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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둘레길에 근현대사 기념관이 생겼다. 근현대사 기념관이라는 이름으로 생긴 첫번째라서 더욱 의미가 있다.
▲ 강북구 근현대사 기념관 북한산 둘레길에 근현대사 기념관이 생겼다. 근현대사 기념관이라는 이름으로 생긴 첫번째라서 더욱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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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북구 수유동 국립4·19민주묘지 위쪽 북한산 자락에 근현대사기념관이 생겼다. 우리 근현대사를 제대로 공부하고 싶은 지역주민들과 북한산 둘레길 순례자들이 기념관을 찾게 될 것이다. 어떻게 근현대사 기념관이 생겨났는지 궁금증을 품고 이준식 관장과 윤봉석 학예사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근현대사기념관은 이준식 관장을 포함해 여섯 명이 일하는데, 윤봉석 학예실장과는 근현대사기념관에서, 이준식 관장과는 민족문제연구소에서 각각 만났다.

이준식 관장은 일제 식민지 농민운동을 포함한 독립운동사를 연구해왔으며, 역사정의실천연대 정책위원장과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윤봉석 학예실장은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였고 이후 독립기념관 선임연구원으로 활동하였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파에 의해 반민특위가 와해된 일을 겪으며 평생을 친일문제 연구를 해온 고 임종국 선생의 뜻을 이어 1991년에 설립됐다. 역사 바로 세우기를 위해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하고 과거사 청산 활동을 해오고 있다.

동학부터 4.19까지 담겨있는 곳

건국절 논란 등 역사적인 이해에 큰 혼란이 생겨난 시점에서 올바른 근현대사 기념관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절감하고 있었다.
▲ 윤봉석 강북구 근현대사 기념관 학예사 건국절 논란 등 역사적인 이해에 큰 혼란이 생겨난 시점에서 올바른 근현대사 기념관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절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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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해 초에 이곳에 근현대사기념관이 세워지고 민족문제연구소가 위탁 운영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떤 내용이 담기는지 궁금했습니다.

윤봉석 : "근현대사기념관은 강북구에서 주관하고 서울시에서 지원하여 만들어졌습니다. 강북구에는 4·19민주묘지도 있고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16위의 묘가 있습니다. '평등, 자유, 민주'라는 세 가지 중요한 가치를 중심으로 우리 근현대사를 기념관에 담고자 합니다. 시기적으로는 동학에서부터 4·19민주혁명까지 다룹니다.

상설전시관에서는 근현대사를 축약하여 다루고, 특별전시관에서는 다채로운 주제를 심도있게 다룰 계획입니다. 기념관 입구에는 조형물을 설치할 계획인데,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해 '평화의 소녀상'을 만든 조각가 김서경, 운성 부부작가가 지금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8월부터는 조형물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 올해 어떤 행사를 계획하셨나요? 관심 있는 지역주민들은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까요?
윤봉석 : "5월 17일 개관식을 의미있게 해보려 노력했습니다. 6월에는 가까이 있는 덕성여대와 공동학술포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주제 방향은 독립운동과 대한민국 헌법정신으로 정했습니다. 개관 기념으로 인근 묘역에 안장되신 분들을 소개하는 특별전시도 개최합니다.

기념관 2층에 있는 강의실에서는 어른과 어린이를 각각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진행할 계획입니다. 강북구청과 연계해서 독립운동가 묘역과 4·19민주묘지 등을 둘러보는 2시간 순례코스도 추진할 계획입니다. 지역주민들이 편하게 와서 둘러보고, 아이들은 역사를 배우는 곳이 되면 좋겠고, 취지에 맞는 여러 행사를 지역 주민들과 함께할 의지도 있습니다."

- 근현대사기념관에 학예사로 오시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윤봉석 :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했고 역사기념관 전시하는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 회원으로 이런저런 활동도 해오고 있었는데, 이곳 근현대사기념관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위탁관리하게 되면서 소식을 들었지요. 마침 성북구에 살고 있던 터라 근현대사기념관 학예사로 지원해 일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할 활동에 많은 기대를 품고 있습니다."

"근현대사기념관은 독립정신-민주정신 구현하는 곳"

이준식 박사는 근현대사 연구자이자 활동가이며 지청천 장군의 외손자이다. 그에게 근현대사 해석의 문제는 남다르다.
▲ 이준식 강북구 근현대사 기념관장 이준식 박사는 근현대사 연구자이자 활동가이며 지청천 장군의 외손자이다. 그에게 근현대사 해석의 문제는 남다르다.
ⓒ 정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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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랫동안 한국근현대사 연구해오셨고, 역사정의실천연대에서 활동도 해오셨습니다. 근현대사 기념관 관장이 되셨는데, 근현대사를 어떻게 정리하고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이준식 : "서울이 수도로 자리를 잡은 지 500년이 넘습니다. 서울에는 조선시대 유산도 있고 문화유산도 굉장히 많이 있지요. 그런데 강북구에는 이렇다 할 조선시대 유산이 없어요. 대신 순국선열 16위 묘소가 있고 4·19민주묘지가 있지요.

강북구에서 이런 점을 활용해 근현대사기념관을 건립한 건 아주 잘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강북구청에서 민족문제연구소에 적극적으로 요청하여 기념관 기본내용이 구성되었지요. 민족문제연구소에서도 이후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을 생각할 때, 이번 기념관 건립은 아주 의미있는 경험이 되었습니다.

한국근현대사에 관해 뜨거운 논쟁이 진행 중입니다. 사실 역사적이고 학문적인 논쟁은 아니고 다분히 정치적인 겁니다. 건국절 논쟁이라고 들어봤지요? 뉴라이트세력은 1948년 8월 15일 건국이 의미있다고 주장하고 있고, 이런 사관이 대학민국역사박물관(2012년 12월 서울 종로 세종로에 개관)에 담겨있습니다. 건국을 기념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도 거의 없어요. 독립한 게 아니라 만들어진 나라에서나 건국일을 찾는 겁니다.

이번에 세워진 근현대사기념관은 독립정신과 민주정신을 제대로 구현하는 곳이 될 겁니다. 3·1운동으로 임시정부가 만들어졌고 그것이 제헌헌법으로 이어졌습니다. 물론 지금도 기본방향은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승만조차도 건국보다는 3·1운동을 중요시해서 1948년 정부 수립을 '대한민국 30년'이라고 했어요. 해방 후 친일 청산을 빨리 했어야 했는데, 그게 좌절되었다 뿐이지 우리 근현대사의 큰 줄기는 독립정신인 건 틀림없습니다."

근현대사 기념관 1층 상설 전시실에는 동학운동부터 4.19혁명까지 다루고 있다. 여기서는 독립정신과 민주정신을 근현대사의 핵심 정신으로 표현하고있다.
▲ 강북구 근현대사 기념관1층 전시실 근현대사 기념관 1층 상설 전시실에는 동학운동부터 4.19혁명까지 다루고 있다. 여기서는 독립정신과 민주정신을 근현대사의 핵심 정신으로 표현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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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일 청산이 좌절되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현재 시점에서 친일 청산문제는 어떻게 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21세기에 옛날이야기 하느냐고 하기도 합니다.

이준식 : "물론 친일 청산문제에 관해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기는 합니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 과거사 청산 위원회 활동도 활발히 진행되고 민족문제연구소가 중심이 되어 친일인명사전이 만들어지기도 했어요. 또 친일반민족 행위자 재산 환수문제도 다뤄졌지요. 그런데 제가 그런 활동을 해보니까 친일 청산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더 확고해지더군요.

2014년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파동이 있었습니다. 친일세력의 후손이 정치권력을 잡으니까 친일을 미화하고 독재를 찬양하는 그런 사관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겁니다. 2002년 박정희대통령기념관 건립이 시작되었는데, 그 기념관에서 친일과 독재가 어떤 식으로 표현되는지 교묘하기까지 합니다.

해방 후 건국과 산업화의 주역으로 관료, 기업인, 언론인 등을 언급하는데 그 사람들이 식민지시대에 일제에 적극 협력한 사람들이거든요. 산업화가 있었기 때문에 민주화가 가능했다는 논리는 독립정신과 민주정신의 중요한 고리를 끊어버리겠다는 의지이기도 합니다.

제가 원래 잠을 잘 자는 사람인데,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보고서 잠을 못 잤어요. 근현대사 연구자로서, 독립운동가 후손으로서의 정체성을 부정당한 느낌이었지요. 역사 연구자로 살아왔고 역사 교육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가 역사 왜곡 사건을 겪다보니까 1인 시위도 하게 됐어요. 역사 왜곡과 싸우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한국광복군 총사령관을 역임하셨던 백산 지청천 장군의 후손이라고 들었습니다. 지청천 장군 묘소도 수유리에 있었지요. 수유리에 여러 추억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준식 : "원래 외할아버지 성함이 지청천이었는데, 독립운동하면서 어머니 성, 이 씨로 바꾸셨어요. 그러다가 해방 후에 다시 지씨 성으로 복원시키셨지요. 제가 1956년생이고 외할아버지가 1957년에 돌아가셔서 외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습니다.

어머님을 통해서 외할아버지 이야기를 수없이 들으며 자란 거지요. 어머님 또한 독립운동을 하셨기 때문에 외할아버지에 대한 마음이 남다르셨고 그래서 매해 몇 차례씩 수유리 묘소를 찾았습니다. 어머님이 친인척 소집 명령 같은 걸 내리면 다들 모여서 함께 왔었습니다.

그렇지만 초·중·고를 부산에서 다녔기 때문에 수유리 묘소를 찾는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어요. 벌초하고 계단 보수하고 보통 중노동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어요. 제가 근현대사기념관장이 된 건 근현대사 연구자인 것과 외할아버지 묘소가 이곳에 있었던 게 크게 작용했을 거라고 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아름다운마을신문(http://admaeul.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태그:#근현대사 기념관, #뉴라이트 , #역사정의연대, #민족문제연구소, #지청천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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