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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경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IT회사에 경력직 대리로 막 입사했던 햇병아리 시절 이야기다.

KFC 할아버지를 닮은 외모에 넉넉한 마음씨를 가졌던 대표님은 업무가 시작되기 1시간 전인 오전 8시까지 사업부 직원들을 직급별로 모아놓고 이런 저런 회의와 교육을 진행하곤 했다.(업무시간 전에 직원들을 모아 교육을 한다거나, 체조를 시킨다거나 하는 일이 당연시되던 그런 시절 이야기다. 때문에 이에 특별한 의미를 두고 싶진 않다)

순서는 돌고 돌아 내가 속해있는 사원~대리 급의 모임이 진행되던 날.

평상시에는 만나기도 힘든 까마득한 위치의 상사가 햇병아리들에게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우리는 바짝 긴장했고, 회의실에는 작은 숨소리조차 거슬릴 정도의 적막만이 흐르고 있었다.

회의나 토론을 생각했던 예상을 깨고 대표님은 우리들에게 재난영화 한 편을 감상하도록 했다. 거대한 재난에 맞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주인공을 그린 전형적인 할리우드 재난영화였는데, 영화가 끝난 후 각자 여운에 빠져 있는 우리에게 한 가지 질문이 던져졌다.(아직까지도 영화 내용과 질문 간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각자 인생에서 가장 행복을 느끼는 순간을 말해보시오."

운이 나쁘게도 내 발표 순서는 삼십여 명 인원 중 첫 번째였다.(울렁증이 있는 걸 감안하면 다행인 것 같기도 하다) 문제는 말 한 마디, 행동 하나하나에 혼신을 기울여 윗사람들에게 '진취적이고 열정적인 직원'이라는 인상을 심어줘도 모자랄 판국에 나는 (제 정신 박힌 회사원 기준으로는) 정신 나간 소리를 진심을 담아 지껄였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주성치 영화를 보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담배 한 대 피우는 순간 행복한 것 같습니다."

내 대답을 듣고 알 듯 모를 듯 오묘한 표정을 지은 대표님은 곧 이어진 다른 직원들의 대답을 들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들의 대답은 각자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결국 "어려운 상황을 노~~오~~력으로 극복하고 성공을 일궈냈을 때 행복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우리는 각자의 몸에 맞는 옷을 입고 있나

한라산과 바다, 그리고 해안선을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서우봉. 저녁을 먹은 후 산책을 위해 자주 찾는 곳이다
 한라산과 바다, 그리고 해안선을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서우봉. 저녁을 먹은 후 산책을 위해 자주 찾는 곳이다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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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그날 모임은 회사원으로서 적합한 마인드를 갖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를 판단하는 자리였고, 거기서 나는 열정도 없고, 노~~오~~력도 해본 적 없는, 심지어 영화 취향마저 괴상한 이상한 놈으로 낙인 찍힌 것이다.(면접과 승진심사를 위한 특강이 존재하는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일 것이다)

문제는 그 대답이 정말로 내 진심이었다는데 있다. 혹시 그 다음으로는 어떨 때 행복하냐고 물었다면 "온라인 게임에서 득템했을 때"라든지, "응원하는 야구팀이 9회말에 역전했을 때"라고 답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때 나는 내 성격과 적성, 취향은 어떠한지, 무슨 일을 할 때 즐거운지,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심각하게 고민했어야 했다.

세월이 한창 지나 작게나마 연륜이 쌓인 지금 눈으로 그때 나를 보면 이 녀석은 승진과 보너스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쳐야 하는 회사라는 시스템에 잘 맞지 않는 부류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내가 과거로 돌어가 그때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지금 당장 그 일을 그만두고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이대로라면 너는 분명 후회하게 될 거"라고 꼭 말해주고 싶은 심정이다.

직장생활이 너무 힘들어 제주로 내려오고 싶다는 사람들을 직간접적으로 자주 접한다. 하지만 이런 분들에게 그 어떤 말도 해줄 수가 없다. 과연 이 사람이 도시에서의 성공지향적이고 소비지향적인 삶과 어울리는 사람인지, 아니면 이것들을 반쯤 내려놓아야 하는 제주에서의 삶과 어울리는 사람인지지 본인조차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사람마다 각자 잘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무대가 있다는 것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 성공을 쟁취할 때 살아있음을 느끼고, 이에 대한 대가로 멋진 옷과 차, 집을 사는 것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잠시 지쳤다고 해서 귀촌을 생각하는 건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반대로 직장생활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리고 도시에서의 직장생활이 내 몸에 잘 맞지 않는다는 확신이 든다면 한 번쯤 그곳을 벗어나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배워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 선택에 대한 권리와 책임은 모두 본인에게 달려 있다.

제주산 자연치즈와 곡물빵, 초당옥수수, 토마토, 우유, 옥수수수염차 등 로컬푸드로 가득 채워진 아침식단. 가끔 이런 허영을 부리는 것도 제주에 사는 재미다.
 제주산 자연치즈와 곡물빵, 초당옥수수, 토마토, 우유, 옥수수수염차 등 로컬푸드로 가득 채워진 아침식단. 가끔 이런 허영을 부리는 것도 제주에 사는 재미다.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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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공동주택에 대한 단상

도시생활을 접고 제주도로 내려갔다고 하면 의레 단독주택을 떠올리게 되나 보다.

"마당에서 큰 개도 키우고 바베큐도 해먹고 그렇겠네?"
"아파트 사는데."
"헐! 왜 제주도까지 가서 아파트에 살아?"

지난 글(마당 있는 집, 제주에선 꿈도 꾸지 마세요)에서 언급한 이런 저런 이유로 단독주택에 대한 꿈을 접은 사람이라면 남은 것은 공동주택 뿐이다. 공동주택의 장점은 명확하다.

일단 신규분양이든 매매든 기준가가 명확하기에 육지 것이라고 바가지를 쓸 일이 없다는 것과, 끝도 없이 계속되는 잡초와의 전쟁이라든지 집안으로 스며드는 지네 등 다리 여럿 달린 생명체와의 사투, 그리고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유지보수에서 자유롭다는 것이다. 단점이라면 육지에서의 생활과 별반 다르지 않은 공동주택 생활을 또 해야 하는 것일 테고.

개인적으로는 이제 막 제주로 이주를 하는 사람이라면 첫 집으로는 공동주택을 추천하고 싶다. 육지에서 섬, 도시에서 시골로 생활의 무대가 완전히 변화되는 상황에서 주거형태까지 한 번에 바꾸는 건 큰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다.

또한 앞서 얘기한대로 혹시 모를 바가지를 방지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제주에 대해 파악이 되기 전에는 가격표가 붙지 않은 물건은 작게는 농수산물부터 크게는 집까지 되도록 접근하지 말자. 게임에서 이길 확률이 거의 없다).

지난 글에서 ① 토지를 매입하여 새로 집을 짓는 경우 ② 구옥을 매입하여 리모델링을 하는 경우, 두 가지 경우를 살펴봤다. 이번엔 그 다음 순서다.

③ 타운하우스를 매입하는 경우

차를 몰고 해안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나선다. 카페와 음식점이 밀집한 곳을 지나면 어김없이 타운하우스가 자리를 잡고 있다. 한적한 중산간 초등학교 분교 근처에 차를 세워놓고 동네 산책을 나선다. 주거지를 조금만 벗어나면 여기저기서 타운하우스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경제적 능력이 된다면야 타운하우스 역시 좋은 선택지일 것이다
 경제적 능력이 된다면야 타운하우스 역시 좋은 선택지일 것이다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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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지금 제주에서는 해안가와 중산간을 막론하고 전 지역에 걸친 타운하우스 신규건축 붐이 이어지고 있다. 타운하우스와 단독주택의 차이점은 간단하다. 공동으로 관리 및 경비 등의 업무를 해주는 주체가 있느냐 없느냐(단독주택 X : 타운하우스 O), 집 외부 조경이나 건축물 변경을 소유주 마음대로 할 수 있느냐 없느냐(단독주택 O : 타운하우스 X) 정도다.

물론 그 외에도 법적 분류와 규제의 적용 등 많은 차이가 있으나, 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이 정도가 피부에 와 닿는 차이점일 것이다(공동관리비의 경우 아파트나 빌라에 비해 상당히 비싼 경우가 많다는 것도 알아두자).

각 지역에 따라, 그리고 규모와 옵션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겠지만 현재 제주도에서 분양되고 있는 타운하우스의 매매가는 대략 3억 원~6억 원 정도다. 단층 30평 정도 건물에 60평 정도 대지가 주어지는 집이 3억 원 선이고, 2층 건물에 100평 남짓한 대지일 경우 6억 원 선까지 치솟기도 한다.

아주 작은 규모로 설계되어 2억 이하의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분양되는 타운하우스도 존재한다.
 아주 작은 규모로 설계되어 2억 이하의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분양되는 타운하우스도 존재한다.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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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하는데 있어 이런저런 장단점은 차지하고 실제 제주에서의 거주지로 타운하우스를 선택했을 때 가장 큰 장점은 정서적 이질감이 적은 육지출신끼리 모여 살 수 있어 불필요한 갈등을 피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장 큰 단점은 타운하우스 주변 토착민들과는 물과 기름처럼 섞이기 힘들어 자칫 왕따 아닌 왕따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2년 전 제주 중산간 마을에 타운하우스를 분양 받아 살고 있는 대구 출신 B씨의 이야기다.

"타운하우스에 살면서 가장 큰 불편함은 동네 행사 등에 있어 비자발적 고립이 된다는 점이에요. 처음 1년간은 이에 대해 불편함을 잘 모르고 살았는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니 얘기가 달라지더군요. 얼마 전에도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 학부모들이 주도하는 캠핑 모임이 있었는데 저희는 초대받지 못했어요.

올해 초에는 아이들과 제주 올레길을 걷고 이에 대해 마을 원로들과 가상 토론하는 프로그램이 진행됐는데 이 역시 우리를 포함한 타운하우스 학부형들만 초대를 못 받았죠. 제주도에서는 학교 차원이 아니라 마을 자치회 차원에서 주최하는 행사들이 많아 마을에 동화되지 못하면 결국 힘든 건 이주민일 수밖에 없더군요.

우리가 먼저 다가가지 않는 이상 언제까지 외부인 취급을 받을 거예요. 그런데 막상 다가가려 해도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죠. 그게 고민이에요."

대출과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들도 검토해봐야 한다. 아파트나 빌라와 달리 타운하우스의 경우 분양가와 은행 감정가 간에 간극이 큰 편이다. 이 때문에 매입을 할 때는 대출을 이용해 잔금을 내는데 문제는 없는지 검토가 필요하며, 추후 타운하우스를 매매하거나 경매에 넘어가는 등의 문제가 발생할 때 손해액의 범위는 얼마나 커질지도 고민이 필요하다.

세입자의 경우도 조심해야 한다. 최근 들어 타운하우스를 분양 받아 전세를 내놓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육지뿐 아니라 제주도에도 워낙 전세 물량이 부족하다 보니 이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앞서 언급한대로 분양가와 감정가 간의 간극이 크기에 전세 계약에 앞서 대출금과 전세금, 그리고 혹시 경매에 넘어갈 때 받을 수 있는 보상금 등에 대해 자세히 파악해볼 필요가 있다.

최근에는 협동조합 형태로 분양되는 타운하우스도 있다. 방송인 허수경 씨가 입주하여 화제가 된 조천읍 어느 타운하우스의 모습.
 최근에는 협동조합 형태로 분양되는 타운하우스도 있다. 방송인 허수경 씨가 입주하여 화제가 된 조천읍 어느 타운하우스의 모습.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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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대단지 아파트를 매입하는 경우

제주 이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첨단과학단지 한화 꿈에그린 아파트 분양에 대한 뉴스를 접했으리라 생각된다.

당초 2015년 분양이 예정되었던 이 아파트는 분양가를 둘러싼 시행사와 분양가 심사기관 사이의 힘겨루기로 수차례 분양가와 분양 일정이 변경된 끝에 869만 8000원에 최종 분양가가 결정되어 지난 5월 일부 단지에 대한 청약이 진행되었다.

마이너스 옵션이 대거 추가되어 실제 분양가는 1000만 원에 달한다고 입을 모으지만 모든 것은 결과가 말해주고 있다. 최종 경쟁률은 218 대 1을 기록했다.

교통과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토지 매입가 역시 도심지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중산간에 건설되는 이 아파트에 왜 이렇게 많은 관심이 집중되었는가에 대해 여러 가지 분석이 있겠으나, 역시 가장 큰 원인은 육지에 비해 아직 브랜드 대단지 아파트가 부족한 제주도의 특성상 그 희소성이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논란 끝에 1차 분양이 완료된 첨단 꿈에그린 조망도
 이런 저런 논란 끝에 1차 분양이 완료된 첨단 꿈에그린 조망도
ⓒ 시공사 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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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제주도에는 대규모 브랜드 아파트의 신규 분양물량이 육지보다 부족한 상황이다. 신규 분양이 대단지보다는 나홀로, 혹은 소규모 아파트와 빌라에 집중되어 있고, 새로 분양되는 대단지들(삼화지구, 서귀포 혁신도시 등)의 경우 일반분양이 아닌 공공임대 물량이 대부분이다.

실 거주 물량에 대한 갈증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평당 1000만 원 이하에 분양되었던 기존 대단지 아파트들의 매매가가 평당 1500만~2500만 원까지 상승하다 보니 대단지 아파트는 실패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확고히 자리 잡은 상황이다.

결론을 내보자면 현재 제주도에서 대단지 아파트에 거주한다는 건 이래저래 쉬운 일이 아니다. 기존 매물의 경우 매매가가 소규모 단지에 비해 월등히 높고, 신규 분양이 예정된 물량(도남 해모로 등) 역시 평당 분양가(1500만 원 내외 예상)와 경쟁률을 생각하면 당첨을 낙관하기 힘든 상황.

가장 중요한 건 대단지 아파트에 대한 일종의 프리미엄이 과연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 혹은 거품이 빠질 것인지에 대한 투자적 관점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부동산의 오르내림을 감히 누가 예상하리오. 판단은 개인의 몫이다.

지난 2012년 평당 902만원에 분양되었던 노형2차 아이파크의 조망도. 4년이 지난 현재 이 아파트의 매매가는 평당 2,500만원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 2012년 평당 902만원에 분양되었던 노형2차 아이파크의 조망도. 4년이 지난 현재 이 아파트의 매매가는 평당 2,500만원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 시공사 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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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해 최고의 상승률을 기록한 지역 중 하나인 제주도에서 부동산 매매를 알아보려면 육지와는 닮은듯하면서도 다른, 제주도만의 흐름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 특히나 투자 목적이 아닌 실 거주 목적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다음 글에서는 거주형태와 관련된 마지막 글로 단지형 빌라와 나홀로/소규모 아파트,빌라, 그리고 원룸과 오피스텔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해보도록 하겠다.

⑤ 단지형 빌라를 매입하는 경우
⑥ 나홀로 아파트나 소규모 빌라를 매입하는 경우
⑦ 오피스텔이나 원룸을 매입하는 경우


태그:#제주이주, #제주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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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 : 제주, 교통, 전기차, 복지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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