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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를 먹지 않는다.
 고기를 먹지 않는다.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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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들이라면 상상조차 못할 일인데, 정말 대단해요. 존경합니다, 선생님!"

아이들은 점심시간 급식소에서 날 만날 때마다 연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이렇게 인사를 건넨다. 수업시간에 이런 말을 들었다면 교사로서 어깨가 으쓱해졌을 테지만, 내 식판에 담긴 음식 때문에 듣는, 언뜻 조롱 같은 '찬사'다. 똑같은 메뉴인데도 아이들의 식판 위 음식은 맛은 둘째치고 내 것과 '색깔'부터 다르다.

육식을 끊은 지 얼추 20년이 다 됐다. 엄밀히 말하자면, 완전한 채식주의자는 아니다. 고작 소·돼지·닭·오리 같은 육류만 먹지 않을 뿐, 생선도 먹고, 달걀과 우유도 즐겨 먹는다. 물론, 종교적인 의무나 신념 때문이 아니기 때문에, 주위에서 나를 채식주의자로 규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약간의 거리낌 같은 게 없지 않다. 아무튼 아이들은 내가 육류를 먹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워한다.

우리 학교의 경우 점심에 고기 메뉴가 빠지는 날이 거의 없으니, 늘 내 식판 한두 곳은 덩그러니 비어있기 일쑤다. 더욱이 '메인 메뉴'는 없고 김치 등 밑반찬만 올라가 있으니 유독 눈에 띄는 모양이다. 그때마다 아이들은 "그렇게 먹고 어떻게 사느냐"고 농을 걸어오지만, 내친 김에 육식을 끊은 지 얼추 20년이 다 됐다고 하면 아이들은 무슨 외계인 보듯 기겁을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아이들은 '채식의 날'처럼 고기반찬이 없는 날이면, 아예 급식소에 발길을 끊는다. 농담일지언정 "하루라도 고기를 먹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고 너스레를 떨며 매점으로 직행한다. 그런 마당에 아이들이 시간표는 몰라도 급식 메뉴판만큼은 달달 외우는 것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불고기나 스테이크, 치킨 같은 메뉴가 나오는 날에는 아파서 하는 조퇴도 점심시간 뒤로 미룬다는 경우도 봤다.

"왜 멀쩡한 애 고기 먹지 말라고 해요!"... 오해 속에 산다

동료들은 가끔 나 하나만을 위해 회식 장소로 추어탕 전문점이나 채식 뷔페 같은 곳을 예약하기도 한다. 그들의 배려는 어렵다. 주위엔 죄다 고깃집들뿐이니...
 동료들은 가끔 나 하나만을 위해 회식 장소로 추어탕 전문점이나 채식 뷔페 같은 곳을 예약하기도 한다. 그들의 배려는 어렵다. 주위엔 죄다 고깃집들뿐이니...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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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천에 널려있는 먹거리 중에 단지 육류만 먹지 않는 것일 뿐인데, 아이들은 나를 마치 굶고 사는 사람인양 여긴다. 그러면서 맛있는 음식을 맛보는 식도락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는 건 불행 중의 불행이라며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한다. '소고기 1인분을 생산하기 위해선 30인분의 곡식이 필요하다'는 교과서 구절은 그들에게 공자 왈 맹자 왈일 뿐, 식도락의 즐거움 앞에서는 무기력하기만 하다.

아이들은 교사의 뒷모습을 통해서도 배운다고 했던가. 몇몇은 집에 가서 내 식성을 흉내 냈던 모양이다. 아이들 앞에서 단 한 번도 육식을 끊어라(줄이자고는 했다)는 말을 한 적이 없는데, "왜 멀쩡한 아이 고기를 먹지 말라고 하느냐"며 한 학부모로부터 핀잔을 들었다. 한창 성장할 나이인데, 육식을 못 먹게 해서야 되겠느냐는 거다.

이야기가 와전됐다고 대꾸하려다가 그냥 죄송하다 말씀드리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의 '고기 사랑'은 가정으로부터 비롯됐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언제부터인가 고기를 많이 먹어야 키도 크고 튼튼해진다는 부모 세대의 맹신은 사실 과학 영역을 뛰어넘는 굳건한 '상식'이 돼버렸다. 그런 그들 앞에 육식을 하지 않는 교사는 불편한 존재일 수밖에 없을 듯하다.

내 식성으로 인해 매일 점심시간마다 만나게 되는 급식소 아주머니들도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배식 창구에서 마주칠 때마다 그분들은 "선생님은 오늘도 드실 게 없네요"라는 말을 인사말처럼 건넨다. 그럴 때마다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씀드리지만, 한사코 미안하다면서 다른 밑반찬이라도 더 드시라며 부러 떠먹이듯 권하곤 하신다.

이따금 삼계탕이나 볶음밥·짜장면 등이 나오는 날은 맨밥에 김치조차 준비되지 않아 한 끼 굶을 수밖에 없어 솔직히 속상할 때도 있다. 그래도 바쁜 아침 도시락을 손수 챙겨야 하는 번거로움에 견주면 별 것 아니라며 자위한다. 어쨌든 학부모와 아이들의 아우성에 고기반찬을 늘릴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급식소 아주머니들에게 본의 아니게 누를 끼치고 있는 셈이다.

단체 회식 자리에 끼기도 쉽지 않아

생맥주와 노가리(자료사진).
 생맥주와 노가리(자료사진).
ⓒ 임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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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들도 불편해하기는 마찬가지다. 당장 단체 회식 자리에 끼기가 쉽지 않다. 아주 가끔 오로지 나 하나만을 위해 회식 장소로 추어탕 전문점이나 채식 뷔페 같은 곳을 예약하기도 하지만, 그게 되레 더 부담스럽다. 그러다 보니 아주 중요한 모임이 아니면 애당초 핑계를 대고 빠지게 된다. 하긴 주위엔 죄다 고깃집뿐이니 그들이 나를 배려하기도 쉽지 않은 노릇이다.

그들은 퇴근길 가볍게 생맥주 한잔 나누는 자리에서 치킨 안주 시키는 것조차 내 눈치가 보인다고 했다. 내가 끼면 '노맥(노가리+맥주)'이고, 없는 자리에선 '치맥(치킨+맥주)'이라는 불문율까지 생겨났단다. 그렇게 까탈스럽게 굴었다가는 대인 관계 다 끊어진다면서, 육식과 대인 관계 둘 중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지를 부러 묻는 짓궂은 이도 있다. 우리 사회에서 육식은 단순한 기호를 넘어, 어쩌면 대인 관계를 맺는 필수적인 수단인지도 모르겠다.

명절날 한데 모이는 가족들 사이에서도 '왕따'를 감수해야만 한다. 예컨대, 설날 떡국도 따로 준비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대개 그렇듯 떡국에는 소고기나 닭고기를 넣고 끓이게 되지만, 내가 먹을 것에는 고기 대신에 굴이나 멸치로 맛을 낸다. 다른 가족들은 해산물이 들어간 건 비리다며 일절 입에 대지 않는데, 그래선지 한상에서 같이 먹는 게 껄끄러울 때도 있다.

명절 음식을 마련하는 그 바쁜 와중에 고기 산적과 부침개를 함께 준비하고, 육전 대신 동태 전과 버섯 전을 부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런가 하면, 닭강정을 만들 때면 새우튀김도 함께 준비하는데, 이 모두가 내 유별난 식성 때문이다. 오죽하면 가족들에게서 "너 하나 때문에 온 가족이 개고생"이라며 "차라리 명절 때 안 내려오는 게 도와주는 것"이라는 말까지 나올까.

정말이지 우리 사회에서 고기를 먹지 않고 생활한다는 건 웬만한 각오 없이는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심지어 남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라며 대놓고 타박하는 이들도 있다. 급기야는 동료와 가족들로부터 "너 혼자 고기를 안 먹는다고 지구의 환경이 깨끗해질 것 같으냐"는 조롱을 듣는 처지가 됐다. "20년 가까이 채식을 실천하고 있으니, 이젠 '환경운동가'로 불러주어야겠다"는 비웃음과 함께.

약간 불편하게 사는 것

내가 육식을 끊은 이유는 사실 그다지 거창한 게 아니다. 흔히들 인간이야말로 지구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주범이라는데, 조금 모자라고 약간 불편하게 사는 게 그나마 이 세상에 해를 덜 끼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또, '소심한' 실천일지언정 세계적으로 극단적인 풍요와 빈곤이 공존하는 시대에 적어도 기아에 허덕이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덜 미안할 것 같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스스로 불편하게 살겠다며 시작한 일이 되레 주위의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안겨주는 꼴이 되고 말았다. 어쩌면 육식이냐 채식이냐의 문제라기보다 남들과 다르게 산다는 것 자체가 필연적으로 갈등을 야기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물론, 불편함을 느끼는 건 상호적일지 몰라도, 그에 따른 '직접적인' 손해는 다른 삶을 선택한 사람이 감수해야 한다.

그것이 옳은 일이든 그른 일이든, 또 선천적인 것이든 선택한 것이든 간에, '소수'가 대한민국에서 어깨 펴고 당당히 살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릴 적 "젓가락질을 왼손으로 하면 복이 달아 난다"며 어른들로부터 혼쭐나던 왼손잡이의 설움은 이제 사라지고 없지만, 그래도 여전히 우리 사회는 다른 모습의 삶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배려해주기를 기대하기엔 무망한 듯하다. 되레 삶의 지혜라며 이런 '가르침'만 숱하게 들어야만 했다.

"모난 돌 정 맞아, 옛말 틀리지 않다고"라는 친구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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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이든 식성이든 유별나면 사회 생활하기가 힘든 법이야. 사는 게 별 건가.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가며 둥글둥글하게 살아가는 거지.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옛말 틀린 게 하나 없어."

사족 하나. 얼마 전 한 친구로부터 새 걸 장만했다며 자신이 쓰던 골프채 세트를 선물로 주겠다는 연락을 받고는 정중히 사양했다. 사실 난 전혀 골프를 칠 줄 모른다. 아니 관심이 아예 없는 것을 넘어 골프 치는 사람들을 탐탁지 않게 여길 정도다. 우리나라에서 골프란 단순한 스포츠나 건전한 여가활동으로 보기 어렵다는 오래된 '편견'이 똬리를 틀고 있어서다.

오래 전 비행기 편으로 서울 가는 길, 도착할 즈음 창밖 아래를 내려다봤을 때의 충격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서울에 가까워지자 아래로 보이는 건 오로지 아파트 아니면 골프장뿐이었다. 원래 그 자리에는 산과 들판이 펼쳐져있어야 할 땅인데, 순간 아메바같이 생긴 수많은 '초록 물체'들이 괴기스럽게 느껴졌다.

이물 없는 친한 친구였기에 그때의 경험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더니, 어느덧 50대를 바라보는 그의 입에서도 "둥글둥글 모나지 않게 사는 게 삶의 지혜"라는 익숙한 대답이 튀어나왔다. 결국, 육식을 하지 않고 골프를 치지 않는 난 우리 사회에선 '정을 맞을 수밖에 없는 모난 돌'이라는 이야기다.


태그:#채식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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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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