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주식대박' 의혹을 받고 있는 진경준 (49.사법연수원 21기) 검사장이 14일 오전 10시경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하고 있다.
 '주식대박' 의혹을 받고 있는 진경준 (49.사법연수원 21기) 검사장이 14일 오전 10시경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하고 있다.
ⓒ 최윤석

관련사진보기


총체적 난국이다. 나라의 백년지대계라는 교육정책을 설계하는 교육부 정책기획관이 "민중은 개돼지로 취급하면 된다"는 망언으로 온 나라를 충격에 들게 하더니 제헌절 새벽에는 뇌물수수 혐의로 현직 검사장이 구속되는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가 빚어졌다. 무엇에도 미혹되지 않아야 한다는 불혹을 지나 하늘의 명을 깨우쳐 알아야 한다는 지천명을 앞둔 두 공무원의 이야기다.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47)은 7일 저녁 경향신문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영화 <내부자들> 속 악역들도 쉽게 내뱉지 못한 망언들을 술술 풀어놓았다.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된다", "민중은 개돼지로 취급하면 된다" 따위의 발언이었다. 99%의 국민을 개돼지로 규정하고 모욕하는 그의 말은 다음날 언론을 통해 가감없이 보도되며 99% 시민들의 분노를 샀다.

진경준 법무연수원 연구위원(49·구속)은 17일 헌정사상 최초로 현직 검사장에서 범죄 피의자로 구속수감되는 불명예의 주인공이 됐다. 올해 초 고위공직자 재산 공개에서 법조부문 1위를 차지한 그는 2004년 넥슨 창업주 김정주 NXC 회장(48)에게 4억2500만 원을 받아 넥슨 한국과 일본주식을 차례로 매입해 10년 만에 130억 원에 달하는 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이밖에도 여러 의혹에 연루된 그를 검찰은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수사 중이다.

책 표지
▲ 공무원은 무엇으로 사는가 책 표지
ⓒ 지필미디어

관련사진보기

온 국민의 공분을 일으킨 두 사태가 지금처럼 커진 데는 당사자인 교육부와 법무부, 검찰의 탓이 없지 않다. 감찰과 감사, 철저한 수사 등 논란에 측각 대처할 기회가 없지 않았음에도 석연치 않은 자세로 늑장대응해 국민의 화만 돋운 것이다. 이준식 교육부 장관과 김현웅 법무부 장관이 차례로 국민 앞에 머리 숙여 사과했지만 성난 민심은 좀처럼 잦아들 줄 모른다.

법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서고 교육이 바로 서야 세상이 바로 선다고 수없이 들어왔는데, 막상 법과 교육을 책임지는 이 나라 기관과 공무원들의 작태를 보고 있자면 나라 꼴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분통할 따름이다.

보건복지부 기획조정실장(1급)을 마지막으로 30여 년 공직생활을 마무리한 전만복씨의 <공무원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신뢰가 땅바닥을 파고 들어가는 이 시대 공직사회에 일침을 날리는 책이다.

퇴직한 고위공직자가 온정적 시각에서 공직사회를 돌아본 책으로 원론적이고 평이한 내용으로 가득하지만 작금의 한국사회에 비추니 혁신적인 개혁서가 따로 없다. 하긴, 비정상의 정상화 시대가 아니었던가.

지난해 가을 출간된 이 책은 정부와 공직사회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상실을 우려 가득한 시선에서 바라본다. 세월호 침몰참사 이후 불거진 각종 관피아 문제와 몇몇 공직자의 비위행각이 주된 비판의 대상인데 정부의 일방적인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종료 방침에다 나향욱, 진경준 사태가 연이어 불거진 요즘 같은 세태에서 읽어볼 만한 책이다.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다. 일부 국민이 아니라 헌법의 규정대로 모든 국민을 위한 봉사자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 만약 공무원들이 대통령이나 특정 고위 공직자와 정치인을 위해 일을 한다고 가정해 보자. 또한 공무원들이 자신의 친·인척이나 관계가 있는 사람들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해 보자. 더 나아가 공무원이 부정한 청탁을 받고 특정 기업이나 재력가에게 연줄을 대고 공정하지 않은 방법과 자세로 일을 한다고 생각해 보자. 이는 자신의 고용자인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것일 뿐만이 아니라 헌법이나 관련 법령의 규정을 명백히 위반하는 것이다. 공무원들이 직무를 이용해 특정인이나 특정집단에게 부당한 편익을 주고 유착관계에 빠진다면 그 결과는 또 다른 세월호 침몰참사와 같은 비극을 잉태해 가는 씨앗이 되는 것이다. -268p

​굳이 읽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당연한 이야기다. '뽑아만 주면 여러분의 일꾼이 되겠다'고 목놓아 부르짖는 선출직 공직자만이 아니라 권력을 위임받아 임명된 모든 공직자가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 그건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이 아니던가. 사람들이 나향욱의 망언과 진경준의 비위에 분노하는 건 이들이 이 같은 기본질서를 농락하고 이 나라의 주인을 욕보였기 때문이다.

공무원은 그의 고용주인 국민을 위해 일하고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 권력자를 위해 일하고, 자신의 영달을 위해 자신의 영혼을 팔고 바치는 공무원이 있다면 이는 공무원의 정도를 벗어나도 너무나 크게 벗어난 것이 된다. -269p

​공직윤리의 원론에 가까운 글은 두 사건의 본질을 꿰뚫는다.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영달을 위해 권력자와 자본가의 이익에 복무한 공무원, 이와 같은 자들이 출세가도를 달릴 수 있었던 공직사회의 문화, 그리고 이 같은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부실한 시스템. 시민들의 분노는 바로 이런 것들을 향하고 있다.

정도를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공무원이 출세에 출세를 거듭하고, 보통 사람은 평생 벌어도 이룰 수 없는 부를 축적하며, 급기야는 주권자를 향해 개돼지 운운하는 상황. 이와 같은 일이 21세기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버젓이 벌어졌다는 건 한국사회의 질서가 어느 정도로 무너졌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국민 10명 가운데 8명 이상이 '우리나라는 정직하지 않아도 부자가 되고 출세만 하면 사회지도층으로 용인 된다'고 생각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 탈법을 해서라도 부자가 되면 성공한 인생이 되고, 비도덕적인 방법으로라도 출세를 하면 그 사람의 윤리와 책임성을 따지지 않고 사회의 지도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291p

​공무원들의 도덕성과 책임성은 한 나라의 청렴도와 윤리성을 측정하는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다. (...) 사실 대다수의 공직자들은 성실함과 사명감으로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 (...) 그러나 일부 공직자들의 일탈된 행동과 부패 때문에 절대 다수의 제 갈 길을 묵묵히 가고 있는 정직한 공무원들을 욕되게 한다. -299p

​책은 공직사회 내부의 문제에서 이내 사회 전반에 대한 문제제기로 옮겨간다. 부정과 부패를 가볍게 여기고 부와 권력을 추종하는 문화가 공직사회의 부정부패로 이어지고 이것이 공직사회 전반을 욕보인다는 것이다. 부정하기 힘든 대목이다. 사회 곳곳에서 고삐 풀린 자본주의에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가 농락당하는 상황에서 공직사회의 기강해이를 온전히 공직사회 내부의 탓만으로 돌리는 건 순진하고 가혹한 태도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모두를 위한 봉사자로서 공무원의 책임과 역할을 떠올리면 엄정한 비판과 요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교육부와 검찰의 고위 공무원으로 한국사회의 기틀을 바로세워야 할 자들이 저지른 문제는 각부 장관이 약속한 바와 같이 엄정한 처벌과 재발방지책 마련으로 이어져야 마땅하다.

헌법에서 국민에 대한 봉사와 책임을 부여받은 공무원이 위임받은 권한을 가지고 갑의 입장에서 상전 노릇을 한다는 것은 비정상 중의 가장 비정상적인 모습이고, 절대 용납될 수 없는 비정상적인 행동이다. -322p

​나향욱과 진경준은 한국사회의 오늘을 비추는 하나의 증상에 불과하다. 한국사회가 앓고 있는 각종 질병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제2, 제3의 나향욱과 진경준을 빚어내고 있을 게 분명하다. 저자는 이와 같은 증상이 비정상적 행동이라 수차례 강변하고 공무원 개개인이 초심을 되새기고 원칙에 입각해 올바로 처신할 것을 주문한다.

책의 결론은 당위와 원칙이다. 공무원은 국민의 공복으로 국가에 봉사해야 하며 공무원 개개인이 각자의 자리에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애써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쉽지 않은 이야기다. 비정상이 곳곳에서 정상을 압도하는 가운데 어떻게 정상은 다시 비정상을 몰아낼 수 있을까. 책이 내리지 못한 답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제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공무원법
제59조(친절·공정의 의무) 공무원은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서 친절하고 공정하게 직무를 수행하여야 한다.

공무원윤리헌장, 공무원의 신조 중
1. 국민에겐 정직과 봉사를
1. 생활에는 청렴과 질서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공무원은 무엇으로 사는가 - 대한민국 공무원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전하는 공직 이야기

전만복 지음, 지필미디어(2015)


태그:#공무원은 무엇으로 사는가, #지필미디어, #전만복, #김성호의 독서만세
댓글16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