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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오아후 섬 돌 파인애플 아이스크림.
 하와이 오아후 섬 돌 파인애플 아이스크림.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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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파인애플 농장(Dole Plantation, 파인애플 대량 조림 농장)을 찾은 것은 파인애플 아이스크림을 먹기 위해서였다. 싱싱한 파인애플을 갈아서 만든 파인애플 아이스크림은 꼭 먹어봐야 할 빠트릴 수 없는 하와이 여행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다!

이른 아침 렌터카로 호놀룰루에서 출발하여 돌 파인애플농장으로 향했다. 출퇴근시간이라 호놀룰루 시내는 차량이 홍수를 이루고 있기도 하지만 내비게이션 아가씨의 서투른 한국말 안내가 운전을 버벅거리게 한다.

렌트를 할 때 한국어버전으로 된 내비게이션을 함께 렌트를 했는데, 한국말 코멘트가 영 시원치 않아 운전을 하는 데 혼선을 빚어내게 한다. 내비의 한국말 코멘트는 매우 간단하다. "100미터 앞 우회전", "좌회전", "적당한 곳에서 유턴", "그리고 목적지 도착"... 뭐 이런 식이다. 두 번 반복하는 일이 없고 딱 한 번 코멘트를 하는데, 차량 속도보다 코멘트가 늦어 갈림길에서 방향을 놓치기 십상이다.

돌 플랜테이션까지 오면서도 진주만으로 가는 인터체인지에서 길을 잘못 들어 다시 돌아오는 착오를 범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곳 호놀룰루는 한적한 카우아이와는 달리 자동차들이 속력을 내고 운전도 거칠다. 그러나 호놀룰루 시내를 벗어나자 곧 한적한 시골길이 이어져 운전하기도 편하고 쉬워졌다.

돌 파인애플 플랜테이션.
 돌 파인애플 플랜테이션.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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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플랜테이션 입구에 도착하자 회사의 브랜드 마크인 'Dole'이 빨간 글씨로 새겨져 있다. 중앙에 황금빛으로 빛나는 마크는 태양을 상징하고, 그 밑의 푸른색 라인은 수평선을 상징한다고 한다. 'Dole'이라는 로고는 우리나라 '돌'잔치의 돌자와 같은 발음이어서인지 어쩐지 친근감이 간다.

9시가 되어 문을 열자 많은 관광객들의 우르르 몰려들었다. 물론 그들 모두가 먼저 찾아 간곳은 아이스크림 매장이다. 돌에 도착한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먼저 상큼한 파인애플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투어를 시작한다. 동행한 경이는 완전 채식주의자로 우유와 치즈가 섞인 아이스크림도 먹지 않는다. 그런데 이곳의 파인애플아이스크림은 순수한 파인애플로 만든 아이스크림이라고 한다.

아이스크림을 뽑아내는 아가씨의 옷에도 파인애플이 그려져 있다. 파인애플로 만든 아이스크림 종류도 12개로 모양도 다양하다. 가장 대표적인 아이스크림이 우리가 흔히 먹는 휘프 콘(Whip Cone)이다. 콘에다가 채찍처럼 휘감아 높게 틀어 올린 모습이 너무나 먹음직스럽다. 와플에 담은 와플 콘(Waffle Cone), 와플 보울(Waffle Bowl)도 있고, 파인애플처럼 갈라져 틀어올린 거대한 모양의 파인애플 스플릿(Pineapple Split)도 있는데 값이 25달러 95센트나 된다. 신선한 파인애플을 주 원료로 만든 아이스크림이라 모두 한번 먹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휘프 콘 파인애플 아이스크림
 휘프 콘 파인애플 아이스크림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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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부터 아이스크림이 불티나듯 팔려나갔다. 우리도 돌 휘프 레귤러 콘(Dole Whip Regular Cone)을 선택하였는데 가격은 5불 50센트로 꽤 비싸지만 양이 생각보다 엄청 많다.

파인애플 아이스크림은 마치 만년설에 뒤덮인 알프스 마테호른 꼭대기처럼 가파르고 날카롭게 솟아 올라있다. 아, 이걸... 그냥 먹지 않고서는 배겨나지 못할 정도로 구미가 당긴다. 한 입 핥아먹어보니 달콤하고 새콤한 맛이 그만이다!

넓은 야외 후원에는 파란색 파라솔을 꽂아놓은 테이블이 여러 개 놓여 있다. 사람들은 테이블에 앉아 아이스크림도 먹고 각종 스낵을 먹기도 한다. 후원에는 노란색의 거대한 파인애플 모형을 세워놓았는데, 그 위에 파인애플 아이스크림을 얹어 놓았다. 그 모습이 만년설로 뒤덮인 히말라야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아이스크림 조형물 속에서 파인애플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기념촬영을 한다. 특히 아이들이 가장 좋아한다.

돌 플랜테이션에는 파인애플 농장을 돌아보는 기차가 있다. 기차를 타고 파인애플 농장을 한 바퀴 돌아보는데, 연두색의 파인애플 모종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펼쳐져 있다. 파인애플을 파파야나 코코넛열매가 달리는 야자수처럼 키가 큰 식물로만 연상을 했었는데 연록색의 연한 잎이 땅에서 자라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실감이 안 난다. 브라질이 원산지인 파인애플은 여러해살이풀로 잎이 50~120cm까지 자란다고 한다.

끝없이 펼쳐진 돌 파인애플 플랜테이션
 끝없이 펼쳐진 돌 파인애플 플랜테이션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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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 지 14~16개월 정도 자라면 잎들의 중앙에서 솔방울처럼 생긴 꽃차례가 올라온다. 꽃차례는 진한 분홍색을 띠며 자줏빛을 띤 꽃이 톱날처럼 길게 피어난다. 화피의 밑동에 여섯 개의 수술이 피어나고 그 가운데 1개의 암술대가 올라온다. 암술에서 원통모양의 파인애플이 열매 하나가 달린다.

이 아름다운 꽃에서 파인애플 열매가 열린다니 참으로 신기하기만 하다. 작은 꽃들이 각각 작은 과실로 발달하고. 작은 과실들의 과육은 그들이 붙어 있던 꽃대와 결합해서 열매의 한 형태인 집합과(集合果)를 이룬다니 신기하기만 하다. 집합과의 꽃대는 노란색 열매로 발달하고, 꽃차례를 싸고 있던 두껍고 단단한 잎 모양의 구조물인 포(苞)는 파인애플의 겉껍질로 발달한다.

파인애플 꽃
 파인애플 꽃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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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 모양은 꽃잎이 하나둘 떨어져 나가며 원통모양, 원뿔모양, 달걀모양으로 익어간다. 처음에는 녹백색이지만 익어가면 점점 황갈색으로 변하며 향기가 난다. 그 모습이 마치 솔방울 같아서 '파인애플(pineapple)'이란 이름도 영어의 솔방울을 지칭하던 'pineapple'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거대한 수류탄이 쑥 터져 나온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먹는 부분은 꽃턱과 씨방, 포의 밑동과 꽃대가 합쳐진 것으로 물기가 많은 과육이다. 담백하고 단맛과 신맛이 조화되어 상쾌한 맛이 난다. 열매 속에는 비타민 C가 많이 들어 있고, 브로멜린이라고 하는 단백질 분해효소가 들어 있어 육류의 소화를 돕는다고 한다. 그러나 덜 익거나 익기 전에 수확하여 억지로 익힌 것은 산과 수산석회 등이 섞여있어 구강을 침해한다고 한다.

파인애플 꽃에 솔방울 같은 과실로 발달한다.
 파인애플 꽃에 솔방울 같은 과실로 발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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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파인애플 농장에는 육묘를 해 놓은 파인애플이 자라나는 모습이 잘 진열되어 있다. 꽃이 피어나기 전, 꽃이 핀 모양, 그리고 꽃이 지고 파인애플 열매가 달린 모양을 볼 수 있어 파인애플이 탄생하는 과정을 자세히 체험할 수 있다.

돌 플랜테이션은 창업자인 제임스 드러먼드 돌(James Drummond Dole)이 1900년에 첫 번째 파인애플 농장을 세웠던 곳이다. 그는 하와이 주지사로 재직했던 샌포드 돌의 사촌으로 당시 많은 사람들이 실패했던 파인애플 재배에 성공하여 '파인애플 킹'이라 불리기도 했다. 돌은 '품질'과 '신선' 두 가지 기준을 모두 만족시키기 위해 원산지 관리부터 재배환경, 농업기법, 품질관리, 수확 방법까지 전 과정을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관리하고 있다.

돌은 초등학교에서 '돌 파이브어데이 프로그램(Dole 5 A Day Program)'을 시작했는데, 하루에 5가지 이상의 과일과 야채를 먹자는 캠페인을 벌려 육식위주로 각종 성인병이 만연한 미국사회에 큰 호응을 얻었다. 1996년 돌 브랜드는 미국 소비자 만족도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소비자들의 믿음을 얻었다. 불량식품을 남발하는 국내 식품업자들이 새겨들을 만하다.

'천국' 뒤에 숨겨진 한인 이민 1세들의 애환

그러나 하와이의 파인애플 재배는 한국인이 노동이민을 시작한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1903년 1월 13일 102명의 한국인이 갤릭호를 타고 호놀룰루항에 도착을 한 이후, 1905년 까지 약 7천 명의 한국인이 하와이로 이민을 갔다. 이들은 하와이 한인 이민 1세들로 주로 사탕수수 밭에서 가혹한 노동을 하며 거의 노예생활처럼 힘든 생활을 해야 했다.

1908년부터 이곳 돌 파인애플 농장에서도 한인들이 처음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는데, 1915년에는 123명이 일하고 있었다고 한다. 1938년까지는 141명의 한인 남자들이, 그리고 235명의 한인 여성들이 파인애플 산업에 종사했다. 그 당시 남자들은 1주일에 약 19달러, 여성들은 13달러를 받았다. 파인애플 산업에 종사하는 상당히 많은 한인들이 오아후 섬 중앙에 위치한 와히아와(Wahiawa)에 한인촌을 형성할 정도였다고 한다.

하와이는 우리 민족이 19세기에 북미대륙으로 진출하는 길목이자 전초기지였으며, 서양을 동양으로 잇는 가교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당시 하와이 백인 사탕수수 농장주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영리목적만을 위하여 동양인 근로자들을 반노예화했으며, 동양인들의 땀과 희생으로 이곳을 기지화 하였다. 이것이 '천국'이라 불리는 하와이의 이면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 <하와이 한인 이민 1세 및 아메리카로 가는 길>, 웨인 패터슨 저, 정대화 역)


태그:#하와이 돌 파인애플 농장, #하와이 이민 1세, #돌 파인애플 아시스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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