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파견노동자들은 저임금·장시간 노동과 차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파견의 범위를 확대하는 파견법 개정안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파견노동자가 처한 현실과 마주하기 위해, 기자 명함을 버리고 파견노동자가 되기로 했습니다. 지난 2, 3월에 걸쳐 한 달 동안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의 여러 공장에 취업해 보고 듣고 겪은 것을 기록했습니다. 그 기록을 기획기사로 공개합니다. - 기자 말

"내가 한 달에 1500만 원가량 벌어요. 사무실 비용 내고, 직원 6명 월급 주고 나면, 이것밖에 안 남아요. 그런데 당신 때문에 그 돈이 반 토막 나게 생겼어요."

휴대전화 수화기 너머에서 그는 울분을 토하고 있었다. 그는 파견회사 사장이다. 나는 이 회사를 통해 한 휴대전화 부품 가공 공장에서 파견노동자로 일했다. 그곳에서 겪은 저임금·장시간 노동을 기사로 썼다. 이 일로 공장과 틀어진 그가 내게 연락을 한 것이다.

"기자 이름 확인해보니까 우리 파견회사를 통해 공장에서 일했더라고요. 그 공장 책임자가 제게 '당신 회사가 파견을 보냈으니 책임져라'라고 하네요. 영업하면서 돈을 얼마나 썼는데, 이 공장을 뚫으려고 얼마나 고생한 줄 알아요? 당신은 어떻게 책임질 거예요?"

그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내게 "다른 파견회사에서 돈을 받고 이런 일을 한 것이냐"라고 따져 물었다. 나는 "기자로서, 파견노동자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고발했을 뿐"이라고 답했지만, 그는 막무가내였다.

"왜 하필 나한테 이런 일을 한 거예요? 당신이 날 죽이고 있는 거예요. 내가 당신 집 앞에 가서 혀 깨물고 죽든가 몸에 불이 붙이든가 할 거예요. 당신 주소를 가지고 있어요."

지난 3월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의 한 파견회사에서 쓴 입사지원서. '노동조합 활동과 관련하여 숨김없이 전달했다'는 확인란에 눈에 띈다.
 지난 3월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의 한 파견회사에서 쓴 입사지원서. '노동조합 활동과 관련하여 숨김없이 전달했다'는 확인란에 눈에 띈다.
ⓒ 선대식

관련사진보기


이곳 파견회사를 통해 일을 구할 때, 집 주소까지 적은 기억이 떠올랐다. 섬뜩했다. 그를 진정시키려고 최대한 정중하게 대화를 이어나가려고 노력했다. 그는 화를 내다가 곧 하소연도 늘어놓았다.

"내가 안 해본 일이 없어요. 택시도 몰아보고 막노동도 해보고, 내가 열심히 해서 여기까지 왔어요. 그런데 당신이 뭔데 나를 이렇게 죽이냐고요?"

"1500만 원 벌다가 반 토막 나면, 기자 양반은 어떻게 살 수 있겠어요. 난 못 살아요. 길바닥에 나앉는 거라고요."

말문이 막혔다. 함께 일했던 많은 파견노동자의 얼굴이 스쳤다. 그는 파견노동자들을 공장으로 보내면서, 돈을 번다.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의 파견회사들은 공장으로부터 파견노동자가 받는 돈의 8~12%를 관리비 명목으로 받는다.

나는 공장에서 최저임금(시급 6030원)을 받으며 일했다. 파견노동자들이 '주 5일 하루 8시간 근무'에 맞춰 일하면, 한 달에 버는 돈은 120만 원 남짓이다. 늦은 밤까지 일하고 주말에도 일해야, 월세 내거나 전세자금대출 빚을 갚고 아이들을 학원에라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 파견회사 사장은 과연 이들 앞에서 700만, 800만 원 받고 생활할 수 없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까. 참다못한 나는 "파견노동자들은 최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답했다.

"그걸 왜 나한테 얘기해요. 우리 회사는 법에서 정한 최저임금을 줬어요. 문제없잖아요. 최저임금에 문제가 있으면 청와대 가서 얘기하세요."

다시 말문이 막혔다. 틀린 말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12년 대통령선거 때 '최저임금 인상기준을 마련해 근로자의 기본생활을 보장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 후 박근혜 정부에서의 최저임금 인상은 더뎠다.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는 흐름과 비교하면, 초라한 인상 폭이다.

불법으로 큰돈을 버는 데도 떳떳한 사람들

지난 3월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의 한 공장에서 파견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다.
 지난 3월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의 한 공장에서 파견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다.
ⓒ 선대식

관련사진보기


전화통화는 1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흥분 상태인 그를 자극하지 않으려 했고, "어떤 말씀인지 이해한다"라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전화를 끊으면서 근본적인 의문이 하나 들었다.

'불법으로 돈을 벌고 있는데도 왜 이렇게 떳떳한 걸까.'

파견회사는 제조업 공장에 파견노동자를 보낼 수 없다. 일시·간헐적인 사유를 들어 예외적으로 보낼 수 있지만, 파견노동자가 대부분인 이 공장은 이러한 예외에 해당될 수 없다. 불법 파견이다.

그렇다면 그 파견회사 사장은 어찌 그렇게 당당할 수 있었을까. 파견법을 위반하면 처벌 받는다. 파견회사 등록이 취소될 수 있다. 고용노동부 단속에 걸릴지도 모르는데, 두렵지 않았을까. 어쩌면 두렵지 않았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제조업 불법 파견을 하루아침에 합법으로 바꾸는 파견법 개정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고용노동부에 단속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파견업체 사장도 이런 분위기를 잘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파견업체 사장과 통화한 뒤, 내가 일했던 공장 관계자와도 통화했다.

"휴대전화 부품을 만드는 공장에서 음성적으로 파견노동자를 쓰고 있어요. 그런데 기사 때문에 고용노동부에서 조사를 하면, 파견노동자를 내보낼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파견노동자들은 다른 일을 알아봐야 해요. 기자님 책임이에요."

나 때문에 파견노동자가 해고될 수 있단다. 파견법은 불법파견으로 일하는 파견노동자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공장 관계자는 파견법을 모르는 걸까, 아니면 무시하는 걸까.

얼마 전 만난 한 파견노동자가 내게 말했다.

"고용노동부가 단속해도, 회사는 파견노동자에게 '정규직 고용을 원하지 않는다'는 서류에 서명할 것을 강요해요. 파견노동자들은 서명할 수밖에 없어요."

어쩌면, 내가 파견법의 무력함을 몰랐던 것은 아닐까.

[클릭] '불법파견 위장취업 보고서' 기획기사 보기
① 22개월 뒤 물러날 대통령께 보내는 '위장취업' 보고서
② "여자친구랑 놀고 싶다면 그 길로 퇴사하세요"
③ 아무도 안 알려준, 분무기의 '무서운' 문구
④ "여긴 정말 미쳐 날뛰는 무법지대"
⑤ 엄마도 젊은 관리자에게 "개또라이" 소리 들을까
⑥ '가위바위보'에서 진 사람을 해고합니다
⑦ 일당이 1만4000원... 회사 문 박차고 들어가다
⑧ 손 잘리면, 무당 불러 굿하는 공장


태그:#불법파견 위장취업 보고서
댓글15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