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골팔십'이라는 옛말이 있다. 흔히 병약한 체질임에도 정작 건강한 이들보다 더 장수하는 경우를 우스갯소리로 표현한 말이다. 스포츠에 대입하면 형편없는 경기력에도 매번 아슬아슬하게 패배를 피하며 끈질기게 살아남는 팀과 비교할 수 있다.

유로 2016의 포르투갈이 '골골 8강'에 성공했다. 지난 26일(한국 시간) 프랑스 랑스 스타드 볼라르트 들렐리스에서 열린 유로 2016 16강전 토너먼트 단판승부에서 포르투갈은 크로아티아를 상대로 연장 후반 터진 히카르두 콰레스마의 극장골에 힘입어 1-0으로 신승을 거두고 8강행에 성공했다.

포르투갈의 이번 유로컵 행보를 보면 그야말로 지옥에서 천당으로 올라왔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포르투갈은 당초 F조에서 헝가리, 오스트리아, 아이슬란드와 한조에 편성되어 톱시드 국가중 최고의 '꿀대진'을 받았다는 평가였다.

하지만 조별리그부터 예상밖의 졸전을 거듭한 포르투갈은 단 1승도 챙기지 못하고 3연속 무승부에 그쳤고 조 3위까지 밀려나는 수모를 겪었다. 예년같으면 어김없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해야 할 성적표였지만, 이번 대회부터 24개국 체제로 확대되며 조 3위 상위 4개팀까지 주어지는 '와일드카드'로 힘겹게 16강 진출에는 성공했다.

16강 상대는 바로 D조 1위 크로아티아였다. 그것도 스페인, 체코, 터키 등이 포진한 '죽음의 조'에서 당당히 수위를 차지한 강팀이었다. 많은 이들은 크로아티아와 포르투갈의 대결을 16강의 빅매치로 예상했다. 조별리그 경기력을 감안하면 크로아티아의 근소한 우위를 전망하는 이들이 더 많았다.

그러나 정작 뚜껑을 열자 양팀의 대결은 이번 유로컵들어 가장 지루한 경기중 하나였다. 양팀은 전후반 90분간 무득점에 그쳤는데 정규시간 동안 유효슈팅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유로 1980 이후 36년 만에 나온 기록이었다. 이날 양팀의 경기가 얼마나 소극적이었고 지루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나마 크로아티아가 좀더 공격적인 경기를 펼치기는 했지만 골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오히려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넘긴 포르투갈이 경기 종반을 앞두고 역습으로 기회를 만들어냈다. 연장 후반 12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슈팅을 다니엘 수바시비 골키퍼가 선방했으나 문전으로 쇄도한 히카르두 콰레스마가 2차 슈팅을 골문 앞에서 밀어넣으며 이 경기 유일한 골을 성공시켰다. 결과적으로 호날두가 만들어준 골이나 다름없었다. 호날두는 이날 경기내내 답답한 경기흐름속에 존재감이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막판 5분의 결정적인 활약으로 에이스의 진가를 증명했다. 포르투갈의 이번 유로 대회 첫 승이었다.

이날 경기에서 나온 단 2개의 유효 슈팅이 모두 이 장면에서 한꺼번에 나왔다. 이는 다시말하면 크로아티아가 결국 종반까지 단 하나의 유효 슈팅도 기록하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포르투갈은 이날 크로아티아를 상대로 작정하고 수비적인 운영을 펼쳤다.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수행하던 주앙 무티뉴를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하는가 하면 호날두를 제외하면 포르투갈 선수들이 대부분 후방에 머무를 정도였다. 심지어 호날두조차 이날은 수비에 적극 가담하는 모습이 자주 나올 정도였다.

역습을 노리거나 상대 진영에서 세트피스를 이끌어내서 득점찬스를 노리겠다는 전략이 분명했다. 크로아티아도 기본 전략은 비슷했지만 포르투갈과의 차이는 호날두같이 확실한 해결사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이러다보니 경기 내용은 지루해질 수밖에 없었다.

과정이야 어찌됐든 조별리그 탈락 위기에서 8강까지 올라온 포르투갈의 생존 본능은 경이롭다고 할 수밖에 없다. 포르투갈은 전통적으로 유로컵 본선무대에서 유난히 강했다.

처음 유로컵 본선에 진출했던 유로 84 이후 이번 대회까지 예선탈락을 제외하고 포르투갈은 일단 본선에만 나오면 최소 8강 이상의 성적을 거두지 못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포르투갈의 역대 유로컵 통산 순위는 6위로 이는 우승국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성적이다. 정작 월드컵에서는 조별리그 탈락만 세 차례나 기록하는 등 기복이 심했던 것과 대조된다. 역시 기록과 전통은 무시할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결과적으로 조 3위로 와일드카드를 따낸 것이 포르투갈에겐 최대의 전화위복이 됐다. 만일 포르투갈이 조 1위를 차지했다만 16강에서 벨기에를, 2위였다면 잉글랜드를 만나는 대진이었다. 크로아티아보다 전력에서 더 위협적인 톱시드 국가들이다.

더구나 포르투갈은 크로아티아를 잡으면서 8강 상대는 폴란드로 확정됐다. 폴란드는 스위스를 꺾고 사상  첫 8강에 올랐다. 이번 대회 돌풍의 팀이기는 하지만 전력이나 경험상에서 포르투갈이 밀릴 것이 없는 상대다.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히는 스페인, 이탈리아, 잉글랜드, 프랑스, 독일 등이 반대편 조로 몰리면서 포르투갈은 결승에 올라가기 전까지는 이 팀들을 전혀 만나지 않는다. 이제는 결승행까지도 꿈꿀 수 있는 인생역전이 이뤄진 것이다. 내용상 쑥쓰럽긴 하지만 포르투갈은 어쨌든 아직까지 이번 대회 '무패팀'이기에, 내친김에 무패 우승 도전도 가능한 시나리오다.

반면 크로아티아는 공들여 죽쒀서 포르투갈에서 갖다바친 꼴이 되고 말았다. 크로아티아는 8년전인 유로 2008에서도 8강전에서 터키에서 연장 종료 직전 동점골을 허용하며 다잡은 승리를 놓치고 승부차기 끝에 패한바 있다. 조별리그에서 체코전에서 2골차까지 앞서다가 자국 훌리건의 홍염 사태 이후 동점을 허용하는 등 유로컵에서 반복되는 '극장골'의 저주를 피하지 못했다.

포르투갈은 크로아티아가 다 차려놓은 밥상을 맛있게 뺏어먹었지만 여전히 경기력에 대한 의문부호는 떨치지 못했다. 포르투갈이 이번 대회에서 기록한 5골중 4골이 호날두가 관여했던 골이었다. 호날두가 터지지 않으면 공격 찬스 자체를 만들기가 어려운 것이 포르투갈의 현실이다. 운좋은 포르투갈이 골골 8강을 넘어 준결승-결승행까지 기적의 생존게임을 이어나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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