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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전 경북 칠곡군 기산면 영리에서 농업인이 칠곡군 내 첫 모내기를 하고 있다.
 14일 오전 경북 칠곡군 기산면 영리에서 농업인이 칠곡군 내 첫 모내기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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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 왜관읍 매원리에는 광주 이씨 집성촌이 있다. 아무 문이나 열고 들어가도 그 사람을 내가 "아재"나 "아지매"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이었다. 아마, 아재나 아지매일 테니까. 길에서 만나는 낯모르는 모든 사람들을 나는 "아재요"라고 불렀다.

할머니는 몸이 성하실 때까지 그곳에서 농사를 지으셨다. 큰아들이 대구로 갔다가 서울로 가고 손녀들이 대학을 다 갈 때까지도. 길거리에서 소가 똥을 싸고, 그냥 콩잎을 따서 우적우적 씹어먹는 곳이었다. 오빠랑 나는 대숲에 들어가서 대나무를 잔뜩 꺾어와 우물에 죄다 던져넣었다가 직쌀나게 혼난 적도 있다.

왜관에 사는 광주 이씨들은 항일운동을 열심히 했다며 자랑스러워하던 동네 아재의 수다를 들어주던 기억이 난다. 그 아재네 집에는 커다란 셰퍼드가 두 마리나 있어서, 동생과 나는 늘 무서워했다. 스스로를 유학자라고 생각하는 할배들은 꼬장꼬장했다. 그 마을에는 농사를 지을 때는 리어카를 타고 다니면서도, 읍내에 나가기 위해서는 두루마기를 입는 할배들이 많았다. 아빠의 친구는 자기 할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아빠한테 도련님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그랬다며 껄껄 웃기도 했다.

안양으로 이사 오고 나서, 첫 대통령 선거 날 우리 집에는 전화가 두 통 정도 걸려왔다. 할배들은 서울 올라갔다고 맘 바꿔먹지 말고 1번 잘 찍으라고 아빠에게 말했다. 나는 그 대선에서 노무현을 지지했었다. 투표권은 없었지만.

많이들 돌아가셨지만, 살아계신 할배들은 이번에도 박근혜를 찍었을 것이다. 할배들의 그 똘똘하던 "스의영이(정말 한글로 표기하기 어려운 발음이다)"가 뺄개이가 되어서 민주노동당에도 가입했다가, 자기 첫 책에 사회주의자라고 썼다가, 데모도 열심히 하면서 살고 있다는 걸 알면 무척 화가 많이 나실 것이다.

칠곡에 사드가 설치된다고 한다. 칠곡 군수가 머리를 밀었다고도 한다. 나는 내 조그만 시골 마을이 자꾸 텔레비전에 나와서 괜히 반갑다. 그렇게 좋은 이야기가 아닌데도 괜히 그렇다. 그 할배들은 분명 박근혜를 찍었겠지만, 나는 내게 다정하던 어른들을 기억한다. 무슨 일이 있었건 간에, 나는 그 할배들이 위험에 처하지 않기를 바란다. 논밭에 가득한 쌀과 소똥 냄새와 할배할매들의 웃음을 나는 다 기억한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방어를 위해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 배치 후보지 중 한 곳으로 경상북도 칠곡으로 거론되자, 칠곡군 왜관역 인근 도로에 칠곡지역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 칠곡 거리에 내걸린 사드 배치 반대 현수막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방어를 위해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 배치 후보지 중 한 곳으로 경상북도 칠곡으로 거론되자, 칠곡군 왜관역 인근 도로에 칠곡지역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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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이 칠곡 사드 배치에 대해 "박근혜를 찍은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누군가는 고소해 하기도 하고, 꼭 칠곡에 설치되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보았다. 하지만 그런 대가를 치러야 할 사람들은 없다.

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의 많은 사람들은 진심으로 전쟁을 지원했다. 모든 국민들이 나서서 폭탄에 몸을 실었고, 전쟁을 지원하는 수많은 단체들을 만들었다.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도 많이 그랬다. 그렇다고 해서 누구도 히로시마가 '응분의 대가'라고 말할 수는 없다. 역사는 진주만에서 가족을 잃은 사람에게도 말해왔다. 지구상 어느 곳에서도 그런 위험을 감내해야 할 까닭이 없다고, 그건 비극이라고.

아무도 돌보지 않는 내 고향집은 이제 다 없어졌을 것이다. 그래도 종종 고향집 우물이 보고 싶다. 거기 있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이서영씨의 페이스북에도 게재됐습니다



태그:#사드, #칠곡,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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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소설을 씁니다. 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 혹은 그 역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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