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열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기자회견. 신임 조직위원장으로 정지영 감독(우측에서 세번째)이 선임됐다.

22일 열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기자회견. 신임 조직위원장으로 정지영 감독(우측에서 세번째)이 선임됐다. ⓒ 성하훈


지난 22일과 23일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아래 부천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아래 부산영화제)가 각각 기자회견을 했다. 부천영화제는 올해 영화제 개최를 앞두고 상영작을 발표하는 시간이었고, 부산영화제는 정치적 탄압 논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김동호 조직위원장과 강수연 집행위원장이 영화제 준비에 관해 설명하는 자리였다.

올해 두 영화제의 공통점은 민간 조직위원장을 선임한 부분이다. 지난 5월 임시총회를 통해 부산영화제가 김동호 신임 조직위원장을 새로 선임했다면, 부천영화제는 21일 정지영 감독을 새로운 조직위원장으로 선임했다. 둘 다 시장이 맡고 있던 조직위원장을 민간에 넘긴 것이지만 과정이나 성격은 차이가 상당하다.

부천영화제의 민간 조직위원장 선임은, 김만수 현 부천시장이 지난 2004년 당시 부천시장에 의해 김홍준 집행위원장이 해임됐던 부천영화제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담겨 있다. 지난 일에 대한 공식적인 사죄와 함께 잘못된 일들은 원상회복하고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미다.

이에 반해 부산영화제는 시장이 난장판을 벌여 놓고, 책임을 지기는커녕 이를 떠넘기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영화계의 사과와 재발 방지 등 요구사항을 모두 묵살한 채 조직위원장 민간 이양으로만 생색내려는 식이다.

분위기 달랐던 두 영화제 기자회견

 2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기자회견에서 신임 정지영 조직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2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기자회견에서 신임 정지영 조직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성하훈


이 때문인 듯 민간 조직위원장으로 선임된 두 사람의 분위기도 사뭇 달랐다. 부천영화제 조직위원장으로 선임된 정지영 감독은 22일 기자회견에서 "제안을 받고 고민이 많았다"며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섰으나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정지영만이 할 수 있는 게 뭘까, 다른 영화제가 조직위원장 선임을 참고할 만한 모범답안을 만들려고 한다"며 "명예조직위원장으로 물러난 김만수 부천시장과는 긴밀히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정 감독은 또한 조직위원장으로서 영화계 현안에 적극적으로 나설 일이 있을 때 위축될지 모른다는 시각에 대해서도 "싸울 일이 있을 때는 마다치 않겠다"며 적극적인 자세를 엿보였다.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첫 민간 조직위원장  23일 오전 서울 중구 세종대로 대한상공회의소 중회의실에서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기자회견에서 첫 민간 조직위원장으로 위촉된 김동호 조직위원장이 입장발표를 하고 있다.

▲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첫 민간 조직위원장 지난 23일 오전 서울 중구 세종대로 대한상공회의소 중회의실에서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기자회견에서 첫 민간 조직위원장으로 위촉된 김동호 조직위원장이 입장발표를 하고 있다. ⓒ 이정민


김동호 조직위원장은 23일 기자회견에서 민간 조직위원장의 의의를 강조하며 부산영화제 지키기에 힘써 준 영화인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하지만 이야기의 핵심은 전임 조직위원장의 잘못에 대한 대신 사과와 "정관개정을 반드시 할 테니 보이콧을 철회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영화제의 독립성을 지켜나가야 겠다는 다짐을 몇 차례나 할 만큼 절박함도 엿보였다. 다소 굳은 표정의 김 위원장은 현재 처한 상황을 반영하듯 얼굴색이 밝지 못했다.

부천영화제가 잘못된 과거를 반성하는 현재를 통해 미래를 준비하는 모습이라면, 부산영화제는 과거에나 벌어졌을 구시대적 행태가 현재에 일어나면서 미래마저 불투명한 모습을 갖게 했다.

새누리당 정치인도 "부산영화제 사태는 서병수의 한계"

 지난 1월 부천영화제 총회 당시 김만수 시장과 조직위원을 맡은 영화인들.

지난 1월 부천영화제 총회 당시 김만수 시장과 조직위원을 맡은 영화인들. ⓒ 부천영화제


두 영화제의 차이는 시장의 차이기도 하다. 김만수 시장의 민간 조직위원장 이양은 지난 1월 정기총회에서 2004년 사태에 유감을 표명하며 약속했던 부분이다. 부천영화제는 이에 발맞춰 2004년 사태로 영화제를 떠나야 했던 김영덕 프로그래머를 새로 선임하는 등 과거에 대한 청산 의지를 분명히 했다. 조직위원 구성에서도 영화인들이 3분의 2를 차지하게 하며 독립성을 확실히 보장했다. 김만수 시장은 2013년에는 영화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등 부천영화제 발전을 위해 남다른 행보를 보인다.

부천영화제의 민간 조직위원장 선임은 부산영화제에 대한 압박 성격도 띠고 있다. 올해 영화제에서 '한국영화 표현의 자유 사수를 위한 포럼과 특별상영'을 준비한 것은 부천의 마음가짐을 엿보게 한다. 김만수 시장은 지난 1월 부산영화제 영화계 공동대응 일일 주점 행사 때도 참석해 영화인들 표현의 자유 사수 투쟁에 힘을 보탰다.

부산영화제 성공적인 개최 다짐하는 김동호-서병수-강수연 부산영화제 강수연 집행위원장과 서병수 전 조직위원장이 24일 오후 부산 연제구 부산시청 시장 접견실에서 민간 조직위원장으로 내정된 김동호 명예집행위원장과 만나 영화제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하며 서로 손을 맞잡고 취재기자들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날 부산영화제 조직위원회는 임시총회를 열어 부산시장이 당연직으로 조직위원장을 맡는다는 조항을 의결해 폐지했다.
이어 조직위원회는 강수연 집행위원장과 서병수 전 조직위원장이 추대한 김동호 부산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을 신임 조직위원장으로 선출했다.

▲ 부산영화제 성공적인 개최 다짐하는 김동호-서병수-강수연 부산영화제 강수연 집행위원장과 서병수 전 조직위원장이 지난 5월 24일 오후 부산 연제구 부산시청 시장 접견실에서 민간 조직위원장으로 내정된 김동호 명예집행위원장과 만나 영화제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하며 서로 손을 맞잡고 취재기자들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유성호


상대적으로 부산영화제 사태의 원인은 서병수 시장이다. 물론 그 뒤에서 박근혜 정권이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게 영화계의 일반적인 인식이다. 서 시장은 때에 따라 말과 행동이 다른 모습으로 영화계의 신뢰를 잃은 지 오래다.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도 몇 번이나 속았음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해 20회 영화제를 앞두고 영화인들에게 화해를 요청하며 "비 온 후에 땅이 굳는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서 시장은 영화제가 끝난 이후에는 굳을 수 있던 땅에 물을 들이부은 듯 다시 질퍽거리게 하였다. 영화계 보이콧의 핵심인 공개 사과와 재발방지 및 정관 개정 문제도 서 시장이 해결해야 할 사안이다. 올해 영화제의 정상적인 개최 여부는 서 시장의 판단에 따라 결정된다.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서 시장의 행태에 비판적인 시선이 있는 모양이다. 대권 주자로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는 새누리당 소속 정치인은 최근 일부 영화인들과 우연히 만난 자리에서 부산영화제 사태에 대해 "그게 서병수의 한계"라고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루 차이로 열린 두 영화제의 명암은 어떤 시장이 있느냐의 차이였다. 부천시장이 뒷받침하는 부천영화제의 기자회견이 밝았다면, 부산시장이 걸림돌이 되는 부산영화제 기자회견은 무거웠다. 과도한 정치적 간섭이 빚어낸 결과가 어떠한지를 한번 겪어본 곳과 지금 겪고 있는 곳의 차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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