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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살 때부터 배우고 싶은 게 있었는데 엄두가 안 나서 못한 것이 있다. 엄두가 안 난 데에는 쫒기는 시간도 문제였지만 배우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고, 배우고 난 후에 집에서 활용할 장소도 문제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전통주 빚기!

지난해 가을, 농업기술센터에서 약초를 배우던 남편이 희소식을 가지고 왔다. 역시 농업기술센터에서 전통주 수업을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무료로. 얼씨구나 하고 둘 다 등록했다.

같이 수업을 듣는 사람들이 30명에 가까웠다. 모두 눈이 반짝였고 열의가 대단했다. 개중에는 사업적인 계획을 세워놓고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온 사람도 있었고, 우리처럼 주위의 사람들이나 멀리서 찾아오는 친구들을 대접하고 싶어서 배우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미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가장 확실한 목표를 세운 사람은 현대판 주막을 운영하겠다는 사람이었다. 그는 이미 주막집을 지을 터를 닦고 있다고도 했다.

수업은 재미있었지만 복잡했다. 전통주라고 해서 단순하게 막걸리 빚는 것으로 생각을 했는데 그게 장난이 아니었다. 누룩도 직접 띄워야 하는 데다가 막걸리 담그는 방법이 여러 종류가 있었다. 흔히 하는 고두밥을 비롯해 죽, 범벅, 떡, 물송편, 구멍떡, 인절미 등등.

막걸리를 빚었어도 또, 한 번 빚는 것을 단양주로 시작해서 2양주, 3양주, 10양주까지 있었다. 10양주까지 담그려면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단다.

게다가 빚은 술을 어떻게 거르느냐에 따라서 청주(용수를 박아서 맑은 술을 뜬 것)가 되기도 하고, 막걸리(청주를 뜨고 난 후 물을 섞어서 짠 것)가 되기도 하고, 탁주(청주를 뜨지 않고 짠 것)가 되기도 하고 소주(알코올을 65℃~70℃로 끓여서 받은 증류주)가 되기도 했다.

순수한 탁주는 알코올이 18%까지 나왔다. 물과 기타의 것을 타지 않은 상태에서 마신다면 시중에서 파는 소주와 알코올 농도가 거의 같은 수준이다. 탁주로 짠 술의 맛은 술을 빚는 솜씨에 따라서 그 맛도 달라진다. 잘 빚은 탁주는 그 맛이 일품이다.

술맛 보다가 낭패... 남편은 "졌다"면서 허허

통밀을 거칠게 빻아서 된 반죽을 해서 디딘다.
▲ 통밀누룩 딛기 통밀을 거칠게 빻아서 된 반죽을 해서 디딘다.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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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술맛을 보다가 큰 낭패를 당한 적이 있다. 평소에 시중에서 파는 막걸리 잔으로 한 잔은 보통 마시던 버릇대로, 술을 거르면서 맛에 빠져서 조금씩 마신 것이 그만 밥공기로 한가득 마셔버렸다. 마지막 한 모금을 마실 때는 이미 혀가 말려서 말은 꼬부랑꼬부랑 나왔고 괜히 실실 웃다가 골아 떨어져서 남편의 저녁도 안 해주고 아침에서야 눈을 떴다. 남편에게 미안해서 괜한 술 탓을 하면서 이제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해 놓고는 저녁에 반주로 마시는 남편 것을 빼앗아 또 마셔 버렸다. 남편은 '졌다'면서 웃었다.

지난해에 있었던 일을 지금 기사로 쓰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처음에는 막걸리를 겁나게 좋아하는 남편과 발효된 막걸리 한 잔쯤은 약이 된다는 말에 단순한 마음으로 시작을 했다. 올해(2016년) 6월 15일 제1회 전통주 소믈리에 1급 자격증을 땄기 때문이다.

정말로 다른 욕심 없었는데 그만 자격증 시험을 본다는 말이 나의 그 잘난 도전정신을 건드렸다. 1차로 필기시험 합격자에 한해서 2차로 실기시험을 본다고 했다. 2013년도 관광가이드 자격시험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자격증 시험은 안 보겠다던 내 결심은 하얗게 부서져버리고 다시 필기시험 공부를 했다. 물론 남편도 같이.

필기시험은 무난히 합격했다. 문제는 남은 실기시험이었다. 나는 2기 수료생인데, 1, 2, 3기생을 무작위로 섞어서 조를 짜서 실기시험을 본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 집에서 술을 빚어 봤지만 그냥 호기심에서 배운 사람도 제법 있었고, 그런 사람들은 배우기만하고 끝난 사람도 있기에 여간한 걱정이 아니었다.

변해버린 우리 술맛을 되찾자는 생각

솔잎을 쌀가루와 함께 쪄서 물과 누룩을 섞어서 버무린 것
▲ 솔잎주 빚기 솔잎을 쌀가루와 함께 쪄서 물과 누룩을 섞어서 버무린 것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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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의 목적은 합격이다. 드디어 시험 날이 다가왔고 다행히도 조원들을 잘 만났다. 며칠 후에 선생님으로부터 전원합격이라는 문자를 받았다. 전원 합격을 한 것은 배우는 사람들의 열의와 솜씨도 좋았지만, 가르치신 선생님 역시 모두를 합격시키려는 노력이 대단했다. 몇 번씩이나, 수업시간에 필기한 것과 교재를 다시 한 번 훑어보라는 문자를 보내며 수험생 못지않게 노심초사하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자격증을 받은 날 생각해 봤다. 과연 이 자격증은 어떤 의미인가를. 전통주! 말 그대로 전통주라면 우리나라의 대표 술이다. 그렇다면 물밀 듯이 밀려오는 외국 주류들에게 자리를 빼앗긴 우리 술의 전통성을 살리고 옛날의 명성을 되찾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그러자면 한 사람이라도 더 우리 술에 대한 이해와 고객을 잡기 위해 변해버린 우리 술의 맛을 되찾는 것이 급선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 나를 가르치신 선생님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도움을 받기로 했다. 우리를 가르친 분은 김병기(49) 선생이다. 김병기 선생은 2007년에 전주 술 박물관에서 박록담 선생께 전통주를 처음 배우게 됐다. 초급(강양주반)부터 연구반, 전문가 반을 마치고 서울로 갔다. 서울에서 (사)한국 전통주 연구소(박록담 선생)에서 특기반, 강사반(전국에서 3명)까지 7년에 걸친 수학 끝에 전통주를 가르치는 강단에 서게 됐다. 다음은 김병기 선생과의 일문일답이다.

우리 술의 전성시대는 조선 때

익은 술에 용수를 박아서 청주를 뜬다
▲ 용수 박기 익은 술에 용수를 박아서 청주를 뜬다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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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서 술을 빚기 시작한 때가 언제이며, 궁중이나 양반가에서 마시는 술의 종류가 따로 있는지요? 있다면 그 시기와 이름을 말씀해 주세요.
"우리나라 술 빚기 시작은 삼국시대 이전으로 기록되어 있고 고려시대가 성장기, 조선시대가 번성기였습니다. 궁중이나 양반가에서 마시는 술은 따로 없었으며 쌀이 귀한 시대라서 부잣집이나 양반 세도가에서는 고급 청주를 마시고, 서민들은 동동주나 막걸리를 마셨던 것으로 압니다."

- 선생님은 언제부터 전통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요?
"1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네요. 잊히고 사라져가는 우리 것을 지키고 복원하고 알리고 싶었습니다."

- 우리나라에 전통주를 담그는 명인이 몇 분이나 계신지요?
"명인 칭호를 받고 계시는 분은 약 30여 명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모두 수작업이 아닌 대량생산으로, 옛 맛과 향을 찾기 어렵고, 직접 빚는 분은 거의 없습니다. 이게 현실이죠."

- 전통주 소믈리에 자격시험을 어떤 계기로 누가 만들었으며, 1, 2급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자격증을 따면 어떤 이점이 있나요?
"쌀, 누룩, 물만으로, 여타 화학 약품이나 첨가제 없이 빚는 술이 진짜 우리 전통주며, 올곧이 전통을 고집하자는 의미에서 자격시험제도를 만들었습니다. 발급기관은 KLEC 평생교육원이며, 시행기관은 한국 창업능력개발원, 농림식품부의 인가를 받았습니다.

전통주 시험기관으로는 최초이며 교육 시간에 따라 1, 2급으로 나누게 되었습니다. 2016년 전통주 소규모 양조 허가 후 영업을 하거나 전통주 병입 판매가 가능하며, 자격과 무자격의 차이는 어떤 교육기관에서 얼마만큼 배우고 수련해서 술을 빚고 영업을 하는가의 차이입니다."

"적당히는 약이요, 과하면 독"

이양주를 만들 때 커피를 넣고 빚은 탁주
▲ 커피 탁주 이양주를 만들 때 커피를 넣고 빚은 탁주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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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주의 보급이 더 확장되리라고 보시는지요?
"전통주의 규제 완화로 이전보다 더 활성화되고 각기 다른 레시피로 다양한 전통주가 양성화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 독자들이 전통주 소믈리에 자격증을 따고 싶을 때는 어디서 배울 수 있으며, 배우는 기간은 얼마나 걸리고, 연간 몇 차례의 시험을 보는지요?
"가까운 전통주 교육장이나 남도우리 술, 한국전통주 등등의 교육기관이 있으며 21시간 수료한 뒤에 시험에 응시할 수 있으며, 연 2회 시험이 있습니다. 시험은 필기와 실기로 이루어집니다."

- 전통주를 만드시는 분들이나 애주가들께 따로 당부하실 말씀이 있는지요?
"술도 그 나라의 역사이고 문화입니다. 옛 향음주례가 있듯이 적당한 양은 약이요, 과하면 독입니다. 선조들의 지혜와 우리의 얼을 알고, 빚는 이의 수고로움을 이해한다면 술이 아깝지 않겠습니다."

- 전통주에 얽힌 웃지 못할 에피소드나 재미난 이야기가 있다면 들려주시지요.
"술 공부한 지 2년째 되던 해에, 술을 빚어야 하는데 쌀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밥해 먹을 쌀을 탈탈 털어서 술을 빚어서 식구대로 쫄쫄 굶고, 옆지기한테 아주 많이 시달렸지요. 하하하!"

한국도 독일처럼... 언제쯤 실현될까

서른둘이라는 젊은 나이, 그는 겁도 없이 전통주의 매력에 빠져 헤어나질 못했다. 아니 의식적으로 빠졌는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별 소득 없는 전통주에 인생을 걸었다는 김병기 선생! 그는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라고 했더니, 먼 산을 바라보며 혼잣말처럼 호소하는 말이 있었다.

"2016년 1월 26일 자로 소규모 양조면허법령이 공표됐어요. 그런데 아직 면허를 낸 사람이 없어요. 면허내기가 좀 더 쉬워져서 전통주 연구하는 사람이 많아져서…. 우리 전통주를 널리 알리고 고급화시키는 시기를 앞당겨서 대한민국의 전통주를 세계화시키는 것이 바람이에요, 그런데 그 시기가 언제가 될는지…."

김병기 선생의 말대로 우리의 전통주를 세계화시킨다면, 독일이 맥주로 막강한 외화를 벌어들이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전통주가 국위선양을 하는 날이 왔으면 하는 기대를 해 본다.

덧글. 오는 8월 6일~8월 7일 장성 축령산에서 산소 축제를 한다. 이때 전통주 시음회를 하면서 판매도 할 예정이란다.


태그:#전통주, #커피주, #솔잎주, #용수, #누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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