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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자유당의 핵심정책을 살펴보면, '동성애가 에이즈를 유발한다', '할랄단지가 조성되면 테러위험국이 된다', '반차별법이 통과되면 학교에서 개인적으로도 성경을 읽을 수 없게 된다' 등의 잘못된 주장으로 가득하다.
 기독자유당의 핵심정책을 살펴보면, '동성애가 에이즈를 유발한다', '할랄단지가 조성되면 테러위험국이 된다', '반차별법이 통과되면 학교에서 개인적으로도 성경을 읽을 수 없게 된다' 등의 잘못된 주장으로 가득하다.
ⓒ 기독자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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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전 즈음에 총선이 있었다. 지금이야 새누리당이 선거에서 참패해 제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동안 야3당이 세월호와 국정교과서 관련 법안을 수정하려고 시도하고 있지만 당시에 나와 내 지인들은 다른 곳에 관심을 가지는 중이었다.

기독자유당. 동성애와 이슬람, 차별금지법 제정 저지를 구호로 내세우며 화려하게 나타난 이들이 출구조사에서 이름을 보이자 적잖은 사람들이 당황했을 것이다. 아무리 출구조사라도 유의미한 득표율이 아니라면 나올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결과적으로는 기독자유당은 원내진출에 실패했지만 정당득표율 2%를 넘겨 국고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사실 원내진출에 실패했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원내진출 가능한 득표율 3%에 근접했다는 것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성소수자를 혐오해서는 안 된다는 사람들과 성소수자인 지인들로 내 주변을 채우며 지내왔다.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어떤 사랑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차별받는 것은 폭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우리들에게 기독자유당의 득표율은 절망 그 자체. 우리가 친하게 지내는 공간에서 한 걸음만 걸어나가면 혐오는 현실이었다. 혐오가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그 혐오를 현실에서 직접 겪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실제로 기독세력이 제도권 정치에 진입하려는 시도는 지난 몇 번의 선거에 있었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했고, 유의미한 득표율을 받았을 때도 있지만 아닐 때도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또 한 번의 시도가 유독 남달라던 것은, 혐오의 정동이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이것이 공론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을 무렵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혐오를 공공연히 주장하며 나타난 이들이 정치세력화를 도모했고, 유의미한 성과를 냈다는 것은 정말 중요하게 다뤄져야 했다. 그런데 많은 언론이 이를 다루지 않고 새누리당 참패에만 즐거워하고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퀴어문화축제를 막는 기독 세력, 그 묘한 기시감

 11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2016퀴어문화축제가 열리고 있다.
 11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2016퀴어문화축제가 열리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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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시간이 흘러 6월 11일, 서울광장에서 17번째 퀴어문화축제가 열렸다. 혐오하지 말자고, 사랑할 수 있게 해달라고, 내가 나일 수 있도록 해달라고 외치기 위해 우리는 광장에서 절망에 맞서 춤을 추었다. 나는 참가자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길을 안내하는 자원활동을 하게 됐다.

퀴어퍼레이드가 이 땅에서 17번이나 열렸지만 그게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작년이었다. 사회적 약자를 향한 폭력과 억압을 느끼며 이것에 대해 끊임없이 비판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다짐할 무렵이었던 것 같다.

그날 하루 정말 많은 혐오 세력을 보았고 그들과 불가피한 대치를 했다. 주로 기독교 세력들과 많이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한 기독교 대학에서는 총장과 교직원, 동문 등이 서울광장 반대편에서 집회를 벌이기도 했다. 정말 힘든 경험이었다.

혐오 세력은 축제가 끝나기 직전까지도 괴성을 지르며 반대집회를 했다. 그걸 보면서 느낀 건 무력감이었다. 저들은 공공연하게 혐오를 표출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다. 한국사회의 주류 의견은 성소수자들에게 긍정적이지 않기 때문에, 이를 잘 아는 기독세력들은 미디어와 오프라인을 전부 동원하는 데에 에너지를 쏟은 것 같았다. 저것이 주류의 의견이구나. 마치 총선에서 원내진입을 할 뻔했던 기독자유당을 보는 그런 기분.

그렇게 험난했던 퀴어문화축제가 끝나고 모두가 일상으로 돌아갔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혐오와 맞부딪히는 경험을 할 수밖에 없는 일상으로.

<아가씨>의 동성애 코드를 애써 무시하는 이유는 무언가

 영화 <아가씨>의 한 장면.
 영화 <아가씨>의 한 장면.
ⓒ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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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 영화 <아가씨>가 개봉을 했다. 동성애 코드가 있는 영화다. 그러니까, 이건 영화니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성과 여성 간의 로맨스를 다루고 있는 영화다. 무엇이 문제인가? 영화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이 영화의 주제를 단순히 '동지애', '인간적인 로맨스'로 축소한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사랑의 방식을 애써 무시하고 포괄적으로 사랑 혹은 동지애라고 묶는 것은 굉장히 문제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특수성을 무시한 보편성은 그 자체로 폭력이기 때문이다. 만약 성소수자의 사랑 방식이 억압받지 않고 당연한 것으로 취급받는 세상이라면 모를까, 존재를 부정당하는 폭력이 만연한 사회에서 동성애를 포함한 비이성애적 사랑의 방식을 로맨스, 동지애 같은 단어로 치환하는 것은 또 다른 혐오가 아닐까.

정말 한 걸음만 나가면 혐오로 가득 채워진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숨이 막히는 일이다. 게다가 온갖 혐오 중에 나는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만을 이야기했을 뿐이다. 고통받는 약자가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는 분명히 부조리하다.

기독자유당의 존재나, 퀴어문화축제를 달갑게 보지 못하는 혐오세력이나, <아가씨>의 동성애 코드를 애써 무시하는 사람들 모두 이 세계에는 감추려 해도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혐오에 맞서 계속 싸울 것이다.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할 것이다. 폭력 앞에서 무참히 쓰러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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