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포스터. 이번 BIFAN은 영화제의 해방구가 되고 있다.

2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포스터. 이번 BIFAN은 영화제의 해방구가 되고 있다. ⓒ BIFAN


21일 개막을 앞둔 2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대한 관객들의 관심이 폭발적이다. 20회의 의미를 충분히 살린 프로그램이 관객들의 시선을 끌며 예매만 3만장을 돌파했다. 2005년 당시 부천시장의 부당한 간섭으로 오랜 시간 영화인들의 거부 정서가 이어졌던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2005년 부천국제영화제 개막식은 눈에 띄는 영화인이라고는 홍보대사 외에는 찾기 힘들 정도로 초라한 행사였다. 당사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소속 부천시장이 김홍준 집행위원장을 해임한 것에 반발해 영화계는 보이콧을 선언했다.

같은 시각 서울에서 열린 레알판타스틱영화제 개막식은 영화인들로 북적였다. 해임 당한 김홍준 위원장이 부천영화제와 같은 기간에 같은 색깔의 영화제를 개최해 맞불을 놓은 것이다. 당시 부천시는 지역 주민들을 빈자리가 가득한 극장에 동원했으나, 관람 예의를 지키지 않는 일부 주민들 때문에 관객들이 반발하기도 했다. 관객 수 집계도 허술해 일부 관객들은 직접 상영관 앞에서 개인적인 집계를 하기도 했다.

그 파장으로 성장이 정체된 채 더딘 걸음을 이어가던 부천영화제는 올해 최용배 집행위원장이 취임하면서 변화의 조짐을 보였다. 김만수 시장이 이전 사태에 대한 유감 표명을 했고, 당시 영화제를 떠났던 김영덕 프로그래머를 복귀시켰다.

또한 지난 6월 정지영 감독을 민간 조직위원장으로 선임하면서 2004년 이후 빚어진 부천영화제와 영화계의 불편한 감정을 매듭지었다. 부천영화제는 초창기에 영화제를 키워낸 김홍준 전 집행위원장도 공식 초청했다. 김 전 집행위원장이 이를 수락해 12년 만에 부천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하는 것은 상징성이 매우 크다.

<부산행> 프리퀄 영화 <서울역> 폐막작

서울역 <부산행> 연상호 감독이 만든 프리퀄 영화. 부천영화제 폐막작이다.

▲ 서울역 <부산행> 연상호 감독이 만든 프리퀄 영화. 부천영화제 폐막작이다. ⓒ 부천영화제


49개국 302편의 영화는 과거를 털어내고 미래 지향적인 영화제를 위해 나가겠다는 부천영화제의 의지를 보여 준다. 20회라는 의미를 적극 활용하려는 모양새다. 풍성하고 알찬 프로그램이 준비됐고, 이를 알고 있다는 듯 관객들의 호응도 적극적이다.

21일 개막작 <캡틴 판타스틱>으로 막을 올리는 부천영화제는 경쟁부문인 '부천초이스'와 국내외 판타스틱 영화들을 모아 놓은 작품 '코리아판타스틱' '월드판타스틱', 영화의 강도가 세기로 소문난 제한상영가 등급을 모아 놓은 금지구역 등으로 구성돼 있다. 

역대 관객 반응이 좋았던 영화들을 추린 '다시 보는 판타스틱 걸작선'이나 아시아 각국의 흥행영화들을 모은 '베스트 오브 아시아', 한불수교 130주년을 기념하는 프랑스 대표 스튜디오 '고몽: 영화의 탄생과 함께한 120년' 특별전은 부천이 심혈을 기울인 프로그램이다. 가족 관객들을 위한 패밀리 존은 청소년들에게 초점을 맞췄다.

'베스트 오브 아시아'는 한국 일본 중국 홍콩 대만 인도 등 아시아 국가 10개국의 2015년 최고 흥행작 30편을 모아놔 각 나라의 흥행작 특성도 엿볼 수 있게 했다. 대중성 있는 영화들을 중심에 두고 있는 부천영화제가 관객 몰이를 위해 준비한 기획이다.

개막작과 함께 폐막작으로 선정된 연상호 감독의 <서울역>도 <부산행>의 프리퀄(전편보다 시간상으로 앞선 이야기를 보여주는 속편. 본편의 이야기가 왜 그렇게 흘러가는지 설명하는 기능을 한다) 영화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들 영화들은 이미 상당수가 예매를 통해 매진돼 올해 부천의 흥행을 예고하고 있는 상태다.

정치적 탄압 받은 작품들 4편 엄선, 표현의 자유 강조

 2014년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돼 파장이 컸던 <다이빙벨>. 20회 부천영화제에서 확장판으로 특별상영한다.

2014년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돼 파장이 컸던 <다이빙벨>. 20회 부천영화제에서 확장판으로 특별상영한다. ⓒ 시네마달


하지만 무엇보다 올해 부천의 마음가짐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은 '한국 영화 표현의 자유 사수를 위한 포럼과 특별상영'이다. 최근 부산영화제 사태와 맞물리며 영화 해방구의 성격인 영화제로서 권력의 부당한 간섭에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저항하겠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상영작은 <다이빙벨> <불안한 외출> <레드 헌트> <자가당착 : 시대정신과 현실참여> 4편에 불과하지만 상징성과 의미가 상당한 영화들이다.

이상호 감독의 <다이빙벨>은 부산영화제 사태를 촉발한 작품이다. 외압에 굴하지 않고 영화제 본연의 사명을 지켜낸 부산영화제는 이용관 위원장이 끝내 해임되며 파국에 접어들고 있다. 표현의 자유 사수 투쟁을 지지하는 뜻이 담긴 상영인데, 재편집된 확장판으로 상영된다. 이상호 감독은 영화제 두 번째 작품으로 가수 김광석의 죽음을 추적한 다큐스릴러 <일어나, 김광석>을 공개한다.

<레드 헌트>는 제주 4·3항쟁의 역사를 기록한 기념비적 다큐멘터리로 1997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된 후 감독이 경찰 보안수사대에 끌려가 국가보안법 위반 조사를 받았다, 영화를 상영했던 당시 인권영화제 집행위원장이 구속되는 등 논란이 많았던 작품이다.

지난해 12월 개봉한 <불안한 외출>은 공식 개봉 전 공동체 상영을 했다는 이유로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가 불법 상영으로 고발한 영화다. 통일운동가 윤기진-황선 부부를 다룬 다큐멘터리인데, 영등위의 고발이 드문 경우라 정치적 배경이 의심되고 있다. 이번 부천영화제 상영은 영등위 고발에 대한 항의 표시다. <불안한 외출>은 <다이빙벨> 논란이 있었던 2014년 부산영화제 상영작이었다.  

<자가당착 : 시대 정신과 현실 참여>는 영등위의 무모한 표현의 자유 옥죄기에 희생된 작품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이 풍자 대상으로 나오는데, 영등위는 제한상영가 등급으로 이 영화의 상영을 막으려 했다. 대법원 판결로 영등위의 심의에 문제가 있음이 드러났으나 공개적인 사과 한마디 없었다. 2011년 개봉하려했던 영화는 4년이 지난 2015년에야 간신히 개봉할 수 있었다.

부천영화제 측은 특별상영과 관련해 1990년대 독립영화 <오! 꿈의 나라>와 <닫힌 교문을 열며>에 내려진 영화검열에 대한 위헌 판결 요지를 언급하며 "심의기구 외에 보이지 않는 손이 영화 창작과 유통에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다"고 이번 상영의 의의를 강조했다. 특별상영은 선착순 무료로 상영되며 영화 검열의 부당성을 따지는 포럼도 개최된다.

부천영화제 BIFAN 정지영 표현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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