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데크길
 데크길
ⓒ 이상옥

관련사진보기


       마지막 길마저
        품격 있게 조성한 마인드

         아, 통영
             -이상옥의 디카시 <박경리 묘소 초입>

오랜만에 통영을 찾았다. 지난 6월 23일 정주공업대학교 종강을 하고 한국으로 와서는 다음 날 고성문화원 통영 투어에 합류했다. 통영은 고성과 맞닿아 있다. 조선시대 통영은 고성반도 끝자락으로 고성군에 속해 있었다. 원래 고성에 비해서 통영은 척박한 땅이었다.

고성문화원에서 통영 투어 왔다니까, 통영문화 해설사가 큰집 동네서 왔으니, 잘 안내하겠다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인근 고성이 고향인 나는 내심 통영의 문화마인드에 대해 늘 부러움을 갖고 있던 터에 어, 이게 무슨 소린가 했다.

'한국의 나폴리'라 불리는 천혜의 풍광을 지닌 예향 통영을 찾는 감격으로 가슴이 설랬다. 바다가 마치 강처럼 흐르고, 바다가 시내로 쑥쑥 들어와 친근한 이웃 같이 느껴지는 이곳이 어찌 한국의 나폴리겠는가. 이탈리아에서 나폴리를 말할 때 '이태리의 통영'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리라.

예향 통영을 오랜만에 찾는 감격

동 시대에 예술가가 이렇게 많이 배출되는 곳은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서구문명을 주로 일제강점기에 일본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했다. 그러다 보니, 일본과 지리상으로 가까이 있는 통영은 일찍부터 근대 서구문명을 빠르게 흡수하면서 자연스럽게, 통영에는 지식인이나 예술인들이 많이 모여들게 되었다.

조형미가 돋보이는 박경리기념관
 조형미가 돋보이는 박경리기념관
ⓒ 이상옥

관련사진보기


세계적 음악가 윤이상, 화가 전혁림, 소설가 박경리, 김용익, 시인 유치환, 김상옥, 김춘수, 연극인 유치진 등을 굳이 호명하는 것이 쑥스럽게 여겨질 정도다. 통영 시내 곳곳에는 한 세기에 한 사람 날까 말까 한 이들이 동시대를 같이 살았기에, 이들의 기념관, 생가, 거리 등등이 즐비하여, 통영 자체가 거대한 근대문화예술기념관 같다.

이번 투어에서는 박경리기념관을 눈여겨 보았다. 개인적으로는 통영 출신 <토지>의 작가 박경리기념관을 처음 보았다. 수필가이기도 한 진의장 시장 때 조성했다고 한다. 한 눈에 보아도 아름다운 조형미가 돋보였다. 박경리기념관은 2011년 경상남도 제9회 건축대상을 수상하며, 친환경 경남건축 이미지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박경리기념관과 묘소가 있는 야산 일대를 박경리 공원이라 이름 붙여 박경리를 기념하고 있다.
 박경리기념관과 묘소가 있는 야산 일대를 박경리 공원이라 이름 붙여 박경리를 기념하고 있다.
ⓒ 이상옥

관련사진보기


생전 고인의 뜻에 따라 아무 표석도 세우지 않은 묘소
 생전 고인의 뜻에 따라 아무 표석도 세우지 않은 묘소
ⓒ 이상옥

관련사진보기


생전 원주에 거주하던 박경리가 통영 고향에서 영면하게 된 것에 대한 일화가 있다. 지금 박경리 묘소가 있는 이곳에 진의장 시장 때 박경리 선생의 창작공간을 마련해주기로 했다. 박경리도 동의를 했는데, 그만 그 길로 건강이 급격하게 악화되어 갑자기 서거하게 되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박경리 묘소를 마련하게 됐다.

건축대상에 빛나는 아름다운 박경리기념관

박경리는 통영이 고향이지만 통영을 그렇게 자주 찾지는 않았다. 원주가 아닌 고향에서 영면을 하게 된 것은 당시 진의장 시장과 통영시민들의 문화마인드에 기인한다. 통영은 예향으로 문화예술인들을 극진하게 예우할 줄 안다.

만약 박경리가 마지막 길마저 원주로 갔다면 예향 통영은 얼마나 상심이 컸겠는가. 서파랑 언덕에는 박경리 생가가 있고, 통영사람 박경리는 통영 미륵산 자락에서 박경리기념관과 함께 그가 사랑했던 통영 바다를 바라보며 영면하고 있다.

건축대상에 빛나는 아름다운 기념관을 조성하고, 그의 묘소 가는 길조차 품격 있는 데크길을 조성하고 그 일대를 박경리공원이라고 명명한 것, 그것이 바로 예향 통영의 문화마인드이다.

덧붙이는 글 | 올 3월 1일부터 중국 정주에 거주하며 디카시로 중국 대륙의 풍물들을 포착하고, 그 느낌을 사진 이미지와 함께 산문으로 풀어낸다. 디카시는 필자가 2004년 처음 사용한 신조어로, 스마트폰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감흥)을 순간 포착(영상+문자)하여, SNS 등으로 실시간 소통하며 공감을 나누는 것을 지향한다



태그:#디카시, #박경리 기념관, #통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한국디카시연구소 대표로서 계간 '디카시' 발행인 겸 편집인을 맡고 있으며, 베트남 빈롱 소재 구룡대학교 외국인 교수로 재직 중이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