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일 한국 넷플릭스에서 <드라마월드>라는 웹드라마가 독점 공개됐다. <드라마월드>는 한국 드라마를 너무나 사랑하는 미국 대학생 클레어가 가상의 한국 드라마 세계 '드라마월드'라는 곳에 빠지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드라마다. 지난 14일 <드라마월드>의 크리스 마틴 감독과 배우이자 제작자인 션 리차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편집자말]
 <드라마월드> 션 리차드 프로필 사진

션 리차드는 <드라마월드>에서 배우로 연기를 했고 제작을 동시에 맡았다. ⓒ BH엔터테인먼트


"어느날 크리스에게 연락이 왔다. 한국 드라마의 팬인 백인 여자애가 그 드라마 속에 빠져 벌어지는 일을 다룬 그런 줄거리의 드라마를 만들려 한다고 하더라. 듣자마자 아이디어가 너무 좋아서 이 작품 꼭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션 리차드는 아마 <드라마월드>에서 누구보다 바쁜 사람이었을 거다. <드라마월드> 속 드라마 '사랑의 맛'에서 '까칠한 셰프' 박준 역으로, 동시에 <드라마월드>의 제작자로 현장을 누볐다. 제작자로서의 션 리차드는 크리스 마틴 감독과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투자도 함께 유치했다. "현장에서도 제작자이자 배우라는 두 가지 역할을 하느라 혼란스러웠겠다"는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컷' 소리가 나면 동시에 제작자가 되는 거다. 왔다갔다 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 그래도 이제 배우 입장만이 아니라 제작자의 입장에서도 현장을 바라볼 수 있으니까…."

그러나 처음부터 그가 제작과 연기를 동시에 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한국인 어머니와 영국인 아버지를 둔 션 리차드는 미국에서 나고 자랐다. 어릴 때 아예 한국어를 못했던 그는 "20대 초반에 어머니 나라 언어를 배우면 좋지 않을까 싶어" 한국행을 택했다. 마침 다니엘 헤니나 데니스 오 같은 혼혈 배우들이 한국에서 활동을 시작하던 참이었다. 션 리차드 자신도 대학에서 연기를 공부했으니 "기회가 닿으면 연기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톱스타 아니면 투자 안 해주겠다더라"

 <드라마월드> 촬영 장면

<드라마월드> 속 박준 셰프 역의 션 리차드. ⓒ 엔터미디어픽쳐스


2년 간 한국어 공부를 하고 드라마 <제중원>(2010) 오디션을 봤다. 첫 드라마인 <제중원>에서 덜컥 주연급 알렌 역할을 맡았다. 배우 한혜진은 그런 션 리차드에게 '너 운 짱이다'라고 말했단다. 션 리차드는 연이어 <아테나 : 전쟁의 여신>에 캐스팅돼 연기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너무 운이 좋았던 탓일까. 이후 션 리차드는 몇 년 간 타의로 작품을 쉬게 됐다. 그가 제작자를 생각한 건 그때부터다.

"원래 제작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내가 혼혈이지 않나. 역할이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니까 <제중원>의 알렌 같은 역할이 많이 없다. 5년에 한 번 정도? (웃음) 쉬는 동안 고민을 많이 했다. 연기를 그만둘까도 생각했다. <제중원>할 때 친해진 배우 박용우를 만나서 포기해야 겠다고도 말했다. 그가 "너무 힘들면 포기해도 된다"고 말하더라. 사실 맞다. 너무 힘들면 포기해도 되는 거다. 그런데 그 말을 듣고 너무 마음이 아프더라. 내가 기회를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제작 공부를 좀 했고 <드라마월드>가 나온 거다."

션 리차드는 제작을 하지 않았다면 박준 같은 역할을 평생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왜 그러느냐"고 이유를 물으니 "'그런 역할'이 저 같은 사람에게 들어오지 않았을 거다"라고 답했다.

"<드라마월드> 투자를 받기 위해 중국 투자자들 앞에서 셀 수도 없이 '피칭(제작사나 투자사 앞에서 기획 개발 단계의 프로젝트를 공개하고 설명하는 투자 설명회)'을 했다. 모두들 '이 리스트 안에 있는 배우를 박준 역할에 캐스팅하면 돈 다 대주겠다'고 하더라. 리스트를 보니 김수현 이민호 같은 배우들이 써있더라. (웃음) 미국에서도 보통 아시아 남성이 주인공 역할을 맡기 어렵다. 그런 역할도 없고."

하지만 <드라마월드> 프로젝트는 결국 투자를 받아냈다. 션 리차드는 "운과 타아밍이 좋았다"고 자평했다.

"투자자에게 작품을 피칭하면 어느 나라 작품이에요?라는 반응이 먼저 나온다. <드라마월드>는 완벽히 한국 것도 아니고 미국 것도 아닌데. 그런데 타이밍이 좋았다. 이제 콘텐츠를 만들면 어느 나라의 작품인지 그렇게 중요하지 않잖나. 그저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만 알면 된다. <드라마월드>도 미국 사람들을 위해서 만들지 않았다. 전세계에 있는 한국 드라마 팬들을 위해 만든 거다. 그런데 5년 전만 해도 VIKI(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사이트. <드라마월드>는 VIKI의 첫번째 오리지널 시리즈 드라마로 제작됐다)나 넷플릭스 같은 플랫폼이 없었기 때문이다."

 <드라마월드> 션 리차드 프로필 사진

션 리차드는 인터뷰 내내 많은 것에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 BH엔터테인먼트


또 그는 극본에도 깊숙이 참여했다. 그는 넣지 못한 '한국 드라마의 설정'이 아직 많이 남았다면서 안타까워했다. 그가 더 넣고 싶었던 '한국 드라마의 클리셰'는 1) 머리채를 잡고 서로 싸우는 장면 2) 회의실에 앉아있다가 '회장님'이 들어오면 다 같이 일어나는 장면 3) 키스를 할 때 입술만 살짝 갖다대는 장면이란다.

이런저런 클리셰를 넣는 중에 '남자주인공이 샤워를 하는 장면'도 들어갔다. 이 때문에 션 리차드는 촬영 내내 몸매관리를 해야했다. "잠깐 나오는 샤워신 때문에 3개월동안 아예 밥을 안 먹었다, <태양의 후예>나 <함부로 애틋하게>에서도 갑자기 다들 이유 없이 샤워를 한다! 정말 팬서비스인 거다."

또 션 리차드는 <드라마월드>의 촬영장이 마치 드라마월드 같았다는 후문을 전했다. 그는 "갑자기 A급 스타가 와서 잠깐 카메오로 촬영을 하고 갔다"고 말한다.

"한지민이나 양동근 같은 배우들이 카메오로 <드라마월드>에 출연한다. 그리고 이병헌이나 한효주도 출연을 하지 않았지만 그냥 놀러왔다. 아마 본인들이 보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들이 놀러온 이유는) 이 드라마가 너무 이상해서다. 보니까 드라마 스태프도 있고 영화 스태프도 있고 촬영 감독이 미국 사람이고 교포 배우들이 너무 이상하게 한국말로 연기를 하고 또 백인 여자애도 있고. 분명 이상한 세상에 들어왔다고 생각한 거다. 어느날은 스태프들보다 놀러온 사람들이 더 많기도 했다. (웃음)"

 <드라마월드> 촬영 장면

<드라마월드> 감독 크리스 마틴과 함께 있는 배우 션 리차드. ⓒ 엔터미디어픽쳐스


실제로 그가 박준 셰프라면 과연 외부에서 온 조력자 클레어와 '사랑의 맛'에 나오는 수셰프 서연 중 누구를 택했을까. 션 리차드는 오랫동안 고개를 갸웃거리며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둘 다 너무 '스윗(sweet)'한데? 박준은 클레어를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드라마월드' 속의 세계가 다 가짜라는 걸 알게 되지 않나. 어머니도 가인도 서연도 모두 가짜라고 생각하는 거다. 클레어만 진짜인 거다. 박준도 이제 다 보이게 되지 않나. 어떻게 '매트릭스' 안에 있는 여자를 사랑하겠나. <매트릭스>라고 생각한다면 같은 차원에 있는 여자랑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다 알게 됐으니까."

션 리차드에게 2016년은 굉장히 바쁜 한 해가 될 것 같다. 곧 <인천상륙작전>도 개봉한다. 션 리차드는 '맥아더의 오른팔'을 맡았다.

"'오른팔'이기 때문에 항상 리암 니슨과 함께 나온다.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리암 니슨과 함께 연기하다니! 만나자마자 리암이 바로 리허설 하자고 하더라. 내가 <인천상륙작전> 대본에도 일부 참여했다는 사실을 알고 리암 니슨이 대본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이렇게 대사하고 싶은데 어때 션?'이라고! 뭐라고 해도 목소리가 너무 멋있는 거다. 겨우 마음을 진정하고 리암 니슨에게 '그렇게 해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 꼭 <드라마월드> 속의 클레어를 보는 것 같다.
"맞다! (웃음) 그런 기회가 또 언제 올까 그런 생각을 한다. <드라마월드>를 통해 기회가 더 많아진 것 같다. 열심히 해야지."

 <드라마월드> 션 리차드 프로필 사진

션 리차드를 곧 개봉할 <인천상륙작전>에서도 만날 수 있다. ⓒ BH엔터테인먼트



드라마월드 션 리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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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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