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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구조 개편이 화두다. 지난 13일 정세균 국회의장이 20대 국회 개원사에서 개헌론을 언급해 신호탄을 쏘아 올렸고, 이에 대한 박 대통령의 입장을 요구하며 압박했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대표적 개헌파인 우윤근 전 의원을 국회 사무총장으로 추천했고, 정 의장은 이를 받아들였다. 사실상 국회 및 야당 수뇌부가 개헌 추진파로 구성된 셈이다.

문제는 방향성이다. 현 5년 대통령 단임제를 놓고 4년 중임제, 의원내각제, 이원집정부제로 '개헌파'들이 설전을 벌이는가 하면 총선 이후 언론에서는 권력구조 개편의 목표로 '협치'라는 생소한 개념이 등장했다. 권력 구조를 어떻게 개편할 것인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정치권에서 유행처럼 언급되는 예가 있다. '독일식 국가모델'이 그것이다.

이국영(63)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에게 물었다. 그는 독일의 콘츠탄츠 대학원에서 대만과 한국의 정치경제 비교로 박사 학위를 받고 동양인 최초로 독일정치학회지에 논문을 실은 대표적인 독일파 정치경제학자다. 또 학계에서 1990년대 초부터 국회의원 선거에 독일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자고 줄기차게 주장해 온 장본인이다.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의 한 식당에서 이 교수를 만나 개헌론에 대해 물었다.

이국영 성균관대 정치외교학 교수가 25일 대학로의 한 식당에서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이국영 성균관대 정치외교학 교수가 25일 대학로의 한 식당에서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 서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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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권에서 개헌 논의가 활발하다.  
"정치권의 개헌 논의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87년 체제 이후 늘 개헌은 의원내각제와 대통령제를 기본으로 하는 정부형태 유형론에 머물렀다. '협의정치(이하 협치)'를 위해서는 새로운 유형론을 중심으로 프레임이 바뀌어야 한다.

간단히 말해서 개헌을 하여 중임 대통령제, 분권형 대통령제, 의원내각제 중 어떤 정부형태로 변해도 선거제도가 완전한 비례대표제로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국회는 여전히 식물·동물·미생물 국회로 악순환할 것이다. 따라서 개정 헌법에는 선거제도를 완전한 비례대표제로 확정하는 규정을 도입해야 한다. EU 국가 중에서 선거제도를 헌법에 규정하고 있는 국가는 오스트리아·덴마크 등 13개국에 달한다."

- 말씀에 따르면 개헌 논의의 방향이 잘못된 셈이다. '협치'를 위해서라고 말씀하셨는데 여소야대 정국 이후 '협치'란 용어가 정치권과 언론계에서 자주 나온다. 정확하게 어떤 뜻으로 이해해야 하나.
"'협치'는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지 잘 모르는 것 같다. 언론에서 흔히 사용하는 협치는 미국 의회의 협조통과(logrolling)와 유사하다. 미국에서도 여야가 협력하여 의안을 통과시키기도 하지만 이것은 철저하게 do ut des 원리 즉, 내가 주고 너도 준다(네가 되돌려 줄 것을 믿으며 준다)를 전제로 하는 단기적인 거래에 가깝다. 이런 의미의 '협치'는 한계가 있다.

독어권 학계에서 말하는 '협치'는 민주주의 두 유형인 경쟁민주주의와 협의민주주의 중 후자를 가리킨다. 전자는 주로 다수결의 원리에 따르고 후자는 합의의 원칙을 통해 중요한 정치적 결정을 내린다는 점이 다르다. 협의민주주의는 국내에서도 많이 논의된 합의제 민주주의와 유사한 개념이지만, '협치'란 말은 사용되지 않고 있다."

- 협의민주주의의 기본원리와 구성요소는 무엇인가.
"기본원리는 권력분산과 모든 사회·정치적 세력을 적절히 배려하는 정치적 결정과정이다. 권력분산은 권력분립과 다른데 연립정부에서 복수 정당이 연합하는 형태로 권력이 수평적으로 분할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협의민주주의에서 연정은 필수이며 가장 광범위한 국민의 지지를 보장받을 수 있는 대연정이 빈번하게 구성된다. 연정이 협치의 기본요소이기 때문에, 다당제와 비례대표제는 기본요소가 된다. 다당제는 비례대표제가 없이는 일반적으로 불가능하다."

- 협의민주주의의 장점 중 우리에게 가장 큰 시사점을 주는 특성은 무엇인가?
"우리 국민은 오래전부터 한국정치의 정쟁을 혐오하고 있다. 협의민주주의에서도 선거에서는 정당경쟁이 전개되지만, 일반적인 정치과정에서는 노골적인 정당경쟁을 억제하기 위한 제도화가 되어 있어 치열한 정당경쟁은 표출되지 않는다. 싸움 정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국에도 협의민주주의적 요소가 제도화되고 제대로 작동되어야 한다."

- 그러면 한국에는 협의민주주의적 요소가 도무지 없는 건가?
"국회선진화법이 협의민주주의적 요소가 될 수 있다. 국회선진화법은 2012년 18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과거 여당의 날치기 법안통과로 인한 파행적인 국회를 지양하기 위해서, 다른 한편으로는 여야의 당리당략적 타산이 맞았기 때문에 이루어졌다.

당시 여당의 일방적인 법안처리에 대한 야당의 물리적 저항 때문에 '동물국회'가 되었다. 이는 영국이 표본인 경쟁민주주의의 특징으로 야당의 입법 참여권이 허약하기 때문이다. 야당의 입법참여란 단순히 법안에 대한 찬반투표과정에 참여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야당도 법안을 여당과 함께 공동 결정한다는 의미다."

-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식물국회가 되었다는 비판도 많다.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입법교착 상황이 벌어진 사실은 부인할 수 없지만, 다수의 전제정치 때문에 빈번했던 동물국회 현상이 사라진 것과 협치가 시작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미국의 온라인 매거진 더 디플로마트가 2014년 9월 '소수의 전제정치'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는데, 국회선진화법의 내용을 '다수의 전제정치'에 빗대어 비판한 것이다."

- 협치의 계기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유승민 파동'의 빌미가 된 2015년 5월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중심으로 한 여야합의였다. 합의 내용은 크게 공무원연금 개혁,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 국민연금 사각지대 해소와 정부의 시행령에 대한 국회법 개정안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당시 합의는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가능했다. 여당의 19대 의석으로는 공무원연금 개혁과 같은 주요 법안을 단독으로 처리할 수 없었기 때문에,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협의과정을 거쳐 어려운 합의에 도달한 것이다.

이런 경우를 야당의 입법참여권이 실현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의 거부권 발동으로 인해 개정안은 폐기되었고, 국민연금과 관련된 사안은 흐지부지하게 처리되었다. 일부 언론의 비난도 한국에서 협치의 발전에 큰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주었다."

- 언론의 어떤 논조가 문제가 되었나?
"다수 언론은 공무원연금 개혁 이외의 사안을 전부 '끼워 넣기'로 매도했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과 국민연금 사각지대 해소 같은 사안은 예산처리 때 자주 나타나는 '끼워 넣기'와는 차원이 다른 중대한 문제임에도 말이다. 일부 언론은 현재 독일의 대연정이 출범할 때 기민당은 최저임금제, 사민당은 부자증세의 문제를 서로 양보하였다는 사실을 부러워하면서 보도를 했는데, 그런 타협은 대연정을 구성하는데 익숙한 풍경이다.

대연정을 구성하기 어려운 한국 정치에서 국회선진화법으로 협치의 싹이 틀 수 있었지만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으로 잘렸다. 거부권 발동이 없었다면, 이후 현 정부가 그렇게도 애타게 요청한 주요 법안들이 상당 부분 처리되었을 것이다. 물론 처리과정에서 야당이 요구하는 법안도 동시에 합의하는 절차를 밟았을 것이다. 이런 합의가 누적되면 관례가 되고 전통이 되는 정치문화가 발전하여, 여야가 바뀌어도 협치가 정착되어 갈 수 있었을 것이다."

- 대통령의 거부권 발동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았지 않았나?
"거부권 행사의 법률적 명분과 정치적 명분은 약하다. 한국 대통령은 다른 신생민주주의 국가처럼 입법영역에서 과대한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가 위임민주주의로 변질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대통령의 과도한 입법권한을 견제할 '시행령에 대한 국회법 개정안'은 충분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다."

대통령 거부권 행사, 협치의 싹을 잘랐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지난 5월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68주년 국회개원 기념식 축사 도중 헌법전문이 담긴 소책자들 들어보이며 박근혜 대통령의 청문회법 거부권 행사에 대해 "국회를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이런 일로 또다시 국회와 정부 간 대립과 갈등이 벌어지는 듯해 참으로 유감이다"고 말했다.
▲ 헌법 든 정의화 "국회법 거부권는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도전" 정의화 국회의장이 지난 5월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68주년 국회개원 기념식 축사 도중 헌법전문이 담긴 소책자들 들어보이며 박근혜 대통령의 청문회법 거부권 행사에 대해 "국회를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이런 일로 또다시 국회와 정부 간 대립과 갈등이 벌어지는 듯해 참으로 유감이다"고 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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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에 언론도 개정안의 위헌성에 동의하지 않았나.
"당시 일부 언론은 '다수 헌법학자'의 의견을 근거로 개정안의 위헌성을 지지했다. 도대체 언론사가 인터뷰한 헌법학자의 전체수가 몇 명이나 되기에 다수 운운했는지 모르겠다. 다수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전체수를 밝혀야 한다. 인터뷰나 설문조사의 대상인 학자의 전체수를 전제로 다수를 언급해야 한다는 말이다. 내 기억으로는 10명이 넘는 학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경우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유일하다. 공법학자 4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의 결과는 응답자, 즉 전체수의 80% 이상이 개정안의 합헌성을 인정하고 있었다."

- 다수란 용어가 만만한 게 아닌 것 같다.
"보통 '다수'하면 단순다수나 과반 다수인 절대다수를 연상하지만, 특정 다수의 결정에 따르는 가중다수가 중요하다. 다수결의 원리는 일반적으로 단순(다수결) 또는 절대다수결을 의미하고, 중대한 정치적 결정을 위해서는 가중다수인 5분의 3 또는 3분의 2 다수의 결정방식이 사용된다.

경쟁민주주의에서 개헌이나 중차대한 정치적 결정에 가중다수의 비율을 적용하는 것은 다수의 횡포를 견제하고 소수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물론 협의민주주의에서는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가중다수를 전제로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한국의 경우는 경쟁민주주의에 국회선진화법의 도입으로 협의민주주의적 요소가 삽입된 셈이다."

- 당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정치적으로 어떤 함의가 있나요?
"대통령은 거부권을 출석 의원 244명 중 211명의 찬성으로 통과된 개정안에 대해 행사하였다. 그런데 '211명의 찬성'은 단순 2/3도 넘어서는 재적 의원의 2/3를 넘는 절대적 2/3 다수이다. 이를 감안하면 정치적으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보통 일반 법안이 국회에서 반수 이상의 동의로 통과되지만,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국회가 재의해야 한다. 여기서 '재의'란 위헌성을 뛰어넘기 위해 과반수가 아닌 최소한 2/3 이상의 찬성을 만들어 내라는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 번 2/3 다수로 통과한 법안을 재의해서 다시 2/3 다수를 만들어라? 그것도 설득력이 별로 없는 위헌성을 가지고. 불행히도 당시 여당 의원들은 국회를 식물도, 동물도 아닌 미생물 국회로 만들어 버렸다."

- 박 대통령은 20대 국회 개원식 연설에서 협치를 언급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대통령의 대 의회 전략은 대략 4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여대야소의 세력관계를 기반으로 대통령이 지시에 의해 의회를 통제하는 전략이다. 박 대통령이 총선 이전에 추구하던 전략이었다.

의회의 세력관계가 변화되어 여소야대인 지금 정세에서 대통령이 시도할 수 있는 전략은 하나는 연정을 추진하는 전략이고, 다른 하나는 호혜관계를 기초로 야당의 협조를 추구하는 전략이다. 정부·여당은 연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국민의당이 좀 관심을 가졌지만 지지기반의 여론이 좋지 않아 주춤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연설에서 협조를 요청한 것은 아마도 세 번째 전략에 근접한다고 본다. 그러나 이 전략은 호혜관계를 필요로 하는데, 지금은 시기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 왜 지금 협조전략 실행이 어려운가?
"협조전략의 호혜관계는 미국의회의 협조통과처럼 쌍방이 서로 주고받는 이득이 있어야 가능하다. 박 대통령은 현재 야당에게 줄 게 별로 없다. 연말이라면 쪽지예산의 활성화를 통해 재선을 위한 지역구 예산의 확보에 혈안인 의원을 대량 유인할 수 있겠지만 현재로써는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야당에게 선사할 만한 영남권 신공항 같은 거대 프로젝트도 없다. 마지막 전략은 일방주의로서, 긴급명령을 발동하는 전략이다."

- 민주화가 공고화한 현시점에서 과연 긴급명령이 발동될 수 있나?
"긴급명령권이라고 해서 유신시대의 긴급조치를 연상할 필요는 없다. 남아메리가 일부 국가에서는 여소야대이고, 특히 의회가 대통령에게 적대적인 경우 긴급명령이 발동되는 경우가 아주 드물지는 않다. 한국에서도 이미 작년 연말 여권의 강경파는 경제위기의 심각성을 이유로 긴급재정명령을 거론한 바가 있지만, 청와대는 당시 상황을 재정명령의 발동요건인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라고 판단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반년이 지난 현 경제상황이 회복될 가능성도 낮고, 오히려 구조조정문제로 더 악화될 조짐이 있어 다시 긴급명령권 발동이 거론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예측하기 어려운 한반도 정세는 이른바 '대박통일'의 낌새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에, 이를 빌미로 긴급명령의 통치가 고려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예측은 기우에 불과하지만, 만약 긴급명령 전략이 선택되면 한국의 대통령은 푸틴과 같은 슈퍼대통령이 될 것이다."

- 협치를 말하다가 긴급명령이 나오니 섬뜩하다. 그러면 우리나라에서 협치가 실현될 전망은 어떤가.
"협의민주주의가 정착된 국가들은 모두 비례대표제를 기반으로는 하는 다당제가 구현된 곳이다. 경쟁민주주의에 협의민주주의적 요소가 삽입된 경우도 선거제도는 비례대표제가 일반적이다. 물론 우리도 국회선진화법이라는 협의민주주의적 요소가 들어와 있지만,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 때문에 협치의 맹아가 잘려버렸다. 협의정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헌법개정과 선거제도의 개혁이 필요하다. 양자는 서로 연계되어 있지만, 개헌 없이도 선거제도의 개혁이 가능하기 때문에 일단 분리해서 보아야 한다."



태그:#개헌, #협치, #독일식 비례대표제, #연정, #국회선진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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