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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칠머리당영등굿전수관 개관식에는 권영수 행정부지사, 김종진 문화재청 차장, 문무병 제주전통문화연구소 이사장, 강정효 제주민예총 이사장, 김수열 시인 등이 참석하여 개관을 축하하였다.
▲ 2016년 6월 17일 제주칠머리당영등굿전수관 개관을 위한 테이프 커팅식 제주칠머리당영등굿전수관 개관식에는 권영수 행정부지사, 김종진 문화재청 차장, 문무병 제주전통문화연구소 이사장, 강정효 제주민예총 이사장, 김수열 시인 등이 참석하여 개관을 축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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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7일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 전수관 개관식이 진행됐다. 제주시 건입동 사라봉에 본향당을 모시고 있는 제주 칠머리당은 과거 유신정권 시절 '미신 타파'라는 미명 아래 굿을 금지하던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제주의 영등굿을 계승·발전시켰다.

그 인내의 세월이 빛을 발해 1980년 11월 17일에 중요무형문화재 71호로 지정됐고, 2009년 9월 30일에는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이 결과가 있기 까지 고 안사인(칠머리당 영등굿 1대 중요무형문화재) 심방(무속 예술인을 뜻하는 제주도말)의 끊임없는 노력이 큰 역할을 했다. 현재는 김윤수(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 기능 보유자) 심방이 뒤를 이어 제주 굿 문화의 무속 예술을 계승·발전시키고 있다.

김윤수 심방은 지난 199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 제주칠머리당영등굿 기능 보유자가 되었으며 현재까지 제주의 굿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 김윤수 제주칠머리당영등굿보존회 회장 김윤수 심방은 지난 199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 제주칠머리당영등굿 기능 보유자가 되었으며 현재까지 제주의 굿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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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수 심방은 무엇보다 2012년부터 시작된 생생문화재의 일환으로 제주의 영등굿을 대중 문화로 이끌었으며 2016년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그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 전수관 개관식은 제주의 굿 문화사에 한 획을 긋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억압의 시대를 극복하고 국가와 국민의 지원과 관심 속에서 제주의 굿 문화를 계승 전수할 수 있는 '무속 예술 대학'의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칠머리당 영등굿 전수관 개관식과 더불어 '성주풀이'가 개관을 축하하러 온 많은 참가자들의 관심 속에 거행됐다. 이 기사를 통해 제주 칠머리당의 주관으로 연행된 '성주풀이' 현장을 글과 사진 그리고 동영상으로 소개한다. 현대인에게 집이란 무엇인가를 되새겨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신주단지에 모셨던 집안의 신, 성주신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새 집을 짓거나 이사를 가면 반드시 성주풀이를 했다. '성주풀이'란 '새 집을 짓고 나서 인간이 들어가 살기 전에 먼저 성주신을 청해 모시는 맞이굿'이다. 성주신은 부자집이라 해서 들어오고 가난한 집이라 해서 외면하지 않는다. 기와집, 초가집, 움박집 등 모든 종류의 집에 깃들이는 공평한 신이다.

단, 신이 스스로 들어오는 게 아니라 반드시 인간이 온갖 예를 갖춰 청해야 비로소 집에 들어온다. 따라서 형식과 규모는 달라도 이사를 하면 어떤 방식으로든 예를 갖춰 성주신을 모셨다. 양반 부잣집은 성주풀이를 크게 열어 신을 모시고 마을 사람들과 음식을 나눴고, 서민들은 정한수 한 그릇, 팥죽 한 그릇이라도 떠놓고 비념하며 성주신을 모셔 들이고 이웃과 시루떡을 나눠 먹었다.

또한 성주신은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구체적인 신체(神體)의 형태로 집안의 가장 중요한 곳에 모셔졌다. 신체는 지역에 따라 달랐다. 서울에서는 흰 종이에 동전을 싸고 깨끗한 물을 부어서 대들보에 붙여놓고 마르기 전에 흰쌀을 던져 그 위에 붙였고, 평안도와 함경도에서는 쌀 등의 곡식을 담은 성주단지를 모시기도 하였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신주단지는 성주단지의 음운 변화의 결과물로 같은 개념이다. 그리고 제주에는 성줏기 조각을 물에 개어 작게 뭉친 다음 대주가 마루의 사방 기둥에 던져 붙이는데, 이것은 다른 지역에서도 방법은 다르지만 대동소이해 보인다. 성줏기를 막걸리에 축이는 방법, 성줏기를 길게 접어 가운데를 실타래로 묶어 상기둥의 위에 나무 못을 박아 걸어두는 방법 등 다양하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북어를 실타래로 감아 대청마루 천장에 걸어놨고, 새 집으로 이사하는 날이면 외할머니가 팥죽을 준비해 집안 곳곳에 뿌리며 비념하곤 했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돌이켜 생각하니 이 모두가 성주풀이의 한 방식이었던 것이다.

'성주'와 '풀이'라는 복합어는 지역에 따라 성주(城主)와 성조(成造) 혹은 상주천신(上主天神) 등으로 '집안의 주인' '집을 만들다' '하늘의 천신'이라는 의미로 아울러 하나의 큰 뜻으로 통한다. 성주신은 가택신(家宅神)의 으뜸으로서 새 집에 성주신을 들여 모셔들인 다음에야 조상을 위한 제사는 물론이려니와 명절 차례도 지낼 수 있었다.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명절날 차롓상이나 제삿상에 가장 먼저 준비하는 것이 바로 성주상이기도 하다.

집안에 들어온 성주신의 역할은 그야말로 다양했다. 군문을 거느린 화덕사자(火德使者)가 대문을 열고 들어설 때 성주신이 떡 하고 버티고 있으면 얼씬도 하지 못하고 줄행랑을 쳐, 화재를 예방해 주는 등 모든 잡귀를 물리쳐 준다고 믿었다.

또한 옛사람들은 대대로 자손도 번창해 아들은 장원급제해 고관대작이 돼 충신이 되게 해주고 딸은 감부인(甘夫人), 도대부인(都大夫人), 정절부인, 숙절부인, 정부인, 열녀 충신이 되게 해준다고 믿었다. 소는 낳으면 황소가 되고, 닭은 낳으면 영계가 되며, 말은 낳으면 영마가 되고, 돼지는 낳으면 토신이 되게 해주십사 성주신에게 빌었다.

지역에 따라 성주풀이의 규모와 형식은 다소의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사를 하면 반드시 예를 갖추어 성주신을 모셔들였고 성주신이 집과 가족을 지켜 준다는 기본적인 개념은 동일했다.

제주 성주풀이 중 '강태공수목수' 굿중 놀이

날짜 : 2016년 6월 17일
장소 : 제주칠머리당영등굿전수관
연행 : 이용옥 심방
강태공서목시 : 이태훈 소무

제주 성주풀이의 제차는 일반적으로 초감제 - 추물공연 - 강태공수목수 - 문전본풀이 - 각도비념 - 상당숙임·액막이 - 도진의 순서로 이뤄진다. 여기서는 다른 지방에서는 보기 힘든 '강태공수목수' 굿중 놀이 부분만을 간추려 소개하고자 한다.

있은 제주칠머리당영등굿전수관의 성주풀이는 이용옥 심방이 연행하였다.
▲ 2016년 6월 17일에 있은 제주칠머리당영등굿전수관의 성주풀이는 이용옥 심방이 연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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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성주풀이의 젯상은 일반적으로 마루 등 집안에서 가장 중요한 곳에 진설한다. 병풍을 세우고 그 앞에 탁상을 차리며 성주상은 적절한 각도로 접어 놓은 병풍 위에 선반을 얹어 놓고 진설하는데 이를 우알상이라 한다.

진설된 제상. 탁상과 성주상의 위치.
▲ 제주칠머리당영등굿전수관의 전시실에 진설된 제상. 탁상과 성주상의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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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가지에 기메 장식을 단 살전지 3개와 성주꽃 2개 그리고 제물을 진설한 우알상 상차림이다.

성주풀이와 요왕맞이 등에서 차린다.
▲ 제주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우알상은 성주풀이와 요왕맞이 등에서 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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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성주풀이에 등장하는 '강태공수목수'는 누구?

성주풀이에 등장하는 '강태공서목시'라는 주인공의 이름은 어디에서 유래된 것일까? 우리가 알고있는 역사적인 인물인 '중국 위수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주 무왕을 기다렸던 그 강태공'인지 아니면 강태공이라는 동명이인의 뛰어난 목수가 존재했는지에 대한 자료를 조사하던 중, 뜻밖에도 '건축 의례를 통해 본 전통주거의 공간구조와 의미에 관한 연구'(정영철)라는 논문에서 강태공이라는 이름이 등장하면서 궁금증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한옥을 지을 때 목수의 세계에서는 건축 의례를 대단히 중요시 여긴다. 그중 하나가 바로 개공제(開工祭)이다. 즉 집 짓는 공사를 시작하며 올리는 텃고사인데 기둥감이나 도리감 등에 '강태공재차(姜太公在此)'라는 글귀를 써서 다듬은 나무에 붙여놓고 집을 다 지을 때까지 깨끗하게 잘 관리하면서 붙여놨다고 한다.

목수가 집을 지으며 강태공을 신처럼 모신 이유는 16세기에 지어진 명나라의 판타지 소설 <봉신연의(封神演義)>에서 비롯한다. 소설 속에서, 뛰어난 병법과 신기한 도술을 부려 온갖 요괴를 멸하고 주나라의 위세를 떨치게 한 강태공은 한마디로 '천하무적' '해피엔딩' 주인공이었다. 당시 봉신연의 소설이 얼마나 인기였는지, '입춘날 대문에 강태공이 여기에 있다는 뜻의 '강태공재차(姜太公在此)'라고 써 붙이기만해도 온갖 잡귀가 무서워 도망간다고 믿을 정도였다(조선도교사/이능화)'고 한다.

이후 '강태공재차'는 '입춘대길'로 바뀌었지만 집 짓는 개공식에는 여전히 남았다. 강태공처럼 천하무적 도술가의 손으로 지어진 집이라면 그 어떤 잡귀도 얼씬하지 못할 것이라는 유감주술(類感呪術 / homeopathic magic)의 일종인 것이다. 한 가지 더 재미있는 사실은, 기원전 1017년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강태공은 사후 2700년이 지난 16세기에 소설 <봉신연의 / 육서성>로 재탄생해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더니, 20세기의 일본 만화 <봉신연의 / 후지사키 류>로 또다시 태어나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했다. 역사적으로 이렇게 오랜 세월동안 소설과 만화의 작품으로 거듭나며 대중의 사랑을 받은 인물도 드물다고 할 수 있다.

제주 성주풀이에 등장하는 강태공서목시는 강태공 수목수(首木手 / 뛰어난 목수)의 음운변화로서 자료에 따라 강태공수목수 혹은 강태공서목시로 표기돼 있다. 이 글에서도 내용에 따라 양자를 모두 적절하게 표기하기로 한다. 또한 연극적인 요소로 풀어간 '굿중 놀이'이므로 여기서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플롯으로 나눠 사진을 곁들였으며 맨 마지막에 동영상을 첨부했다.

해학과 재치가 넘치는 '강태공서목시'

구름을 마시고 바람을 타고 다니는 강태공서목시가 사는 곳은 한라산. 그의 캐릭터는 망탱이에 제물을 가득 담고 어깨에는 도끼를 울러메었으며 머리에는 흰 수건을 질끈 동여맨 목수의 상징이다.

칠머리당의 이태훈 소무
▲ 강태공서목시역을 맡은 칠머리당의 이태훈 소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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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롯 01] 강태공서목시를 부르는 심방

강태공서목시가 사는 곳은 한라산이지만 퍼뜩허면 이산 저산 아흔아홉 굼부리마다 노닐고, 퍼뜩허면 물도 넘어 놀아 세계 곳곳 안가는 곳이 없다. 그래서 어느 산, 어느 계곡에 있는지 목이 터져라 불러야 겨우 그 모습을 드러내준다. 추물놀이가 끝나자 심방이 관람객을 대상으로 '강태공서목시여!'라며 애타게 찾는 서설을 읊자, 주위에서 흥겨운 장단을 맞추어 주며 굿판은 갑자기 축제의 분위기로 술렁거린다.

강태공서목시는 심방이 부른다고 해서 냉큼 달려오지 않는다. 심방이 두 번 부르면 저 멀리에서 모습은 보이지 않고 휘파람을 불어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세 번 부르면 그제야 대답을 해준다. 그러나 쉽게 다가오지 않아 심방이 버선발로 찾아 나선 후에야 살짝 그 모습을 보여주고 요리조리 익살스럽게 도망다니며 주위 사람의 웃음을 자아내고 심방의 애간장을 태운다.

엉덩이 춤을 추며 도망가는 강태공서목시와 그의 뒤를 버선발로 쫓아가는 심방
▲ 살랑살랑 엉덩이 춤을 추며 도망가는 강태공서목시와 그의 뒤를 버선발로 쫓아가는 심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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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의 숨박꼭질끝에 심방은 석자오치 광목수건을 강태공서목시의 목에 감아 데리고 들어와 성줏상 앞에 앉힌다. 그러나 강태공서목시는 죽은 척을 하고 심방이 '봄빙애기 조름불민 살아난 댄 허여라' 하며 엉덩이를 철썩 한 대 치고 나서야 다시 살아나는 척하며 바로 앉는다.

제주의 성주풀이는 수많은 학자의 연구대상으로서 그 취재열기도 대단하였다.
▲ 강태공서목시의 목에 광목을 감아 데리고 들어오는 심방 제주의 성주풀이는 수많은 학자의 연구대상으로서 그 취재열기도 대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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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롯 02] 강태공수목수의 신분과 능력 확인 

드디어 심방과 성줏상 앞에 마주 앉은 강태공서목시는 자신이 얼마나 빼어난 목수인지를 강태공이라는 이름을 빌어 큰소리치며 서설하고 망탱이에 담아온 제물을 심방 앞에 하나씩 꺼내 설명과 더불어 나열해 보인다. 망탱이에 담아온 제물은 강태공서목시가 한라산에 살며 산신님께 제사지냈던 것으로서 신성함의 상징이다.

자루 안에는 된장, 소금, 미역, 담배 은숫가락, 놋숫가락 등등이 담겨있으며 이 모두에는 상징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 자루에 담아 온 제물을 심방에게 보이며 강태공서목시 자루 안에는 된장, 소금, 미역, 담배 은숫가락, 놋숫가락 등등이 담겨있으며 이 모두에는 상징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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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롯 03] 날감상

강태공서목시는 심방 앞에서 왼쪽으로 한 번 오른쪽으로 한 번 뒤집을 때 마다 집 짓는 연장의 이름을 대며 자신의 도끼 한 자루가 이 모든 연장을 아우르는 신기방기한 도끼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리고 서울의 열녀문과 남대문, 동대문, 창경궁 그리고 청와대까지 모두 이 도끼 한 자루로 뚝딱 지은 집이고 제주의 관덕청도 지었다고 자랑하며 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신범한 목수가 바로 강태공서목시 자신임을 과시한다.

돌레떡으로 도끼날을 설겅설겅 갈아 집주인 혹은 관람객 중의 한 사람을 성줏상 앞으로 데리고 나와 그의 머리카락을 싹뚝 잘라 보이는 시늉을 하며 날이 잘 서 있는지를 익살스럽게 확인하고 '영등산의 덕(德)이 깃든 나무를 베러 갈' 준비를 한다.

데항기, 소항기, 번자귀, 곱자귀, 데톱, 소톱, 전미리, 후미리, 곱은자 등 집짓는 모든 도구를 하나로 아우르는 신기방기한 도끼이다.
▲ 강태공서목시의 도끼 한 자루는 데항기, 소항기, 번자귀, 곱자귀, 데톱, 소톱, 전미리, 후미리, 곱은자 등 집짓는 모든 도구를 하나로 아우르는 신기방기한 도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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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롯 04] '영등산에 덕든 남 베자!'

강태공서목시는 도끼를 울러 메고 '영등산에 덕든 남 베자'라고 노래하며 도끼질로 나무를 찍어내는 시늉을 하는데 밖에서부터 시작해 온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 마지막으로 제장에 들어선다.

이것은 미래와 현재가 공존하는 두 가지 의미의 플롯으로, 도끼를 들고 '영등산의 덕이 깃들어 있는 소나무를 베어 집을 짓겠다'는 뜻이기도 하고, 이미 지어진 새 집의 돌과 나무에 도끼질을 함으로써 동티를 제거한다는 주술적 의미이기도 하다.

따라서 강태공서목시가 노래하며 도끼질을 할 때마다 소무들이 북과 설쒜를 크게 울려 잡귀를 쫒아 내는 역할을 하고 관객들도 그 뒤를 따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새 집의 동티를 모두 제거하는데 한 몫을 하기도 한다.

구성진 노랫가락 속에 나오는 '영등산'은 제주의 상징인 한라산으로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역사적인 사료인 <사기>와 <신증동국여지승람> 그리고 <탐라지> 등에 제주의 영주산(瀛洲山)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영주산은 봉래산과 방장산과 더불어 신령한 '삼신산'의 하나로서 '영모루' 또는 '영머리'라고도 했다.

불로불사(不老不死)의 약초를 찾아 진시황이 서불을 보낸 곳으로 전해지는 영주산은 현재의 한라산이다. 제주에 영등산이 없는 것으로 보아 성주풀이가 구전으로 전해지던 과정에서 영주산이 영등산으로 되지 않았을까 추측해볼 수 있겠다.

강태공서목시역을 맡은 칠머리당의 양승건 소무
▲ 새 집의 동티를 제거하기 위해 도끼를 든 강태공서목시역을 맡은 칠머리당의 양승건 소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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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롯 05] 성주대 꺾음

영등산에서 덕이 든 나무를 해 온 강태공서목시가 집안의 가장 중요한 상깃기둥에 성줏대를 세워놓고 도끼로 한 번에 베어내는 모습을 재현하자, '낭 끈는 건 보난, 신범한 목신 신범한 목시여'라고 덕담을 해준다. 강태공서목시는 그 나무를 모아 본격적인 집짓기에 들어간다.

재연하며 집지을 나무를 준비하는 모습
▲ 실제로 나무 자르는 모습을 재연하며 집지을 나무를 준비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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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롯 06] 모의적인 집짓기와 입주상량

강태공서목시는 좌청룡 우백호에 남주작 북청묵의 터에 집을 짓기 시작한다. 사과와 배를 두 쪽으로 잘라 주춧돌로 삼고 그 위에 기둥을 세우고 댓가지를 가로로 놓아 서리를 삼고 세로로 놓아 들보를 놓고, 백지로 장식하여 기와를 삼아 상량을 들어 올릴 때 집주인과 관객들은 앞다퉈 지폐로 인정을 걸어준다.

을 마무리하는 강태공서목시
▲ 다 지어올린 집의 상량 을 마무리하는 강태공서목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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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롯 07] '쒜띄움'

'지남석 나경판 걸륭쒜 띄우레 가자.'

'쒜'란 나침판을 이르는 제주도말이다. 상량식을 마친 뒤 모의로 지어진 집 아래 놓여진 물사발 위에 신칼을 나란히 얹고 그 위에 동전 모양의 쒜를 올린다. 그리고 신칼을 벌려 물사발 안으로 쒜를 떨구어 '집이 옳바른 향으로 앉혀 졌는지'를 점괘로 확인하고 사발에 떨어진 쒜를 다시 신칼 끝으로 튕겨 낸 모양으로 집터의 지기(地氣)를 살펴 대주에게 그 결과를 알려 준다. 그리고 다 지어진 집을 신칼로 툭 쳐서 순식간에 부숴버린다.

강태공서목시의 집
▲ 한 순간 부숴진 강태공서목시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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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부찜

강태공서목시의 집짓기 놀이굿이 끝나면 성주신을 새로운 집에 모셔 앉히는 의식을 치르는데 그것이 바로 '지부찜'이다. 성줏기 조각을 물에 개어 작게 뭉친 다음 대주가 그것을 집안 가장 중요한 곳, 마루의 사방 기둥에 던져 붙인다.

이때 한 번에 척 하고 달라붙어야 성주신이 집안으로 잘 들어와 앉았다고 여기고 심방과 소무 그리고 관객 모두가 서로 어울려 서우젯가락에 맞춰 노래하고 춤추며 새 집을 축하해준다.

지부찜을 던지고 있다.
▲ 제주 칠머리당의 김윤수 심방이 지부찜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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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부찜의 모습
▲ 기둥에 척 하고 달라붙은 지부찜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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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며

성주풀이 혹은 성주신에 대해 요즘 세대는 어떻게 알고 있을까 궁금해 몇몇 젊은이들을 인터뷰해봤다. 많은 이들이 "내가 사는 집에 신을 모시고 산다고요?"라면서 뜬금 없다는 표정으로 반문한다.

우리가 흔히 표현하는 '신주단지'가 바로 성주신을 모신 '성주단지'와 같은 말이고, 5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의 삶 속에 녹아있던 평범한 일상이었다고 간략하게 성주풀이에 대해 설명해줬다 그러자 "정말요?"라며 쉽게 수긍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불과 반세기 전의 우리 일상사를 마치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처럼 여겨 역사인식을 근시로 만들어 버린 이유가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명이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선 난쟁이와도 같은 현대인에게 자연의 존재는 복잡한 도심에서 벗어나 머리를 식히고 즐기는 힐링의 대상이 돼 버렸다. 시멘트로 지어진 집에 살고 아스팔트로 덮어버린 도로를 질주하며 이 땅이 점점 숨 막혀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자연 위에 군림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자연을 대우주 그리고 집을 소우주라 여기며 살았던 우리 민족은 집을 짓기 위해 나무 한 그루를 벨 때에도 의식을 갖춰 예를 행한 후에야 비로소 도끼질을 할 수 있었다. 또 주춧돌 하나 놓을 때에도 그 땅에 예를 갖췄다. 새 집의 돌과 나무에 도끼질을 하며 동티를 제거하는 행위는, 집을 짓기 위하여 나무를 베고 땅에 기둥을 박는 등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자연(自然)'을 훼손한 것에 대한 인간의 경외심(敬畏心)을 성주풀이 속에서 표현한 것이라는 사실에 우리는 새삼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점점 사라져가는 '성주풀이'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참고 자료]

이두현 기증 무가연구(국립문화재연구소) / 성주풀이의 의례적 특징(강정식) / 건축의례를 통해 본 전통주거의 공간구조와 의미에 관한 연구(정영철) / 제주민속극(문무병) / 제주도무가본풀이사전(진성기) / 제주도무속자료사전(현용준) / 청남 권영한 홈페이지 / 성주굿(황루시) / 성주풀이(口誦:權 豪 容, 採錄崔: 吉 城 <陸士專任講師> 논문) / <황제풀이> 무가연구(염원희 경희대학교 강사 논문) / 건축신화 <성주풀이>로 본 대목수의 위상 논문(임재해)


태그:#제주, #성주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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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우도에서 살고 있는 사진쟁이 글쟁이입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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