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조선 뉴스 예능쇼 <B급 뉴스쇼 짠>의 진행을 맡고 있는 최일구 전 MBC뉴스 앵커가 22일 오후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TV조선 뉴스 예능쇼 의 진행을 맡고 있는 최일구 전 MBC뉴스 앵커가 22일 오후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이정민


최일구 전 MBC 뉴스데스크 앵커는 최근 출판한 에세이집 <인생 뭐 있니?>에서 "지난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나는 웃어본 기억이 단 한 차례도 없었다"고 고백한다. '재미있는 앵커, 풍자하는 앵커'로 오랜 시간 MBC에서 사랑받아온 최 전 앵커는 지난 3년간 파업·퇴사·빚보증 이어진 파산으로 인해 인생 최악의 시기를 경험했고, 그동안 웃어본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채플린의 비애일까. 풍자에 필수불가결한 페이소스일까.

그는 이제 막 그 어두운 터널에서 빠져나오려 한다. 그런데 그 방법이 사뭇 낯설었다. 지상파 채널 MBC에 30년 가까이 몸담았고 MBC 파업에도 참여했던 사람이 종합편성 채널, 그것도 가장 보수적이라고 여겨지는 TV조선 프로그램의 MC로 복귀라니. "돈 때문에 TV조선으로 어쩔 수 없이 갔다"는 목소리, "그런데 왜 하필 TV조선이냐"는 의문들이 공중(公衆)을 떠다녔다. 그는 <고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TV조선에서 내 나름대로 저널리즘을 보여주겠다"고 호기롭게 밝히기도 했다.

지난 22일 서울 마포구 모처에서 최일구 전 앵커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가 생각하는 "내 나름대로 저널리즘"이 대체 뭔지, 그리고 떠나온 MBC에 대한 후회는 없는지.

최일구가 TV조선에 간 이유

 TV조선 뉴스 예능쇼 <B급 뉴스쇼 짠>의 진행을 맡고 있는 최일구 전 MBC뉴스 앵커가 22일 오후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TV조선 뉴스 예능쇼 의 진행을 맡고 있는 최일구 전 MBC뉴스 앵커가 22일 오후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 '지난 5년간 웃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요즘은 어떤가?
"TV조선 < B급 뉴스쇼-짠 >(아래 <짠>)의 MC를 맡아 인생 2모작을 시작할 수 있는 디딤돌을 놨다고 할까? 여기서 조금 웃어볼 수 있을까? 그런 게 있다."

- <짠>의 현장 분위기는 어떤가?
"TV조선 PD가 먼저 만나자고 했다. 보수 매체고 그러니, 뭔가 할 생각 없이 그냥 만나나 보자 했다. 그런데 기획안을 보니 마음에 들었다. 시사와 예능을 합쳐서 B급 뉴스를 만들자는 거다. 그래서 하자고 했다. 분위기는 좋다. 스태프들도 다들 열정을 갖고 있고. 나라는 사람을 MC로 쓴다는 것 자체가 TV조선의 변화라고 봤다. TV조선이 집토끼만 고려하다가 4.13 총선 이후에 산토끼도 생각해보자 그런 전략인 것 같다."

- 소통은 잘 되나?
"원활하다. 근데 다들 워낙 바쁘다. 70분짜리 방송이니까 쟤네 다 죽는다. 녹화 끝나면, 편집하고 다음 주 뭐 할까 생각하고 쉴 틈이 없는 것 같더라. 나는 녹화하면 땡이지만."

- <짠>이라는 프로그램을 잘 만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있을 텐데.
"그럼!"

- <짠>이 뉴스 예능, 시사 예능을 표방한다고 했다. 특별한 점이 있을까?
"잊힐 수 있는 의제들을 발굴한다는 게 가장 좋은 점이다. 지난주에 어느 건축업자가 외국인 노동자에게 밀린 급여 440만 원을 동전으로 바꿔준 일이 있었지 않나. 이 뉴스를 발전시키더라고. 이 친구들(제작진)이 은행을 돌아다니면서 100원짜리를 모아서 녹화할 때 펼쳐보았다. 440만 원을 무게로 따지니 120kg이더라. 아무리 외국인이고 한국말 못한다고 인간적으로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거니까."

- 얼마 전 <고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내 나름대로 저널리즘을 만들어가겠다"고 했다. TV조선에서 만들 수 있는 저널리즘은 무엇인가?
"내가 TV조선에 직원으로 간 것도 아니고, 앵커도 아니다. <짠>의 기획안이 마음에 들어서 간 건데, MBC 후배 중에서도 가지 말라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악플 같은 게 달리더라. '최일구 돈 앞에 굴복했네', '거기 왜 갔냐'라면서. 나도 종편 출범할 때 반대했다. 근데 이미 생겼고, 연말이 되면 종편도 출범한 지 만 5년이 된다. 하나의 미디어로 어쩔 수 없는 대세로 자리 잡았다고 생각했다. 더불어민주당 쪽 사람들도 이제 종편에 출연한다. (TV조선이) 보수 매체로 알려졌지만, 최일구식 저널리즘은 변하지 않을 거다."

- 그렇다면 그 '최일구식 저널리즘'이라는 게 뭔가?
"책에 나온다, 저널리즘의 어원. 매일 일어나는 일들을 대중에게 알려주는 것. 내 나름의, 최일구의 저널리즘이라는 건 이런 의미다.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고, 때로는 돌려서라도 따끔한 소리를 하는 것."

- 아까 잠깐 언급했지만, 돈 때문에 TV조선에 갔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받지 않는다. 회당 출연료 정도다. 돈 때문에 갔다는 걸 부인할 수 없지만, 돈을 목표로 간 거냐고 하면 동의할 수 없다. 인생 2모작을 시작한 마당에 어디론가 가야 할 게 아닌가. JTBC나 MBN도 다 똑같은 종편이다. 그걸 누가 가서 바꿨는가. 처음에 손석희 선배가 JTBC에 갔을 때도 말들이 많지 않았나. 왜 종편에 갔느냐고. 그런데 우려와는 달리 지금 JTBC 뉴스는 완전히 달라져 있다. 그런 식으로 해보고 싶은 거다."

- <짠>을 통해 TV조선의 이미지도 같이 바꾸고 싶다는 말인가?
"그렇다."

- 다른 종편 채널에서도 제안이 있었는데 TV조선으로 갔다는 소문도 있었다.
"제안 없었다. 3월 초에 한 종편 PD가 왔었는데 그 후로 진전이 없었다. 왔다가 그냥 갔다. (웃음) 저울질할 수 있었다면 행복했겠지."

- B급 앵커라는 말이 재밌다. 앵커에 A급도 있고 B급도 있나?
"아, 그거야 내 삶 자체가 B급이니까. MBC 있을 때도 A급 앵커가 아니었다. 엄기영, 정동영, 신경민 같은 사람들처럼 메인 앵커를 해야지. 나는 일주일에 2번 주말에 한다. 그게 B급이지, '찌끼다시(밑반찬)'! 그래서 B급 뉴스쇼나 B급이라는 호칭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 주 진행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B급 앵커라고 말하는 건가? 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실제 그렇지 뭐, 내가 A급 앵커인가? 주접떨고 이상한 멘트하고 그런 게 B급이지."

"요즘은 SBS랑 JTBC 뉴스 본다"

 TV조선 뉴스 예능쇼 <B급 뉴스쇼 짠>의 진행을 맡고 있는 최일구 전 MBC뉴스 앵커가 22일 오후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TV조선 뉴스 예능쇼 의 진행을 맡고 있는 최일구 전 MBC뉴스 앵커가 22일 오후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 최근 시사 풍자 코미디가 실종됐다는 지적이 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우리 미디어의 수준, 권력 잡은 자들의 의식 수준을 말해주는 거다. 미국은 대통령도 풍자의 대상이 된다. 그래도 대통령이 꿈쩍 하나? 오히려 매년 연례행사에서 대통령 스스로 유머를 사용해 자신을 낮춘다. 한국은 아직 멀었지. <개그콘서트> 민상토론 같은 거 이야기하는 거 아닌가 지금? 그런 거 하나 제대로 못 하는 게 한국의 수준인 거다. 갈 길 멀었다."

- 최일구가 생각하는 시사 풍자 코미디는 뭔가?
"아, 왜 나한테 자꾸 개그를 물어봐? (웃음) 대통령을 풍자해야지. 못하잖아. 근데. 그거 했다간 여기저기서 태클 들어올 테니까. 진정한 시사 개그를 하고자 한다면, 대통령을 갖고 유머를 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게 진짜 시사 개그다."

- 재미에 대한 욕심이 큰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앵커 처음 시작했을 때 한 달 정도는 그냥 남이 써준 멘트 읽었다. 취재 기자가 자기가 취재한 기사 앞에 앵커멘트를 써준다. 그거 누가 알겠나, 취재한 놈만 알지. 그러다가 문득 '왜 남이 써준 멘트를 읽어야 하나, 내 나름대로 뉴스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갖고 놀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거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내가 가진 끼 같다, 끼. 이렇게 만지면 재밌겠다는 게 떠오르거든.

<썰렁개그집> <아재개그집> 같은 유머책 보고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웃는 게 취미생활 중 하나이다. 거기 경상도 할머니 유머 시리즈가 있다. 서울대공원에서 탈출한 말레이곰 소식을 전하는데, 그 유머 시리즈가 생각난 거다. '말레이'가 꼭 경상도 사투리 같더라. 그래서 고민하다가 여자 앵커랑 연습해서 내보냈다. '말레이곰 도망가지 말레이'라고."

- 엔딩 멘트를 몇 시간씩 고민했다는 말도 있던데?
"항상 고민했다. 중간에 내가 만든 앵커멘트를 할까 말까, 이 정도면 될까. 누구에게 데스크를 받을 상황도 아니니, 내가 저지르고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 너무 막 나가는 게 아닌가? 아니면 너무 세게 이야기하는 거 아닌가? 고민하다 보니 몇 시간씩 걸린다. 정리가 안 된 상태에서 뉴스가 들어가기도 하고. 프롬프터에 띄워놓은 멘트를 안 읽고 버리기도 했다."

- 요즘도 방송뉴스 보나?
"SBS 아니면 JTBC 본다. 손석희 선배가 JTBC 가면서 백화점 나열식 보도는 안 하겠다고 선언했다. 1분 30초짜리 짧은 뉴스들은 한정된 시간 안에 시청자들에게 많은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포맷이다. JTBC는 이런 관행에서 탈피했다. 한 이슈로 30분씩 다룰 때도 있고. 뉴스를 다 보고 나면 '밥 잘 먹었네'라는 뿌듯함이 있다. 한 놈만 쥐어 패니까."

"중이 절 싫으면, 절을 뜯어고쳐야지"

 TV조선 뉴스 예능쇼 <B급 뉴스쇼 짠>의 진행을 맡고 있는 최일구 전 MBC뉴스 앵커가 22일 오후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TV조선 뉴스 예능쇼 의 진행을 맡고 있는 최일구 전 MBC뉴스 앵커가 22일 오후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이정민


- '실패할지도 모르지만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MBC를 떠난 지 3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그 마음 변치 않나?
"그럼! 내가 선택한 일이다. 모든 일이 다 그렇다. 채무자가 일 년이면 빚 갚을 수 있다고 해서 보증 서고 인감도장 찍었다. 찍기 싫었지만 찍었단 말이지. 누가 선택한 건가? 내가 한 거다, 내가. 사표 낸 것도 내가 결정한 거다. 내가 왜 후회를 해야 하나? 안 되지. 자기를 부정하는 행위니까."

"정동 MBC 5층에 보도국이 있었다. 입사 동기 수습기자들이 회의실에 모였다. 보도국 부국장이 들어왔다. 대뜸 이랬다. '요즘의 언론 상황은 여러분이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중이 절 싫으면 누가 떠나야겠습니까? 절입니까? 중입니까?'" - <인생 뭐 있니?> 233쪽 중에서

- 최일구 전 앵커가 입사하자마자 들은 말이 언론 상황에 대한 말이었다. 공교롭게도 최일구 전 앵커가 MBC를 떠났을 때, 마침 보도부 부국장의 직함을 달고 있었다.
"1985년 12월의 일이다. 지금 <경향신문> 건물인데, 그때는 정동 MBC 5층에 보도국이 있었다. 회의실로 들어오래서 갔는데, 부국장이 있더라. 딱 오더니 '너희들 말이야 중이 절 싫으면 떠나야 한다'고 하더라. 한 마디로 '알아서 기어라'라는 이야기다. 5공 때니까. 정부가 기자증을 주던 말도 안 되는 세월이었다. 보도지침이 횡행할 때고. 그러니까 신입 기자들 불러다 놓고 선배가 저런 이야기를 한 거야. 아직도 그걸 기억하고 있다. 어떻게 선배가 돼서 저런 이야기를 할까.

오히려 좀 에둘러서 '언론 상황이 여러분이 기대하는 것과는 달리 5공 정권 밑에서 기어야 하는 측면도 있으니까, 갈등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 그럴 때마다 소주 한잔 하면서 풀자'고 이야기를 해주면 좋지 않나. 그게 아니더라. '알아서 기어' 이런 투잖아."

- 에둘러서 이야기해도 결국 '절이 싫으면 떠나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 게 아닌가.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거다. 똑같은 본질을 얘기해도 우회해서 표현했으면 상처받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MBC 파업할 때 부국장이었거든. 그 부국장 선배 생각이 나더라고."

- 지금 누군가 '중이 절 싫으면 누가 떠나야겠습니까? 절입니까? 중입니까?'라고 물어본다면 최일구는 뭐라고 대답할까?
"중이 절 싫다고 제 발로 떠나기보다는 남아서 절을 뜯어고칠 생각을 해야 한다. 나는 절이 싫어서 나온 게 아니라 있을 수가 없어서 제 발로 걸어 나온 거다. 1985년에 받은 질문에 대한 내 답은 '남아서 절을 뜯어고칠 생각을 해야 한다, 중들이'이다."

하지만 그를 비롯해 MBC의 후배들은 속속 MBC를 떠나고 있다. 그들의 퇴사 행렬은 파업이 마무리되고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MBC에 남은 이들은 과연 그 절을 바꿀 수 있을까. 또 다른 절에 잠시 몸을 의탁한 최일구 전 앵커는 그 절을 바꿀 수 있을까. 또 바꾼다면 어떤 모습으로? 토요일마다 방송되는 <짠>에서 새로이 시작한 그의 '인생 2모작'의 일부분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TV조선 뉴스 예능쇼 <B급 뉴스쇼 짠>의 진행을 맡고 있는 최일구 전 MBC뉴스 앵커가 22일 오후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TV조선 뉴스 예능쇼 의 진행을 맡고 있는 최일구 전 MBC뉴스 앵커가 22일 오후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최일구 B급 뉴스쇼 짠 TV조선 MBC 앵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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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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