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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28일 박근혜 정부는 일본 아베 내각과 위안부 문제를 전격적으로 합의했다. 일본 총리의 사과도 없고 위안부 문제 해결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도 비켜간 졸속·굴욕 협상이었다. 정부는 이해당사자들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사전 협의도 없이 협상을 타결시켰다.

이는 정부가 피해자들과 국민들이 충분히 납득할만한 방안과 해결책을 제시하겠다던 약속을 뒤집은 결과였다. 특히 정부는 합의문에 '최종적 및 불가역적 해결'이라고 명문화시킴으로써 위안부 피해자들과 국민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일본 정부는 앓던 이가 빠졌고, 우리는 그 대가로 100억원을 얻었을 뿐이었다. 그것도 배상이 아닌 기부금의 형태로.

회담을 주도한 박 대통령은 합의 이후 "일본의 잘못된 역사적 과오에 대해서는 한일관계 계선과 대승적 견지에서 이번 합의에 대해 피해자 분들과 국민 여러분들께서도 이해를 해 주시기 바란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대통령의 메시지에 호응했는지는 알 수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다. 중요한 것은 한일관계 개선과는 별개로 국가 범죄에 대한 법적 책임이 없는 합의란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된다는 사실이다.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배상이나 보상, 경제적 지원 등은 피해자에 대한 제 2의 폭력이며 유린이다. 그러나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한결같이 주장해온 일본 정부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법적 책임 인정 부분을 이끌어내지 못한 채 협상을 타결시키고야 말았다.


ⓒ 오마이뉴스

문제가 많은 협상답게 위안부 문제 합의 이후 협상과 관련한 새로운 의혹들과 논란이 잇따랐다. 합의문을 자국에 유리하게 해석한 일본 정부의 발언들이 계속됐고,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 이전과 관련해서도 양국 정부의 말이 엇갈렸다. 가장 논란이 됐던 합의문의 '최종적 및 불가역적 해결'이라는 문구를 놓고도 양국 정부는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으며 혼선을 빚었다.

그러나 그와 관련해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역시 우리 정부였다. 정부는 일본 정부의 막나가는 주장에도 적극적으로 반박하지는 않고 소극적인 대응으로 일관했다. 이를 두고 정부가 일본 정부에 너무 끌려다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고, 정부의 무능한 협상력이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이 때문에 일본 정부와 이면 합의가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정부에게는 애초부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일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아니라면 굴욕적인 협상 타결과 협상 이후에 나타나고 있는 이 정부의 기묘한 행태를 도무지 이해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정부의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사업' 발빼기 역시 이해할 수 없기는 매한가지다.

위안부 문제가 합의되기 전만 하더라도 정부는 다시는 이같은 불행이 반복되지 않도록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영상기록과 관련 자료 등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시키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합의 이후 정부의 입장이 180도 달라졌다. 관련 예산 4억4천만원이 삭감됐고, 강은희 여가부 장관은 "정부 차원에서 더 이상 지원은 필요없다"며 민간에서 알아서 해야 할 일이라며 발을 뺐다.

이제 세간의 관심은 정부의 입장이 위안부 문제 합의 이후 갑자기 뒤바뀐 배경에  쏠리고 있다. 이와 관련 정부가 일본 정부와 위안부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문제를 이면합의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위안부 문제 합의 이후 정부의 갑작스런 입장 변경에 따른 이유있는 문제 제기였다. 때마침 이 의혹을 더욱 증폭시키는 정황이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지난 1월 한일 위안부 합의 직후 열린 일본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기시다 일본 외무상이 유네스코 등재 신청이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의 범위 내에 들어간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이는 위안부기록물의 유네스코 등재와 위안부 문제 합의와는 무관하다는 정부의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정부가 위안부 합의 이후 완전히 달라진 입장 변화를 여전히 납득시키지는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면합의 의혹은 점점 짙어지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와 관련 박원순 서울시장이 정부와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며 주목을 받고 있다. 정부가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사업'에 나서지 않을 경우 서울시가 직접 나서겠다고 밝힌 것이다. 그는 23일 "정부가 예산까지 세웠는데, 이것을 지원하지 않겠다고 얼마 전 선언했다. 위안부 관련 기록물은 반드시 보전하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서울시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육성 녹음, 영상 기록, 사료, 자료를 모두 수집해 정리하는 군 위안부 기록물 관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이런 것을 모아 정부가 하지 않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사업'을 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박 시장의 발언이 전해지자 시민들의 환호와 격려, 공감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박 시장이 대신하고 있다며 그의 결정에 뜨거운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 장면은 대단히 낯이 익다. 그동안 박 시장이 여러 차례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해 왔기 때문이다.

지난해 메르스 사태 당시에도 그랬고, 각종 복지 정책에 있어서도 그는 정부를 대신해 시민들의 편에 서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비정규직 청소노동자의 정규직화를 이끌어 낸 일화 역시 유명하다. 시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낮은 자세로 시민들과 소통하려 애쓰는 그에게 시민들은 지지와 성원으로 화답하고 있다.

그는 사과에 인색하거나 무책임하지도 않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건이 발생하자 그는 진정성있는 사과와 함께 강력한 재발방지 대책을 내세워 눈길을 끌었다. 외주화했던 안전 업무를 전면 직영화하는 한편 시민과 전문가가 참여하는 '진상규명위원회'를 구성해 사고의 경위와 원인을 낱낱이 규명하기로 한 것이다.

서울시를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고 사건의 규명 및 재발방지 대책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사건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이 정부가 보여주었던 무능하고 무책임한 행태와는 완전하게 대비된다. 시민들이 여전히 박 시장에게 신뢰를 보내고 있는 이유다.

'위안부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사업'과 관련해 정부와 박 시장의 행보가 크게 엇갈리고 있다. 정부는 갖은 의혹 속에 관련 예산을 삭감하면서까지 민간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손을 떼고 있는 반면, 박 시장은 정부가 안하겠다면 서울시라도 나서서 대신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극명한 대비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 의미를 깊이 성찰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어쩌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바로 여기에 달려있는지도 모른다. 권위를 덜어내고 책임을 자신의 몫으로 가져가고 있는 사람과 권위는 내세우되 책임은 지지 않는 사람 중, 누가 더 21세기 민주주의 시대에 어울리는 정치 철학과 비전을 가졌는지는 생각해 볼 필요도 없는 문제이므로.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국민뉴스에도 실렸습니다.



태그:# 위안부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 #강은희 여가부 장관, #위안부 문제 이면합의 , #박원순 유네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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