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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순제주향토요리 명인이 어릴 때 사용하신 놋수저.
 김지순제주향토요리 명인이 어릴 때 사용하신 놋수저.
ⓒ 송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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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으러 가려면 으레 검색을 하거나 맛집을 잘 아는 지인들의 도움을 받는다. 그것도 안 될 경우에는 외관에서 풍기는 느낌으로 식당을 찾는다. 낭푼밥상은  이런 저런 과정 없이 찾아가기만 하면 됐다.  제주시를 벗어나 이십 여 분, 오소록한 숲길을 지나치니 화산석과 화산송이 색채의 단조로운 건물이 우리를 맞는다.

입구에 들어서면 자동문 안으로 자연스럽게 눈길이 쏠린다. 식당이 아니라 박물관에 온 것처럼 전시장 조명 아래 낭푼밥상의  실제 모형과 고소리술이라도 담았나 싶은 술병이 보이고, 있는 듯 없는 듯 계산대를 지나친다. 다시 전시장 조명 아래 한 눈에도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은 놋수저 하나가 오래된 나무판을 액자 삼아 전시되어 있고, 주변에 오래된 수저들과 떡살들이 같이 전시돼 있다.

그 수저는 이 집 주인이신 김지순선생님께서 어릴 적 사용하시던  수저로 제주도에 정치적 피바람이 불 때는 선생님의 어머님께서 땅 속에 묻어가며 남겨주신 것이다. 마치 딸의 앞길을 미리 내다보신 것처럼 역사적 문화적 유산을 남겨주신 것이다. 들어서는 입구부터 식사하며 얘기할 거리가 생긴다. 이 음식점에는 이른 바 '스토리'가 있는 것이다.

'건강한 제주'를 담는 시간

엄마는 손님을 초대하면 자신 있는 요리를 반복하셨다. 그래서 명절에 늘 다녀가던 손님들은 지금도 "너희 집 갈비찜 먹고 싶다." 든가 "왕새우튀김에 백김치가 일품이었는데..." 등등 그런 말들을 종종 듣는다. 온 식구들이 생선이나 닭, 돼지고기를 잘 먹지 않는 바람에 엄마가 즐겨하는 음식이 된 것이다. 그 집에서 나오는 요리가 그 집안의 문화다. 그러니 나 또한 갈비찜이나 왕새우튀김은 그럭저럭 하는 편일 것이다. 한 가정의 음식문화가 그러할진대 어느 지방이 향토요리라고 내어놓는 '요리'는 그 지방을 대표할 수밖에 없음은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더구나 관광지인 제주에서 당연히 '요리'는 여행상품으로 들어간다. 제주에 내려오고 7년 차 이주민인 나는 간혹 지인들이 여행오시면 제주 향토음식집이라고 모시고 가기도 했다. 그 분들이 요구하는 조림집이나 흑돼지집 혹은 살면서 알게 된 제주도민만 아는 맛집 등등. 하지만 그런 음식점에서는 얘깃거리가 없었다.

김지순선생님께서 예전에 제주 향토요리에 관해 한겨레신문과 나눈 인터뷰 내용이다.

"여자나 남자나 모두 일하러 나가야 했기에 조리법도 간단하고 생채 비율이 높았어요. 요즘 사람들이 찾는 건강식이죠. 고춧가루도 거의 없었어요. 간장, 된장 문화죠."

이런 것이 제주 향토요리다. 제주에 온 사람들이 향토음식이라고 블로그 찾아가며 먹고 있는 그 비싼 갈치조림은 '제주 관광상품'인지는 모르겠지만 '제주 향토요리'는 아니라는 게 칠 년쯤 살아 본 이주민의 생각이다.

 차림상
 차림상
ⓒ 송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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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가지의 전식(前食)과 본식(本食)인 낭푼밥상 그리고 마지막 후식(後食)까지 전체 10가지 요리와 그에 담긴 이야기를 들으며 2시간이 지나도 시간가는 줄 모른다.

첫 선을 보인 음식은 유정란에 고소하고 짙은 참기름향이 밴 독새기(달걀)반숙이다. 옛날에는 아기가 아프면 보약처럼 만들어 주던 음식이란다.

두 번째로 나온 음식은 제철채소에 푸른콩된장 드레싱 샐러드이다. 김 선생님 말씀처럼 코스에 된장이 여러 번 나오는데 단 한 번도 같은 맛을 내지 않는다. 드레싱이 된장이라 해서 된장맛 나는 샐러드를 상상한다면 오산이다.

세 번째로 나온 음식은 뭉게(문어)죽에 물김치다. 뭉게죽은 제주 동쪽에서는 영양식으로 해먹었다는데 서쪽 출신들은 모르는 것 같았다. 서쪽에서는 바위 위에 딱 붙어 있는 오갈(제주도 바닷가 바위에 붙은 어패류)로 끓인 죽이 이에 버금갈까? 음식의 맛은 주관적이지만 그 지역에서 나는 신선한 재료 덕에 미리 한 수 먹고 들어가는 게 향토음식 아닐까?

네 번째로 나온 음식은 빙떡과 옥돔(쏠라니 혹은 생선-옥돔 아니면 제주사람들은 생선으로 치지도 않아서 유래되었다는 명칭)구이다. 제주에 한두 번 다녀가 본 사람들은 제주 전통향토음식 빙떡의 맛이 메밀에 무를 넣은 무미(無味)란 것은 알 것이다. 그래서 제주분들은 잔치나 제사 등이 끝나면 빙떡과 옥돔구이 한 조각을 같이 먹는다.

 제주 낭푼밥상, 본상 차림
 제주 낭푼밥상, 본상 차림
ⓒ 송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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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로 나온 음식은 삼색전과 간장젤라틴이다. 고사리 해물전에 무메밀전 그리고 미수전이 나온다. 미수전은 '머리와 꼬리가 없는 전'이라는 뜻으로 잔치 때 쓰고 남은 돼지고기를 잘게 다져 달걀로 만든 작은 완자전에 모든 사람이 빠짐없이 공평하게 나눠먹도록 만든 향토음식이다.

여섯 번째로 나온 음식은 전복양념찜과 날초기(생표고)구이다. 전복껍질 바닥에 깔린 간수를 뺀 소금은 바다를 표현하기도 하지만 간이 심심한 사람을 위한 배려이기도 하다.

일곱 번째로 나온 음식은 한치성게물회로 제주 바다 제철 재료다. 작고 소담스러운 그릇에 담겨 나온 물회는 날것을 못 먹는 내가 그릇의 반쯤을 덜어내고 국물 맛을 봐도 여느 물회집과 달랐다. 비릿한 냄새가 전혀 없는.

여덟 번째로 나온 음식은 맥적과 수박초절임이었다. 처음 갔을 때 맥적이라는 돼지고기 요리가 궁중음식이란 설명을 들었다. 두 번째 가기 전에 인터넷을 통해 레시피 여러 가지를 보고 갔지만, 이 집의 맥적은 인터넷에서 볼 수 없는 레시피였다. 숙성방식과 구이방식이 전혀 달랐다. 수박초철임은 애월읍 제철 과일인 수박의 껍질을 초절임한 것으로 신 맛과 달달한 맛이 돼지고기와 환상의 궁합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본상, 낭푼밥상은 지슬(감자)을 얹어 심심하지 않은 보리밥에 그 비싸다는 구살(성게)이 잔뜩 들어간 미역국과 제철쌈채소와 자리젓 멜젓이 기본으로 나온다. 수박무생채, 녹차나물, 가지김치, 콜라비깍두기, 매실과 곰피(해산물) 장아찌 그리고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제피된장이 같이 나온다.

오미자보리수단과 금귤정과 그리고 꿩엿을 곁들인 송애기떡이 나오지만, 후식에 관한 이야기는 애써 참기로 한다. 가보지도 않고 읽은 것과 사진만 가지고 맛을 보고 아는 것처럼 떠드는 사람들을 위해 남겨 놓기로 한다.

'건강식'+'제주'를 위와 마음에 담는 시간이었다.

'낭푼밥상이라는 제주 서민밥상을 대표하는 명칭은 왜?'

점심 이후 육지에서 온 두 후배와 함께 명칭 '냥푼밥상'에 관해 얘기하게 되었다. 제주를 사랑하는 두 후배는 서민들의 밥상이란 상징적 명칭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는 데 의견이 일치 하고 있었다.

아직 정식 오픈도 하기 전부터 명칭에 관해 말이 많은 모양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냥푼밥상"은 제주의 문화를 대표적으로 담은 밥상이다. 여성들이 바쁘기 때문에 단촐한 밥상이며. '바릇잡이'한 제철밥상이며, 당시 척박한 제주 환경이 만든 건강한 밥상이다. 제주의 향토요리 전문점이기에 쓸 수 있는 명칭이라 생각한다.

제목은 그럴 듯 하지만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도 먹을 수 있는 고춧가루 범벅의 조림과 돔베고기, 구이 등의 코스요리에 1인당 4만 원을 내는 제주 향토요리전문점은 더 이상 추천할 이유가 없다.

"상호를 낭푼밥상이라 작명한 것은 제주음식문화의 전통성을 지켜가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상호와 상품을 동일하게 여기고 상품으로서의 낭푼밥상을 기대하신 분들이 가격에 대한 불편함을 토로하시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양용진 제주향토요리연구원장 페이스북 글 인용)

하지만 '왜?' '낭푼밥상' 말고 제주를 상징하는 밥상에 관한 용어가 따로 있을까?
비록 서민의 상징성을 사용했지만 이 음식점의 상품(商品)은 '상품(上品)'-물론 나 개인적으로는 60년대 제주인들이 즐겨드셨다는 "낭푼밥상"을 최고의 영양밥상이라 생각한다-이고 체험해보고 나면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

여행을 가면 담아오고 싶은 그 지역의 소울푸드를 담는 시간이었다.

내 집에 온 손님에게 최선을 다한 음식을 내놓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제철에 나온 재료로, 가장 잘할 수 있는 음식으로. 내 집이 아니고 내가 사는 제주라면 낭푼밥상을 추천할 이유가 분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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