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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장애인복지시설, 화요일 연수구 노인복지관, 수요일 강화군 장애인복지관, 목요일 만수종합사회복지관, 금요일 오전 연수구 시각장애인복지관과 오후 남구 장애인종합복지관, 토요일 연수구 송도동 경로당 수업.

라현우(45)씨의 일주일 수업일정이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수업이 꽉 차 있지만, 상당수는 재능기부 차원의 자원봉사활동이다. 대학 다닐 때 풍물동아리에서 활동한 그는 현재 공연보다는 교육쪽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장애인과 노인 대상 교육에 애정이 더 많다. 이유를 물으니, "내가 해야 할 것 같아서요"가 대답의 전부다. 남동구 구월동에 사는 그를 지난 18일 남동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장롱에서 꽹과리 치다 혼나기도

라현우 국악 교육 활동가
 라현우 국악 교육 활동가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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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인하대학교에 입학한 라씨는 단과대학 풍물패에 가입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생각한 일이다.

"광성고등학교에 다녔는데 수학 선생님이 풍물패를 만들었어요. 재밌겠다고 생각했지만 대학입시 공부로 멀리 해야 했죠.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 보니 이른바 운동권이 풍물을 많이 하더라고요. 부모님께 죄짓는 것 같아서 고민했어요. 그러다 '집회는 나가지 않고 풍물만 하겠다'고 선배들한테 선언하고 동아리에 들어갔습니다. 반년 쯤 지나니까 세상이 궁금해 제 발로 집회현장에 찾아갔지만요.(웃음)"

풍물을 좋아한 정도가 취미를 넘어 '미친 지경'이었다고 그때의 자신을 표현한 라씨는 당시 부모와 살던 아파트 붙박이 장롱에서 악기를 치다가 경비원한테 혼나기도 했다. 악기를 치다가 그곳에서 잠들기도 했단다. 라씨를 미치게 한 풍물의 매력이 도대체 뭘까.

"대학 때 선후배들이 어울려 당구를 치러 갈 때 저는 안 갔어요. 당구보다 장구가 훨씬 좋습니다. 술 마시고도 혼자서 장구를 쳤고, 다른 풍물동아리 선배들한테 배우기도 했고요. 선배들이 가르쳐주면 장단 하나하나를 모두 익힐 때까지 연습했는데, 그 성취감이 매력이었을까요? 그러면서 점점 빠져들었습니다."

전공보다는 풍물에 빠져 있는 아들이 좋아 보일 리 없었겠지만, 라씨의 부모는 아들의 꿈을 응원했다. 그런데 목 디스크 수술을 하고 휴학한 후 풍물을 멀리 했다. 하지만 악기가 계속 떠올랐고 좋아하는 걸 안 하고서는 도저히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장애인과 만남, 우연이지만 필연

서른이 넘어 졸업한 라씨는 서울에 있는 풍물교육연구소에서 일하다 인천에 오면서 장애인 교육활동에 주력했다.

"2003년부터 장애인들을 교육했어요. 제가 있던 연구소에서 국립민속박물관으로 파견을 나가 공연하거나 악기 연주를 가르치는 일을 했는데, 한번은 장애인 교육 의뢰가 들어왔어요. 그 즈음 제가 '장애인 교육을 하면 어떨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을 때라서 팀원들이 저보고 해보라고 권했죠."

시각장애인 대상 수업이었는데, 기자 두세 명이 취재하러 왔다. 기자들은 장애인들에게 동작을 반복적으로 요구하며 셔터를 눌러댔다. 라씨는 '자연스럽게 찍고 가지, 모델도 아닌 사람들을 왜 힘들게 하느냐'고 소리를 질렀다.

"기자들이 죄송하다고 말하더라고요. 뙤약볕이 내리쬐는 마당에서 수업했어요. 인천에서 오신 분들인데, 이른 아침에 서울에 오느라 무척 힘들었을 거예요. 그런데 사진을 한두 번 찍는 것도 아니고, 그들이 동물원 우리에 갇힌 것 같았어요. 그 자리에 있던 장애인을 인천에서 수업하다가 만났는데, 그때 속으로 많이 울었다고 하더라고요. 저한테 고맙기도 했고, 그 상황이 너무 싫었다고 하면서요."

왜 그랬는지 물으니, 잘 모르겠다고 했다. 전공이 식품영양학인 라씨는 부전공으로 사회복지학을 선택했다. 장애인들과 만남은 그에게 우연이지만 필연인 것 같다.

국립민속박물관에 소속된 강사들은 전국의 장애인복지관에 파견됐다. 라씨는 인천에 살아 인천에 있는 복지관으로 배정됐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 남구에 있는 인천시각장애인복지관 장애인들이었다. 지금은 복지관 등 시설을 이용하는 장애인들의 국악이나 풍물 교육 요구가 늘어난 것에 비해 강사가 턱없이 부족하다.

"저도 처음에는 초·중·고교 학생 대상 수업을 많이 했어요. 장애인들과 수업하면서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국악이나 풍물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강사들이 부담스러워하니까, 제가 다른 분야보다는 이쪽으로 활동을 넓히고 있습니다."

3년 전부터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예술 강사를 채용해 장애인 국악예술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인천에서 장애인 국악예술교육 강사로 활동하는 사람이 라씨 혼자였는데, 올해는 한 명 더 늘었다.

장애인교육을 하며 배우는 게 더 많아

서구의 한 장애인주간보호센터에서 교육을 하고 있는 라현우씨.
 서구의 한 장애인주간보호센터에서 교육을 하고 있는 라현우씨.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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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과 소통하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요. 어려울 거라는 선입견이 의사소통을 어렵게 합니다. 갓 태어난 아이나 외국인과는 어떻게 소통해요? 꼭 말로 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눈빛이나 몸동작으로도 가능하죠. 똑같아요. 시각장애인의 경우 앞을 못 보지만 자신들을 위해 강사가 와 있는 걸 알아요."

라씨는 3년 전부터 수업이 없는 일요일이면 지적장애인 거주시설인 장봉도 혜림원에 딸과 함께 간다. 재능기부를 한다지만, 그가 얻는 게 훨씬 많단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이에요. 처음엔 중증장애인을 보면 무서워서 내 뒤에 숨어 있기도 했는데 지금은 정말 달라졌어요. 학교에서 '장애인의 날' 때 글을 쓰게 했나 봐요. 우리 아이는 이제 장애인을 자연스럽게 생각합니다."

라씨는 수업을 자원봉사로 하는 경우가 많다. 몇 개월 프로젝트 교육인데도 교육기간이 끝나더라도 수강생이 배우려는 의지가 있고 본인이 시간이 허락하면 무료로 수업을 이어간다.

"아내한테는 미안하지만, 아이한테도 그렇고 제가 얻는 게 더 많습니다. 사람들과 신뢰가 중요하죠. 당장은 아니지만 돈과 바꿀 수 없는 신뢰가 나중에는 경제적으로도 저에게 도움을 줍니다. 교육을 받은 어르신들이 떡이나 음료수를 주시기도 해요. 우리 집 부식은 제가 책임진다니까요.(웃음) 돈을 많이 벌지는 않지만 이런 게 사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장애인 대상 수업은 매번 힘들다고 그는 고백한다. 하루하루가 다르기 때문이다. 수업이 잘 된 날이 있는데 다음 주에 가보면 딴 사람처럼 행동한다. 돌발행동이 많고, 예측하기 어렵다.

책임감과 자존심, 그리고 사명감

"제 수업을 들은 어르신들이 친구들을 데리고 오는 경우가 많아요. 제 노하우가 있는데 '수강생들이 이해할 때까지 지루해하지 말고 설명하자'예요. 사실 노하우라기보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설명하는 게 제 자존심일 수도 있죠. 책임을 다했을 때 느끼는 만족감이랄까요? 수업을 이해하고 돌아가는 걸음걸이는 달라요. 저는 그걸 알아요."

책임감과 자존심을 같은 위치에 올려놓는 라씨는 거기에 사명감을 추가했다. 장애인 예술교육에 남다른 애정이 있는지 물으니, '어렵지만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장애인 예술교육을 하는 강사가 많으면 제가 빠질 수도 있어요. 그런데 워낙 힘드니까 강사가 없어요. 그러니 제가 필요하겠죠. 다른 계기는 없어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애정인가요?"

장애인들에게 애정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는 연구소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라씨는 교육프로그램을 만들고 파견할 강사 풀(pool)도 만들어 국악이나 풍물을 배우고 싶어 하는 장애인이 강사가 없어서 못 배우는 일이 없게 하는 게 꿈이란다. 사비를 털어서라도 강사를 구하고 싶다는 말까지 했다.

"악기를 못 치거나 수업을 잘 못하더라도 관심만 있으면, 그들은 놀면서 악기를 배워요. 그러나 강사가 악기를 잘 치더라도 마음이 없으면 잘 못 놀아주죠. 장애인들에게 문화예술교육은 절실합니다."

덧붙이는 글 | <시사인천>에 실림



태그:#라현우, #장애인교육, #국악 교육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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