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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동양시멘트 사내하청업체 노동자 집단 해고 규탄대회. "하청 노동자도 사람이다" 펼침막을 들고 거리행진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
 지난해 2월 동양시멘트 사내하청업체 노동자 집단 해고 규탄대회. "하청 노동자도 사람이다" 펼침막을 들고 거리행진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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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쉬운 해고, 평생 비정규직, 더 낮은 임금의 노동개악을 막기 위해 총파업을 조직했던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 면회를 갔었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반대 파업으로 하루도 안 빠진 3년간의 옥살이를 마치고 나와서도 출소한 지 3개월 만에 송전탑 고공농성을 했던 그에게 검찰은 누범이라는 이유로, 반성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8년을 구형했다.

그가 저지른 죄목이라는 것이 민주노총 집회의 주최자였기 때문에 덧씌워진 집시법 위반이거나 일반교통방해가 전부였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실상 그가 저지른 죄라는 건 교통을 방해했다거나 신고되지 않은 집회를 주최했다는 이유는 아닐 거다. 대통령이 카메라 앞에 설 때마다 목 놓아 부르짖는 노동개혁을 막아서기 위해 노력했던 해고자라는 것이 그 이유였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앞을 막아선 건 그가 처음이 아니었다. 대선 후보 시절 자신만의 역사적 화해라는 이벤트를 위해 화사하게 꽃을 들고 '전태일 재단'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막아선 것도 쌍용차 해고자였고, 발길을 돌려 향한 '전태일 동상' 앞을 막아선 이들 또한 쌍용차 해고자들이었다. 대선 토론에서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가 압박하자 약속하기 싫었던 쌍용자동차 국정조사 다짐까지 한 건 꼼꼼한 그녀가 잊지 않을 만한 일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녀가 알지는 못하겠지만 쌍용차 해고자들은 대통령 인수위원회 앞에서도, 그녀의 취임식장 앞에서도 그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했었다. 4일 법원에서 선고한 징역형 5년이 박근혜 대통령이 읊조리는 노동혐오의 복화술로 들리는 건 내 오해일까. 어딜 감히, 노동자 주제에.

창살 너머의 그는 속상해서 눈만 끔뻑거리던 내게 제안을 했다. 쌍용차 해고자들이 투쟁사업장 문제에 집중해서 단 하나의 사업장이라도 해결을 하는데 밑거름이 되면 좋겠다고 말이다. 예를 들면 어디를 말하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그는 '동양시멘트 비정규직 노동자들' 문제라고 바로 답했다. '거긴 까면 깔수록 양파처럼 불법이 드러났다', '지역사회가 모조리 그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잡아먹으려고 난리 났다'라고 말이다.

감옥에 갇힌 그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그러마 약속했지만, 면회를 마치고 나온 나는 복직한 동료 중 한 명에게 그의 이야기를 전했을 뿐 유성기업 한광호 열사 100일 투쟁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던 중 동양시멘트 500일 투쟁 집회를 한다고 나보고 문화제 사회를 봐달라는 요청이 왔다. 한상균 위원장 얼굴이 아른거렸다. 거절할 수가 없었다.

부당한 처우에 맞서 노동조합 만들었지만...

민주노총 한상균위원장은 쉬운해고 평생비정규직 더 낮은 임금을 막기 위한 민중총궐기 주도 혐의로 검찰 구형 8년을 선고받았다.
▲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민주노총 한상균위원장 민주노총 한상균위원장은 쉬운해고 평생비정규직 더 낮은 임금을 막기 위한 민중총궐기 주도 혐의로 검찰 구형 8년을 선고받았다.
ⓒ 이병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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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시멘트는 강원도 삼척에 있는 사업장이다. 시멘트의 주재료인 석회석을 캐고 가공하는 전체 공정 중 위험하지 않거나 힘들지 않은 일은 없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노총 소속의 정규직 노동자들은 연봉이 꽤 높은 편이라고 했다. 그리고 정규직 노동자들과 똑같은 일을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었다. 광구에서 석회석을 캐고 그 석회석을 옮기고 가공하는 모든 공정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똑같은 일을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은 정규직 임금의 반 토막이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임금만 반 토막이 아니었다. 더 위험하고 힘든 일을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점심시간 식당에서 밥을 먹기 위해 줄을 서면 관리자들이나 정규직 노동자들이 '어딜, 감히 하청이 먼저 밥을 먹냐'며 뒤로 가라는 모진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석회석을 캐는 광구작업장은 식당까지 오기 어려워 도시락이 배달되어 오는데 정규직 노동자들은 시간이 되면 칼같이 일손을 놓고 밥을 먹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하던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면 시말서를 써야 했기 때문에 정규직 노동자들이 먹다 남은 반찬으로 매번 밥을 먹어야 했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를 악물고 모멸감을 견뎠다고 한다. 관리자들이 말끝마다 정규직 전환을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비정규직 노동자들 중에는 간혹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노동자들이 있었고 심지어 6개월 만에 정규직 노동자가 된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업체를 따로 불러서 해야 하는 업무와 관계없는 굴뚝 청소 같은 위험하고 더러운 일을 하라는 작업지시를 거부할 수도 없었고, 간혹 정규직 노동자들의 잘못으로 인해 문제가 생기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잘못한 것처럼 대신 시말서를 쓰라는 요구 또한 거부할 수 없었다고 한다.

"내 말만 잘 들으면 정규직이 될 수 있어." 말단 대리마저도 그 이야기를 입에 달고 살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렇게 5년을 일하고 10년을 일해도 정작 자신들은 정규직이 될 수 없었다. 알고 보니 정규직으로 전환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전무 '빽'으로 입사 한 노동자였거나, 상무의 조카였거나, 공장장의 친인척인 식이었다. 바로 정규직으로 입사시키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반발을 살까 봐 '눈 가리고 아웅'식의 방법을 택한 것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식대지급이 중지되었다. 점심 한 끼를 먹지 않으면 2천 원의 식대가 지급되었는데 갑자기 밥을 먹을 때마다 2천 원씩 임금에서 공제하겠다고 관리자들이 통보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해 정규직 노동자들의 체력단련비 72만 원이 신설되었다. 50만 원도 아니고 100만 원도 아닌 딱 72만 원이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점심 밥값 하루 2천 원씩 30일이면 6만 원, 1달에 6만 원씩 12달이면 72만 원이었다. 사측이 비정규직들한테 밥값 뺏어서 정규직 체력단련비로 지급한 것이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노동조합을 만들었다고 한다. 밥값 뺏기고, 이유도 없이 시말서 쓰고, 눈치 보며 밥 먹는 것 그만하자고 만든 노동조합이었다. 빽 있고 관리자 말 잘 들어야 정규직 노동자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기 위해 만든 노동조합이었다. 더 이상 노예처럼 살 수 없다고 스스로 인간임을 선언하기 위해 만든 노동조합이었다.

고용노동부에 노조설립신고를 하자마자 사측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전원 해고했다. 법에 적시된 무슨 절차나 기준은 없었다. 다만 '어딜, 하청주제에 감히!'라는 악다구니만 난무했다.

"우리는 함께 싸울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6월 고용노동부 산하 지방노동위원회에선 동양시멘트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관리하는 업체는 유령회사이고, '위장도급' 상태라며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동양시멘트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애당초 비정규직이 아니라 정규직이라는 판결이었다. 하지만 동양시멘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위장도급은 불법파견과는 달리 처벌할 기준이 없어 고용노동부에서 더 이상 할 역할이 없다고 발을 뺐기 때문이었다. 

그 뒤로는 노조탄압의 공식 같은 일들이 이어졌다. 사측은 대체인력을 투입하고, 대체인력 투입을 막기 위해 농성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손해배상 소송을 걸고, 이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에게 경찰들이 투입되고, 그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에게 검찰은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은 노동조합 간부들을 구속했다. 삼척지역 모든 권력들의 철저한 공조는 전광석화 같았다. 불법을 저지른 자들은 누구도 처벌 받지 않았는데 그 피해자들만 처벌을 받았다. 저항하는 '하청 것들'에 대한 본보기가 그 이유였을 것이다.

그들에게 물었다. 왜 포기하지 않느냐고, 다른 이들처럼 눈 감고, 귀 닫고, 입 막으면서 살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수줍게 이야기했다. "인간적인 대우를 받고 싶어 노동조합을 만든 것이니까 끝까지 해보고 싶다"고, "내 자식들한테는 비정규직 설움을 물려주고 싶진 않다"고 말이다. 그런 마음으로 500일을 싸워왔다.

그 사이 동양시멘트는 삼표기업으로 경영권을 팔아넘겼고, 삼표기업은 정규직 전환은 불가하다고 다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지 않는다면 협상은 없다고 해고자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노동자들은 이제는 삼표기업이 대주주로 있는 동양시멘트 공장 앞에서 투쟁을 이어가고 있고, 광화문 미국대사관 뒤 삼표 본사 앞에서도 비바람 맞는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주장하는 '노동개악'의 미래란 결국 전 국민을 쉬운 해고, 평생 비정규직, 더 낮은 임금의 동양시멘트 비정규직 노동자로 만들자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어디 감히'라며 한상균을 가뒀고 또 다른 한상균을 계속 가두겠지만, 우리는 스스로의 존엄을 놓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삼척의 시민들을 만나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노동자들의 손을 잡아주자고 이야기하러 삼척으로 갈 것이다.

그들의 존엄을 지키는 것이 곧 우리의 존엄을 지키는 길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삼척으로 갈 것이다. 손 맞잡기 위해 삼척으로 달려가는 모든 이들을 위해 동양시멘트 노동자들이 준비한 물회와 곤드레 밥을 먹으며 그 찬란한 500일을 축하 할 것이다. 정리해고로 28명의 동료와 가족을 잃은 쌍용차 해고자들이, 노조파괴 때문에 한광호를 잃은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없는 호텔을 만들기 위해 싸우는 세종호텔 노동자들이, 한상균을 빼앗긴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그 맨 앞자리에서 함께 싸울 것이다.

2016년 7월9일~10일 동양시멘트 노동자들을 응원하기 위한 1박 2일 노동자 시민 응원한마당
▲ 동양시멘트 해고노동자들을 응원하는 해변 가족 캠프 2016년 7월9일~10일 동양시멘트 노동자들을 응원하기 위한 1박 2일 노동자 시민 응원한마당
ⓒ 동양시멘트 투쟁 승리를 위한 공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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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고동민씨는 쌍용차 해고노동자이며, 현재 복직 대기중입니다.



태그:#동양시멘트, #500일, #위장도급, #민주노총, #한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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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복직자. 현재 쌍용차지부 조합원. 훌륭한 옆지기와 살고 있는 세아이의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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