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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이 발생한 프놈펜 시내 주유소 직영 편의점은 다음날부터 셔터를 내린 채 영업을 일시 중단했다. 이후 소식을 접한 시민들이 현장을 찾아 와 문앞에 흰국화꽃을 바치고 있다.
 사건이 발생한 프놈펜 시내 주유소 직영 편의점은 다음날부터 셔터를 내린 채 영업을 일시 중단했다. 이후 소식을 접한 시민들이 현장을 찾아 와 문앞에 흰국화꽃을 바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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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아래 현지시각)오전 8시 30분경, 캄보디아 프놈펜 시내 중심가 편의점에서 세발의 총성이 연거푸 울렸다. 편의점 안에 있던 손님 여러 명이 비명을 지르며 우르르 뛰쳐나왔다. 그중 누군가 '강도야'라며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다시 편의점 문이 열리고, 총을 쏜 범인으로 의심되는 사람이 밖으로 나왔다. 당황한 용의자는 잠시 주춤하더니 곧바로 편의점 옆 대로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놀란 시민들과 주유원들은 범인의 도주 모습을 멍하니 지켜봤다.

사람들의 시선이 다시 편의점 안으로 쏠렸다. 서너 명이 안을 살피기 위해 조심스레 유리문을 열고 들어갔다. 타일바닥에는 검붉은 피가 흥건했고, 자주색 셔츠를 입은 한 남자가 머리와 가슴에 총을 맞은 채 바닥에 누워 있었다. 이미 숨이 멎은 상태였다.

잠시 후 누군가 그를 알아보고는 이렇게 외쳤다.

"'껨 레이'다."

시민운동가의 갑작스러운 죽음

 지난 7월 10일 프놈펜 시내 편의점에서 발생한 총격사건으로  캄보디아의 저명한 정치평론가이자, 풀뿌리 민주주의 정당을 이끌어 온 껨 레이가 현장에서 사망했다. 일각에선 그의 죽음에는 정치적인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 7월 10일 프놈펜 시내 편의점에서 발생한 총격사건으로 캄보디아의 저명한 정치평론가이자, 풀뿌리 민주주의 정당을 이끌어 온 껨 레이가 현장에서 사망했다. 일각에선 그의 죽음에는 정치적인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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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살당한 남자는 캄보디아의 유명 정치평론가이자,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천하기 위한 시민정치단체 '크메르를 위한 크메르'를 이끌어온 설립자 껨 레이(46)였다. 그는 <미국의 소리(VOA)>와 <라디오 자유 아시아(Radio Free Asia)>는 물론이고 TV 정치토론 프로에도 거의 매주 등장하는 인물이다.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늘 편안한 어투로 어려운 정치 현안을 쉽게 설명해주는 정치해설가로서 대중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었다.

나른한 일요일 오전, 갑작스런 그의 피살 소식은 SNS을 통해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현지 방송사들은 정규 방송 중에 이 소식을 자막으로 내보냈다. 국민 모두가 충격에 빠진 날이었다.

사건 발생 직후 만삭인 그의 아내와 어린 자식들이 황급히 피살 현장을 찾았다. 하지만 편의점 문은 경찰에 의해 이미 폐쇄된 상태였고, 그의 가족들은 유리창 밖에서 시신을 바라보며 오열했다.

그 사이 지역을 순시하던 경찰들은 제보를 받고 용의자를 뒤쫓기 시작했다. 오토바이를 탄 경찰이 뒤에서 따라가며 설득하려 했지만, 용의자가 권총을 갖고 있어 접근이 쉽지 않았다.

정작 용의자를 잡은 것은 일반 시민들이었다. 1.5km 추격전 끝에 사건현장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이온몰 백화점 도로변에서 사원 안쪽으로 들어가려는 용의자를 잡았다. 용의자를 외국인의 금품을 훔친 단순 도둑으로 오인한 20~30명 시민들이 그의 손에 들린 총을 빼앗고 동시에 몰려들어 두들겨 팼다.

주변 목격자들에 증언에 따르면 이러한 '응징'은 대략 10분 동안 지속됐다. 또 다른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누군가 저지하지 않았으면 아마 그는 곧 죽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살인용의자가 경찰에 의해 체포된 시각은 사건이 발생한 지 불과 30분만인 오전 9시였다.

경찰 조사에서 용의자는 살인동기에 대해 "껨 레이가 빚 3000달러를 갚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진술했다. 그러나 껨 레이 가족들과 지인들의 주장은 완전히 다르다. 남편이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지인들 역시 껨 레이는 "의사로 충분한 경제적 여력을 갖고 있어서 굳이 남에게 돈을 빌릴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해외에 망명중인 제1야당(CNRP) 총재인 삼랭시는 사건 당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피살된 껨 레이의 피살 사진 한 장을 올렸다. 그리고 이 사건이 단순 살인이 아닌, 누군가에 의한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 사건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제1야당 지도자 뿐만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국민들 역시 분명히 누군가 꾸민 사건이라고 직감하고 있었다. 

껨 레이의 장례식에서 만난 한 주민은 "이번 사건은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니며 누군가 정치적인 목적을 갖고 그를 살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주범이 누군지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누군가 정치적 목적을 갖고 살해했다"

 껨 레이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시민. 여야를 가리지 않는 날카로운 비판과 정치평론으로 캄보디아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던 그에 대한 국민들의 추모열기를 보여준다.
 껨 레이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시민. 여야를 가리지 않는 날카로운 비판과 정치평론으로 캄보디아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던 그에 대한 국민들의 추모열기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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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에 입건되어 심문을 받고 있는 범인의 이름은 '우엣 앙'이다. 나이는 43살. 전직 크메르루즈 출신 군인으로, 3년간 승려생활을 했으며 가장 최근에는 환경운동가로도 일한 독특한 이력을 가졌다. 앙코르와트로 유명한 씨엠립주(州)가 그의 고향이며, 올해 4월에 재혼한 아내가 있다.

현지 언론들이 사건 발생 다음날 살인피의자의 아내 집을 찾아갔다. 시장에서 고기를 내다팔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이 여성은 자신의 남편이 7월 1일쯤 프놈펜에 간다고 떠났으며, 대략 10일쯤 돌아오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범인인 남편이 "죽은 껨 레이에 대해서 단 한마디도 한 적이 없으며, 남편이 그런 범죄를 저지를 것으로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사망 당일 오후 3시경 껨 레이의 시신을 실은 운구차량이 프놈펜 일본다리 건너 한 왓 짜 사원으로 출발했다. 소식을 듣고 황급히 찾아온 야당지지자들과 시민운동가들, 그리고 일반시민들까지 무려 4~5천 명에 이르는 애도 인파가 운구차를 뒤따라 다리를 건넜다. 사진기자 수십여 명도 운구차량 주변으로 몰려 사진을 찍어댔다. 차 안에는 그가 고이 잠들어 있었고, 그의 몸 위에는 앙코르와트가 그려진 캄보디아 국기가 놓여 있었다.

껨 레이의 부인 부 라차나씨는 지난 12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과 남은 4명의 자식들의 안전이 염려된다며 호주로 이민을 가겠다고 밝혔다. 이 소식을 접한 호주의 캄보디아 교민사회는 만약 그와 자식들이 온다면 정착해 살아갈 수 있도록 기금을 만들어 주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주 프놈펜 호주 대사관 측은 "그의 가족들로부터 망명이나 이민과 관련된 어떠한 요청이나 서류를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사건 발생 다음날인 지난 11일 그의 시신이 안치된 불교사원을 찾았다. 시내 맞은편 메콩강변에 위치한 이 사원 주변은 매일 수천 명에 이르는 문상객들이 손에 연꽃을 든 채 장례식장을 찾고 있었다. 평소 한가했던 주변은 이른 아침부터 해가 질 무렵까지 장터처럼 문상객들로 붐볐다. 제사상에 올릴 연꽃을 파는 상인들도 많았고, 껨 레이의 흑백사진이 그려진 티셔츠도 팔려나갔다.

그의 시신은 대형 천막 안 유리관에 안치되어 문상객을 맞고 있었다. 주황색 승복을 입은 승려들 사이로 그의 가족들과 친지들은 흐느꼈다. 동시에 그의 마지막 길을 축원했다. 아내는 오열하다가 지쳐 누군가의 부축을 받아야만 했다.

이른 꼭두새벽부터 먼길을 마다 않고 찾아온 조문객 수만 하루 수천 명이 넘었다. 푸른 눈을 가진 유럽 NGO소속 직원들과 재야인사, 시민단체들의 애도 방문이 하루 종일 이어졌다. 호주대사를 비롯해 프놈펜 주재 서방 외교관들, 그 외 구마마루 유지 일본대사도 조문행렬에 합류했다. 미국특사자격으로 방문한 톰 말리노우스키(Tom Malinowski) 민주, 인권, 노동 담당 차관보도 지난 19일 조문을 다녀갔다.

"야당의 음모" 서둘러 진화하는 총리

 수도 프놈펜 메콩강변  왓차 불교 사원에 마련된 빈소 유리관에 그의 시신이 안치된 가운데 전국에 찾아 온 조문객들의 행렬이 일주일 넘게 줄을 잇고 있다. 장례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매일 평균 3~4천 명이 조문객이 찾아온다고 밝혔다.
 수도 프놈펜 메콩강변 왓차 불교 사원에 마련된 빈소 유리관에 그의 시신이 안치된 가운데 전국에 찾아 온 조문객들의 행렬이 일주일 넘게 줄을 잇고 있다. 장례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매일 평균 3~4천 명이 조문객이 찾아온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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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일각에선 껨 레이의 죽음에 정치적 음모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가 살해되기 3일 전인 지난 7월 7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국제감시단체 <글로벌 위트니스>가 폭로한 훈센 총리 일가의 막대한 재산 축적에 대해 비판적으로 언급한 것이 죽음의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관련기사 : 항공부터 콘돔 회사까지, 죄다 독재자 일가 손에). 동시에 껨 레이뿐만 아니라 정부 비판적 시각을 가진 다른 정치평론가들에게도 일종의 경고 메시지를 주기 위함이란 해석도 뒤따르고 있다.  

껨 레이의 친구이자 환경운동가인 춤 후어씨는 지난 13일자 <캄보디아 데일리>와 한 인터뷰에서 껨 레이가 피살되기 48시간 전 같은 장소에서 신원 미상의 남성들에게 감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자신을 비롯한 사회운동가 5명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건장한 남성 4명이 주변을 배회하며 자신들의 대화를 감시했다는 것이다. 덧붙여 주유소와 편의점에 설치된 CCTV에 분명 영상이 남아있다고 증언했지만, 현지 경찰은 이 녹화 테이프를 언론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런 가운데 훈센 총리는 위와 같은 여론을 의식한 듯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사건 발생 다음날인 지난 11일 헌병대사령부 신축공사 기념 연설에서 반드시 범인을 엄단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야당이 주장하는 정부여당의 범죄 개입설에 대해서는 "단순 살해 사건을 정치화하려는 야당의 음모"라고 일축했다.

캄보디아에서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 것으로 의심을 받은 사건들은 대부분 미해결로 종결됐다. 지난 1997년 3월 30일 야당집회당시 수류탄을 투척해 16명이 사망한 사건 때도 훈센 총리의 경호 부대가 관련됐다는 정황이 포착됐음에도 여전히 미해결로 남아 있다. 2004년 노동운동가 찌어 위쩨아 피살사건도 마찬가지다. 이듬해 붙잡힌 용의자 두 명이 뒤늦게 진술을 번복해 억울함을 호소해 무죄로 석방되면서 사건의 진실은 영원히 미궁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현지인들은 이번 껨 레이 피살 사건 역시 과거에 일어난 유사 사건들처럼 영구미제로 남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한다.

운구행렬에 10만 명 참석 예정... "그는 영웅"

 장례식이 시작된 지난 10일 이후 전국에서 찾아오는 조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장례식이 시작된 지난 10일 이후 전국에서 찾아오는 조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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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7월 18일 열릴 예정이었던 마지막 장례행사가 갑작스레 오는 24일로 연기됐다. 장례가 연기된 이유에 대해 장례준비위원회 측은 전국에서 찾아드는 문상객들에게 그의 마지막 얼굴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현지신문에 밝혔다. 껨 레이의 부인 역시 이에 동의했다.

익명을 요구한 장례위윈회 관계자는 프놈펜시청 측과 24일 마지막 장례를 치르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껨 레이를 싣은 운구차량이 이날 그의 고향인 다케오주(州)로 보내질 것이라 말했다.

장례위원회 측은 마지막 장례가 치러지는 날은 각계 재야인사들을 포함해 최소 1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장례차 행렬에 따라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프놈펜 시청과 경찰당국도 혹시 발생할지 모를 대규모 반정부시위나 폭력사태에 대비해, 바짝 긴장한 분위기다. 

당초 불교식 장례를 거행하기로 했던 지난 18일 오후 다시 사원을 찾았다. 갑자기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더니 굵은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잠시나마 비를 피하기 위해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가 조문객들이 남긴 애도 방명록을 우연히 발견했다.

그중 한 시민운동가 대표가 남기고 간 애도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살아생전 그가 어두운 정치 현실에 힘들어하는 자국 국민들을 위로하며 자주 사용하던 슬로건 "당신의 눈물을 닦으세요, 그리고 당신의 여행을 계속하세요"를 인용한 문장이었다.

"우리는 껨 레이, 그를 캄보디아의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다간 영웅 중 한명으로 기억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먼 여행을 떠나는 그를 위해 우리가 그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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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프라자 뉴스 편집인 겸 재외동포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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