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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식물을 처음 관찰했다.
▲ 2007년 처음 발견한 땅귀개를 습지위에 놓고 관찰하는 모습 신기한 식물을 처음 관찰했다.
ⓒ 이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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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관통도로 안될 거 같네."

2007년 답사를 하던 국립중앙과학관 이상명 박사(이하 이 박사)의 말이다. 이 박사는 이삭귀개와 땅귀개가 월평공원에 서식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한 듯 이야기했다. 이름도 생경하기만 했던 이삭귀개와 땅귀개는 당시만 해도 전국 4개 지역 습지에 서식하는 식충식물이었다. 이렇게 귀한 두 종의 식충식물을 나는 그렇게 만났다. 보통 이삭귀개와 땅귀개는 비슷한 곳에서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입이나 꽃으로 벌레를 잡는 것이 아니라 뿌리로 박테리아나 미생물을 잡아 먹는 식충식물이 월평공원에 서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삭귀개와 땅귀개는 항상 물이 있으며 햇빛이 좋은 곳을 선호한다고 한다. 때문에 이탄층(식물들이 계속 번성하고 죽어가면써 쌓여 스펀지 형태를 이룬 곳)이 발달한 습지보호지역에서 주로 관찰된다. 손톱보다 작은 꽃을 피우기 때문에 관찰 자체가 어렵다.

손톳크기도 안되는 작은 꽃을 피운다.
▲ 보라색의 이삭귀개 손톳크기도 안되는 작은 꽃을 피운다.
ⓒ 이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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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전국적으로 귀한 희귀식물이었던 이삭귀개 땅귀개가 월평공원에서는 특이하게 산책로 옆에 그냥 자라고 있었다. 다행히 월평공원 산책로는 4계절 물이 마르지 않게 축축하게 젖어 있었고 햇빛이 잘 드는 지형이었다. 때문에 이삭귀개가 번식하고 있었을 게다.

이삭귀개와 땅귀개가 서식하는 월평공원은 이 밖에도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이다. 봄이면 다양한 양서류와 다양한 새들과 곤충, 웅창한 살림까지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법적보호종도 다양하게 서식하면서 명실상부한 대전의 자랑거리이다.(참고 : "월평공원·갑천 구간, 대전시 가치 높이는 큰 자산"

이런 월평공원에 관통터널(이하 동서관통도로) 건설계획이 가시화되면서 대전지역에서 심각한 갈등을 불러왔다. 생태적 가치를 높이 평가한 환경단체들을 주축으로 07년~10년 3년간 대전지역에서는 그야말로 뜨거운 감자였다.

건설을 강행하려는 대전시와 막으려는 시민사회, 환경단체가 팽팽하게 맞서며 이삭귀개와 땅귀개 역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참고 : "월평공원 관통도로 유보하라"... 주민들 단식농성 돌입)

사업 시행자였던 LH와 대전시는 이삭귀개와 땅귀개가 논란이 되자 이식을 통해 종을 보존전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금강유역환경청은 이삭귀개와 땅귀개 이식 등의 몇가지 조건을 달아 환경영향평가서를 통과시켜주었다.

이전까지 이식 사례가 없는 이삭귀개와 땅귀개는 2009년 월평공원의 다른 계곡과 금정골 계곡 상류지역 중 3지역을 선정하여 옮겨졌다. 인위적으로 물이 공급되지 않아도 물이 있으며, 햇빛이 드는 지역이 있었다면 이삭귀개는 이미 서식하고 있을 거라며 불가하다는 반론은 무시되었다. 옮겨봐야 실패할 거라는 환경단체의 예상은 슬프지만 정확하게 맞았다.

서식처 토양층 약 15~20cm를 통으로 퍼서 이식한 이삭귀개와 땅귀개는 2011년까지 1개~10개 내외의 꽃이 확인되었다. 2012년부터는 이삭귀개 서식처라는 푯말과 경계만 덩그러니 위치하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이삭귀개와 땅귀개는 월평공원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시행자와 환경부 등 관계기관 합작품이었던 식충식물 이식은 완벽하게 실패한 것이다. 자연의 이치가 현재 기술로 해결이 안되는 불가능한 도전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등산객의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이식된 이후 펜스를 설치해 놓았다.
▲ 이식장소라고 붙여놓은 푯말과 펜스 등산객의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이식된 이후 펜스를 설치해 놓았다.
ⓒ 이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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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삭귀개와 땅귀개가 서식하던 금정골 계곡 역시 대전시가 동서관통도로 건설을 강행하면서 상당 부분 훼손되었다. 맑은 물이 사시사철 흐르던 금정골 계곡은 2013년 9월 개통된 동서관통도로의 커다란 교각과 터널이 대신 자리하고 있다.

22일 찾아간 월평공원의 풍경이다. 이삭귀개와 땅귀개 이식처라고 설치된 푯말마져 철거 되어 있었다. 2015년까지 설치되어 있던 푯말 철거는 이식이 최종 실패한 것을 인정한 꼴이 되었다. 이제 완벽하게 이삭귀개와 땅귀개는 월평공원에서 멸종되었다.

이삭귀개가와 당귀개가 이식되었던 부지에는 다른 야생식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습지에 서식하는 이삭귀개와 땅귀개가 이식된 부지는 물기가 있는 습지여야 한다. 하지만, 이식된 땅에 물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사시사철 물기가 있어야 하지만, 우기인 6월에도 물은 없었다. 물기가 없는 땅에 서식할 수 없는, 두 종류 식충식물의 이식처라고 보기에는 적절하지 않아 보였다.

바닦에 물기라고는 찾아 볼 수 없어 육화되어 가고 있다.
▲ 팬스마져 사라진 이식처 바닦에 물기라고는 찾아 볼 수 없어 육화되어 가고 있다.
ⓒ 이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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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관통도로가 건설된 지점인 상류 금정골에도 유난히 물이 없었다. 사시사철 물이 많았던 금정골이 우기인 현재에도 물이 없는 점은 이상해 보였다. 대부분의 터널공사에서는 용출수가 배출된다. 터널 공사를 하면 지하수맥에서 지속적으로 물이 용출되는데, 이것을 용출수라고 한다.

대전 지하철에서도 지속적으로 용출수가 나오며, 이를 대전시청 화장실물로 이용하고 있다. 때문에 동서관통도로 건설로 인해 지하수가 용출되면서, 금정골 계곡의 물이 마르는 것은 아닌지 의심되었다. 동서관통도로 건설시에 받은 환경영향평가를 토대로 지하수위 검토를 해볼 필요가 있어 보였다.

터널에서 나오는 교각과 물기없는 수로가 전부이다.
▲ 현재 금정골의 모습 터널에서 나오는 교각과 물기없는 수로가 전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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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현장을 목격하자 왕복 8차선의 대형 동서관통도로는 애초부터 금정골에 맞지 않는 옷이었다는 생각에 이른다. 대전시와 LH가 주장해 이식했던 이삭귀개와 땅귀개의 이식은 실패했다. 이제 금정골의 물도 걱정해야 한다. 세계최초로 이식을 시도했던 식충식물 이삭귀개와 땅귀개는 이제 더 이상 월평공원에 없다.

나의 희귀식물 관찰기는 비극이 되어버렸다. 이런 결말을 모른 채 동서관통도로는 흔들림 없이 서 있다. 지금도 서구청은 월평공원에 대규모 아파트 건설계획을 검토 중이며, 월평공원 맞은편 농경지는 갑천지구로 개발될 예정이다.

월평공원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조치가 될 것으로 기대했던 습지보호지역 지정은 지지부진하다. 지정주체인 환경부는 규제완화에 더 열을 올리며, 보호지역에는 미온적이다.

앞으로 이런 개발 광풍에 월평공원에서 또 무슨 종이 멸종할지 모르겠다. 지키고 또 지켜야 할 대전의 생태섬 월평공원은 지금 바람 앞 등불처럼 위태롭다. 대전시의 온도를 낮춰주며 한밭수목원에 비해 10배 이상 산소를 공급하는 월평공원은 꼭 생물들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대전시민을 위한 녹지이며, 랜드마크가 될 수 있는 곳이다. 이제 개발의 광풍을 멈춰야 한다. 제 2의 제 3의 이삭귀개와 땅귀개가 나올 우려 뿐만 아니라, 대전지역에 서식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태그:#이삭귀개, #땅귀개, #멸종, #월평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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