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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31일 헬싱키 경유 런던행 항공기
▲ 런던으로 출발하며 2015년 12월 31일 헬싱키 경유 런던행 항공기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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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저 있을 때 꼭 한번 오세요."
"여보! 우리도 유럽 한번 갑시다."

유럽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세계사의 주역으로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풍부한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어 여행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입니다. 그렇지만 제 버킷 리스트에는 없었습니다. 편리함보다는 불편함을 선호하고, 안락함보다는 육체적으로 힘든 여행지를 좋아합니다. 가쁜 숨을 헐떡이며 걸으면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히말라야 트레킹이나 순박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고향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동남아시아에서 편안함을 느낍니다. 

여행 준비 끝냈는데, 파리 테러가...

중국과 우랄 산맥을 넘어 유럽으로
▲ 우랄 산맥을 넘어 중국과 우랄 산맥을 넘어 유럽으로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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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딸의 영국 유학을 계기로 딸과 아내의 거센 요구에 승복하면서 여행 준비가 시작되었습니다. 여행 기간과 여행지를 결정하고 항공, 기차, 숙소를 예약하였지만 마음에 와 닿지 않았습니다. 예약이 끝나갈 무렵 파리 테러가 발생하여 불안함은 가중되었습니다. 몇 번을 포기할까 망설였지만 여행은 시작되었습니다.

지인들에게 문자를 남겼습니다.

"일상을 떠나 낯선 곳으로 떠납니다. 혹사당했던 몸과 마음에 휴식이 필요할 때가 되었습니다. 한 달간의 짧은 기간이지만 생활인이 아닌 여행자로 살다 오겠습니다."

런던행 항공기는 핀란드 헬싱키를 경유하는 노선입니다. 국적기보다 외국 항공사가, 직항보다 경유 노선이 저렴합니다. 피곤한데 잠은 오지 않았습니다. 스크린을 보니 중국과 러시아를 거쳐 우랄 산맥을 넘고 있습니다. 항공기에서 장시간 여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음악을 듣고, 영화를 봐도 시간은 제자리를 맴돌고 있습니다.   ​

불현듯이 고등학교 시절 교장 선생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경남 거창의 산골 고등학교라 교장 선생님도 세계사 수업을 담당하였습니다.

"이놈들! 사실과 진실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해."

첫 시간에 말씀하시면서 콜럼버스의 '신대륙의 발견',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 항로 개척'의 의미를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아메리카와 아시아의 수난사가 시작되었음에도 교과서에는 자랑스러운 역사로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유럽인의 시각이 아닌 우리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라는 말씀이겠지요. 가치관이 확립되지 않은 어린 고등학생에게 하셨던 말씀이 50대가 되어 기억납니다.

기내에서 본 헬싱키 시내 -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것 같음
▲ 헬싱키 시내 모습 기내에서 본 헬싱키 시내 -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것 같음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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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 공항에서 환승하며
▲ 환승장에서.. 헬싱키 공항에서 환승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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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력이 한계에 도달할 때 쯤, 항공기의 고도가 낮아지면서 숲과 호수의 나라 핀란드 모습이 보였습니다. 잔설이 남아있는 헬싱키 모습은 한 폭의 수묵화입니다. 모든 것이 멈춘 정적인 모습입니다. 오후 1시 전후인데도 날씨는 어둑어둑하고 공항은 텅 빈 모습입니다.​

연착은 선, 후진국의 차이가 없나봅니다. 전광판에 'Delay'라는 문구가 반짝입니다. 런던행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노선이 연착되고 있습니다. 탑승구에는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습니다. 전광판에는 내가 모르는 도시 이름이 가득합니다. 검색해보니 북해에 있는 섬과 도시입니다. ​

예정 시간보다 2시간을 더 기다린 뒤 비행기는 이륙하였습니다. 저가항공이 아닌데도 좌석은 협소하였고 서비스는 유료입니다. 창밖은 암흑입니다. 겨울철이라 일찍 밤이 되었습니다. 3시간 쯤 지나자 도시의 불빛이 별처럼 빛나고 있습니다. 런던에 도착했습니다.

런던에 도착하며
▲ 런던 시내 야경 런던에 도착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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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시민혁명을 통해 의회민주주의를 최초로 실시한 나라, 산업혁명을 일으켜 자본주의를 최초로 발전시킨 나라, 막강한 함대를 내세워 대영제국을 건설한 나라로 세계사의 주역이라는 자부심이 강한 나라입니다. 유럽에 속해 있지만 유럽 사람이라고 말하기를 꺼리며 자신만의 노선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입국장은 EU와 비EU로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영국은 입국 심사가 까다롭기로 유명합니다. 유럽 대부분 국가들은 쉥겐 조약을 체결하여 입국과 출국이 편리하지만 영국은 이 조약에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제 앞에 아프리카에서 온 듯한 가족이 수속을 하고 있었습니다. 무슨 사정인지 알 수 없지만 30여 분의 실랑이 끝에 다른 직원이 와서 사무실로 데려갔습니다.

여행 목적, 체류 기간, 다음 목적지 등 몇 가지 질문으로 입국이 완료되었습니다. 영국이 불법 체류자와 이민자에 대한 불협화음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은 이해되지만 피부색과 국적에 따라 여행자를 차별하는 듯한 태도는 선진국답지 못해 보입니다. 

4개월 만에 만난 딸, 녹록지 않은 유학 생활

4개월 만에 딸과 만났습니다. 처음으로 집을 떠나 먼 이국에서 생활하기에 고생이 심한 모습입니다. 본인이 선택한 유학이지만 외국 생활은 녹록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몸도 마음도 성장하였으면 합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부모의 품을 떠나 자신의 두 발로 서는 과정이겠지요.

지하철을 타고 도심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지하철엔 화려한 의상으로 멋을 낸 젊은이들이 가득합니다. 그들은 한 해의 마무리와 새해를 기념하기 위해 도심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젊음이 부럽습니다. 서울에서 9000km를 왔음에도 하루가 지나지 않았습니다. 오늘 하루는 24시간 아닌 32시간입니다.

딸의 숙소에 도착하였습니다. 방을 보는 순간 놀랐습니다. 런던의 물가가 비싼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집의 구조와 방 크기에 말을 잊었습니다. 한 달에 180여만 원 정도의 비용을 지불하는 쉐어 하우스(Share House)인데. 10평 남짓한 공간에 3개의 쪽방이 있으며 4명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방은 3명이 앉을 공간조차 없으며 방음이 되지 않아 옆방의 소곤대는 소리도 여과없이 들립니다. 한 커플은 동거를 하고 있어 화장실도 마음대로 갈 수 없습니다. 극기 훈련을 온 것이 아니라 공부하기 위해 온 것인데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딸이 살고 있는 쉐어 하우스 방 내부 모습
▲ 방 내부 딸이 살고 있는 쉐어 하우스 방 내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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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의 첫 식사 - 딸의 숙소에서
▲ 식사 유럽에서의 첫 식사 - 딸의 숙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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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유럽, #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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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자발적 백수가 됨. 남은 인생은 길 위에서 살기로 결심하였지만 실행 여부는 지켜 보아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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