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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가 사라진다. 글로벌 저성장 기조와 기술의 발달은 우리 모두를 일자리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평생직장의 시대는 오래 전 끝났고, 100세시대 누구나 2~3번의 일(業)을 해야 생존한다. 국가도 사회도 답해줄 수 없는 문제, 결국 개인이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 내 일은 내가 만들어가야 하는 시대다. 직장을 다니면서, 또는 홀로서기를 통해 '1인기업'을 운영해온 이들에게서 답을 찾고자 한다. '직장 다닌다고 직업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찍 간파한 '1인기업가'들의 경험담을 통해 해법을 찾아본다. [편집자말]
1인기업 6개월차 진아영어컨설팅 조은진 대표.
 1인기업 6개월차 진아영어컨설팅 조은진 대표.
ⓒ 조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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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대학 나오고 영어도 잘하는데 왜 매번 계약직을 전전하는지 다들 의아해했다. 뭘 해야할지 막막해 대학원에 진학했고 준비가 안된 채로 박사과정에 들어갔다가 중도에 포기했다. 이후 한국에서의 직장생활은 4개월, 8개월 단위로 계약직을 전전하는 슬픈 미생의 시절이었다. 이제 막 6개월차 접어든 영어컨설팅 1인기업가 조은진(34)씨 이야기다.

해외 주재원인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 미국, 중국에서 각각 3년, 4년간 생활했던 조씨는 활달하고 공부도 잘하는 아이였다. 베이징 국제학교에서 보낸 중학교 시절, 조씨는 영어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고 이후 인생을 통틀어 당시를 영어공부를 가장 많이 했던 시기로 회상했다.

"단어의 어원을 찾고 파생되는 어려운 단어까지 혼자서 공부했어요. 토플이나 토익 문제집을 풀기도 했죠. 방학 숙제였던 영어일기는 항상 주어진 분량보다 더 많이 써냈고 선생님과 주고받은 피드백이 무척 즐거웠어요."

고2를 앞두고 한국으로 돌아와 고교생활을 이어나갔지만 국제학교와는 다른 한국의 학교문화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있는 듯 없는 듯 고교시절을 보낸 조씨는 서강대에 입학, 영미문화(영문학)를 전공으로 선택했고 심리학을 복수전공 했다. 2번의 휴학과 일본에서의 교환학생을 마치고 돌아와보니 4학년 2학기, 친구들은 대부분 대기업에 취업했거나 취업을 준비중이었다.

10년간 미국·중국·일본서 생활... '영어가 직업이 되다'

2010년 5월 컬럼비아교육대학원 졸업 당시 조은진씨.
 2010년 5월 컬럼비아교육대학원 졸업 당시 조은진씨.
ⓒ 조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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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해야할지 막막해하던 조씨에게 미국에서 석사과정중인 둘째언니가 대학원 진학을 권했다. 발달심리학(Human Development) 전공을 목표로 유학준비에 들어갔고 장학금 오퍼가 있었던 컬럼비아대학 교육대학원에서 발달심리학 석사과정을 하게 됐다.

2개의 교내 아르바이트와 4학년때부터 하던 번역일을 병행해 월 100만원 정도 스스로 생활비를 벌었다. '영문에디팅'을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박사논문을 준비중인 지인으로부터 의뢰받아 첫 작업을 진행했고, 원어민보다 실력이 뛰어나다는 평가와 함께 이후에도 계속 일을 소개받았다.

"석사과정중 공중보건학에 관심이 생겨 박사과정에 지원했어요. 전액 장학금을 받는 조건으로 템플대학 박사과정에 들어갔죠. 박사가 된다는 들뜬 마음에 처음엔 신났지만 내게 맞지않는 옷을 입은 것 같았죠. 자신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박사과정을 할 준비가 안돼 있었던 거죠."

2011년 4월 한국에 돌아왔을 때 조씨의 상태는 그야말로 만신창이였다. 몇 달 동안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몸과 마음을 추스렸고 회복되는 대로 취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가장 잘할 수 있는 일, 좋아하는 일을 찾았더니 결론은 '영어'였다.

대학원시절 박사논문 영문에디팅 경험을 바탕으로 본격 취업준비생의 대열에 들어섰다. 번역, 영문감수, 통역, 출판업무 등 영어와 관련된 다양한 일을 담당하는 영문에디터는 회사나 기관에 소속돼 일하지만 정규직은 드물었다. 계약기간이 짧으면 4개월부터 길면 1년, 일을 잘할 경우 연장하면 최대 2년까지 일할 수 있는데 보통 기관당 한두 명만 채용하기 때문에 경쟁도 치열하다.

"2012년 서른 나이에 국토연구원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어요. 이후의 직장생활은 눈물겨운 순간들이었죠. 조직에 적응하다가 6개월 계약기간이 만료됐고, 녹색성장위원회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지만 이마저도 이듬해 위원회 축소와 함께 4개월만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어요. 외교부 에디터실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지만 계약기한 만료로 8개월만에 다시 짐을 싸야 했죠."

2012~2013년 조은진씨가 번역 및 감수한 출판물.
 2012~2013년 조은진씨가 번역 및 감수한 출판물.
ⓒ 조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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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개월간 3곳의 직장을 옮겨다닌 끝에 2013년 12월 서울 소재 모 대학의 영문에디터로 입사했다. 영문 홈페이지 제작부터 영문 웹진 등 영어와 관련된 일을 도맡아 처리했다. 혼자서 감당하기엔 업무량이 너무 많았고 거듭되는 야근으로 몸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2015년 5월 목디스크 진단까지 받게 됐다. 미련하게도 계약기간인 2년을 채우기 위해 택시로 출퇴근하며 버티다 결국 팔의 마비와 손 통증 때문에 11월초에 입원하는 신세가 됐다.

계약직 영문에디터 전전... "제너럴리스트보다 스페셜리스트"

"그때를 돌이켜보면 왜 좀더 빨리 그만두지 못했나 하는 후회가 들어요. 주변에서 2년을 채워야 실업급여라도 받지 않겠느냐고 이야기했고 버티고 버티다가 한계상황까지 가버린 거죠. 그럴 땐 자신만 생각해도 되는건데 지금 생각해보면 제 자신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

오직 한 분야 전문성을 쌓기 위해 묵묵히 걸어왔던 길이 때론 타인에게는 무모한 도전으로 비쳐지기도 했다. 왜 대기업 정규직으로 입사하지 않는지, 왜 계약직을 전전하는지 은근한 차별의 시선도 느껴졌다. 하지만 대체가능한 제너럴리스트보다 스페셜리스트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4년간 현장경험을 쌓았고 마음속으로만 그리던 내 사업을 본격적으로 실현할 타이밍이 왔음을 직감했다.

"올 1월5일에 개인사업자 등록부터 냈어요. 당장 일을 시작한다기보다 건강을 돌보며 조금씩 할 수 있는 일부터 해보자는 다짐 차원이었죠. 네이버 모두(modoo)를 이용해 무료 모바일 홈페이지를 만들고 서비스 내용, 번역 단가 등을 정했어요. 비용 최소화를 위해 번역 등 에디팅 업무는 당분간 재택근무로, 직장인 대상 영어 레슨은 까페에서 진행했죠."

페이스북을 통해 1인기업가그룹을 알게 됐고 가입인사를 남기자마자 한 소프트웨어기업 대표로부터 일을 맡기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클라우드기반 소프트웨어 프리미엄서비스 론칭을 앞두고 해외 유저들을 위한 블로그와 홈페이지, 앱에 들어갈 내용을 영어로 번역해달라는 요청이었다. 특별한 홍보를 하지 않았음에도 지인들의 소개로 일이 계속 들어왔고 3~4월 두달동안 눈코뜰새 없이 바쁘게 일했다.

직장서 받던 월급 이미 상회 "내 강점은 영문 품질"

직장인을 대상으로 영어레슨중인 조은진씨.
 직장인을 대상으로 영어레슨중인 조은진씨.
ⓒ 조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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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기업 6개월차 조씨의 수입은 어느 정도일까? 애초 이전 직장에서 받던 월급보다 조금 더 많이 버는 것을 목표로 잡았지만 이미 목표를 달성했다. 물론 사업 초기이므로 지인소개가 많았다는 점과 예상보다 일이 많이 들어와 휴일 주말도 없이 일한 덕분이기도 하다. 힘들었던 지난 4년간의 직장생활중 자신도 모르는새 고객 베이스를 쌓아왔던 셈이다.

"1인기업은 아무리 일이 많아도 스스로 페이스 조절만 하면 눈치보지 않고 쉬고싶을 때 쉴 수 있어서 좋아요. 하지만 견적을 내거나 세금계산서 발행 등 복잡한 행정업무도 스스로 해야 하고 혼자 일하는 외로움도 감수해야 되기에 결코 쉬운 생활은 아닙니다."

조씨 스스로 1인기업으로서 만족도는 높지만 다른 이들에게 쉽게 추천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또 1인기업의 전제조건으로 전문성과 조직경험을 갖출 것을 조언한다.

1인출판기업 '상상력놀이터(대표 이도원)'와 협업을 통해 어린이책 <알고싶어 드론> 영문판을 번역했다.
 1인출판기업 '상상력놀이터(대표 이도원)'와 협업을 통해 어린이책 <알고싶어 드론> 영문판을 번역했다.
ⓒ 조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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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의 번역 경험과 4년간 조직에서 영문에디팅 경험이 있기에 다양한 분야의 문서를 다뤄봤고 온갖 지식을 섭렵할 수 있었어요. 늬앙스를 빨리 캐치하거나 맥락을 이해하는 센스, 무엇보다도 영문품질에는 누구보다 자신 있습니다."

업무량이 많아지면서 벌써 1인기업의 한계를 느낀다는 조씨는 조만간 프리랜서그룹을 형성해 협업을 해나갈 계획이다. 또 1인기업에게 페이스북과 오프라인 모임은 필수임을 강조했다.

"혼자 할 때보다 다른 1인기업가들과 협업할 때 시너지가 나고 작업도 즐거워요. 사업을 확대한다면 여러 명의 프리랜서들과 파트너십 개념으로 일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달중 함께할 프리랜서 5~10명 정도를 찾고 있어요. 7월부터는 프리랜서그룹과 함께 일할 예정입니다. 저는 번역보다 직장인 대상 영어강의를 더 많이 하고 싶어요. 저만이 할 수 있는 실험적인 강의를 선보이고 싶습니다."



태그:#1인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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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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