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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프로그램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에 보면 정말 입이 딱 벌어질 만큼 놀랄 만한 사연의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최근에 본 방송에서는 암벽을 타는 노부부가 출연했는데, 칠십이 넘은 나이에도 서로를 의지하며 함께 암벽 등반을 하는 모습에서 경이로움을 느꼈다. 자식을 키우며 정작 자신들의 건강을 돌보지 않은 탓에 뒤늦게 운동 삼아 암벽을 타기 시작했다는 노부부. 지금은 암벽 등반을 빼놓고는 그들의 삶을 이야기할 수 없게 됐다고 한다.

혹자는 고령의 나이에 왜 그토록 위험한 암벽을 타느냐고 안전을 염려할 수도 있겠으나, 나이의 한계에 갇히지 않고 계속해서 도전하는, 노력한 만큼의 성취를 이뤄내는 노부부의 삶의 태도가 아름답지 않은가. 그들은 어쩌면 두 번째 인생을 살고 있기에 누구보다 삶에 적극적인 태도를 갖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얼마 전 종영한 tvN 월화 드라마 <또! 오해영> 역시 남자 주인공 박도경(에릭 분)의 두 번째 인생을 통해 그의 사랑과 죽음에 대한 서사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사고로 인한 죽음 직전, 한 여자(그냥 오해영)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너무도 강렬해 그 여자를 만나기 전 시간으로 가게 된 박도경.

극이 진행되는 내내 특별한 예지력으로 볼 수 있었던 그 여자와 관련된 미래는 다름 아닌 그의 과거였다. 마음껏 사랑하지 못해 후회만 잔뜩 남기고 떠나야 하는 순간, 기적처럼 펼쳐진 두 번째 인생. 그는 예정된 미래(과거)를 선택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이 진정 원하는 것을 선택함으로써 결국엔 사랑을 얻고, 죽음을 피하게 된다. 이들의 모습을 보니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저자 빅터 프랭클이 책에서 한 말이 떠오른다.

"두 번째 인생을 사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당신이 지금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 번째 인생에서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만약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 두 번째 인생의 기회라면, 어제와 다름없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이 책은 지금 자신이 인생을 잘 살고 있는 것인가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지나온 삶을 음미하게 함으로써 다른 선택의 기회가 있음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당신은 모르는 듯하네만, 소크라테스와 대화하면 처음에는 다른 일로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곧 그의 말에 휘둘리다가 결국 어김없이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네. 내가 지금 어떤 삶을 사는지, 전에는 어떻게 살아왔는지 고백하게 된단 말일세.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내가 한 말을 하나하나 음미하기 전에는 놓아주지 않는다네." - 플라톤, <라케스Laches>


"음미되지 않는 삶은 가치가 없다"(<소크라테스의 변명>)고 했던 소크라테스에게 대화는 상대가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고, 자신이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지를 음미(확인)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이는 사실 누구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자신의 삶의 현재를 들여다보고 진실을 들춰내는 일이란 그리 유쾌한 일일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나답게 살 용기> 책표지
 <나답게 살 용기> 책표지
ⓒ 알에이치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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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소크라테스가 우리에게 건네는 대화와도 비슷하다. 마치 우리에게 자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자신의 현재를 다른 무엇으로 변명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의 성격과 자기 삶의 불행이 온전히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것임을 알고 있는지를 묻는 듯하다. 때문에 책을 읽다보면 작가의 직설적인 표현이 아님에도 정곡을 찌르는 듯 날카로운 통찰에 움찔하게 된다. 마치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일 정도다.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에게 악영향을 미쳤다는 이유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탈옥을 권유하는 제자들의 말을 듣지 않다가 결국 그에게 주어진 형벌을 받아들였다. 그것이 그가 생각하는 '선(善)'이었기 때문이다. 이때의 '선'은 도덕적인 선이 아니라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다이어트를 한다면서 여름밤에 치맥을 먹는다거나 운동을 열심히 하겠다고 헬스를 끊고 빠지는 날이 더 많아도 그러한 선택의 순간엔 우리가 그것을 선이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그럴 만한 상황이나 조건이 있었다 해도 결국 그 순간 잘못된 판단과 선택을 하는 건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니 과거의 상처 역시 우리가 현재 불행한 것의 핑계가 될 수는 없다고 작가는 말한다.

과거에 체험한 것이 지금의 행불행을 결정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처한 상황과 과거의 체험은 성격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미치기는 해도 행불행과 인과관계가 없습니다. 어릴 때 학대받았다고 해서 그런 사람들이 모두 똑같이 불행한 것은 아닙니다. 사고나 재해를 겪었다고 해서 반드시 마음의 상처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53쪽)

결국 과거의 체험을 상처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냐는 우리의 의지이고 선택이므로 지금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는 것 또한 우리의 몫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지닌 성격조차 가정환경과 사회문화적인 조건에 의해 영향을 받긴 하지만 결국 우리의 선택으로 만들어진다고 하니 더 말해 무엇 할까. 맞는 말이다 싶어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진다. 닮고 싶지 않은 부모의 성향을 닮아서 부모를 원망한 적이 있고, 지금의 불행이 과거의 체험에서 기인한다는 절망감에 사로잡힌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음에도 수많은 핑계들로 선택의 폭을 줄이고 선택할 수 없다며 체념한 채 기존의 불행을 반복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 삶이 변하지 않는 것은 익숙한 삶의 방식(라이프스타일)을 바꾸지 않으려는 우리 자신의 고집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지금과는 다른 성격이 되겠다고 결심한들 어떻게 변해야 할지 모르면 바꿀 수 없습니다. 막연하게 '나의 이런 성격은 싫다'고 해서는 변화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아야 합니다. 라이프스타일이란 문제를 해결하는 행동 유형 또는 버릇 같은 것이므로 같은 문제에 대해 비슷하게 처신한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상대가 달라져도 행동은 바뀌지 않습니다. (109쪽)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의 성격이나 라이프스타일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 그 해답을 찾는 건 결국 각자의 몫이 될 것 같다. 이 책을 지침서 삼아 자신의 삶을 직시(음미)하고, 자신의 선택으로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어제보다는 오늘 더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우리에게도 두 번째 인생을 살 기회가 있다.

덧붙이는 글 | <나답게 살 용기>(기시미 이치로 지음, 오근영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2015년 11월 20일/ 1만4천원)
개인 블로그에 중복게재합니다.



나답게 살 용기 - 내 삶의 주인이 되게 하는 아들러 심리학 카운슬링

기시미 이치로 지음, 오근영 옮김, 알에이치코리아(RHK)(2015)


태그:#나답게 살 용기, #기시미 이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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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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