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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에 있어야 할 아이들은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했고, 어른들은 아직도 진실을 밝혀지 못했습니다. 논, 밭에 있어야 할 농민은 아스팔트 위에서 물대포에 쓰러졌고, 회사에 있어야 할 노동자는 감옥에 갇혀있습니다. 국회에서 정치를 해야 할 정치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걸까요.
 학교에 있어야 할 아이들은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했고, 어른들은 아직도 진실을 밝혀지 못했습니다. 논, 밭에 있어야 할 농민은 아스팔트 위에서 물대포에 쓰러졌고, 회사에 있어야 할 노동자는 감옥에 갇혀있습니다. 국회에서 정치를 해야 할 정치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걸까요.
ⓒ 권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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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 살, 온갖 부푼 꿈을 안고 미대에 진학한 후, 내가 왜 미술을 하게 되었는지를 말할 때면 놀랍게도 사람들로부터 돌아오는 답은 항상 비슷했다.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순진한 생각은 빨리 접어두는 게 좋을 거야."
"너는 예술가가 되고 싶은 거니? 사회운동가가 되고 싶은 거니? 둘 중 하나만 택해."

따위의 대답들이었다.

그렇다. 나는 예술에는 세상을 좀 더 살만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순진하게도' 믿고 있었다. 그런 믿음은 나의 20대를 혼돈으로 가득하게 만들기에 충분했고, 많은 사람들은 네가 촛불을 들든, 붓을 들든 상관없이 세상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로 나를 시험에 들게 했다.

그런 걸까? 역시 안 되는 걸까?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예술은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걸까?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이 질문을 나는 독일의 행동주의 예술그룹 ZPS에게 해보기로 했다.

내가 처음 ZPS라는 독일의 행동주의 예술그룹을 알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2년 전이다. 2014년, 당시 독일 베를린은 자신들이 세운 '분단의 장벽'이 무너진 지 무려 25주년이 되었고, 고로 베를린은 '냉전을 종식시킨 도시'로서 자신들이 이룬 통일을 전 세계에 뽐내야 한다며 각종 화려한 통일 행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바로 그때 행사 열기에 마치 찬물 끼얹은 사건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ZPS가 국회의사당 옆 편에 설치되었던 '베를린 장벽 희생자'들의 십자가 기념비들을 보란 듯이 떼어다가 망치와 절단기를 들고 유럽 국가들의 국경을 향해 달려간 사건이었다.

 유럽국경의 철조망을 끊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난민을 막기 위해 세운 유럽의 장벽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럽국경의 철조망을 끊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난민을 막기 위해 세운 유럽의 장벽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 Berliner Zeit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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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만약, 아주 만약에 내가 한국에서 '38선의 철조망을 끊으러 갈 사람 여기 붙어라'라고 외치며 사람들을 불러 모아 남한의 국경을 향해 달려갔다면 첫째, 나는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을 것이고, 둘째로는 38선을 차마 보기도 전에 경찰에게 잡혀가거나, 운이 좋아 잡히지 않더라도 38선에 접근하기도 전에 지뢰를 밟아 죽었을지도 모른다. 상상만 해도 머리가 쭈뼛쭈뼛 서는 듯하다.

이 이야기를 ZPS의 일원 중 한 명인 에밀리아에게 들려주니, 그녀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그런 슬픈 일은 부디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실 에밀리아는 앞서 설명했던 '유럽국가의 국경 무너뜨리기' 프로젝트를 계기로 ZPS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나는 에밀리아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한국 얘기 들려주자... "아, 지금 북한 얘기하는 건가?"

- 버스를 타고 유럽국가 국경으로 갔을 때 솔직히 두렵지 않았나? ZPS가 당시 '베를린 장벽 희생자'들의 십자가 기념비들을 떼어갔을 때 독일의 한 언론은 '베를린 장벽 희생자'들의 기념비들이 도난당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먼저 우리는 베를린 장벽 희생자들의 기념비를 훔친 것이 아니다. 잠시 빌린 것뿐이다. 프로젝트가 끝난 후 다시 기념비를 다시 돌려줬고, 우리가 그 기념비를 난민에게 가져간 이유는 사람들에게 난민 문제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일깨워 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두렵다'란 표현은 나에게 적합하지 않을 것 같다. 두렵기보단 좀 떨렸다. 물론 이러한 행동들은 앞을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마치 배우가 무대 위에 올라가기 전, 두근거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상태를 '두렵다'라는 말로 표현하고 싶진 않다."

- (헐) 용감하다. ZPS가 그동안 진행했던 프로젝트들, 즉 독일 국회의사당 앞 잔디밭을 온통 난민들의 무덤으로 만들어 버린다든지, 독일 가족부장관을 사칭하여 시리아의 난민어린이를 독일로 데려오는 대범한 프로젝트를 만약 한국에서 진행한다면, 일단은 경찰조사는 물론 어마어마한 벌금은 각오해야 할 것 같다. ZPS는 이러한 일들에 대한 법적인 문제는 없나?
"아, 지금 북한 이야기 하는 건가?"

- (이 질문을 받고 나는 정말 당황했다) 아니다. 정확히 나는 한국의 경우를 이야기한 것이다. 나는 남한 사람이므로 북한은 어떠할지 나로선 알 길이 없다.
"지금까지 프로젝트를 하면서 어마어마한 벌금을 낸 적은 없다. 다만 가끔 소소한 법적인 문제가 있었는데 그러한 것들은 지금까지 대화를 통해 적절한 합의를 가져왔다. 우리를 지지하는 조력자들 중에는 법적인 조언을 해주시는 분들이 존재하고 시시콜콜한 문제가 생겼을 때 그분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신다. 또 변호사들 역시 우리 프로젝트의 참여자로서 현장에 함께한다."

- ZPS는 독일 가족부 장관이 난민을 환영하고 있고 (물론 실제 독일 가족부 장관은 그러한 말을 한 적이 없음에도) 독일 가족부가 난민을 독일로 받아들이려고 난민 신청을 받고 있다는 가짜 웹사이트까지 만들었다.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진짜로 믿었을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프로젝트를 하다가 누가 경찰에 잡혀간 적도 없는가?
"지금까지는 경찰에 잡혀간 사람은 없다. 앞서 언급했던 프로젝트는 가상으로 만든 '시리아 어린이를 위한 정부 프로젝트'다. 우리는 가상의 웹사이트를 만들었지만 그것을 통해 독일에서 난민어린이를 보살펴 줄 가족이 나타나길 원했다. 겉으로 보기에 이 웹사이트는 정부에서 만든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누구나 가상의 웹사이트임을 알 수 있다.

놀라운 것은 우리가 이 웹사이트를 온라인에 처음 게시하고 24시간만에 천 명이 넘는 가족들이 시리아의 어린이를 돌보겠다고 신청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가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증명했다. 우리는 독일정부에게 묻고 싶었다. 지금의 난민문제에 대해 이러한 시도들을 왜 안 하고 있는지 말이다."

 ZPS가 만든 독일 가족부장관의 얼굴을 간판으로 가짜 가족부난민신청 웹사이트 캡처.
 ZPS가 만든 가짜 가족부난민신청 웹사이트 광고. 독일 가족부 장관의 얼굴을 간판으로 내걸었다.
ⓒ Z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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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PS의 프로젝트들은 대개 상상 이상으로 활동 범위가 매우 크다. 프로젝트 구상은 어떻게 하며, ZPS는 어떤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나?
"우리는 2009년에 만들어진 행동주의 예술 콜렉티브이다. 사회학자, 저널리스트, 예술가 등등 다양한 분야 사람들로 구성되어있다. 프로젝트 구상은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진행된다. 참여자들의 직업은 다양하지만 우리가 공통적으로 활동하는 것은 '예술을 통한 정치적 행동'이다. 핵심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은 대략 7~8명 정도이고, 그 외에 다양한 사람들이 프로젝트마다 결합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재정적 지원 역시 프로젝트마다 지원해주시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 다양한 직업군으로 구성된 ZPS가 구체적으로 어떤 예술을 하는 그룹인지 설명해 달라.
"ZPS는 독일어로 '정치적인 아름다움을 위한 센터(Zentrum für politische Schönheit)'의 줄임말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공공장소에서의 연극'이라는 형식으로 우리의 특성을 설명할 수 있겠다. 일반적으로 연극이 극장에서 공연을 한다면, 우리는 거리에서, 광장에서 정치적인 퍼포먼스를 진행한다."

 인터뷰를 하고 있는 ZPS의 에밀리아.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있다.
 인터뷰를 하고 있는 ZPS의 에밀리아.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있다.
ⓒ 권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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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PS는 사회 혹은 정치에 대한 문제제기를 예술을 통해 하고 있다. 특별히 예술이라는 틀 안에서 활동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의 프로젝트는 공연, 참여예술, 그리고 행동주의적 예술행위 등등으로 서술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정치적 프로젝트들이 일종의 연극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극장이 아닌 공공 공간에서 하는 연극인 것이다.

극장은 4개의 벽이 있어야 하고, 관객과 배우사이에 경계가 있지만 우리가 하는 예술 활동에서는 관객과 우리 사이에 경계가 불분명하다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거리에서 프로젝트를 할 때, 배우들과 활동가들과 시민들을 서로 뒤엉키게 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누가 배우이고, 누가 활동가이고, 누가 시민인지 알 수 없게 되고, 무엇이 진짜인지 무엇이 가짜인지 불분명해진다. 상황에 따라 시민들은 극장 안에 관객들보다 좀 더 적극적으로 반응을 하고 그러므로 비로소 새로운 방식으로 소통하게 되는 것이다."

- 아까부터 묻고 싶었던 건데 지금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있는 이유가 뭔가?
"우리는 지금 유럽이 21세기형 대형 재난 상태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난민들이 유럽의 국경 밖에서 죽었는가? 그들의 주검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이러한 상황을 우리는 전혀 납득할 수 없다. 정치적 무관심, 인간에 대한 무관심은 과거 독일의 무자비한 역사적 과오를 낳았다. 더 이상 과거의 끔직한 역사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싸워야 할 것은 바로 이러한 것들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윤리적 미와 정치적인 미로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 조직된 '돌격부대'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우리는 '도전적 인본주의'를 추구한다. 대개 인본주의적 활동단체는 인간에 대한 사랑을 기본으로 상대적으로 공손하게, 점잖게, 착하게 활동한다. 그러한 단체는 이미 많이 존재한다. 우리의 역할은 그들과는 달리 도전적이고 전투적으로 정치에 대해 저항하는 돌격대이기 때문에 공개적인 자리에 있을 때 이러한 분장을 한다. 우리는 지금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어떤 의미'에서 예술가에게 최적의 나라

인터뷰가 끝난 후, ZPS 사무실 둘러보니 책상 한 쪽에 거울과 바비큐용 석탄나무가 흐트러져있다. 순간 웃음이 나왔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에밀리아는 나와의 인터뷰도 일종의 연극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나와 인터뷰를 하기 위해 거울을 보며, 석탄나무로 얼굴에 검은 칠을 했고, 그 순간 그녀는 세상을 정치적인 아름다움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조직된 전투부대의 대원이 된 것이었다.

우리의 인터뷰는 꽤 오랜 시간동안 진행되었다. 나는 인터뷰를 하는 동안 '부러우면 지는 거다'를 되새기며 에밀리아의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다.

내가 생각해도 좀 '비현실적이다', '과하다' 싶은 그들의 프로젝트가 실현가능했다는 것, 또 그러한 프로젝트에 벌금과 형벌로 대응하기 보단 대화로 화답하는 사회적 분위기, 이들의 정치적 예술 활동을 지지하고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시민들, 그리고 법적으로 위험한 프로젝트임에도 '두렵다'라는 말 대신 '떨렸다'라는 말로 자신이 맡았던 역할을 담대하게 해낸 에밀리아의 자신만만한 표정이 부러웠다. 무엇보다 ZPS의 '위험한' 상상력이 부러웠다.

어느 순간 한국사회에서 상상력과 창의력은 일종의 예술을 빙자한 상품이 되어버린 듯하다. 창의력과 상상력을 내세우며 창조 경제를 펼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과연 ZPS 같은 예술그룹이 존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나의 예술적 역량이 부족한 탓에 현 정부의 창조 경제는 전혀 창조적으로 보이지 않고, 진정으로 창조적이어야 할 예술은 통제와 검열로 손과 발이 묶여있는 듯하다.

아니, 어쩌면 한국은 예술가들에게 최적의 나라일 수도 있겠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말이다.

"예술은 척박한 땅에서 비로소 피어나고, 예술가는 괴물 같은 현실을 먹고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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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독일해외통신원. 한국에서 공공미술가로 활동하다 현재 독일 베를린에서 대안적이고 확장된 공공미술의 모습을 모색하며 공부하고 있다. 주요관심분야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사회 공동체안에서의 커뮤니티적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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