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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 그리고 10만인클럽 회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지난해 6월 14일부터 23일까지 일본 순회강연을 마치고 6월 24일부터 7월 9일까지 북녘의 수양딸을 찾아 북한을 여행했습니다. 또 2015년 10월 초에도 북한을 한 번 더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연재 '수양딸 찾아 북한으로'를 통해 그 사이에 있었던 일을 전하려 합니다. - 기자 말

우리 일행은 마식령 호텔에 닿았다.
 우리 일행은 마식령 호텔에 닿았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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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 

원산을 떠나 마식령으로 오는 내내 2014년 겨울 내가 한국에서 당했던 '종북몰이'의 기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해 겨울 남편과 나는 마식령 스키장에서 겨울 휴가를 보내려고 했기 때문이다. 조카의 결혼식과 시조카 손주의 돌잔치에 참석하러 한국에 가는 김에 북한에 가 수양딸들도 만나고 겨울 휴가도 보내려고 했다.

그런데 한국에 도착해 강연에 응했다가 그만 마녀사냥식 '종북몰이'와 검찰·경찰의 조사로 인해 2개월 동안이나 시달리다가 미국에 돌아오고 말았다. 그것도 강제추방의 형식으로 말이다. 이런 연유로 '마식령'과 '종북몰이'는 내 기억 속에 항상 동반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단어가 돼버렸다.

마식령 스키장은 원산에서 20km 정도 떨어진 교외에 자리잡고 있었다. 호텔 주변 분위기가 마치 묘향산에 있는 향산호텔과 비슷하다. 마식령호텔은 두 동으로 이뤄져 있으며 주위에 야외식당이나 커피숍 등 독립 건물들이 있다.


호텔에 들어서자 한눈에 들어오는 로비의 모습이 일류 고급호텔임을 직감케 한다. 겨울에는 국내외 관광객으로 객실이 모자랄 정도지만, 그 밖의 계절에는 주로 원산과 금강산을 찾는 관광객들이 하루를 묵고 가는 곳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호텔이라고 한다. 역시 로비에는 금강산 관광을 마치고 왔다는 한 그룹의 중국인 관광객들이 그들 특유의 매너로 왁자지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발코니가 딸린 호텔의 객실, 욕조와 샤워실을 따로 갖춘 욕실, 모두 큼직하고 시설도 상당히 고급스러웠다. 객실은 주로 목재를 사용해 산장의 분위기를 한껏 풍기게끔 디자인해놨다.

메뉴판을 펼쳐들고... 유혹을 뿌리칠 수가 없다.
 메뉴판을 펼쳐들고... 유혹을 뿌리칠 수가 없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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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방에 짐을 풀고 안내원 김혜영 선생 그리고 리용호 운전기사와 함께 식당으로 간다. 점심때 송도원에서 생선회와 어죽을 너무 과하게 먹어 간단히 먹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메뉴판을 펼쳐들곤 몇 장 넘기다가 나도 모르게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산해진미가 다 적혀있다. 원산이 가까우니 해물요리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니 온갖 산나물이, 게다가 집을 떠나 오래 있다보니 생각나는 서양요리까지…. 국수 한 입만 먹겠다고 왔건만 유혹을 못 뿌리친다. 내 나라 산천에서 나오는 산나물을 주로 주문했다. 된장국과 함께 더덕구이, 드룹나물, 고비나물, 도라지나물, 취나물, 깻잎장아찌, 감자지짐 등. 운전하느라고 힘들었던 리용호 운전기사를 위해 돼지갈비 스테이크도 함께.


식사를 마칠 무렵, 웨이트리스가 또 다른 메뉴판을 들고 왔다. 내일 아침식사를 무엇으로 하고 싶냐고 묻는다. 메뉴에는 조선식, 양식, 중식, 일식이 모두 있다. 웨이트리스는 내일 아침 일식은 산천어구이라면서 은근히 눈빛으로 권한다. 수박향 나는 산천어의 유혹을 떨치고 내 나라 조선식으로 결정했다. 이번에는 디저트로 무엇이 좋겠냐고 묻는다. 메뉴에 쑥인절미가 있기에 그것을 주문했다. 오늘 밤 준비를 해놓겠단다. 호텔요금에 포함돼 있는 아침식사를, 그것도 디저트까지 무엇으로 먹고 싶냐고 묻는 호텔은 아마 이 마식령 호텔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편과 나는 겨울 스키 시즌 때 꼭 다시 오자고 굳게 다짐한다. 이곳 마식령에서 스키를 즐기며 며칠을, 그리고 명사십리가 있는 갈마반도에서 겨울바다를 바라보며 며칠을 즐길 상상을 하니 내 마음은 곧바로 남녘 동포들에게로 다가간다.

남한 정부가 5.24 조치를 풀고 원산관광을 허락한다면 이곳은 모름지기 남한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을 것이다. 원산의 송도원, 갈마반도의 명사십리, 마식령, 울림폭포 그리고 금강산을 잇는 이곳 동해안은 가히 세계적인 관광지로 손색이 없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동포들이 사는 우리나라이기 때문이다.

대자연 속의 밀림... 한 폭의 동양화로구나


아침에 일어나 발코니에 나가봤다. 안개에 싸인 호텔 입구가 한 폭의 동양화 같다. 숨을 크게 들이쉬면서 아침 공기를 마셔본다. 모든 것을 잊고 새롭게 시작한다. '종북몰이'도, 세상살이도, 모든 것이 하잘 데 없다는 생각에 미소가 지어진다.

안개가 걷히면서 스키장 입구 왼쪽으로 슬로프가 모습을 드러낸다. 상당히 긴 슬로프가 무려 10개나 된다고 한다. 흰눈으로 덮여 있을 스키장을 상상해 본다. 만약 평창 겨울 올림픽을 이곳에서 분산 개최한다면 민족의 화합을 위해 얼마나 좋을까, 마음속으로 간절히 소망해 본다.

마식령호텔 아침식사 테이블 세팅.
 마식령호텔 아침식사 테이블 세팅.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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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식사 디저트로 나온 쑥인절미를 맛봤다.
 아침식사 디저트로 나온 쑥인절미를 맛봤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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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향한다. 산나물과 토장국으로 차려진 식사를 마치자 차와 함께 전날밤 주문한 쑥인절미가 나온다. 쑥향이 마음을 타고 온몸에 번진다. 가식 없는 웨이트리스의 친절이 가슴에 닿아 자리에서 쉽사리 자리를 뜰 수 없었다.

남편도 웨이트리스에게 온갖 질문을 한다. 나이는, 형제는, 부모님은, 학교는, 전공은, 고향은, 남자친구는, 장래의 꿈은…. 장난기를 갖고 지나가는 말이 아닌, 사뭇 진지하게 묻는다. 우리 모두 그녀의 미래를 함께 그려본다.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자 웨이트리스가 조용한 목소리로 인사한다.

"다음에는 꼭 겨울에 오십시요. 좀 사람들이 많아 번잡하긴 해도 역시 마식령에서는 스키를 타야 제맛입니다."

꼭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식당을 떠나려니 로비까지 함께 걸으며 작별인사를 건넨다. 먼 여행길의 안위를 걱정하면서 건네는 말 한마디의 진실함이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아침이다.

아침 식사를 챙겨준 웨이트리스들과 함께.
 아침 식사를 챙겨준 웨이트리스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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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리프트를 타고 마식령 스키장의 최고봉인 해발 1363m의 대화봉에 오른다. 정거장 서너 개를 거쳐 대화봉까지 오르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45분.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돼 대화봉으로 직접 올라갈 수 있는 리프트를 새로 건설중이라고 한다. 이 리프트가 완성되면 약 15분만에 대화봉에 오를 수 있다고 한다.

마식령호텔 로비의 프론트 데스크에서.
 마식령호텔 로비의 프론트 데스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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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가 마식령호텔에서 묵은 숙박비용 영수증. 금액 등을 손글씨로 적어놨다.
 우리 부부가 마식령호텔에서 묵은 숙박비용 영수증. 금액 등을 손글씨로 적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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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쯤 건설 노동자들이 대화봉에 올라간다고 한다. 그때 우리도 함께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 보기로 했다. 방에서 짐을 챙겨 로비에 내려와 체크아웃한다. 아침식사를 포함한 하루 객실료는 197달러36센트(한화 약 23만 원)다. 아직 전산화가 되지 않아 손으로 써주는 작은 영수증이 호텔의 분위기와 영 어울리지 않는다. 영수증을 받아든 남편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 터져 나올 것만 같은 웃음을 억지로 참고 있다.

마식령 스키장 안내도.
 마식령 스키장 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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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식령스키장 모습.
 마식령스키장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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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행은 리프트를 타고 마식령 스키장을 둘러볼 수 있었다.
 우리 일행은 리프트를 타고 마식령 스키장을 둘러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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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봉에서 바라본 강원도의 밀림.
 대화봉에서 바라본 강원도의 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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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에 스키장에서 리프트를 타보긴 처음이다. 마치 골짜기를 따라 푸른 나무숲속을 천천히 날아다니는 기분이다. 고개를 돌려 뒤를 내려다봤다. 멀리 호텔 건물이 현기증과 함께 가물거린다. 대단한 규모의 스키장이다. 세계에서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스키장임에 분명하다.

대화봉 휴게소에서 내려다 보니 강원도의 광활한 밀림이 끝없이 펼쳐진다. 그 웅장함에 숙연해 질 정도다.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야 말로 북한이 갖고 있는 보물 중의 보물일 게다. 산업화되지 않은 북한에는 이러한 곳들이 전국에 산재해 있다. 그리고 청정 공기, 깨끗한 강과 바다가 있다. 마을 주변의 민둥산들만 나무로 채워진다면 북한은 세상 그 어느 나라보다도 오염되지 않은 멋진, 자연환경을 갖춘 나라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국가가 왜 간섭입니까? 리해할 수가 없습니다"

마식령 스키장의 야외식당에서.
 마식령 스키장의 야외식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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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으로 출발하기 전 호텔의 야외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나는 강냉이(옥수수)국수를 주문했다. 내가 북한에서 냉면 다음으로 좋아하는 국수다. 안내원 김혜영 선생에게 강냉이국수 예찬을 늘어놓는다.

"혜영 선생, 나는 이 강냉이국수만 있으면 밥이 필요 없을 것 같아요. 이 국수가 정말 좋아요. 아마 옥수수로 국수를 만드는 나라는 여기밖에 없을 거예요."
"그런가요? 다른 나라엔 없습니까?"
"북에서 처음 먹어봤습니다."
"조국(북한)에는 아무래도 산간 지방이 많다나니까 논이 부족해 쌀을 충분히 생산해 내질 못한다 말입니다. 기래서 옥수수나 감자로 국수도 만들고 합니다."

"아, 참,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북에 오면 모든 식당에서 흰쌀밥만 주는데 제발 흰쌀밥만 먹지 말고 잡곡을 섞어 드세요. 그것이 건강에도 좋고."
"우리 인민들은 꼭 흰쌀밥을 먹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서…."
"예전에 남쪽에서는 쌀이 모자라 잡곡을 섞어 먹어야 했을 때가 있었어요. 모든 식당에서는 잡곡을 섞어 밥을 짓도록 정부에서 명령을 내렸고, 학생들은 점심시간 때 도시락 뚜껑을 열어놓고 잡곡을 섞었는지 선생님으로부터 검열받아야 했어요. 여기서도 국가가 그런 규제를 했으면 쌀 부족 문제도 해결하고 좋을 텐데…."
"네? 벤또 검사를 했다구요?"

"그럼요. 지금은 쌀 생산량이 늘고 반대로 소비는 줄어 쌀이 남아돌지만 내가 어렸을 땐 항상 쌀 부족에 시달려 마침내는 정부가 식생활에 개입하게 된 거지요."
"아무리 기래도 기렇지 어떻게 국가가 인민들 밥까지 간섭을 합니까? 배급쌀 갖고 쌀밥을 먹건 옥수수 밥을 먹건 인민들 마음이지 국가가 기걸 왜 간섭을 한단 말인지…. 도저히 리해가 안됩니다."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남편이 문득 할 말이 떠올랐는지 끼어든다. 리용호 운전기사에게 말을 건넨다.

"이보게, 리 선생. 북에 오니 외국 담배들을 그렇게 많이 피우는데 이곳 담배도 좋은데 왜들 그렇게 외국 담배를 피워대? 남쪽에서는 외국 담배를 양담배라고 부르는데 예전에 양담배 피우다 걸리면 혼쭐 정도가 아니었어. 공무원 같은 경우에는 직장에서 쫓겨나기까지 했다구."
"공무원이 외국 담배를 피웠다고 직장에서 쫓겨났다구요?"
"응, 예전엔 그랬었지."
"아니, 인민들이 무슨 담배를 피우든 국가가 왜 간섭을 합니까? 도저히 리해가 안됩니다."

'국가가 명령을 내리면 따라야 하지 않냐'는 질문에 '그야 물론 당연히 그렇지만 국가는 그런 말도 안되는 명령을 내리지 않는다'며 김혜영 선생이나 리용호 운전기사나 "도저히 리해가 안됩니다"라는 똑같은 대답만 반복한다. 남편과 나는 '국가가 그럴 수도 있다'고 열심히 설명을 했지만 이해를 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강냉이국수를 맛있게 먹고 평양으로 향한다. 

다시 만난 수양동생

차에 오르기만 하면 잠들곤 했던 박영길 동생(2013년 8월 황해도 해주 가는 길에서 촬영).
 차에 오르기만 하면 잠들곤 했던 박영길 동생(2013년 8월 황해도 해주 가는 길에서 촬영).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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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은 평양에서 보고 싶은 수양동생을 만난다. 2013년 8월 순안공항에서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누나라고 불러도 되디요?" 하고 물었던 넉살좋은 박영길 동생이다. 함께 여행을 할 당시 차에만 오르면 잠에 떨어지곤 했다.

얘기를 하고 싶어하는 남편이 영길 동생을 깨워 "아니, 우리 '감시' 안 하고 잠만 자면 어떻게 해? 평양에 가면 다 보고할 거야"라면서 농담하면서 면박을 주기도 했다. 뒷주머니에 머리빗을 항상 가지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을 때면 숱도 별로 없는 머리부터 빗곤 했다.

당시 여행을 마치고 출국하기 전날, 남편에게 북한 사회과학원 조희승 교수의 <임나일본부 해부>라는 책을 선물한 '조선국제려행사'의 리정 선생도 함께 만나기로 돼 있다. 머리 빠지는 것이 제일 스트레스 받는다는 '대머리' 리정 선생의 모습은 어떻게 변해 있을는지.

사진 왼쪽부터 박영길 동생, 리정 선생. 둘은 심각한 표정으로 내가 남한에서 겪은 일들을 전해들었다.
 사진 왼쪽부터 박영길 동생, 리정 선생. 둘은 심각한 표정으로 내가 남한에서 겪은 일들을 전해들었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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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기로 한 장소인 '해당화관' 앞. 차량이 도착하자 우리를 알아본 두 사람이 달려와 차 문을 열어주면서 반가워 한다. 식당에 들어가 앉으니 영길 동생이 말을 꺼낸다.

"누나,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았디? 얼굴도 기대로네. 남조선에서 강연 도중 폭탄 맞았단 소식 듣고 여기서 얼마나 놀랬는디 몰라. 기래 무섭디 않았어?"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무서울 겨를도 없었어."

"신문에 보니까 폭탄을 던진 놈이 학생이라는데 어케 기럴 수가 있어? 누나 둘째딸 설향이가 얼마나 울었는디 몰라. '폭탄 맞을 사람이 따로 있디' 하면서 말야. 기러구 누나 남조선에 5년간 못간다며? 오마니도 계신데…."
"응. 그래서 지금 재판 중이야. 승소하면 갈 수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마."
"꼭 이기라, 누나."

옆에서 리정 선생도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는다. 화제를 돌리려고 리정 선생에게 말을 붙였다.

"요즘 관광 사업은 어떠세요?"
"매년 늘고 있습니다. 목표를 '외국인 관광객 100만 시대'로 잡고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맞춰 안내원들도 많이 늘리고 있구요."

술잔이 몇 배 돌자 영길 동생이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즐거워 한다. 남편이 영길 동생에게 묻는다.

"요즘도 퇴근하고 집에 가면 맥주 마시면서 딸내미 노래 시키나?"
"노래요? 이제 좀 컸다구 안 불러요. 노래가 뭡니까, 내가 불러줘야 할 판이야요."

영길 동생의 딸 자랑이, 리정 선생의 아내 자랑이 한동안 이어진다. 택시에 다섯 사람이 꼭 끼워 탔다. 한 사람씩 집 앞에 내려주고 호텔로 돌아온다.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 분단이라는 허상이 이들을 '뿔난 괴물'로 만들었을 뿐이다.


태그:#마식령, #북한,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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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음대 졸업.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 음악박사. 전직 성악교수 이며 크리스찬 입니다. 국적은 미국이며 현재 켈리포니아에 살고 있습니다. 2011년 10월 첫 북한여행 이후 모두 9차례에 걸쳐 약 120여 일간 북한 전역을 여행하며 느끼고 경험한 것들 그리고 북한여행 중 찍은 수만 장의 사진들을 오마이뉴스와 나눕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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