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 코스트(Gold Coast)를 떠나 난생 처음 자동차로 배를 끌고 세 시간 남짓 운전해 갈마드(Gulmarrad)라는 동네에 도착했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얌바(Yamba)와 가까운 곳이다. 예약한 민박집에 들어선다. 요즘 유행하는 에어비엔비(Airbnb) 민박집이다. 나이가 든 주인 내외가 정겨운 표정으로 우리를 반긴다. 호주에 살면서 자주 느끼는 것이지만 시골에서 만나는 사람들 인상에는 넉넉함이 배어 있다.
널찍한 대지에 현대식으로 지은 단층 건물에 들어선다. 목욕탕이 달린 안방을 손님에게 빌려주는 민박집이다. 방에 들어서니 정성 들여 정리한 흔적이 보인다. 간단한 짐을 방에 놓고 응접실에서 주인이 마련한 다과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너른 뒷마당에서는 캥거루 서너 마리가 풀을 뜯고 있다. 이름 모를 새들도 와서 나뭇가지에 앉아 지저귀고 있다. 은퇴 생활을 하기에 좋은 환경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인이 가볼 만하다고 권한 바닷가 동네 부름 헤드(Brooms Head)라는 동네로 향한다. 늦은 오후 시골길을 운전한다. 시골 냄새가 물씬 풍기는 바람이 좋다. 창문 열고 바람을 흠뻑 맞으며 공해 없는 자연에 젖는다. 한국에서 미세먼지가 골칫거리라는 뉴스가 생각난다. 베트남에서 지낼 때 보았던 공해에 찌든 하늘도 생각난다. 더 나은 삶을 위해 개발을 한다고 하는데, 개발이 진정 사람을 위한 것인지 가끔 헷갈리기도 한다.
부름 헤드에 도착했다. 캐러밴 파크 하나 덩그러니 있는 작은 바닷가 동네다.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언덕에 차를 주차하고 주위를 둘러본다. 너른 백사장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서늘한 바람이 기분 좋을 정도로 불고 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노부부가 자동차에 앉아 풍경을 즐기고 있다. 호주 여행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풍족하지 않아도 개발되지 않은 시골의 아늑한 모습이 마음에 든다.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저녁 시간이다. 식당을 찾아 민박집에서 가까운 매클린(Maclean)이라는 조금 큰 동네로 향한다. 이곳에는 퇴역 군인 클럽(RSL: Returned and Services League)이 있다. 평일이라 그런지 넓은 주차장에는 대여섯 대 자동차밖에 없다.
주차장 구석에 있는 큰 나무에는 수많은 박쥐가 시끄럽게 모여 있다. 오래전 세계적인 관광지 카카두 국립공원(Kakadu National Park)에서 보았던 박쥐 떼가 생각난다. 동네 한복판에 있는 오래된 나무에, 대낮임에도 셀 수 없는 박쥐가 거꾸로 매달려 있던 진기한 풍경이었다.
바다는 수심 깊은 곳까지 내보이며 깨끗함을 자랑한다다음 날 아침 관광지 얌바를 찾아 나선다. 아주 오래전 왔던 곳이기도 하다. 동네 한복판에 들어서니 휴양지 냄새가 물씬 풍긴다. 카페와 식당 그리고 관광객이 찾을 만한 상품을 파는 가게가 즐비하다. 경치 좋은 언덕엔 크고 작은 숙소가 자리 잡고 있다.
낯선 동네에 들어서면 흔히 하듯이 동네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높은 장소를 찾아 나선다. 바닷가 높은 언덕에 오르니 너른 잔디밭 위에 등대가 우뚝 서 있다. 젊은 부부가 아이 한 명과 한가로운 오후를 즐기고 있다. 긴 방파제를 빠져나가는 두 척의 큰 고깃배가 인상적이다.
내려가 방파제를 걷는다. 바다는 수심 깊은 곳까지 내보이며 깨끗함을 자랑한다. 방파제 중간중간에는 수십 마리의 제법 큰 고기가 떼로 몰려 있다. 조금 더 걷는데 아내가 빨리 오라고 한다. 가보니 커다란 거북이가 물속으로 서서히 사라진다. 아내는 거북이가 바로 앞에서 노니는 것을 보았다며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대여섯 마리의 돌고래가 물속을 드나들며 분주하다. 아마도 먹이를 찾는 모양이다.
방파제 산책을 끝내고 나오니 왼쪽으로 기괴한 돌이 많다. 풍파에 의해 조각된 커다란 돌덩이들이다. 밀면 바다에 떨어질 것 같은 거대한 돌이 불안정하게 놓여 있기도 하다. 호주는 지금 겨울임에도 방금 수영을 끝낸 젊은이들이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있다. 사진에 조예가 깊은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은 삼각대에 카메라를 올려놓고 바다 풍경을 진지하게 담고 있다.
바다를 끼고 조금 걸으니 캐러밴 파크가 나온다. 파크는 캐러밴을 끌고 온 사람으로 붐빈다. 바로 옆 선착장에는 고급스러운 큰 배들이 수십 척 정박해 있다. 여행 시즌이 아님에도 사람으로 붐비는 것을 보면서 얌바가 관광지로 유명하다는 것을 실감한다.
자동차로 10여 분 걸리는 곳에 있는 국립공원을 찾아 나선다. 국립공원에 들어서니 자그마한 동네가 나온다. 막다른 길에 산책로가 있다. 앵오우리 풀(Angourie Blue Pool)로 가는 길이라는 이정표를 따라 산책길을 조금 내려가니 인공적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믿을 만한 수영장이 나온다. 낮은 바위를 넘나드는 파도가 자동으로 물을 갈아주는 훌륭한 수영장이다. 근처를 걸으니 인적에 놀란 고기가 빠른 속도로 달아난다.
국립공원 안에 있는 작은 동네를 천천히 운전하며 돌아본다. 바다에 딸린 넓은 호수가 나오고 석양이 물들기 시작한다. 호수에는 작은 고기들이 쉴 새 없이 뛰어오른다. 고기 뛰는 소리와 엷은 구름을 물들이는 석양이 한 폭의 그림이다. 사진에 담는다. 조금 떨어진 곳에 주민으로 보이는 부부도 다정하게 석양을 바라보고 있다.
집으로 가는 날이다. 주인 내외와 작별 인사를 나눈다. 개발은 덜 되었을는지 몰라도 도시 생활의 복잡함보다는 시골의 단순함을 찾아 지내는 사람들,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는 않아도 마음 넉넉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보기에 좋다.
덧붙이는 글 | 호주 동포신문 '한호일보'에도 연재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