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여행

광주전라

포토뉴스

눈빛 초롱초롱한 네팔 아이가 받아내는 물줄기가 성수처럼 느껴져 '생수를 사서 먹어라'는 여행 안내서를 어기고 벌컥벌컥 그 물을 마셨다. ⓒ 송성영
란드룩에서 둘째 날, 늦잠을 자고 일어나 평소처럼 아침 겸 점심을 간단하게 마치고 게스트하우스를 빠져 나왔다. 한 아이가 란드룩 마을 한가운데에 자리한 수돗가에서 작은 청동 항아리를 씻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 '나마스테' 인사를 건네자 빙그레 웃는다.

아이는 청결하게 씻은 청동 항아리에 물을 담는다. 마치 성수라도 담아내듯 정성스럽다. 작은 항아리로 쏟아져 내리는 맑은 물이 초롱초롱한 아이의 눈빛을 닮았다.

"이 물 먹어도 되니?"

내가 물 마시는 시늉을 하며 아이에게 물었더니 부끄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항아리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가 슬며시 고개를 돌려 힐긋힐긋 쳐다본다. 내가 함박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자 부끄러운지 히죽 웃는다. 아이가 저만치 골목길로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다가 수도꼭지를 틀어 손을 대 본다. 차갑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물줄기에 입을 댄다. '자칫하면 배탈이 날 수 있다'는 생각을 접어 두고 벌컥벌컥 마신다. 란드룩에 오기 전 톨카에서 마신 물 때문에 배가 살살 아파왔지만 반나절 만에 잠잠해졌다. 인도나 네팔의 도심에서 석회질 성분이 많은 물을 잘못 마셨다가는 큰일을 치룰 수도 있지만 여기는 청정한 히말라야 기슭이 아니던가.

반드시 생수를 사서 마시라는 여행 경고장을 어기고 내 몸을 믿고 싶어졌다. 북인도 코사니의 시골 의사가 수술대에 올라야 될지도 모른다 했던 다친 무릎을 이끌고 여기까지 왔다. 처음에는 도무지 걷지 못할 것만 같았지만 1개월도 채 안돼서 어제 톨카에서부터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1시간 거리를 걷지 않았던가. 거기다가 인도를 거쳐 이곳 네팔에 오기까지 3개월 동안 낯선 사람들이 친절하게 건네는 음식을 입에 대지 말라는 경고장을 수없이 어겨왔다. 하지만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

두려움은 내 스스로가 만들어낸 허상이다. 형체 없는 귀신과 다름없다. 두려움은 몸과 마음을 망가뜨린다. 여행길도 마찬가지다. 낯선 것에 대한 경이로움을 만끽하기 보다는 두려움에 휩쓸려 여행을 망치는 경우가 많다.

홀로 떠나는 여행길은 익숙한 것들로부터 결별하고 낯선 것들과의 끊임없는 만남이다.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면 병든 몸과 마음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그것이 내 오랜 믿음이다. 하지만 나는 조금 전 성수처럼 다가왔던 물을 마시기 전에 망설였다. 두려움으로 여전히 머뭇거리고 있었다. 낯선 나라를 홀로 떠돌아다니는 것은 내 오랜 믿음에 대한 시험이기도 하다.

두려움에 휩쓸려 여행을 망치지 않기를...
물을 긷던 한 네팔 여인이 넋을 놓고 안나푸르나를 바라보고 있다. ⓒ 송성영
밭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여인. 북인도 시골 마을 코사니에서처럼 이곳 란드룩에서도 밭일은 여자들 몫인가 보다. ⓒ 송성영
이른 아침부터 수돗가에서 아낙네가 양동이에 물을 긷다 말고 안나푸르나를 넋놓고 바라보고 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찍고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 채. 안나푸르나를 평생 동안 바라보고 살아왔을 아낙네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 같은 배낭객들은 평생 한두 번 볼까말까 하는 저 안나푸르나에서 벗어나 화려한 도시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도 아니면 어젯밤 남편과 대판 싸우고 신세 한탄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갑자기 가슴이 아파온다.

아니다. 나는 불경한 생각들을 접어둔다. 저 아낙네는 신처럼 변함없는 저 안나푸르나를 향해 마음속으로 행복한 뭔가를 위해 간절히 기도를 올리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온갖 상상을 해가며 좀 더 마을 아래로 내려섰다.

밭일을 마치고 빈 대바구니를 가볍게 이고 걸어가는 아낙네를 뒤따라가 본다. 북인도 시골 마을 코사니에서처럼 이곳 란드룩에서도 밭일은 여자들 몫인가 보다. 아낙네가 들어선 낡은 집은 란드룩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지붕들을 전시해 놓은 듯 초가지붕과 함께 납작한 돌과 양철을 얹힌 지붕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 아낙네가 인기척을 느끼고 뒤돌아본다. 나는 아낙네에게 '나마스테' 인사를 건네며 몸짓으로 말을 건네 볼까 하다가 그만두고 돌아서 나왔다.
안나푸르나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물. 저 계곡 반대편 마을을 향해 걸었다. ⓒ 송성영
계곡 반대편에 자리한 주변에 다랭이밭이 널려 있는 작고 아담한 마을에서 한 세월을 보내고 싶었다. ⓒ 송성영
란드룩 마을 저 아래로 안나푸르나에서부터 흘러내려오는 계곡이 있다. 저 안나푸르나를 향해 모든 잡생각을 버리고 걷고 또 걷고 싶었지만 무릎 통증 때문에 트레킹은 접어둘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저 계곡 건너 마을까지라도 가볼 작정이다. 거기에 안나푸르나를 조망할 수 있는 적당한 민가를 찾아 사나흘 보낼 생각으로 무작정 발걸음을 옮겼다.

계곡으로 내려서는 돌길이 급경사다. 30분도 채 내려서지 못했는데 고장난 무릎에서 불편한 신호를 보내왔다. 두 다리에 힘을 주고 발걸음을 옮겨놓을 때마다 무릎이 욱신거린다. 무릎 관절이 기름칠하지 않은 기계처럼 뻑뻑하다. 어제는 적당한 경사의 산길과 평지를 걸었기에 한 시간을 족히 걸었지만 이 길은 다르다. 한 걸음 한 걸음 급경사를 내려설 때마다 고통이 밀려온다.

마을을 건너는 다리가 눈앞에 보인다. 안나푸르나에서 내려오는 계곡물 사이에 놓여진 저 다리를 건너면 올망졸망 들어서 있는 작은 마을을 만날 수 있다. 멀리서 본 것과 달리 마을은 평화로움 그 이상으로 다가온다. 마을 주변 산비탈에는 온통 다랑이밭이 널려 있다. 열 가구가 채 안 돼 보이는 저 작고 아담한 마을에 머물면서 어떤 작물을 심고 또 어떤 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지 알고 싶다.

하지만 고지를 코앞에 두고 무릎 통증과 함께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갑자기 무릎이 뚝 꺾이는 느낌이다. 숙소로 향해 다시 비탈길을 올라갈 일이 까마득하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처럼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저 다리를 건너 마을로 내려 갈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이 문제다.

나약해지는 마음을 다잡아 나가기 위해 돌계단에 앉아 명상을 하듯 눈을 감았다. 애초에 사나흘을 머물고 싶다는 생각의 날개는 점점 더 창공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 여권이고 비자고 다 팽개쳐 버리고 저 아담한 마을에서 농사를 지어가며 한 세월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에 빠져 있는데 이슬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인도 다람살라에서 처음 히말라야 설산을 만나 그 아래 까마득한 암자를 바라보면서 고민 했을 때가 떠오른다. 그때도 내 고민을 말끔히 씻어 주는 비가 내렸다. 나를 보호해 주는 신이 있다면 그 신이 비를 통해 내게 메신저를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현실적인 상상을 접고 얼른 돌아가라. 어제는 돌아갈 곳이 없어 막막했는데 오늘은 분명 돌아갈 곳이 있지 않느냐.'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고지를 코앞에 두고 몰려온 무릎 통증
토마토를 저울에 달아 주는 란드룩의 네팔 사내. ⓒ 송성영
등줄기로 흐르는 식은땀에 절어 숨을 헉헉 몰아쉬며 다시 비탈진 돌길을 올라설 무렵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다. 저만치 산비탈에 돌집을 짓고 살아가는 한 사내가 대바구니에 토마토와 자두를 챙기고 있다.

하루에 한 끼 정도를 과일로 때우고 있던 나는 사내에게 다가가 손짓 발짓으로 토마토 1킬로를 달라고 했다. 내가 돈을 내밀자 사내 보다는 뒤에서 묵묵히 서 있던 아낙네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사내는 대바구니에 실려 있는 저울을 꺼내 꼼꼼하게 달아 준다.

"아이들은 없나요?"

그는 영어를 할 줄 모른다. 손짓으로 요만한 아이가 없냐고 했더니 무표정한 사내의 얼굴이 그제서 씨익 웃는 표정이 된다. 사내는 아내의 불룩한 배를 손짓한다. 아내가 임신 중이라는 것이다. 사내가 대바니구를 챙겨 어깨에 걸쳐 메고 집을 나선다. 아내는 집 나서는 남편의 뒤에서 팔짱을 끼고 배웅을 한다.

사내는 게스트하우스 주변을 돌며 과일 행상을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트레킹족들이 뜸한 비수기라서 장사가 시원치 않을 것이다. 조만간 세상에 태어날 아기를 위해 사내는 부지런히 다리품을 팔아야 할 것이다.
과일 장사 나서는 남편을 배웅하는 아내. 그녀는 임신 중이었다. ⓒ 송성영
충남 공주 산골에 살 때 시를 쓰는 한 후배가 '문학소녀'를 꿈꾸는 한 무리의 아줌마들을 몰고 온 적이 있었다. 그들은 사진기를 앞장세워 우리 집 옆으로 흐르는 계곡물이며 대나무 숲을 둘러보면서 참 아름다운 곳에서 살고 있다며 감탄을 자아냈다.

하지만 그들은 다 쓰러져가는 사랑채며 비가 오면 질퍽거리는 흙 마당, 겨울이면 꽁꽁 얼어붙고 여름이면 감질나게 흐르는 산기슭의 식수, 거기다가 장마철이 돌아오면 똥물이 튀기는 재례식 화장실이며 온갖 생활의 불편함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떠난 뒤 아이들 엄마의 눈치를 살펴가며 '그렇게 아름답다면 여기서 한번 살아봐라 그 소리가 나오는지...' 참 진상들이라고 비난했는데 지금 내가 그 꼴이었다.

멀고 먼 길 따라 안나푸르나를 찾아와 감탄을 자아내며 사진을 찍어대고 있는 내게 하루하루 벌어먹고 살기 위해 삶의 무게만큼이나 묵직한 과일 바구니를 어깨에 메고 행상을 나서는 저 사내는 뭐라 말할까.

누군가를 비난하는 손가락은 결국 자신에게 되돌아가게 되어 있다. 저들 앞에서 히말라야 설산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성수니 뭐니 해가며 그 물을 받아 농사를 지어가며 한 세월을 보내고 싶다는 내 생각은 사치였다. 삶은 행복한 순간보다 고통스러운 순간들이 더 많다.

때로는 행복한 순간들이 찾아오겠지만 내가 살아온 시간들이 그렇듯이 히말라야 설산을 머리에 이고 살아가는 저들 또한 대부분 고단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신은, 저 안나푸르나는 나의 사치스런 생각을 질타하며 비를 통해 내 자신을 직시하라 일렀던 것이다. 어리석은 내 마음을 되돌아 보자 무거웠던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문득 고행길은 내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깨닫는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태그:#란드룩, #생수와 성수, #안나프루나, #고행길, #어리석음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독자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