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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의진 전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전국 유족회 회장
 채의진 전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전국 유족회 회장
ⓒ 구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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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빨갱이 새끼들 다 죽어야 해."

1949년 12월 24일. 경북 문경 석달리 주민 86명이 국군의 총살에 의해 쓰러졌다. 20여 명의 경찰을 대동한 70여 명의 국군이 초가집을 불태우고, 논두렁에서 마을 주민들을 총살한 것이다. 공비에게 음식을 줬다는 확인되지도 않은 이유 때문이었다. 그날의 학살로 마을 주민 86명이 죽고, 23명만 살아남았다. 한국전쟁이 터지기 6개월 전에 일어난 민간인 집단학살이었다.

이승만 정권은 한국전쟁 전후에 일어난 민간인 학살의 진실 규명에 눈감았다. 문경 석달리 민간인 학살도 '국군에 의한 학살'이 아니라 '공비에 의한 학살'로 둔갑했다. 그러다 1960년 4.19 혁명이 일어나자 '피학살자 유족회'가 결성되고, 국회에서도 '양민학살 진상조사특위'가 출범했다. 특위가 문경 석달리 민간인 집단학살 사건을 조사했다. 하지만 5.16 군사쿠데타로 인해 진실 규명은 물거품이 됐다. 오히려 군사정권은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유족들을 "이적단체"로 몰았다. 

1987년 6월항쟁을 거치고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면서 다시 진실 규명의 움직임이 시작됐다. 유족과 교수, 활동가 등이 힘을 모아 2000년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범국민위원회'(범국민위)를 출범시켰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 시기인 2005년 5월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했고, 같은 해 12월에는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가 출범했다. 이어 2007년 6월 문경 석달리 민간인 집단학살 사건의 진실 규명도 결정됐다. 그날의 학살이 일어난 지 57년 6개월 만이었다.  

당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석달리 사건은 국군이 비무장 민간인인 노약자와 부녀자를 아무런 확인과정 없이 무자비하게 총살한 반인륜적인 집단학살"이라며 국가 사과, 부상자 의료비-생계비 지원, 지속적 위령제 봉행을 위한 재정적·제도적 지원 등을 권고했다.

 채의진 전 회장은 최근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진실 규명 공로를 인정받아 '진실의 힘 인권상'을 수상했다.
 채의진 전 회장은 최근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진실 규명 공로를 인정받아 '진실의 힘 인권상'을 수상했다.
ⓒ 재단법인 진실의 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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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힘 인권상 수상... "인간은 폭력보다 강함을 보여줘"

문경 석달리 등을 비롯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 학살의 진실이 드러나는 데 한평생을 바친 이가 채의진 전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전국 유족회 회장이었다. 문경 석달리 민간인 집단 학살 사건 당시 13살이던 채 전 회장은 형의 시신에 깔렸다가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하지만 할머니와 어머니, 형과 형수, 누나 등 9명의 가족을 한꺼번에 잃었다.

채 전 회장은 '그날의 학살' 이후 초급대학 야간부를 겨우 졸업하고 영어교사로 취직했다. 하지만 진실이 규명되지 않는 한 학살의 상처와 아픔은 치유될 수 없었다. 1987년 21년간의 교사 생활을 정리한 뒤 서각공예를 하면서 문경 석달리 민간인 집단학살 사건 진실 규명에 매달렸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전국 유족회를 만들고, 국회와 청와대, 국방부, 내무부 등에 수차례 탄원서를 보냈다. 그러면서 진실 규명이 될 때까지 기르던 머리와 수염을 자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채 전 회장은 범국민위 출범 5주년 행사가 열린 2005년 9월 17년간 기르던 머리를 잘랐다. 그가 머리를 잘랐던 앞뒤로 과거사 정리 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했고,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출범했고, 문경 석달리 민간인 집단학살 사건의 진실규명이 결정됐다. 그가 한국전쟁 유족회 고문과 문경유족회 회장,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전국 유족회 회장,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범국민위원회 상임대표 등으로 활동하며 한평생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진실 규명에 바친 결과였다.

재단법인 '진실의 힘'은 지난 6월 15일 채 전 회장을 '제6회 진실의 힘 인권상' 수상자로 결정했다(월간 <말> 기자로서 문경 석달리 민간인 집단학살 사건을 연속보도했던 정희상 <시사인> 기자와 공동 수상). 재단은 "아홉명의 가족을 학살로 읽은 개인의 고통을 넘어서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문제를 사회문제로 제기하고, 법적, 제도적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라며 인권상 수상자 선정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채의진 선생은 학살 현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로서, 그 고통을 딛고 진실규명을 위해 온 삶을 거리에서 살며 헌신했습니다.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 암울한 역사를 증언한 시대의 증언자, 목격자인 채의진 선생은 끈질긴 투쟁으로 미흡하나마 국가의 사과를 이끌어냈습니다. 국가는 채의진, 그리고 '수많은 채의진들'의 존재를 부인하고, 짓밟고, 망각 속에 가두려 했습니다. 그러나 학살의 구덩이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죽음 같은 고통을 딛고, 끔찍하고 야만적인 국가폭력에 맞서 '진실'이라는 꺼지지 않는 등불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삶 전체를 통해 인간은 폭력보다 강하다는 진실을 보여줬습니다."

 채의진 전 회장은 한평생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진실 규명에 매진해왔다.
 채의진 전 회장은 한평생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진실 규명에 매진해왔다.
ⓒ 재단법인 진실의 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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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지난 2012년에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피해자 신원을 위해 한평생을 바친" 공로를 인정받아 단재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에서 주는 제1회 단재상을 받았다. 2012년 4월에는 대법원으로부터 배상 판결까지 얻어냈다. 최근까지는 국제제노사이드(대량학살)대회를 한국에 유치하기 위해 애써왔다.

그렇게 한평생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사건 진실 규명에 매달려온 채 전 회장이 28일 새벽 눈을 감았다. 향년 79세.

채 전 회장은 항상 '빨간 베레모'를 쓰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는  지난 2005년 <코리아포커스>와 한 인터뷰에서 "옛날에 할머니들이 빨간 속옷을 입었는데, 그게 자식들에 대한 반항의 의미였거든요, 내 빨간 모자도 마찬가지요"라며 "군이 죽여놓고 공비가 죽였다고 거짓말한 국가에, 수차례 제보에도 신문에 단 한 줄도 보도하지 않던 언론에, 알면서도 정권 눈치보며 침묵한 지식인에 대한 반항이란 말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 그 '빨간 베레모 할아버지'를 볼 수 없게 됐다. 그의 집에는 교사를 그만둔 뒤 약 30년간 작업해온 각종 서각작품과 천개의 지팡이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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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