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물론, 유럽과 세계 역사의 분수령이 될 사건이 벌어졌다. 지난 24일, 영국의 국민 투표에서 영국인들 51.9%가 찬성함으로써 '브렉시트(EU 탈퇴)'가 결정된 것이다. 그러나 최종 결정이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갈등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잔류를 지지했던 '캐머런 총리'는 사임 의사를 밝혔고,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는 독립을 재시도하는 등 브렉시트와 관한 갈등 봉합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유럽은 EU의 결속과 균열의 위기로 비상이 걸렸고, 세계 역시 주식시장이 요동치는 등 우리는 지금 역사의 현장을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중동의 난민 사태로 인한 반(反)이민 정서, 즉 '정주민과 이주민 간의 갈등'에서 촉발되었다.

블리자드 영화의 서막

 몇 년 전부터 워크래프트 시리즈가 영화로 제작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모든 팬들은 광란의 도가니에 빠졌을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워크래프트 시리즈가 영화로 제작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모든 팬들은 광란의 도가니에 빠졌을 것이다. ⓒ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


'블리자드' 게임의 광팬이라고 말할 만큼 내가 모든 게임을 섭렵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시네마틱 영상과 줄거리 등 게임들의 설정에 푹 빠졌다는 건 확실하다. 최근 몇 년 사이, 타락의 남발과 모순되는 설정 등으로 팬들의 원성을 사고 있지만,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 군단> 트레일러 등 그들의 수준 높은 시네마틱 영상들은 여전히 가슴을 벅차오르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시네마틱 영상을 영화로 옮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에 잠기곤 한다. 블리자드는 그런 독보적인 매력이 있다. 게임을 게임으로만이 아닌, 글과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즐길 수 있게 해주어, 오감을 만족시키는 매력 말이다.

그러던 중, 몇 년 전부터 워크래프트 시리즈가 영화로 제작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모든 팬들은 광란의 도가니에 빠졌을 것이다. 물론 약 3분에 불과한 시네마틱 영상을 제작하는 데 2년이 걸린다는 소리를 듣고 나니 그게 가능할지 의문이 들긴 하였으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통해 '마블 코믹스'가 대중화되었듯, 블리자드 게임 역시 워크래프트를 시작으로, '스타크래프트'와 '디아블로', 그리고 최근의 '오버워치'까지 영화화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망상에 부풀었다.

그러나 개봉일이 다가올수록 공개되는 스틸 컷들과 영상들을 보고, 영화에 대한 걱정과 우려가 확산되어 갔다. 어딘가 조잡해 보이는 영화 속 마법 장면들과, 그것을 사용하는 우스꽝스러운 '카드가'의 모습, 게임과는 다르게 저급한 생김새의 '지옥불정령' 등 영화의 일부 장면들은 블리자드 팬들에게 다음과 같은 두려움을 심어주었다. '파이널 판타지' 등 많은 게임 기반 영화들이 흥행에 참패했듯, 워크래프트 역시 흥행에 실패하여 워크래프트는 물론 스타크래프트와 디아블로 등 블리자드의 영화계 진출은 이대로 물거품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실제로 외국의 유명 영화 정보 사이트인 '로튼토마토'나 '메타크리틱'에서 개봉 전에 이루어진 <워크래프트>의 평가는 매우 저조했다. 

무난한 출발

 인간이 모두 평등하다는 의미는 실제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일치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모두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가치 아래에서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모두 평등하다는 의미는 실제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일치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모두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가치 아래에서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 UPI코리아


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워크래프트>는 개봉 당시 원작 팬들의 호응 덕분인지 박스오피스 1위를 거머쥐었다. 그리고 25일 현재 누적 관객수는 약 111만 명을 기록했다. 북미에서는 흥행에 어려움을 겪었다지만, 워낙 인구가 많고 '와우'의 인기가 높은 중국에서 많은 관객을 동원하였기에 다음 시리즈의 제작을 기대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나 역시 시험기간 때문에 개봉하자마자 관람하지는 못했지만, 열흘 정도가 지난 뒤에 간신히 관람할 수 있었다. 애초에 콩깍지가 씌어있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영화 자체는 무난했다고 생각한다. 원작과 설정이 바뀐 점이 있었으나, 설정 변경은 원작 자체나 마블 역시 마찬가지이고 빠른 진행 역시 이미 원작의 내용을 알고 있었던 터라 크게 문제는 되지 않았다. 다만 '가로나'의 밑도 끝도 없는 러브라인과, 2000년대 초반 만들어진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전투를 아직 뛰어넘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오크의 가공할만한 위력은 멋있었지만, 인간들이 기마돌격 등이 아니라 총을 뻥뻥 쏴대며 회전을 벌이는 모습은 기대와 달랐다.

하지만 <반지의 제왕> 시리즈보다는 다양한 마법 시전 장면이나, '듀로탄'과 '굴단' 등 인상적인 오크의 모습들은 퍽 마음에 들었다. 반지의 제왕이나 마블 등 여타 판타지 및 히어로 영화들은 절대선과 절대악의 대결 구도였다면, 인간과 오크의 대립은 보는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것이 오늘날 일명 '와우저'들을 '얼라이언스'와 '호드'로 양분한 원인이 아닐까 싶다. 따라서 각자의 사연을 잘 그려내는 것이 앞으로 워크래프트 시리즈의 흥행을 결정지을 것이다. 나 역시 어서 다음 시리즈를 보고 싶다.

두 개의 운명 하나의 세계

<워크래프트>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자면 먼저 '불타는 군단'의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영화 시간 상 많은 부분이 생략되었지만, 그 부분 중 하나는 불타는 군단과 살게라스에 대한 이야기이다. 타락한 티탄 중 하나인 살게라스는 에레다르인 킬제덴과 아키몬드 등을 타락시키고 불타는 군단을 이끌며 세계를 파괴시킨다. 여기서 살게라스에 포섭되지 않은 벨렌 등 휘하의 드레나이는 원래 살던 곳을 벗어나, 오크들이 사는 세계인 드레노어에 정착하게 된다. 그러나 불타는 군단은 인간들이 사는 아제로스를 침공하기 위한 초석으로 오크를 부리길 원하고, 이를 위해 주술사였던 넬쥴과 굴단을 끌어들인다. 결국 오크는 공존을 이어오던 드레나이들을 학살했으며, 이윽고 드레노어가 황폐화되자 아제로스까지 넘보고 침공하는 내용을 그린 것이 이번 <워크래프트 : 전쟁의 서막>이다.

브렉시트 문제 등 오늘날 현실 속에서 가장 화두가 되고 있는 것은 난민과 이민, 즉 토착세력과 이주세력의 갈등일 것이다. 빈라덴이 사살되고 이제는 테러가 잠잠해질까 기대를 품기도 전에 느닷없이 등장한 'IS'는 시리아 등 중동에서 내전을 일으켰고, 그 여파는 수많은 난민이 유럽 등으로 유입되는 것으로 귀결됐다. 그러나 기존에도 이슬람 등 다문화정책으로 시름하던 유럽은 이민자들로 인한 국내 갈등의 심화와 난민 틈에 섞인 IS의 테러 등으로 반(反)이민 정서가 확산되었다. 결국 초유의 사태인 브렉시트까지 초래된 것이다.

이처럼 모두가 풍요롭다면, 이전의 유럽처럼 정주민과 이주민들은 별 마찰 없이 화합에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주민들 때문에 자신들의 삶이 팍팍해진다면, 정주민들은 그들을 점차 배척하게 된다. 결국 이는 배타주의와 민족주의를 강화하게 되고, 그때부터 두 세력 간의 갈등이 시작되는 것이다. 모두가 언제나 풍요로울 수는 없기에, 이와 같은 갈등 양상은 불가피하다. 브렉시트를 선언한 영국부터가 켈트족 등이 살고 있던 영국에 게르만계의 앵글로색슨족이 이주함으로써 오늘날에 이른 것이지만, 스코틀랜드 등은 오늘날까지도 독립을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오랜 시간이 흘러도 하나의 세계에 두 개의 이질적인 세력이 공존하는 것은 멀고도 험하기만 하다. 이 사실은 유럽인들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남의 이야기는 아니다. 정말 끔찍한 상상이지만,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하고 오늘날까지 이르게 되었다면, 과연 일본인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았을까? 아니면 아이누, 부라쿠민과 같은 대접을 받았을까? 또한 바꿔 생각해, 우리는 외국인 노동자나 조선족 등에게 관대한 편인가?

공존과 똘레랑스

 나와 다른 존재를 존중하라고 해서, 애써 그들을 나와 똑같은 존재라고 억지로 생각할 까닭은 없다.

나와 다른 존재를 존중하라고 해서, 애써 그들을 나와 똑같은 존재라고 억지로 생각할 까닭은 없다. ⓒ UPI코리아


<워크래프트> 속에 등장하는 인간과 오크 두 종족의 대립 역시 토착세력과 이주세력 충돌의 일종이다. 오크는 그들의 고향인 드레노어가 황폐화되어 새로운 터전이 필요했고, 중동의 난민들처럼 새로운 곳을 찾아 목숨을 걸고 탈출을 결심했다. 다만 현실과 다른 점은 오크는 전투와 명예를 중시하는 종족이며, 새로운 터전을 위해 토착민들을 죽이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면에 그들의 터전인 아제로스를 지키기 위해 인간은 그들의 고향을 짓밟는 오크를 몰아내고자 최선을 다한다.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누군가의 터전을 뺏어야 하는 아이러니함이 이번 영화의 정수이다.

각자 나름의 사정이 있지만 이들이 공존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이 있을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질적인 것들이 공존하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관용을 베푸는 것이 필수적이다. 프랑스에서는 이를 '똘레랑스'라고 한다. 똘레랑스란 쉽게 말해 관용으로 해석할 수 있으나, 굳이 구분하자면 '상대가 처벌받지 않을 자유'를 뜻한다고 한다. 따라서 무조건적인 상대주의를 적용하여 상대의 모든 것을 수용하라는 뜻이 아니라, 상대방의 최소한의 권리를 존중하자는 것이 똘레랑스의 정확한 정의이다. 예컨대, 난민들과 오크들이 정착할 수 있는 터전처럼 최소한의 생활을 위한 것들이 해당할 수 있다.

물론 관용이 중요하다고 해서 갈등의 해결과 공존이 쉬운 것은 아니다. 세상은 늘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과연 영국 등 반이민 정서에 시달리는 유럽인들이 관용정신을 몰라서 사태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을까. 이들 역시 이 당연한 사실을 우리보다 먼저 알았을 테지만, 관용이란 것은 뜻대로 되지 않는 법이다. 예를 들어, 관용에 있어서 중요한 상대주의는 절대적인 법칙이 아니다. 인신 공양을 하는 야만부족이 있다면,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여 인신 공양도 존중해야 할까? 그것은 아니다. 인류공통의 가치규범, 절대적이고 최소한의 인권은 누구에게도 예외일 수 없기 때문이다. 관용에 예외가 없다면, 어떻게 우리가 북한의 인권탄압에 손가락질할 수 있겠는가.

물론 난민 문제에 한해서도 인권이라는 절대적인 가치가 작용한다. 그러나 이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들을 구제하는 것 역시 인권을 위한 것이지만, 그들을 구제하는 것으로 인해 테러의 위험이 증가하는 등 또 다른 인권이 위협받는다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난민을 구제하는 것도, 외면하는 것도 모두 인권을 위한 선택이 되기 때문이다. 힘없고 가난하다는 것이 꼭 '선(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영국인들은 국민 투표를 통해, 그들의 경제적 타격보다도 그들 토착세력의 '생존'을 선택했다. 누가 감히 그들을 함부로 비난할 수 있을까.

듀로타 그리고 오그리마

 공존을 위해서는 맹목적인 편견과 차별을 막아야 하고, 이를 방지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사고가 선행돼야 한다.

공존을 위해서는 맹목적인 편견과 차별을 막아야 하고, 이를 방지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사고가 선행돼야 한다. ⓒ UPI코리아


전쟁의 '서막'을 담은 영화 역시 인간과 오크의 공존은 아직 요원하기만 하다. 굴단의 진실을 눈치 챈 듀로탄은 인간과 손을 잡아 공공의 적을 제압하려 하지만 실패하게 되고, '막고라'를 통해 자신을 희생하였지만 이 역시 무위로 돌아갔다. 그러나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그의 자식인 '고엘'을 보여줌으로써 희망을 엿보게 하였다. (이후 내용은 다음 시리즈에 대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원작 내용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읽지 않는 것을 권한다.)

고엘은 노예란 뜻인 '쓰랄'로 살아가게 되고, 아제로스에 남은 그의 종족들과 함께 '칼림도어'로 새롭게 이주하게 된다. 이후 쓰랄은 불타는 군단의 침공으로 인해 칼림도어로 이주한 '제이나' 등 인간 생존자들, 그리고 '나이트엘프'와 연합하여 불타는 군단을 저지하게 된다. 아제로스에 평화가 찾아온 후, 쓰랄은 '듀로타'와 '오그리마'를 세우고 인간들과 오랜 공존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 이후의 영화 줄거리로 예상한다.

이들이 화합할 수 있었던 이유는 쓰랄과 제이나, 그리고 '말퓨리온'이라는 각 세력의 현명한 지도자들이 모두 서로를 존중하는 법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불신의 눈초리를 쉽게 거둘 수 없었지만, '메디브' 등의 도움과 그들의 성품에 힘입어 하나로 뭉칠 수 있었다. 그들이 이 대목에서 보인 정신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라는 관용의 정신이었다. 이것은 '평등'의 명제이기도 하다. 인간이 모두 평등하다는 의미는 실제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일치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모두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가치 아래에서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것은 이성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천부인권'이라고도 부른다.

이처럼 제이나와 같은 인간이 오크를 받아들일 수 있었던 계기는 드레노어라는 다른 세계에서 건너온 이주세력인 오크가 비록 덩치도 더 크고, 피부도 초록색에 엄니도 툭 불거진 등 인간과 다르게 생겼지만, 이러한 다름을 인정하고 실상은 같은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비슷한 존재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 관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이들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 나와 다른 존재를 존중하라고 해서, 애써 그들을 나와 똑같은 존재라고 억지로 생각할 까닭은 없다. 다만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부정적으로 여기지 말고, 편견 없이 대하는 것이 이질적인 존재들과 공존할 수 있는 길이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불타는 군단처럼 공통의 적은 없을지 몰라도, 그것만큼이나 위대한 공통의 가치는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질적인 개성을 지닌 인간들이 사회를 이루고 살 수 있는 까닭은 우리 자신보다 중요한, 그리고 지켜야할 숭고한 가치가 우리에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듀로탄과 '오그림'이 쓰랄에게 전해준 소중한 교훈일 것이다.

이처럼 공존을 위해서는 맹목적인 편견과 차별을 막아야 하고, 이를 방지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사고가 선행돼야 한다. 어느 것이 옳은가 하는 문제는 감정만으로 정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트럼프'가 '급진적 이슬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오바마 대통령'에 대해 비판한 내용에 대해 지난 14일 오바마가 기자회견에서 반박한 내용으로 글을 맺는다.

"미국이 모든 무슬림을 테러리스트로 색칠하는 덫에 빠지거나 우리가 하나의 종교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면 이는 테러리스트를 돕는 것입니다. 제가 '급진적 이슬람' 대신 '급진적 과격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한다고 트럼프 등이 문제 삼는 것은 정치적 주장이자 본말을 전도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급진적 이슬람'이라는 용어는 마술과 같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습니다.

'급진적 이슬람'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우리가 이루려는 게 정확히 무엇입니까? 그 용어가 정확히 무얼 바꿀 수 있습니까? 그것이 IS가 미국인들을 덜 죽이게 약속해 줍니까? 군사적 전략이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무런 이익도 없습니다. 위협을 다른 용어로 부른다고 위협이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제 명령에 따라 오사마 빈라덴을 처치하기 위해 목숨을 걸거나 이라크와 시리아의 전장에 간 군인들과 요원들은 제가 사용하는 용어와 무관하게 적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트럼프 같은 정치인들이 짖어대는 말들은 미국인을 보호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희생하는 이들의 노력을 결코 막지 못할 것입니다."

 힘없고 가난하다는 것이 꼭 '선(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영국인들은 국민 투표를 통해, 그들의 경제적 타격보다도 그들 토착세력의 '생존'을 선택했다. 누가 감히 그들을 함부로 비난할 수 있을까.

힘없고 가난하다는 것이 꼭 '선(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영국인들은 국민 투표를 통해, 그들의 경제적 타격보다도 그들 토착세력의 '생존'을 선택했다. 누가 감히 그들을 함부로 비난할 수 있을까. ⓒ UPI코리아



영화 워크래프트 블리자드 브렉시트 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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