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달부터 시작된 치과치료를 위해서 아버지는 1주일에 한번씩 상경을 하셨습니다.(관련기사: 병원 가는 날, 아버지는 마냥 신난다... 왜?)

그렇게 몇 번을 오가시는 동안 점심 한번 사드리고 싶어 기회를 엿보았지만 어느 날은 치료받은 이가 너무 아파 먹을 생각도 없다시며 거절하시고, 또 어떤 날은 치료 받는게 너무 힘들다고 "니 엄마가 고기 해줘서 먹고 왔다"며 마다하셔서 좀처럼 그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아버지가 미리 연락을 주셨습니다.

"너 오늘 점심때 나 밥 좀 사줘라. 나 오늘 치과 11시다."

아침 8시에 그렇게 연락하시고는 8시 반쯤 서울 가는 버스에 오르셨다고 합니다. 무슨 병원이든 적어도 1시간은 미리 가야 한다고 일찌감치 집을 나서시지만 30분도 아니고 1시간은 좀 너무 이릅니다. 어쨌든 점심 치료를 마치고 나오신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아부지 뭐 드실래요? 여기 갈비탕 맛있는데 있는데 거기 갈까요?"
"뭐어? 갈비탕? 무슨 이 더위에 갈비탕이냐?"
"그럼요? 냉면?"

장난삼아 다른 메뉴를 대며 물었더니 아버지는 살짝 짜증나신 듯 목청을 높이셨습니다.

"왜? 일이 바쁘냐? 빨랑 들어가야 돼? 그럼, 나 그냥 집에 가서 먹을란다."

더 이상 장난치면 정말 내려가실 기세입니다. 그래도 살짝 한 번 더 떠 봤습니다.

"그럼 그냥 스테이크? 근데 이가 아프셔서 못드실텐데... 그럼 뭘 드시나?."

그제야 울 아버지 표정이 금세 밝아지시며 제 말을 '홱'하니 낚아채십니다.

"스떼끼 좋지. 안쪽 어금니 치료는 벌써 끝나서 먹는데 아무 지장도 없다. 가자 스떼끼집!"

치과치료후 반가이 고기와 마주하셨습니다.
▲ 반갑구나 고기야~ 치과치료후 반가이 고기와 마주하셨습니다.
ⓒ dong3247

관련사진보기


고기를 앞에 두신 아버지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도 좋습니다.

더구나 아픈 이 때문에 몇 달을 고생하시고, 또 치료한다고 근 한달 고생하신 끝에 마주하는 고기에 대한 감회가 남달라 보입니다. 시골 노인네가 무슨 칼질을 저리 잘하나 싶을 정도로 능숙하게 고기를 잘도 잘라 쏙쏙 입에 넣으십니다. 그렇게 한 접시를 다 드셨습니다.너무도 맛있게 식사하신 뒤 울 아버지의 대머리가 더욱 윤기있게 반짝이는 것 같습니다.

점심시간 넘기면 안된다며 서둘러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오르시는 아버지를 배웅하고 회사로 향하면서 언젠가 회사 선배가 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부모란 그저 제 자식 입에 뭐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 불러지는 사람이라고 했던 그 말. 신입사원때, 결혼 전 들었던 그 말을 전 가끔씩 부모가 되어 내 아이들이 맛나게 먹는 모습을 보며 떠올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늘 그 말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숱많던 아버지의 머리가 다 빠져 반짝반짝 빛나고, 그 앞에 앉은 저도 그만큼 나이 들었나 봅니다. 여하튼 울 아버지 병원 오신 날, 맛있게 고기를 씹고 계신 울 아버지 덕분에 제 배도 덩달아 불러진 너무나도 행복한 날이었습니다.


태그:#병원가는날, #아버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