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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주한 아침 출근길, 늦을까 조마조마하며 다급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구보씨의 마음은 타들어간다. 간밤에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과 너무 달린 탓일까. 아침에 울리는 알람을 미처 듣지 못하고 늦잠을 자고 말았다.

아침 지옥철에 끼여오느라 몸도 마음도 지친 그. 회사 앞에 도착하자마자 그가 향한 곳은 사무실이 아닌 카페였다.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출근 전 카페에 들러 아메리카노 한 잔 주문하는 것은 결코 잊지 않는다. 아침을 시작하는 모닝커피 한 잔 없이는 고단한 하루를 버텨낼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을 가리켜 '커피공화국'이라고도 부를 만큼, 이제 현대인들에게 커피는 국민음료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사무실에서 간편하게 타 먹는 믹스커피의 시대를 지나, 국민 누구나 쓰디 쓴 '에스프레소' 내지는 '아메리카노'를 즐기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커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카페가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제는 편의점보다 카페를 찾는 게 더 쉬울 지경이 되었다. 심지어 논산 육군훈련소에도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가 들어섰다고 하니, 대한민국에서 카페의 번식 능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 같다.

바리스타들의 커피와 인생 이야기

커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카페는 편의점보다 찾기 쉬울 정도로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 어느 카페의 풍경 커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카페는 편의점보다 찾기 쉬울 정도로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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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가 있다면 카페를 지키는 이들도 있을 터. 바로 여기, 카페를 지키는 바리스타들의 이야기가 있다. 신간 <열아홉 바리스타, 이야기를 로스팅하다>는 커피에 인생을 건 열아홉 카페의 바리스타와 로스터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스페셜티를 대표하는 커피 리브레에서 올드스쿨의 대명사이자, 한국 카페의 원조 격인 학림다방까지. 그들이 풀어놓는 자신의 인생 이야기는 곧 한국 커피의 역사 그 자체다.

그들의 카페는 서로 개성도 다르고, 커피 맛도 제각각이다. 커피를 대하는 관점부터 커피에 대한 철학 역시 그들의 외모만큼이나 뚜렷한 개성을 보인다. 커피 맛은 다르지만, 그들은 한 목소리로 말한다. '커피는 결코 어렵지 않다. 그저 즐기면 된다'고.

책은 어느 중학생의 기억으로부터 시작한다. 생전 커피라곤 인스턴트 커피조차 마셔보지 못했던 소년은, 어느 날 선배를 따라 우연히 들어간 카페에서 진한 원두커피를 맛보게 된다. '왜 커피는 쓰기만 할까' 고민하던 그 소년에게, 처음 맛 본 커피 한 잔의 기억은, 쓰디쓴 커피의 맛만큼이나 강렬했나보다.

뻔질나게 카페를 드나들며 커피를 내려주던 바리스타에게 질문 공세를 쏟아붓던 소년은 이후 커피와 진한 인연을 이어가게 된다. 대학에 입학해서는 직접 노천카페를 열어 교수님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커피를 팔았고, 장교로 군 복무하던 시절에는 아침마다 직접 원두를 갈아 내린 커피를 싸들고 가서 동료들과 나눠마시는 등 커피에 대한 애정을 키워왔다. 그럼에도 스스로 '타고난 둔한 미각과 몸, 집에 두고 나온 센스' 탓에 일찌감치 바리스타의 꿈은 접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그 자신이 바리스타는 되지 못하더라도, 자신을 커피의 세계로 이끈 장본인들, 즉 바리스타들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바로 이 책의 저자 조원진의 이야기다. 이 책 <열아홉 바리스타, 이야기를 로스팅하다>는 저자가 자신이 존경하는 커피인들에게 바치는 헌사인 셈이다.

시대를 따라 변화하는 커피의 흐름

<열아홉 바리스타, 이야기를 로스팅하다>는 열아홉 카페의 바리스타들이 들려주는 커피와 인생 이야기다.
 <열아홉 바리스타, 이야기를 로스팅하다>는 열아홉 카페의 바리스타들이 들려주는 커피와 인생 이야기다.
ⓒ 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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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커피 산업은 현재 '제3의 물결'을 타고 가파르게 성장하는 중이다. 인스턴트 커피로 본격적인 커피의 대중화가 시작된 흐름을 '제1의 물결', 스타벅스를 비롯한 대형 프랜차이즈의 탄생과 함께 우후죽순으로 카페 문화가 자리잡기 시작한 것을 '제2의 물결'이라고 한다면 산업의 발전, 자본의 투입, 고도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커피 생산 과정에서부터 커피 본연의 맛과 향에 집중하는 흐름을 제3의 물결이라고 책은 말한다.

우리나라 커피 1세대는 흔히 '1서 3박'이라 불리는 서정달, 박이추, 박상홍, 박원준을 의미한다. 이들은 각각 제자를 받아 가르치면서, 자신만의 노하우와 레시피를 전수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일종의 계보가 형성되었다. 이들의 영향을 받아 자라난 커피 2세대는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에 걸쳐 한국의 커피업계를 이끌어나갔다. 2000년대 초반까지 커피업계의 흐름을 주도했던 커피 1, 2세대를 '올드스쿨'이라고도 부른다고.

그러나 전세계적으로 밀려오는 '제3의 물결'을 따라, 한국의 커피문화 역시 기존의 올드스쿨을 거부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기존 세대의 영향을 받으며 자랐지만, 기존의 시스템을 거부하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을 커피의 2.5세대 혹은 3세대라고 한다.

이들의 탄생 바탕에는 '스페셜티' 커피의 등장이 있었다. 이제는 세계 커피 업계의 주류 흐름이 되어버린 스페셜티 커피는 기존의 올드스쿨 커피와 많은 차이가 있었다. 스승이 제자에게 커피를 가르치는 방식부터, 커피를 대하는 철학까지 많은 면에 있어서 달랐다.

저자에 따르면, 기존의 올드스쿨은 어떤 품질의 커피가 되었든, 마스터(장인)의 손길을 바탕으로 그들의 카페에서만 맛볼 수 있는 고유의 스타일을 추구했다. 좋은 재료도 중요하지만, 주어진 생두 또한 하나의 조건이라고 생각하며 그 커피가 구현해낼 수 있는 최고의 맛을 내는 것이 바로 올드스쿨의 방식이었다.

이에 반해 스페셜티 커피는 생두의 잠재력을 극대화하고 이를 통해 커피 본연의 개성을 살리고자 한다. 그렇기에 스페셜티 커피는 생두의 원산지에서부터 품질, 가공, 추출 등 커피 열매가 탄생하여 한 잔의 커피로 완성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일일이 등급화하고 철저하게 점수를 매긴다. 그런 점에서 커피의 '상향평준화'를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커피에는 정답이 없다

생두를 로스팅(볶는 것)하면 원두가 된다. 그러나 생두의 품질에 따라 커피의 맛이 다르며, 생두를 어떻게 볶느냐에 따라 또한 커피의 맛이 달라진다. 스페셜티는 생두의 품질을 엄격하게 따진다.
▲ 커피의 '생두' 생두를 로스팅(볶는 것)하면 원두가 된다. 그러나 생두의 품질에 따라 커피의 맛이 다르며, 생두를 어떻게 볶느냐에 따라 또한 커피의 맛이 달라진다. 스페셜티는 생두의 품질을 엄격하게 따진다.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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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스페셜티 커피의 흐름을 주도하는 바리스타들의 이야기부터 시작해, 올드스쿨의 방식을 고수하는 바리스타들의 이야기로 '회귀'한다. 이처럼 저자가 '역순'의 방식을 택한 것은, 한국의 커피 문화가 스페셜티로 대변되는 제3의 물결을 타고 발전해왔으나, 결국 올드스쿨의 전통적인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스페셜티 커피의 1세대라 할 수 있는 '커피 리브레'의 대표 서필훈은 기존 올드스쿨의 방식에서 벗어나 한국에 스페셜티를 개척한 장본인이다. 한국인 최초로 큐그레이더(생두 감별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세계적인 대회에서 트로피를 들어올린 그였지만, 그의 커피 인생 최대의 목표는 '자신만의 낙관이 찍힌' 커피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올드스쿨의 방식을 거부했지만 역설적으로 올드스쿨의 전통적인 철학을 목표로 삼은 것이다.

또한 저자는 올드스쿨이나 스페셜티나 각각의 개성과 매력이 있는 것임을 강조한다. 커피란 '정답'이 없다. 누군가에게는 올드스쿨의 커피가 장인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커피가 될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정밀한 검증과 추출 방식을 통해 내린 스페셜티의 커피가 최고의 커피일 수도 있는 것이다.

커피에 대한 관점과 철학이 제각각인 것처럼, 그들이 바리스타가 된 이유도 다양하다. 책은 흥미롭게도 '도구'를 통해 그들의 커피 철학을 엿보고 있다.

저자는 만나는 바리스타마다 '커피를 내리는 데 영감을 주는 도구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하지만 열아홉 바리스타들의 대답은 제각각이다. 낚싯대, 연필, 낡은 책상, 레코드판... 심지어 올드스쿨 커피의 선두주자였던 바리스타 이정기는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도구로 '인문학'을 든다.

'지난 30년과 앞으로 평생을 할 커피 인생에 가장 중요한 도구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젊은 시절을 함께 했던 인문학이라고 대답한다.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로 납득할 수 있는 언어를 꾸려내는 인문학적 사고방식은 커피를 시작한 그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던져주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아직 할 일이 많고, 새로운 것들이 더 보인다고 말한다.'

모든 바리스타들의 이상향 '믹스커피'

커피에 대한 관점은 각기 달랐지만, 결국 그들이 말하는 커피에는 하나의 지향점이 공통적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바로 '맛있는 커피'다.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맛이다. 커피는 맛으로 보여줘야 한다. 맛이 없다면 더 이상 핑계를 댈 수 없다.'

그들이 말하는 맛있는 커피란, 카페를 찾는 이들이 보편적으로 즐길 수 있는 맛을 의미한다. 바리스타들에게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보편타당한 맛의 커피'를 만드는 일은 최고의 목표나 다름 없다. 스페셜티 커피 문화가 발달하면서, 고품질의 원두와 과학적인 방식을 이용해 커피의 맛과 향을 극대화한 최상급의 커피를 내릴 수 있게 되었지만, 정작 사람들은 스페셜티의 맛에 거부감을 느끼는 게 현실이다.

바리스타 김세윤의 고백이다.

'한 번은 케냐 100%라는 이름으로 질 좋은 케냐 커피로만 만든 블렌드 메뉴를 한 달 동안 판매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은 썩 좋지 않았다. 바쁜 시간을 쪼개 커피를 테이크아웃해가는 종로의 사람들, 여유롭게 커피의 향미를 즐기기에는 너무나 바쁜 손님들에게는 케냐 블렌드의 신맛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지만, 바리스타들에게 넘어서야 할 목표는 다름 아닌 '믹스커피'란다. 바리스타들에게 믹스커피는 일종의 '이데아'다. 수십 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아왔다는 것은 그만큼 믹스커피의 맛이 모든 사람의 입맛에 가장 잘 맞는 보편타당한 맛이라는 증거. 그래서 바리스타들은 이 믹스커피만큼이나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는 보편타당의 맛을 추구하기 위해 매일 다양한 실험을 하며 콩을 볶는다.

카페는 생존의 공간이자 소통의 공간

에스프레소에 우유거품을 넣은 음료를 카페라떼라고 부른다. 아메리카노와 더불어 카페의 대표적인 메뉴 중 하나다.
▲ 카페라떼 에스프레소에 우유거품을 넣은 음료를 카페라떼라고 부른다. 아메리카노와 더불어 카페의 대표적인 메뉴 중 하나다.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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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카페는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공간일 수도 있고, 대학 과제를 준비하는 스터디 공간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바리스타들에게 카페는 생존의 공간이다. 그들은 단 한 잔의 커피를 내리는 데 있어서도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어떻게 하면 개성 있는 커피를 내릴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커피를 내릴 수 있을지... '커피가 소통의 도구라는 건, 대형 프렌차이즈 업계가 장악하고 있는 정글 같은 커피 시장에서 살아남은 뒤의 이야기다'라는 그들의 말에서, 삶의 애환과 고민이 진한 원두커피의 향처럼 뚝뚝 묻어나온다.

또한 그들에게 카페는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는 공간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커피를 싫어해도 카페를 운영할 수 있지만, 사람을 싫어하면 카페를 운영할 수 없다'고. 또 '가장 힘든 순간에 소중한 사람들과 스스럼 없이 마셨던 소주 한 잔처럼, 누구에게나 편안한 커피 한 잔 내려주고 싶다'고.

사회로부터 소외된 이들이 모인 해방촌에도, 분주한 발걸음으로 정신 없는 도심 한복판에도 그들은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당신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 당신에게 최고의 커피 한 잔을 선사하기 위해서 말이다.

[바리스타들이 말하는 몇 가지 Tip]

1. 좋은 카페를 선택하는 기준

카페가 있는 그 지역을 가장 닮은 카페를 선택하라. 그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어색하지 않게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카페는, 어떤 낯선 사람에게도 맛있는 커피를 내려주기 때문이다. 문턱이 높은 카페는 결코 좋은 카페가 아니다. 손님의 눈높이를 맞춰 커피를 내려주기보다 자신이 세워놓은 눈높이에서 손님의 입맛을 재단하는 카페에서는, 당신의 입맛이 옳지 않다고 구구절절한 설명을 꺼내는 바리스타에게서는 좋은 커피를 기대할 수 없다.

2. 어떤 커피를 마셔야 하나

싱글 오리진과 블렌드의 차이점을 알아두는 것은, 맛있는 커피를 마시기 위한 또 하나의 중요한 포인트다. 싱글 오리진은 말 그대로 단종의 커피를 의미하는데 단종 원두 고유의 캐릭터를 그대로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반면 블렌드는 싱글 오리진 커피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구조화해서, 조향을 하듯 적당한 비율로 원두를 섞는 것을 의미한다. 원두를 고르는 일 또한 정해진 답이 없다. 같은 원두라고 해도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기 때문이다. 그날의 원두 상태를 살피는 일 또한 바리스타의 주된 업무다. 오늘 나에게 가장 맛있는 커피를 고르고 싶다면 바리스타에게 물어보자. 그 순간, 가장 빛나는 원두를 골라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열아홉 바리스타, 이야기를 로스팅하다>, 조원진 저, 따비, 2016.05.25, 16,000원, 328쪽.



열아홉 바리스타, 이야기를 로스팅하다 - 오늘의 커피를 만드는 열아홉 카페의 바리스타와 로스터가 들려주는 커피와 인생

조원진 지음, 유재철 사진, 따비(2016)


태그:#바리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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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사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한국근대사 전공) / 취미로 전통활쏘기를 수련하고 있습니다.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 기사 제보는 heigun@naver.com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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