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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세월호 유가족과 일반시민 등이 참여해 '네버엔딩 스토리 416' 뮤직비디오를 제작했던 오지숙 416연대 공감위원회 공동위원장이 이번에는 '다시, 봄'이란 음반에 수록된 '지나가는 사람'이란 노래에 자신의 1인 시위 장면을 넣은 뮤직비디오를 지난 22일 유튜브에 업로드 했다.

'다시, 봄'이란 음반은 지난해 봄에 세월호를 기억하는 뮤지션들이 모여 만든 것이고 그중 '지나가는 사람'은 정민아씨가 불렀다. 어떻게 뮤직비디오로 제작할 생각을 했는지 궁금했다. 지난 27일 오 위원장이 매주 월요일 1인 시위를 하는 명동성당 앞에서 그녀를 만나 뮤직비디오에 대한 이야기와 세월호 특별법 연장에 대해 들어보았다. 다음은 오 위원장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

"마음 아픈 것만으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이 생각에 뮤비 만들었죠"

오지숙 416연대 공감위원회 공동위원장
 오지숙 416연대 공감위원회 공동위원장
ⓒ 이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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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민아씨의 '지나가는 사람'이란 곡에 1인 시위 장면을 넣어 뮤직비디오를 제작하셨잖아요. 계기가 있을까요?
"지난해 봄에 세월호를 기억하는 뮤지션들이 모여 만든 '다시, 봄'이란 음반 안에 정민아 씨의 '지나가는 사람'이라는 곡이 들어가 있거든요. 제가 이 노래를 듣고 심장이 쿵 하는 느낌이었어요. 가사에 무너진 마천루나 엄마의 눈물이 나오거든요. 무너진 마천루는 삼풍 백화점 붕괴사고가 떠올랐고, 어머니의 눈물은 밀양 송전탑이 떠올랐어요. 사건 사고가 많았지만 저는 늘 지나가던 사람이었어요. 제가 만약 지나온 수많은 사건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뭐라도 했었다면 세월호 참사 같은 엄청난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어요.

또 한편으로는 1인시위를 하다보면 수많은 사람이 피켓 앞을 지나가요. 이들은 어떤 생각일지가 늘 궁금했죠. 저도 세월호 이전에는 아이를 키우는 보통 주부였어요. 그냥 지나가면서도 마음은 아팠어요. 그래서 내 피켓을 보고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도 마음은 아프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마음이 아프다'는 것 가지고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세월호 참사를 통해 느꼈어요. 그래서 이전에 지나가는 사람이었던 내가 지금 지나가는 저분들을 향해서 이 노래를 통해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 뮤직비디오를 제작하게 되었어요."

- 사진이 아니라 동영상이던데 그럼 애초 뮤직비디오를 제작할 생각을 했던 건가요?
"네, 계획하고 영상을 찍었어요. 제가 지난해 5월 '다시, 봄' 음반에서 '지나가는 사람'이라는 노래를 처음 들으면서 '1인 시위할 때 지나가던 사람들 영상을 담아 뮤직비디오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당시는 한창 '네버엔딩스토리' 뮤직비디오를 제작할 때였어요. 그 이후에도 '화인'이라는 뮤직비디오를 진도의 팽목항에 가서 제작했어요. 그래서 초가을까지도 바빴거든요. 그러다가 더 미루면 안 될 것 같아 늦가을부터 시작한 거죠.

오프닝과 엔딩 장면은 지난해 11월 2일에 '가이아TV' 윤덕현 감독님이 촬영해주시고 나머지 영상은 제가 찍었어요. 촬영 첫날, 감독님께 영상의 대강의 콘티를 설명해 드리고 촬영을 부탁했고, 다음 주부터는 명동성당 앞에 1인시위를 하러 가면서 삼각대와 캠코더를 가지고 가서 시위 시작하기 전에 카메라를 세팅해 놓고 1시간 동안 촬영했어요. 그렇게 6개월을 촬영한 거죠."

- 제작하면서 에피소드도 있을 것 같아요.
"영상에도 나오는데 참사 608일째인 2015년 12월 14일에 명동에 있는 YWCA 건물에서 세월호특조위 1차 청문회가 있었어요. 그날 1인 시위하러 와보니까 제가 늘 1인 시위하던 자리 앞에 고엽제 피해자 차량이 여러 대 주차를 하고 있더라고요. 청문회를 규탄하는 보수단체들의 기자회견이 그 자리에서 예정되어 있었어요. 영상을 어떻게 찍어야 할지 고민하다가 길 건너 건물에서 전체 광경을 찍는 것으로 변경했죠. 중간에 잠깐 명동성당까지 한눈에 잡히는 장면이 있는데 그 날이었어요.

영상을 찍는 동안 피켓과 스피커, 노란 리본뿐만 아니라 캠코더와 삼각대를 들고 다녀야 해서 힘들기도 했는데 저에게 조금 도움이 됐던 것은 영상 보시면 알겠지만, 겨울에는 명동성당 앞이 정말 추워요. 그래서 점심때도 지나다니는 분들이 거의 없어요. 춥고 외롭죠. 그런데 카메라가 앞에서 저를 지켜보고 있으니까 친구 같더라고요. 덕분에 겨울을 나기가 조금 수월했어요."

- 매주 월요일마다 명동성당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1인 시위를 해보면 백 명 정도 지나간다면 그중에 제 피켓을 잠깐이라도 보고 지나는 사람이 열 명이 될까 말까 해요. 그리고 제가 가져가시라고 두는 노란 리본을 가져가시는 분도 적을 때는 한 명도 없는 날도 있고, 많은 날은 20명 정도 되는 날도 있어요. 편차가 심하죠.

하지만 제가 감동이었던 건 4.13 총선 때였어요. 시위하면서 사람들 반응을 봤는데 선거 결과를 딱히 어떻게 예측을 못 하겠더라고요. 그런데 선거 결과가 생각 외로 깜짝 놀라게 나온 거예요. 지나가시는 분이 리본을 안 가져가거나 제 피켓에 눈길을 안 주셔도 예뻐 보이더라고요. 저분들도 세월호를 기억하고 투표를 했을 거라는 느낌인 거죠. 그래서 그 이후에는 당장 오늘 제 피켓에 반응을 안 보이시고 제 리본을 안 가져가셔도 희망 잃지 말고 포기하지 말자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 1인 시위하시며 느끼는 점도 있을 것 같아요.
"세상은 더디게 변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최근 제가 예전부터 사회운동 해오신 분과 얘기할 기회가 있었어요. 2002년에 효순이 미선이 사건이 있었고 2008년에 광우병 사태가 있었죠. 그리고 2014년에 세월호가 있었어요. 그게 따져보니 6년 간격인 거예요. 그러나 저는 사실 너무 부끄러운 게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사건이 제게 큰 아픔으로 다가오지 못했어요. 전 오히려 월드컵이 기억에 남는 사람이에요. 근데 그분은 사회운동을 하니 그 사건이 자기에게 충격이었단 거예요.

인터넷에서 어떤 분이 촛불 집회를 제안해서 많은 사람이 촛불을 들었단 거죠. 하지만 전 그 사태를 잘 모르거든요. 2002년에 저희 큰 아이가 두 살이었어요. 저는 애 키우는 것과 집안일 하는 데에 바쁠 때였고 저에겐 2002년은 월드컵이었어요. 2008년 광우병 파동 때는 해외에서 살고 있었어요. 그래서 '미국산 소가 그렇게 문제 많다면 안 먹으면 되지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분과 얘기를 하고 보니 의미가 그게 아닌 거죠. 우리 먹거리를 우리가 지킨다는 것도 있고 자주적인 외교라든지 여러 가지가 문제 되었던 건데 저는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갔어요.

세월호 참사가 저에게는 의식을 가지고 바라본 첫 번째 사건이죠. 참사가 일어난 지 2년이 넘었잖아요. 해결 안 되니 막막하고 지치는 느낌도 들어요. 그래서 세상이 더디게 변한다는 생각이 됐었는데 그분 얘기 듣고 보니까 2002년과 2008년에 이미 시민이 자발적으로 나와서 삐뚤어진 사회를 바꿔보고자 하는 노력이 있었어요. 그랬기 때문에 세월호 참사가 이만큼이라도 잊히지 않고 계속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근시안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상은 더디지만 분명 변하긴 변해요."

- 의미 있는 일이긴 하지만 지쳐서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을 것 같아요.
"저도 사람인지라 지치고 힘들 때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저에게 언제까지 할 것이냐고 묻는 분들이 종종 있었어요. 참사 초기에 더 많았어요. 초기였으니까 특별법이 제정되면 그만해도 되는 거 아니냐고 많이 하셨었고, 그 후에는 1년 지나니 '그 정도면 되지 않느냐'는 분도 계셨거든요.

사실 세월호 특별법 제정되기 전까지는 특별법이 제정되면 그래도 어느 정도 진실이 밝혀지지 않겠냐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어떻게든 특별법 만들려고 열심히 노력했죠. 국민 서명도 650만 명 넘게 받았고요.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특별법이 제정됐다고, 세월호특조위가 만들어졌다고 해서 진실이 규명되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특조위 활동에 대해 방해가 많아서 조사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그나마 조사활동도 이번 6월 말로 강제 종료하겠다고 하잖아요.

저는 1인 시위 시작할 때부터 '세월호의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내지는 '마지막 한 분이라도 가족들이 집으로 돌아가실 때까지'라고 말했거든요. 그러나 지금은 진실이 밝혀지는 것도 아직은 먼 것 같고 가족분들은 여전히, 어제도 서울 정부 청사 앞에서 노숙하고 계세요. 힘들 때도 있지만, 자식을 잃은 분들이 여전히 길에서 자는데 제가 이 정도도 안 한다는 것은 제 마음이 더 힘들 것 같아요."

"총선에서 희망 봤지만, 정치권은 여전히 절망적"

오 위원장이 명동성당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다.
▲ 오지숙 416연대 공감위원회 공동위원장 오 위원장이 명동성당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다.
ⓒ 오지숙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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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덧 참사가 일어난 지 800일이 넘었어요. 피켓에 '대한민국은 달라졌습니까?'라는 질문이 있잖아요. 과연 대한민국은 달라졌을까요?
"'대한민국은 달라졌습니까?' 라는 문구의 피켓을 든 게 지난해 11월부터예요. 그리고 달라졌다고 느낀 게 20대 총선이었어요. 근데 정부와 국회에서 하는 것을 보니까 대한민국은 안 달라졌더라고요.

선거 끝나고 두 달 넘게 지났어요. 선거 때도 세월호 특별법 이슈가 있었어요. 특조위를 6월 말에 강제종료하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그게 활동 기간이 너무 짧아요. 그래서 세월호 특별법을 어떻게든 개정해야 한다는 게 총선 때도 있었거든요. 당시 후보자들 반 이상이 당선되면 세월호 특별법 개정을 위해 힘쓰겠다고 약속도 했고요. 선거가 끝나고 20대 국회가 개원했으면 빨리빨리 이걸 진행해야 하는데 여전히 아니잖아요.

물론 애쓰는 분들이 있는 것을 알지만 다수는 안 움직여요. 당장 내일 모래가 6월 말이잖아요. 정부는 계속 6월 말까지가 활동시한이니 강제종료해야 한다고 압박하고 6월 말이면 공무원을 다 빼갈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정치권이 안 움직이는 거예요.

참사 일어나고 얼마 안 되어서 치른 지방선거 결과에는 '이런 엄청난 참사가 일어났는데도 선거 결과가 어떻게 이렇게 나올 수 있나'하고 절망했거든요. 그러나 이번에 총선에서 국민은 희망을 보여줬는데 정치권은 여전히 절망적이에요. 그래서 저는 '대한민국은 달라졌습니까?'라는 피켓을 내리지 않으려고요. 지금 800일인데 900일이 되고 1000일이 되도 들고 있을 거예요."

- 지금 특조위 연장을 요구하는 농성을 유가족이 서울 청사 앞에서 하잖아요. 그러나 어제(26일) 유가족을 연행했잖아요. 어떻게 보세요?
"경찰 측에서 서울 청사 앞의 농성을 아예 못하게 하는 것으로 방침을 정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참사 초기 국회, 광화문, 청운동 등에서 농성했지만 리본 떼고 천막을 가져간 적은 없거든요. 아마 정부 쪽에서 판단하기에 세월호는 더 국민의 관심을 끌지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 해도 별로 무리가 안 될 것으로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 오히려 반대일 수도 있죠. 국민의 관심을 못 끈다고 판단했다면 그냥 놔두는 게 맞지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는 없죠. 하지만 국민의 관심이 있는데 유가족이 농성하면 불에 기름 붓는 격이라서 애초에 잡자는 생각이 아닐까요?
"같은 얘기예요. 그 전에는 가족을 건드리는 것 자체를 두려워한 거죠. 근데 지금은 농성이 장기화되면 자기네에게 불리할 건 당연하니 어떻게든 빨리 치워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무리한 방법을 써도 빨리 무마만 되면 크게 이슈가 안될 것으로 판단하는 것 같아요. 잘못된 판단이죠. 국민들은 아직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았고 어떻게든 가족들에게 힘이 되는 방향으로 일어날 것이라고 믿어요."


태그:#오지숙, #지나가는 사람,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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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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