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살, 참 묘한 나이다. 어느새 훌쩍 커 어른처럼 보이다가도 어딘지 '어른'이 되기에는 한참 멀어 보이는, 어른과 아이의 경계에 선 나이. 진지희의 18살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주목받는 아역배우'에서 성인 연기자로 발돋움해야 할 것 같은 시기.

연기력이 늘었다는 칭찬에는 어른스럽게 손사래를 치며 "전혀요, 지금도 많이 부족해요"라고 답하면서, "요즘 아역들은 다들 왜 이렇게 연기를 잘해요?"라며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중에서도 특히 <곡성>의 김환희 연기가 좋았단다. 아마 분명 누군가는 진지희를 보고 그렇게 물어볼 것이다. '어린 학생이 왜 이렇게 연기를 잘해요?'라고.

 <백희가 돌아왔다>의 진지희

18살. 진지희는 여전히 학생 신분이다. ⓒ 웰메이드예당


진지희는 꼬박꼬박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봐야 하는 학생이다. 수업은 빠지더라도 시험은 빼먹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밖에서 친구들과 떠들고 쇼핑하는 시간, "그때만큼은 모든 걸 다 잊을 수 있어요"라고 말한다. 학교 친구들은 기사에 진지희의 얼굴이 실리면 한마디씩 한단다. "아 맞다, 너 연예인이었지?"라고. '학교에 갈 때는 학생답게 공부나 맡은 일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하던 진지희의 다짐이 얼추 이뤄진 셈이다.

진지희가 번 돈은 모두 엄마가 관리한단다. "저는 원래 돈을 쓸 일도 많지 않고 주로 문구류나 책을 사니까 그때마다 돈을 (엄마한테) 받아요"라고 말한다. 그래도 한 번 확인해봐야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는 "엄마를 믿는다"고 말해 좌중을 웃게 했다.

지난 24일 오후 4시 서울 성동구 근처에서 어른과 아이의 모습을 동시에 가진, 배우 진지희를 만났다. 약 10%의 시청률로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KBS 4부작 드라마 <백희가 돌아왔다>의 옥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데뷔 13년차, 성인 연기 조바심 내지 않는 배우

 <백희가 돌아왔다>의 진지희

진지희는 5살 때부터 촬영 현장에 있었다. ⓒ 웰메이드예당


진지희는 2003년 KBS <노란 손수건>을 통해 데뷔했다. 5살 때부터 드라마 현장에 나가 연기를 시작했다. 촬영장 모습이 잘 기억나진 않지만, 옆에서 말을 해주면 기억날 것도 같다고. "카메라 옆에 있는 엄마를 보기 위해 카메라를 쳐다봤어요, (상대배우가 아닌) 카메라를 보고 연기를 했습니다." (웃음) 진지희는 이때부터 연기에 빠져들었다.

이른 데뷔에는 그만큼의 책임이 따랐다. 대본을 고를 때도 진지희의 의견이 많이 들어간다고 한다. 배우로서 받는 존중만큼 책임감 또한 무겁다. 하지만 이른 데뷔에 후회는 없다고 했다. 오히려 진지희는 "빨리 꿈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일찍이 배우라는 직업에 재능을 갖고 있다는 걸 알아서 빨리 준비할 수 있었어요."

그렇다면 비슷한 나이의 다른 배우들처럼 '성인 연기'를 해야 한다는 조바심은 없을까.

 진지희는 어느새 데뷔한 지 13년 차 배우가 됐다. 사진은 <백희가 돌아왔다> 속 옥희(진지희).

진지희는 어느새 데뷔한 지 13년 차 배우가 됐다. 사진은 <백희가 돌아왔다> 속 옥희(진지희). ⓒ KBS

"제가 소화할 수 있는, '싱크로율'을 신경 써요. 이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고 진지희의 매력으로 만들 수 있을까. 초반에는 성인 연기도 해보고 싶고 아역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시청자분들에게 부담으로 다가갈 수도 있겠더라고요. 저와 어울리는 캐릭터를 맡는 게 맞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 나이 때에만 가능한 풋풋한 캐릭터일 수도 있고, 청소년의 일탈이 담긴 캐릭터를 할 수도 있고. 그러다 보면 어느샌가 성인 연기에 도달해있지 않을까요.

각자 가진 매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다른 아역) 친구들은 로맨스를 했을 때 그 연기를 소화할 수 있는 거고,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스스로가 돋보일 수 있는 연기를 하는 것 같아요."

같은 아역 출신으로 훌륭한 성인 연기자로 성장한 문근영이 진지희에게 많은 힘이 돼준다고 했다. 문근영이 진지희에 가끔 장문의 문자를 보내기도 한다고. 진지희는 "(문근영) 언니도 아역에서 성인으로 넘어왔기 때문에 이해를 많이 해주세요, 조급해하지 말라고 이야기도 해주고 따뜻한 언니라고 생각했어요"라고 답했다. 그리고 나중에 컸을 때, 문근영처럼 다른 아역들에게 따뜻한 말을 해주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백희가 돌아왔다>의 진지희

진지희는 "커리어우먼 같은 프로 연기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 웰메이드예당


그렇다면 어른이 된 진지희의 모습은 어떨까. 진지희는 어떤 '어른'이 되기를 꿈꾸고 있을까.

"지금껏 줄곧 어른이 된 모습을 상상해왔는데, 커리어우먼 같은 연기자라고 해야 하나. 연기할 때에도 좀 더 프로답게, 멋있게 연기하는 제 모습을 상상해 봐요. 언젠가 시상식 무대에 서서 상을 받는 모습도 생각해보고. '배우다', '정말 배우 하길 잘했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

올해로 배우 13년 차다. 그는 자라오는 동안 내내 누군가의 어린 시절, 누군가의 딸이었다. '엄마' 혹은 '아빠'를 주소록에서 검색하면 한참 스크롤을 내려야 한단다. 진지희는 "아역들은 엄마 아빠가 많을 거예요, KBS 드라마 <백희가 돌아왔다>를 통해서 엄마 한 명 아빠 세 명을 얻었어요"라고 말했다.

<백희가 돌아왔다>의 성공비결이요? "4부작!"

 <백희가 돌아왔다>의 옥희에게서 <지붕 뚫고 하이킥>의 해리를 찾기란 대단히 어렵다.

<백희가 돌아왔다>의 옥희에게서 <지붕 뚫고 하이킥>의 해리를 찾기란 대단히 어렵다. ⓒ MBC

곱슬머리, 외로움에 지쳐 남들에게 친절하게 다가가기 전에 "이 빵꾸똥꾸야!"라며 우렁찬 성대로 버럭버럭 소리부터 지르던 <지붕 뚫고 하이킥>의 '해리'에서 7년이 지났다. 저렇게 어린 나이에 악을 쓰면 두통이 오지 않을까란 걱정도 잠시. 진지희는 끊임없이 다른 역할로 카메라 앞에 섰다. 처음에는 '빵꾸똥꾸' 이미지가 굳어질까, 어리게 보일까, 걱정도 많이 했단다. 그럼에도 지금 다시 돌이켜 생각해보니 '빵꾸똥꾸'를 기억해준 것만으로 감사하고 기분이 좋다고. 7년 동안 성실하게 작품 활동을 해온 배우의 여유가 아닐까.

이제 진지희의 필모그래피에 <백희가 돌아왔다>가 하나 더 추가됐다. 이번에는 무려 3명의 '아빠 후보'를 둔 날라리 여고생 옥희다. 담배를 피우고, 학교에서 패싸움을 하다 교무실에 불려간다. 엄마 백희(강예원)는 자신과 똑닮은 딸 옥희를 사랑하면서도 "나 벌주려고 태어난 애 같다"며 원망한다.

아무도 이 드라마의 성공을 예상하지 못했다. "대본이 너무 재밌어서 작품을 선택했다"는 진지희는, 첫 방송을 보고 역시 정말 재밌게 잘 나와서 약간의 희망을 품었다고 한다. 시청률은 그 희망대로 나왔다. "평도 잘 해주시고, 캐릭터 한 명 한 명 다 살아있다고 말씀해주셔서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옥희의 엄마 '백희'로 분한 강예원과의 호흡은 어땠을까. 싸우는 신이 워낙 많다 보니 '박자감'에 신경을 썼단다. "첫 신부터 싸워서 (웃음) 말을 중간에 자르면서 말 속도를 점점 더 빠르게 맞췄고, 싸우는 모습도 격렬하게 보였으면 좋겠다 싶어서 리허설도 많이 했어요." 진지희의 말이다. 

실제 진지희의 학교생활은 이와 다르다고 한다. "옥희는 반항을 많이 하는데 저는 전혀 그렇지 않고요. (웃음) 학교생활도 열심히 하고 선생님 말씀도 잘 듣고 친구들이랑 잘 어울려 지내요." 하지만 진지희는 옥희가 자신보다 더 빨리 철이 들었다고 말했다.

"일탈을 하면서 이 세상이 좋은 곳만은 아니구나, 험한 곳이구나, 느꼈을 것 같아요. 엄마랑 꿈도 자라온 과정도 비슷하니 오히려 엄마를 더 잘 이해하지 않았을까요?"

 <백희가 돌아왔다>의 진지희

"21살이 돼도 교복 입고 연기를 하지 않을까요?" ⓒ 웰메이드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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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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