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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의 은유는 "질병의 책임을 환자에게 덮어씌우는 짓"이라고 수잔 손택은 말했다. 장애 또한 마찬가지다. 부정적 비유에 흔히 장애가 등장한다. 특히 불통정치인을 비난하기 위해 '발달장애' 또는 '자폐'라는 말을 쓰는 이들이 많다. 여기엔 이중의 게으름이 있다. 생각 없이 타인의 곤란을 비유에 끼워 넣는 것도 게으르지만, 정작 그 비유에 등장하는 타인에 대해선 아는 바도 없고 알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인식과 태도의 게으름이 겹 자물쇠다.

나 또한 그런 자물쇠로 잠겨 있는 사람인지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지레짐작으로 판단하고 어정쩡한 태도를 취할 때가 많다. 게다가 <그래, 엄마야>(인권기록활동네트워크 '소리' 지음, 오월의 봄 펴냄)의 등장인물과 글쓴이 중에는 아는 이들이 수두룩했다. 그런 탓에 이 책을 받아드는 맘은 복잡했다. '편견에 빠지지 말자'고 다짐했지만 자꾸 그런 쪽으로 쏠리는 고삐를 잡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 쪽'이 뭐냐고? 편견에는 악의적인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선의를 가장한(게으름은 흔히 선의로 포장된다) 고정관념이 때론 더 위험하다.

그런 위험한 태도 중 하나는 이 책의 등장인물들을 '비극'의 주인공으로 단정해놓고 대놓고 아파할 자세를 취하는 거다. 이런 편견이야말로 "스쳐 지나가는 순간에 인간적으로 모멸당하는 게... 그런 게 셀 수도 없어, 셀 수도 없어"란 엄마의 경험을 구성하는 것일 게다. 이 책의 엄마들과 발달장애인 자녀의 삶을 '비극'으로 보려는 것이야말로, 정말 '비극'을 만드는 일이 될 것이다.

"아이의 장애는 온 미래가 산산이 부서진 느낌"이었지만 엄마들은 그 느낌에 머물지 않는다. 그런 느낌을 강요하는 기준들에 눈을 돌리는 엄마들의 발걸음은 "구분하고 배제하는 '기준'을 무력화시키는 방법"을 찾아 분주해진다. 이 발걸음에 동행하고 또 다른 사람을 초대하는 것이 이 책이 말을 거는 목적이다.

장애는 가슴 아픈 비극? 이것 역시 우리의 편견

<그래, 엄마야> 겉표지
 <그래, 엄마야> 겉표지
ⓒ 오월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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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편견 중 하나는 장애인과 그 가족을 이해해야 할 대상으로만 여기는 것이다. 이 책은 그 반대로 생각해 볼 것을 자극한다. 발달장애인의 시각에서 보면 소위 '정상적'인 사람들이 이해가 될까? 이 책은 "당신은 그들에게 사회적 소통이 전혀 되지 않는 이방인"이고 "외계인"일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타인을 이해하려는 학습과 훈련은 누구에게나 요구되는 것이지, 일방향일 수가 없다.

성장하는 것도 관계의 쌍방이지, 어느 한쪽만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이런 이분법을 깨는 데 저돌적이다. 이해나 시혜를 '구걸'하지 않는 걸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서 이 엄마들은 "다른 장애 부모와 다르다"란 말을 듣는다. 엄마들의 말마따나 "장애를 마주한 후로는... 성격마저 저돌적으로 바뀌었다." 마주함으로 인해 "엄마들은 늘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

엄마들의 싸울 용기를 '모성애'라 말하는 것이야말로 모욕이다. 전가, 회피, 외면 등을 모성애에 대한 찬양으로 덮으려는 것은 엄마에게 전적으로 책임을 떠맡기려는 속셈이다. "아이들을 밀어내는" "대학 바라기" 교육에 대해 왜 엄마만 속상해야 하나? 자녀의 장애를 "엄마 때문인가요?"로 묻게 만드는 주변인들은 제도적 모욕인 차별에 대한 '죄책감'마저 엄마의 몫으로 밀어낸다. 외면하는 아빠나 힐난하는 가족들의 '자리 취하기'에 대해 엄마는 꾸짖는다.

"사람들은 집을 편안함이라 하는데 나한테 집은 우울함이야.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공간이지."

"내가 없었구나" 돌아보며 '나'를 찾고 싶은 엄마들은 자녀에 대해서도 '나'를 찾는 존재로서 바라보기 시작한다.

"어떤 애는 '숨 쉬는 것만 자유롭고 다른 건 모두 허락받아야 한다'고 그래."

이처럼 엄마가 다 알아서 판단하고 결정하는 데서 벗어나 비로소 자녀에게 '물어볼 생각'을 하게 된다. "미래를 설계할 시간이 필요해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라고 노래하는 엄마는 "가족이 같이할 수 있는 뭔가"를 만들기 원하고 "우리 아이가 이 사회에서 살아갈 권리"를 보장하는 사회적 시스템을 고대한다.

"한 명 한 명에 맞춘다면 기준은 무의미해진다. 구분하고 배제하는 '기준'을 무력화시키는 방법 중 하나가 개별적 접근이다."

세상에 '똑같은' 사람이 없듯이 발달장애에도 '똑같은' 유형은 없다. 다 제각각이다. 이 책은 그 '제각각'의 삶을 보여준다. 제각각이지만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고통과 슬픔, 기쁨과 보람이 있고 사회구성원들이 당연히 응답해야 할 책임의 목록이 있다. 공감은 '응답하는 것'이고 다른 말로 하면 '응답에서 나오는 책임'이라 했다.

십 년 넘게 "아이가 좋아지고 있다"고 말해주는 친정아버지

'자폐 정치인', '자폐 지식인', '너 자폐냐?'를 농담으로 하는 사람들... 이런 걸 지적하고 탓하기는 쉽다. 하지만 그런 정도의 자리 취하기에선 사이가 너무 멀고 책임도 희미해진다.

우리는 서로 충분히 바짝 다가서야 한다. 가령 "고통에 대한 반응의 윤리"(사라 아메드)가 요구된다. 엄마들은 주변에서 고통을 배가시킨 사람들의 말과 반응 뿐 아니라 동행하는 반응도 털어놓는다. "거의 매일 십 년 넘게 전화해서 (아이가) 좋아지고 있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친정아버지였다는 얘기에 가슴이 녹았다.

"가족이 아닌 척해도 돼" 장애인이 아닌 다른 자녀에게 엄마는 이런 말을 한다. 지적장애를 가진 언니를 길에서 모른 척하던 친구 얼굴이 떠올랐다. 엄마들이 털어놓는 장면마다 내가 살아오면서 봐왔지만 중요하게 의식하지 않았던 사건들이 겹쳐졌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서 튀는 행동에 이상한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들" 때문에 엄마들은 속상하다고 한다.

"멀쩡하게 생겨 가지고"가 입버릇인 지인이 어느 날 발달장애인 엄마들의 지적에 '흠칫 놀랐다'고 했을 때 '그런가보다' 정도로 넘어갔던 내 무심함이 떠올랐다. "학습이 현저히 덜어지는 지적 장애"를 가진 친구를 바보라고 놀리던 시절, 그 아이와 짝지어주고 학습지도를 해서 반평균을 올리라던 선생님이 떠올랐다. 친구를 사귀라는 게 아니라 '반 평균 향상'이 목표였던 지시였다. 선생님은 '바보'란 말을 못 쓰게끔 나부터 지도했어야 했다. 더스틴 호프만의 연기에 탄복하고 탐 크루즈의 외모에 반한 영화 <레인맨>을 보고 발달장애인은 죄다 '천재'라고 생각했던 나는 무지와 편견의 앙상블이었다.

"엄마들은 늘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

이 말은 반복할수록 힘이 난다. 이 싸움은 발달장애인을 밀어내고 갖춰놓지 않고 작동하지 않는 제도를 위한 싸움이다.

"내가 일하는 동안 장애의 시름을 잊을 정도로 (활동보조인이) 잘 돌봐줬죠. 그걸 보면서 처음으로 사회시스템만 잘 갖춰지면 엄마들이 이렇게까지 힘들진 않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활동보조인 서비스는 정말 획기적인 거예요... 부모가 아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시간을, 틈을 만들어주더라고요."

시스템 이용은 여전히 틈새 비집기에 불과하다. "필요한 서비스가 아니라 제공하는 서비스"를 어쩌다 요행히 받을 뿐이다.

"우리나라는 제도보다는 운인 것 같아요. 인맥, 인복, 천운 같은 것들요."

행복(happiness)은 운을 의미하는 중세 영어의 'hap'에서 왔다고 한다. '운(hap)'은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 그러던 hap이 차츰 뭔가 좋은 것으로 해석되면서 행복이 됐다. '뭔가 좋은 것'을 운이 아닌 것으로 만드는 것은 제도적 모욕인 차별을 벗어나 제도적 존중을 만드는 의식적인 책임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류은숙은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월간 소식지 <교회와 인권>에도 실렸습니다.
<그래, 엄마야>,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엄마들의 이야기(인권기록활동네트워크 '소리' 지음, 전국장애인부모연대공동기획), 오월의 봄, 1만 4000원, 2016.04.22



그래, 엄마야 -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엄마들의 이야기

인권기록활동네트워크 ‘소리’, 오월의봄(2016)


태그:#그래엄마야, #서평, #발달장애,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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