의 후원자인 마을기업 코이로의 홍찬욱 대표를 만나보았다(아래 가죽소년단, 코이로).

모든 일은 소통에서부터 시작된다
▲ 협동조합 서울가죽소년단과 마을기업 코이로 모든 일은 소통에서부터 시작된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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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이 두렵지 않은가?

그들을 만나 기자가 처음 질문한 것은 역시나 창업의 이유였다. 비록 정부와 지자체가 청년창업을 계속 독려하고, 그들 중에는 오랫동안 코이로에서 교육을 받아왔던 이도 있지만 어쨌든 현재 우리의 사회 시스템에서 창업을 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떻게 그들은 창업을 결심하게 되었을까?

(가죽소년단) "어떤 회사를 가도 계속 꿈을 가지고 있었어요. 내 것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 창업을 한 것은 무엇보다 즐겁고 재미있게 일하고 싶어서죠. 놀면서,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있다."

(코이로) "사람들은 대부분 창업을 고난과 역경의 일로 받아들여요. 내가 실패해서 자영업 한다고 생각하고 취업이 안 되니까 창업한다고 생각하고. 창업을 재미난 도전이라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별로 없죠. 그런데 창업은 즐겁게 해야 해요. 즐겁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창업을 한다. 재미나게 돈 버는 모델. 그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현재 마을기업 코이로의 발주를 받고 있다
▲ 서울가죽소년단의 제품들 현재 마을기업 코이로의 발주를 받고 있다
ⓒ 코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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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창업 아이템으로서 가죽을 선택했다. 물론 교육을 받고 있기 때문이겠지만 그들 모두는 가죽이란 소재에 대해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가죽소년단) "가죽의 매력이 그런 것 같아요. 예전에 가죽 필통을 선물 받았었는데 쓰면 쓸수록 점점 변화하더라고요. 그게 너무 좋았어요. 아날로그적이면서도 힐링을 느낄 수도 있고."

"저는 제약회사에서 영업사원을 하다가 그 갑을구조에 신물이 나서 그만뒀어요. 그랬다가 어쩌다 보니 강동구 지역의 가죽자원조사를 하게 되었는데 우연찮게 가죽공예를 하게 되었어요. 매력적이더라고요. 내가 디자인한 제품이 가죽으로 나올 수 있다는 거. 바로 이것이 내가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코이로) "가죽은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이죠. 가죽은 신경을 많이 쓰고 공을 들이고 열심히 만들면 결과물이 바뀌어요. 좋아질 수밖에 없거든. 그런데 살면서 열심히 노력한 만큼 결과물이 나오는 것이 드물어요. 일반 회사에서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결과가 더 중요하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가죽은 과정과 결과가 거의 비례해요. 한 마디로 정직한 게 매력이죠."

서울가죽소년단의 제품들
▲ 가죽제품들 서울가죽소년단의 제품들
ⓒ 코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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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하필 창업의 형태가 협동조합이었을까?

(가죽소년단) "대부분의 사람들이 창업하면 실패부터 이야기해요. 강사들도 계속 실패하다가 이제야 성공했다고 하니까 두려워지고 막상 시작하기 힘들고. 그런데 협동조합은 이런 두려움을 극복하기 좋아요. 서로 돕고 서로 위로하고. 아이디어 막 던져서 한 번 해보고, 아니면 바꾸면 되고. 그런 수평적인 구조가 힘이 되죠."

"막상 창업을 하려고 하니 겁이 났어요. 겁주는 사람들이 많고. 하지만 같이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까 좀 편했어요. 어렵지만 어떻게든 될 것 같고. 막연한 자신감도 생기고. 혼자는 힘든 것 같아요."

(코이로) "협동조합은 제조업에 있어서 나쁘지 않은 형태지. 일한만큼 가져가니까. 내가 10개를 만들었으면 10개 만든 만큼 가져가면 돼. 다른 산업들은 누가 아이디어를 냈느니, 영업을 뛰었느니 기타 조건들이 많은데 제조업은 아웃풋이 정확하잖아요. 몇 개 만들었는지 정확하니까 그만큼 나눠가질 수도 있고. 그래서 협동조합 형태의 창업을 권했죠."

청년창업교육의 문제점

그나마 진보한 형태의 교육
▲ 청년창업의 전형적인 교육 그나마 진보한 형태의 교육
ⓒ 강동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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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간의 실적주의로 빠지면 위험하다
▲ 청년창업 교육 개강식 단기간의 실적주의로 빠지면 위험하다
ⓒ 코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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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가죽소년단이 가죽 제조에 관심이 많았다고 해도, 그 관심이 곧바로 창업으로 이어질 수는 없다. 결국 가죽 공예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려면 오랜 시간 동안 숙련의 과정이 필요한데, 현재 지자체에서 진행하고 있는 많은 교육들은 터무니없이 짧기 때문이다.

(코이로) "사실 현재 공무원들이 진행하는 청년창업 시스템은 정말 문제가 많아요. 한 마디로 전문성이 없죠. 적어도 10년을 먹고 살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는 10개월 이상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지자체들은 오로지 단기 실적을 위해서 그 기간을 축소하기 바빠요. 전문대도 2년인 만큼 몇 개년 계획을 잡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거죠. 한 달 가르쳐서 무슨 창업을 해요. 이건 청년창업이 목표가 아니라 차라리 그들을 교육하는 시스템을 먹여 살리는 사업이에요. 그리고 그래서는 교육이 하향평준화 될 가능성이 높아요."

"그래서 저는 구청과 교육 과정을 짤 때 계속 요구했어요. 인건비는 코이로에서 책임질 테니, 교육 시간을 늘려달라고. 진짜로 청년창업을 위한 거라면 점심, 저녁, 간식 제공에 들어가는 예산 빼서 차라리 교육 시간을 늘리라고. 교육을 몇 개년으로 길게 잡아야죠. 최소한 2년 자리 기획으로 잡아 청년들이 창업할 수 있게 학교 같은 느낌으로 가야 된다고 주장했죠. 코이로는 먹고 살만 하니 예산을 넘어서는 만큼 인건비는 받지 않겠다."

왜 청년들을 돕는가?

청년들의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길 원하는 그
▲ 마을기업 코이로 홍찬욱 대표 청년들의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길 원하는 그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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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이야기를 듣다보니 궁금해졌다. 코이로는 자신들의 인건비까지 줄이면서 왜 청년들의 창업을 돕고 나섰을까? 단순히 이타심 때문이었을까? 이에 대해 홍 대표는 사회적기업가로서 자신이 속한 가죽산업의 환경 개선과 함께 청년들의 자립을 언급했다.

(코이로) "사회적경제의 영향이라고 생각해요. 기본적으로 같이 해보고 싶어요. 저 혼자 가죽공예를 하면서 무척 외로웠으니까. 나랑 완전히 생각이 똑같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지역에서 같이 일할 수 있는 친구들이 생기면 덜 외롭겠지.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나눠서 하나 더하기 하나가 삼이 되고 사가 되는 것을 찾으면, 오히려 더 시너지가 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었어요."

"다른 사람들이 맨날 이야기해요. 창업하면 10개 중의 8개는 망한다고. 맞는 말이죠. 사회적 구조가 좀 자빠졌다가 다시 일어날 수 있게 해주면 좋겠는데 연대보증 등 시스템적으로 힘들어요. 이런 구조를 바꾸고 싶었어요. 당장은 힘드니까 지역이 도와주는 사회적경제가 모델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먼저 시작했던 사람들이 조금씩만 도와주면 자리 잡을 수 있거든요. 책임질 어른들이 같이 참여해서, 지역에서도 돕고."

"기존의 하청 위주의 가죽산업 환경은 관성 때문에 바꾸기 힘들어요. 우리나라에는 제조까지 가능한 브랜드가 없어요. 대부분 외주를 주죠. 그러니 늘 공장들이 지하에서 본드냄새 풍기면서 열악하게 일해요. 그래서 젊은이들이 창업하는 게 오히려 효과적이라고 봤죠. 젊은이들이 좋은 환경 속에서 음악소리 들으며 맑은 공기 쐬면서 일하는 것을 보면 바뀌지 않을까. 청년들이 플랫폼이 되어 지역에 정착하여 브랜드도 만들면 기존의 시스템도 변하지 않을까."

"비록 내 사업을 쪼개면서 이들을 돕고 있는 거지만 난 쪼개졌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의 숙원인 공장이 생기는 거거든. 이젠 제게 100개의 주문이 들어왔을 때 이들에게 주문하면 돼요. 현재 정부는 디자이너만 엄청 키워놨어요. 그런데 그들은 직접 제작할 줄을 몰라요. 디자인 하고 공모전 기다렸다가 자본 들어가 성공하면 그걸로 샘플 몇 개 만들고 끝이죠. 제조 없는 디자인 산업의 한계. 그들에게 말해요. 우리가 만들어주겠다고. 할 달에 4~50개 정도 만들면 월급만큼은 나올 거고, 조합원들은 이를 통해 숙련도를 올려 점점 좋은 제품을 만들 거예요.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브랜드도 될 것이고."

서울가죽소년단의 꿈

열심히 작업 중인 서울가죽소년단
▲ 열심히 작업 중인 서울가죽소년단 열심히 작업 중인 서울가죽소년단
ⓒ 코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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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열심히 작업 중인 서울가죽소년단
 역시 열심히 작업 중인 서울가죽소년단
ⓒ 코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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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의 마지막, 서울가죽소년단은 자신들의 생존전략을 밝히며, 이 땅의 젊은이로서 그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을 이야기했다. 

(가죽소년단) "저희는 공장과 공방의 중간 지대를 노려요. 공방은 제작수량이 한정되어 있고, 공장은 몇 백 개 이상을 한꺼번에 생산하는 최소수량이 필요한데, 저희는 협동조합으로서 제작자가 많으니까 제품 당 40~50개 정도를 제조하는 거죠. 많은 디자이너들이 제품을 생산하고 싶은데 많이 생산할 자본은 없고, 공방에 맡기자니 개수가 안 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렇게 협동조합을 운영하다 보면 우리가 청년들의 든든한 배경이 될 수 있을 거예요. 사실 같이 제조를 하다가 개인 브랜드를 내고 나가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하다가 망했어요. 보통 한 번에 성공하기 쉽지 않잖아요. 문제는 그 사람들이 망하고 나서 되돌아 올 데가 없어요. 지금은. 하지만 조합원이면 다시 돌아와서 똑같이 시작하면 돼요. 돈 버는 것도 좋지만 협동조합이 그런 사람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보금자리가 되면 좋겠어요. 망했을 때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자리. 지역에서 함께. 그게 저희의 목표이기도 해요." 

재미있게 일하기 위해 창업을 하고, 청년들이 넘어졌을 때 그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든든한 힘이 되어주고 싶다는 서울가죽소년단. 현재 그들은 이런 열정을 바탕으로 지역에서 조합비를 3000만 원 정도 모았고, 강동구청과 코이로가 협약한 엔젤공방을 거점으로 그 지역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는 중이다. 청년창업을 말로한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실천하며 지역경제의 선순환이라는 사회적경제의 가치를 실현해 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열정에 박수를 보내며 부디 서울가죽소년단이 청년창업의 롤모델로,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행정의 눈 가리고 아웅 식의 교육시스템에 신선한 자극이 되기를 바란다.


태그:#사회적경제, #코이로, #서울가죽소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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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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