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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자. 이기자."
"형 목소리 들은께 눈물이 나부요."
"형 고마워요. 잊지 않을게요. 형"
"웃어라. 웃자. 억지로라도 웃자."
"아직 안 끝났다. 이제 시작이다."
"그래요 형. 이제 시작... 맞아요. 형."

엊그제 백무현 화백과 주고받은 문자다. 전화 속 그의 목소리는 너무 거칠게 내려앉아 있었고 어떤 공포 같은 것에 짓눌린 듯했다. 그마저도 울음이 터지면서 오래 들을 수 없었다. 그도 울었고 나도 울고 말았다. 잠시 후 다시 문자로 몇 마디 나눴다. 웃자고 했고 이제 시작이라고 했다. 백 화백도 이제 시작 맞다고 했다. 그렇다. 아직은 끝난 게 아니다.

백무현은 내 고향 후배다. 몇 달 전 그가 고향 여수에서 총선에 출마하겠다고 했을 때 사실 나는 조금 놀랐다. 그는 전혀 정치적인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결심했고 나는 그를 응원하기로 했다. 그는 여수에 왕국을 건설했다는 주승용을 상대하겠다고 했지만 나는 알았다. 그가 상대하려는 것은 주승용이 아니라, 강고한 지역주의와 분열주의와 구태정치였다는 것을.

백무현 화백과 함께 식사 하던 날의 모습
 백무현 화백과 함께 식사 하던 날의 모습
ⓒ 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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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의 선거 캠프를 찾아가 곰탕 한 그릇 샀고 선거에 쓸 슬로건 몇 개를 건네줬다. 내가 한 일은 그것이 전부였고 그 후로는 그의 안부를 몰랐다. 지친 몸과 마음 추스르고 있겠거니 생각했다.

선거 막판, 병원에 누워 있어야 했던 백무현

얼마 전에 알았다. 선거 막판,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만나고 인사하고 부탁하고 설득했어야 할 그 시간에 그는 선거운동을 전혀 할 수 없었다는 것을. 병원에 입원해 누워 있었다는 것을. 아... 이미 위암 3기였다는 것을. 선거 패배의 아픔이 아픈 몸을 더 아프게 만들었다는 것을. 전남대병원에서 지리산을 거쳐 서울한방병원, 서울대병원 그리고 지금은 앞날을 알 수 없는 몸으로 경주에 있는 한 병원에 누워 있다는 것을.

그는 선거에서 졌다. 온몸을 던져 싸웠지만 분명히 졌다. 하지만 그는 그에게 1패를 안겨준 지역주의에게, 분열주의에게, 구태정치에게 기다리라고 말하고 있을 것이다. 위암 이겨내고 다시 우뚝 설 테니 한 번 더 싸워보자고 말하고 있을 것이다. 내게 직접 말한 건 아니지만 나는 들린다. 그가 살아온 궤적을 살피면 위암 따위 때문에 싸움을 포기하지는 않을 그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2012년 그는 오랫동안 만평을 그리던 신문사에 사표를 던지고 나왔다. 문재인 후보를 도우러 왔다. 대선 캠프 대변인을 맡았다.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고마웠다. 이때 그를 처음 만났고 고향 후배라는 것도 알았다. 그가 옳다고 믿는 일에 몸을 던질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았다. 한때 그가 광주전남지역 언론노조협의회 의장이었다는 것도, 대한민국 대통령 여럿을 만화로 그려낸 꼿꼿한 만화쟁이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

백무현은 <만화 박정희>로 박정희를 영웅에서 친일 민족반역자로 끌어내린 만화쟁이었다. <만화 전두환>으로 피비린내 나는 신군부의 광주학살을 고발한 만화쟁이었다. <만화 김대중>과 <만화 노무현>으로 우리 시대의 꿈과 현실과 아픔과 절망과 분노를 고스란히 담아낸 만화쟁이었다. 대한민국 현대정치사가 이 만화쟁이 손끝에서 차례로 정리되어 왔다.

파도처럼 이어지는 그를 돕자는 마음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지난 4월 11일 오후 전남 여수 부영3단지 사거리에서 여수을 백무현 후보 지지 유세를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지난 4월 11일 오후 전남 여수 부영3단지 사거리에서 여수을 백무현 후보 지지 유세를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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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가 무엇을 해야 할까. 그래, 박근혜다. <만화 박근혜>다. 이 시대의 부끄러운 역사, 아니 우리 모두의 부끄러운 자화상일 수도 있는 <만화 박근혜>까지 그의 손으로 낱낱이 기록해주기를 빈다. 만화 같은 인생을 살아온 그를 만화처럼 찾아온 위암. 하지만 다시 만화처럼 그가 위암을 이겨내고 펜과 붓을 잡았으면 좋겠다. 그가 다음 만화를 그릴 수 있게 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 몫인지도 모른다, 그에겐 병원비 낼 돈도 없다고 한다. 그동안은 지인들이 한 푼 두 푼 모아 병원비를 충당했다고 한다.

그의 아픈 소식이 페이스북을 통해 알려지며 그를 돕자는 마음들이 파도처럼 이어지고 있다는, 그의 후원계좌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의 소식을 알린 내 페이스북에 달린 댓글 둘을 소개한다.

"단돈 2만 원 보냈습니다. 이번 달은 너무 쪼들리네요. 그래도 이런 마음들이 모여 꼭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너무 부끄러운 금액이지만 조금씩이라도 마음을 보태길 바라며 고백합니다." - ㅠㅠ (황 **)

"백무현... 제게는 특별한 이름입니다. 2002년 여름, 안티조선 운동을 하면서 조아세 신문을 만들 때, 제가 그를 직접 찾아가 만평 하나를 그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때 수고비를 한 푼도 드리지 못했지만 넉넉한 웃음으로 흔쾌히 받아들이며 멋진 만평을 그려주셨습니다. 이제라도 아픔을 함께 나누며 그때의 고마움을 조금이나마 갚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 **)

백무현을 응원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빠른 완쾌를 비는 간절한 기도. 또 하나는 후원계좌에 직접 힘을 보태주는 것.

ⓒ 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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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백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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