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을 돌리다가 남녀 간 맞선을 유도하는 새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그곳에서 한 여성이 "저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거해요, 게임이나 축구 같은 거"라고 하자 주변의 남자들이 "여자가 게임을 해요? 신기하네"라는 반응을 보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성이 게임을 한다는 것이 신기한 행동으로 비춰지는 경우가 많다. 편견이다. 그리고 이런 편견은 최근 들어 게임과 관련되어 발생한 여러 가지 문제에도 작동하고 있다.

[논란①] 여자가 이렇게 게임을 잘할 리 없어?

 블리자드의 신규 FPS게임 <오버워치>의 캐릭터 중 한 명인 자리야의 이미지. 유저 '게구리'는 이 자리야 캐릭터를 매우 잘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해졌으나, 이후 '핵' 사용이 아니냐는 논란에 휩싸였다. 그가 여성이라는 게 드러난 이후로는 인신공격으로까지 번졌다.

블리자드의 신규 FPS게임 <오버워치>의 캐릭터 중 한 명인 자리야의 이미지. 유저 '게구리'는 이 자리야 캐릭터를 매우 잘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해졌으나, 이후 '핵' 사용이 아니냐는 논란에 휩싸였다. 그가 여성이라는 게 드러난 이후로는 인신공격으로까지 번졌다. ⓒ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


<오버워치>는 게임 제작사 '블리자드'에서 출시되어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온라인 FPS 게임이다. 게임상에서 논란이 되는 일이 있었는데 일명 '게구리 사건'이다. '게구리'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오버워치> 유저가 '너무 잘해서' 핵(부정 프로그램)을 사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다. 여기에 '게구리'가 여성 유저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논란이 훨씬 확산됐다. 온갖 인신공격과 비난이 난무했으나, 검증 결과 핵을 사용했다는 의혹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게구리'는 <스포츠경향>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성별을 밝혔을 때 "거짓말하지 마라, 여자는 저렇게 게임 잘할 수가 없다"라는 말을 수없이 듣고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다고 밝혔다.

<오버워치> 등 여러 게임을 즐기는 여성 지인에게 이런 경험이 있느냐고 물었다. 실제로 여성임을 밝히고 게임을 하게 될 때 남성 게이머에게 성희롱은 다반사고 승리했을 경우 '여자가 감히'라는 식으로 욕설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게임 내 여성 유저에 대한 차별적 편견은 <오버워치> 여성 유저 '게구리'만 겪은 문제가 아니다. 많은 여성 게이머들이 그래서 자신의 성별이 드러나는 것을 꺼린다.

여성이 게임을 즐기는 게 당연하지 않은 사회가 만든 비정상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여성은 곧잘 게임 실력의 외적인 부분을 평가받는다. 여성이라는 사실 그 자체 혹은 외모 등등.

[논란②] <서든어택2> 여성 캐릭터의 선정성

 삭제된 캐릭터 '미야'

논란 끝에 결국 <서든어택2>에서 삭제된 캐릭터 '미야'. <서든어택2>는 재미 없는 게임이었으며, 동시에 여성 캐릭터의 섹스 어필에 치중한 게임이었다. ⓒ 넥슨GT


<오버워치>가 전 세계적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는 동안 국내 게임회사 '넥슨'에서 새롭게 내놓은 <서든어택2>는 다른 논란에 휩싸였다. 300억 원을 들여 개발했다고 했으나, 게임의 질적인 부분에서 만족감을 느낀 유저는 드물었다. 대신 지나치게 노출이 많은 여성 캐릭터의 선정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성 상품화 및 성적 대상화라는 지적이다. 오죽하면 여성 캐릭터가 게임 내에서 사망한 경우, 쓰러진 캐릭터의 몸매를 구경하기 위해 달려간다는 농담 아닌 농담이 나올 정도이겠는가.

총기류를 가지고 서로의 실력을 겨루는 FPS 게임의 목적이 무색하게 <서든어택2>는 여성 캐릭터의 몸매 품평만이 가득했다. FPS 게임 속 캐릭터의 성별이 무슨 상관인가. 총을 잘 쏘고, 상대와 잘 싸울수록 캐릭터의 가치가 높아지지 않을까? 그런데 그런 능력 이전에 섹스 어필을 하는 데 치중한 캐릭터 설계였다. 비현실적인 가슴 크기와 이를 강조하는 복장. 과연 그런 조건들이 모두가 즐겁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이었나. 말 그대로 '뭣이 중헌지' 모르고 게임을 개발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런 비판을 의식했는지 넥슨은 선정성 논란이 일었던 두 명의 캐릭터를 삭제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선정적인 캐릭터를 없애느냐 마느냐가 아니었다. 게임 내에서조차 여성은 '능력'이 아니라 '외모'로 평가받아야 하는가? 과거에도 여성 게이머 그리고 게임 내 여성 캐릭터가 겪어야 하는 수난은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공론화가 잘 안 되었다. 수면 아래에 있던 여성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페미니즘이 대중화되면서 이제야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넥슨은 <서든어택2>에 가해졌던 수많은 비판을 생산적인 피드백이라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논란③] 게임 성우에게 왜 사상검증을 내리나

 김자연 성우가 자신의 트위터(@KNKNOKU)를 통해 올린 포스팅. 티셔츠에 쓰인 문구도, 그녀가 사진과 함께 올린 대사도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 사진 한 장으로 인해 마녀사냥이 시작됐다.

김자연 성우가 자신의 트위터(@KNKNOKU)를 통해 올린 포스팅. 티셔츠에 쓰인 문구도, 그녀가 사진과 함께 올린 대사도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 사진 한 장으로 인해 마녀사냥이 시작됐다. ⓒ @KNKNOKU


그러나 그런 바람과는 다르게 또 사달이 나 버렸다. 넥슨의 게임인 <클로저스>는 새로운 캐릭터 공개를 예고한 바 있다. 그런데 이 신규 캐릭터의 목소리를 맡은 성우 김자연이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티셔츠 사진 한 장이 문제가 됐다. 해당 티셔츠는 <메갈리아4>가 주체가 되어 페이스북과의 소송에 발생하는 비용을 모으기 위해 크라우드펀딩 형식으로 팔았던 티셔츠이다. 김자연 성우는 이 티셔츠를 인증했을 뿐이었다. <메갈리아4> 페이스북 페이지는 <메갈리아>와 갈라져 나온 후 지금까지 온건한 방식으로 성차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해왔다.

그러자 유저들의 머릿속에는 '메갈리아4=메갈리아=남성혐오'라는 편견이 박혀 있었다. 일부 누리꾼들은 '페미니스트를 가장한 남성혐오 집단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에게 성우를 맡길 수 없다'며 넥슨 측에 성우를 교체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하루 만에 <클로저스>의 새 캐릭터 성우는 바뀌어 버렸다. 그와 함께 김씨가 참여한 넥슨의 다른 게임 <최강의 군단>에서도 역시 성우를 교체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 문제를 성우 개인의 일탈로 인해 생긴 일로 해석하면 곤란하다. 국내 게임 개발자 그리고 유저들이 성 평등 그리고 여성인권에 대한 이해수준과 공감능력이 매우 떨어져 있음을 보여준 현상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했던 <서든어택2>와 <오버워치> 논란의 연장선이다. '게임을 하는 여성'과 '게임 내의 여성 캐릭터' 더 나아가 '게임에 참여하는 여성' 모두에게 가해지는 폭력이다.

게다가 성우 김자연은 별다른 혐오 발언을 한 적도 없다. 단지 여성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문구인 'GIRLS Do Not Need A PRINCE'에 공감했을 뿐이다. 왜 게임 성우가 성우의 자질과 관련이 없는 부분에서 사상검증을 당해야 하는가? 이는 김자연 성우가 여성이라는 부분과 무관한가? 현재 넥슨의 입장표명을 지지하는 누리꾼들은 김자연 성우를 지지하는 웹툰 작가 등을 지목해 비난하고 있다. 이것이 과연 정당한 일인가. 어떤 의견을 지지한다는 이유만으로 억압받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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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슨 #서든어택2 #김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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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읽고 보고 쓰고 있습니다. 활동가이면서 활동을 지원하는 사람입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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