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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좁은 골목길을 지나면 빛나는 날도 올 수 있는 것일까?
▲ 거여동재개발지구 이 좁은 골목길을 지나면 빛나는 날도 올 수 있는 것일까?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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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떠난 골목길은 스산했다.

올해 말이면 이곳도 철거될 것이라 하니 이제 길어야 6개월 정도의 시한부 인생을 살 듯, 애틋한 사연을 안고 이곳으로 왔던 이들의 꿈을 품어주었던 그곳은 곧 사라질 것이다.

꿈을 이루고 이곳을 떠난 사람도 있을 것이고, 꿈을 이루지 못해 이곳으로 흘러 들어온 이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재개발의 바람이 불어오면서 약삭빠르게 딱지를 팔아 이문을 챙긴 사람도 있을 것이고, 한 몫 잡으려고 딱지를 샀다가 재개발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탄식을 한 이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드나들던 계단에는 잡초가 피어나 인적이 끊겼음을 보여준다.
▲ 잡초 사람들이 드나들던 계단에는 잡초가 피어나 인적이 끊겼음을 보여준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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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곳이 아니고서는 삶의 터전을 삼고 살아갈 길이 없어 그곳을 지키고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골목길 사이사이 대로변(?)에는 제법 번듯한 기와집이나 이층집이나 상가건물들로 자리 했었다.

마치 숲 가장자리를 지키는 덩굴식물처럼, 달동네 산동네로 몰려들어 살아가던 이들에게도 그들을 보호해줄 그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70년대 박정희 정권은 가리개로 그런 건물들을 정책적으로 세우기도 했지만, 조금이라도 넓은 길가에 자리잡은 이들의 집터는 골목길 사이에 있는 집들에 비해 한결 여유있는 공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 살던 이들은 여느 누구보다도 그곳을 빨리 떠났다. 터가 크고 집이 넓어 그만큼 보상을 더 받았을 것이다. 미련없이 떠날만큼 혹은 재개발이 이뤄져도 다시 들어와 살만큼의 보상금을 받았을 것이다.

화재가 났던 폐가에 강아지풀이 무성하다.
▲ 강아지풀 화재가 났던 폐가에 강아지풀이 무성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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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지구로 지정이 된 후, 그들은 최소한의 수리가 아닌 증·개축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불이 나도 복구하지 못하고 그냥 떠났고, 떠난 그 자리는 그냥 방치되었다.

방치된 그곳에 피어난 개망초무리, 흙 한 줌만 있으면 어디서라도 자라나는 개망초, 초록생명을 보면서 '민초'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그 어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그토록 모진 세월을 이겨내고 감내했건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고작 성냥갑 같은 집 한채에서조차도 살 수 없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제 더이상 뒤로 물러설 곳도 없는 곳에 위태로이 서 있는 것이다. 그것이 그들만의 책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사회적인 책임이 크다. 그러나 그런 책임론조차도 공허하게만 느껴지는 요즘이다.

허물어져가는 지붕 너머로 십자가 첨탑이 보인다.
▲ 거여동재개발지구 허물어져가는 지붕 너머로 십자가 첨탑이 보인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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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지구 곳곳에 무너진 지붕 사이로, 허물어진 골목 사이로 십자가 첨탑이 서 있다. 함께 쇠락해 가는 교회도 있지만, 지역사회가 폐허가 되든 말든, 그들을 교인으로 삼아 부흥한 교회의 십자가는 위풍당당하다.

가난한 과부의 헌금으로 가난한 과부의 땅과 집을 사서 그들의 땅에 큰 교회를 지을 꿈에 부풀어 있을 뿐이다.

인적이 끊어진 골목길엔 초록생명들이 하나 둘 자리하고 있다.
▲ 거여동재개발지구 인적이 끊어진 골목길엔 초록생명들이 하나 둘 자리하고 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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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걸음걸이만큼 초록생명은 스러졌다가 그 걸음걸이가 줄어들자 그 오랜 시간 숨죽여 살아왔던 것들이 삐죽거리며 올라왔다. 그리고 서서히 골목길의 주인이 되어간다.

그들, 초록생명은 어찌도 그렇게 어디에 피든지 당당하게 피어나는가?

어느 곳에 핀들 주눅 드는 법이 없는 초록생명, 비록 제대로 꽃 피우고 열매 맺지 못할 곳에서라도 피어나기 위해 안감힘을 하다흔 초록생명, 그들의 삶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는가?

"이 골목길을 기웃거릴 날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사람들이 떠난 골목길에 놓여있는 의자 하나가 쓸쓸하다.
▲ 골목길 사람들이 떠난 골목길에 놓여있는 의자 하나가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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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만든 것들은 사람의 손이 타지 않는 세월만큼 쇠락해 가지만, 자연은 사람이 손이 타지 않는만큼 자라난다.

스러져 가는 것들 사이로 새로이 태어나는 초록생명들, 그러나 어쩌면 이것도 마지막일지 모른다. 더 오랜 세월 콘크리트 바닥에서 숨조차 쉬기 어려운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고, 씨앗을 품었던 흙은 더 깊은 심연의 곳으로 내던져질지도 모른다. 이제, 그곳엔 사람의 손길이 닿은 것들이 자리할 것이고, 그 틈새로 겨우겨우 명맥을 유지할 것이다.

사람들이 떠난 폐가엔 비닐저지선이 둘러쳐져 있다.
▲ 거여동재개발지구 사람들이 떠난 폐가엔 비닐저지선이 둘러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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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넘지 말아야 할 선, 그것은 꿈을 키우며 살던 선을 넘어가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 꿈을 꾸던 곳을 단절시키며 살아가고 있다. 자신들이 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 모르고 열심을 내는 이들, 그 모형을 보는 듯하여 씁쓸하다.

왜 타인의 꿈을 자신들이 재단하는가? 그것도 부족해서 왜 자신들이 타인의 꿈을 결정하려고 하는가?

지난 겨울을 따스하게 보낼 수 있게 해 주었던 연탄이 부서진 채로 방치되어 있다.
▲ 거여동재개발지구 지난 겨울을 따스하게 보낼 수 있게 해 주었던 연탄이 부서진 채로 방치되어 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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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까지만 필요했을 것이다.

이제 으슬거리던 봄도 지나가자 더는 필요없을 것을 알았기에 미련없이 버리고 떠났을 것이다. 한 때는 인간에게 봉사했던 것들, 그들 없이는 살 수 없었던 인간에게 미련없이 버림을 받는다는 것, 그것이 오히려 그들에게는 행운일 수도 있겠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끝내 그들의 모든 소용거리를 착취하는 것이 인간이니까 말이다. 무서진 연탄, 그들이 다시 자신들이 고향 그 깊은 심연의 땅 속으로 들어가기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을 필요로 할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더는 인간에게 착취를 당하지 않아도 된다. 그들에게는 쉼의 시간이 온 것이다.

오랫동안 방치된 자전거 바퀴살 틈으로 애기똥풀이 피어났다.
▲ 거여동재개발지구 오랫동안 방치된 자전거 바퀴살 틈으로 애기똥풀이 피어났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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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떠난 골목길은 스산했고, 버려진 물건들 역시도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채 함게 쇠락하고 있었다.
▲ 거여동재개발지구 사람들이 떠난 골목길은 스산했고, 버려진 물건들 역시도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채 함게 쇠락하고 있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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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던 자전거와 오토바이 모두 멈춰 섰다.

퍽퍽한 살림살이라서 고물값이라도 했을 터인데 그냥 버려두고 떠났다. 차마, 자신의 손과 발이 되어주던 것들까지도 처분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을 터이다.

거여동재개발지구, 개발된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은 이미 십 년이 훌쩍 넘었고, 하나 둘 사람들이 떠나기 시작한 것도 십 년이 훌쩍 넘었다. 그 시간은 끝나지 않을 듯 이어질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 정말 마지막이라는 듯, 위태위태 비닐 경계선 표시에 갇혀버린 집들이 기울고 있다.

"여기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고 외치던 그곳은 이제 "이곳엔 더이상 사람이 살 수 없다!"고 절규하는 소리가 좁은 골목길을 메아리치며 뛰논다.



태그:#거여동재개발지구, #골목길, #재개발, #도시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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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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