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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해상에서 중국 어선들의 불법 조업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한국인들을 상대로 쇠창살과 무기로 위협을 가하는가 하면, 강화도 인근 해역까지 침입해서 꽃게를 쓸어 가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 15일에는 군과 해경이 유엔사와 공동으로 중국 어선 2척을 나포하기도 했다.

비단 한반도 해역에서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게 아니다.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은 가히 세계적이다. 동아시아는 물론이고 중동과 아프리카, 심지어는 남미에서까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일례로, 작년 7월에는 이란이 중국 어선 10척을 나포했고, 금년 1월에는 일본이 중국 어선을 나포했고, 3월에는 말레이시아 정부가 중국 대사를 불러 항의의 뜻을 표시했다. 또 지난 3월 아르헨티나에서는 중국 선박이 해경의 사격을 받고 침몰했고, 5월 남아공에서는 중국 어선 3척이 나포되고 선원 100여 명이 억류됐다.

중국인들은 바다에서 무기까지 동원해 가며 범죄 행위를 하고 있다. 이 정도면 해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의 해적들도 관군이 보이는 곳에서는 합법적인 무역선으로 행동하고 관군이 없는 곳에서는 불법적인 해적선으로 둔갑했다. 합법과 불법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지금의 중국 선박들도 해적선과 별반 다를 게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17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중반 사이 동아시아에 살았던 사람이라면, 지금 뉴스에 보도되는 중국인들의 해적 활동이 그리 낯설지 않게 들릴 것이다. 왜냐하면, 이 2백년간이 중국 해적들의 전성기였기 때문이다. 그 시대를 경험한 사람이 지금의 뉴스를 듣는다면 '중국 해적의 전성기가 돌아오는 게 아닌가' 하는 전망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동아시아 역사에서 '해적' 하면 흔히 왜구가 떠오른다. 왜구는 대마도 해적과 일본 해적을 가리키는 표현이었다. 대마도와 일본을 각각 표기한 것은, 1869년 이전만 해도 대마도가 조선·일본 양쪽을 상국(上國)으로 모시면서 독립적인 정치적 실체로 기능했기 때문이다.

 명나라를 침략하는 왜구의 모습. 도쿄대 사료편찬소가 만든 <왜구도권>에 실린 그림. 필자가 이 그림을 찍은 곳은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명나라를 침략하는 왜구의 모습. 도쿄대 사료편찬소가 만든 <왜구도권>에 실린 그림. 필자가 이 그림을 찍은 곳은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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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즉 원나라 역사를 담은 <원사>의 순제본기에 따르면, 왜구의 활동이 본격화된 시점은 1358년이다. 한편, 명나라 학자 진건이 편찬한 <황명자치통기>라는 역사서에 따르면, 그 시점은 1350년이다. 두 기록을 종합하면, 왜구가 동아시아를 위협하기 시작한 것은 몽골제국이 몰락하기 직전인 1350년대부터다.

이때부터 왜구는 한반도 해역 및 동지나해(동중국해)를 교란하면서 동아시아 각지를 침탈했다. 이들의 노략질이 하도 대단했기 때문에, 후대의 동아시아 사람들은 '해적' 하면 왜구를 연상하게 되었다.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에 비해, 왜구의 전성기는 생각보다 길지 않다. 일본열도의 통일운동이 막바지에 달한 16세기 중후반부터 왜구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14세기 중반부터 본격화된 왜구의 활동이 16세기 중후반부터 하향 길에 접어들었으니, 그 전성기는 길어봐야 2백년 정도다. 물론 짧지 않은 기간이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에 비하면 길지 않다는 말이다.  

왜구가 약화되면서 나타난 현상은 일본 수군의 전력 증강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본 통일 과정에서 왜구가 대대적으로 일본 수군에 편입됐던 것이다. 고려나 조선에 비해 해군력이 약했던 일본이 임진왜란 때 조선 수군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왜구의 군사력을 정부군으로 흡수하여 전투력을 증강했기 때문이다.  

왜구가 약화된 뒤인 17세기부터 동아시아 바다를 주름잡은 것은 중국 해적들이었다. 임진왜란 이후로 중국대륙에서는 명나라가 사라지고 여진족 청나라가 들어섰다. 이것은 동아시아 해적 역사에 중대한 전환점을 제공했다.

청나라의 중국 정복은 중국 해적이 바다를 장악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청나라를 반대하는 정치세력이 중국 해적과 손을 잡게 되면서, 중국 해적의 역량이 급격히 증강했던 것이다. 해적 세력을 근간으로 청나라의 지배에 도전한 정성공은 1658년에는 17만 5천의 대군을 이끌고 청나라 관할 하에 있는 상하이 근처 난징을 공격하기도 했다.  

 정성공.
 정성공.
ⓒ 위키피디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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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 면에서 볼 때 중국 해적은 이전의 왜구를 확실히 능가했다. 정성공은 17만 5천의 대병력을 이끌고 동아시아 최강국인 청나라에 정면 도전했다. 정성공보다 조금 늦은 시기에 바다를 주름잡은 정일(鄭一)이란 중국 해적의 경우에는 15만 명이 넘는 대군을 지휘했다. 과거의 왜구와 달리 17세기 이후의 중국 해적은 사실상 국가 수준의 군사력을 과시했다.

17세기부터 중국 해적이 강해진 데는 청나라의 국가전략도 한몫을 했다. 정성공 같은 해상세력 때문에 골치를 앓은 청나라 정부는 중국 내륙을 바다로부터 차단하는 정책을 실시했다. 이른바 해금(海禁)정책이었다.

이 정책으로 인해 중국 해상에 대한 중국 정부의 공권력이 한층 더 약해졌고, 이것은 중국 해적이 사상 최강의 역량을 갖도록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렇게 중국 해적이 동아시아를 호령하는 동안에 미국 클린턴 부부와 유사한 해적 부부도 출현했다. 바로 위에서 소개한 '정일'이 그런 사례에 속한다.

정일은 1807년 바다에서 죽었다. 폭풍우가 휘몰아칠 때, 갑판에 서 있다가 휩쓸려 익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 뒤 조직을 인수한 사람은 '퍼스트레이디'인 정일수(鄭一嫂)였다. 부부가 대를 이어 해적왕이 됐던 것이다. 정일수의 진짜 이름은 석양(石陽)이다. 정일수와 결혼한 뒤에 세상 사람들이 형수 혹은 부인이란 뜻의 수(嫂)자를 붙여 정일수라고 부른 것이다.

동아시아 해적왕의 자리가 정일에서 정일수로 넘어가던 때에, 절묘한 줄타기로 권세를 지킨 인물도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권세는 해적 집단 내에서의 권세다. 그 주인공은 꽃미남 해적, 장보자(張保仔)였다.

그는 본래 정일의 동성애 파트너였다. 그랬던 장보자(1786~1822년)가, 권력이 정일(1765~1807년)에서 정일수(1775~1844년)로 넘어가면서 정일수의 애인으로 바뀐 것이다. 

 장보자 상상화.
 장보자 상상화.
ⓒ 위키피디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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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자는 정일에 대한 배신자였다. 한번 배신한 사람은 또 배신할 수 있다는 생리를 그는 잘 증명해주었다. 나중에는 정일수마저 배신했던 것이다. 세력을 이끌고 관군에 투항한 장보자는 전전(前前) 애인과 전(前) 애인이 일군 해적 조직을 파괴하는 일에 앞장섰다. 정일·정일수를 배신한 데 이어, 자신이 몸담은 해적 조직까지 배신했던 것이다.

이 같은 중국 해적들의 전성기를 끝낸 것은 서양인들이었다. 19세기 중반에 영국·프랑스는 중국과의 아편전쟁에서 승리하고 동아시아 해역을 장악했다. 일례로, 홍콩이 영국 땅이 된 것도 그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중국 해적들은 자연스럽게 약화되기 시작했다. 서양의 우수한 함선과 대포를 이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아편전쟁(1842년 종결) 이후로 약화된 중국인들의 해적 활동이 약 170년이 지난 오늘날, 어선 불법조업의 형태로 부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런 현상은 중국의 국력 강화에도 원인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미국과 서유럽의 세계 패권 약화에 가장 큰 원인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19세기 중반부터 동아시아 해역은 서유럽과 미국의 지배 하에 놓였다. 그 속에서 새로운 질서가 동아시아 바다에 자리 잡았다. 그러다가 20세기 후반부터 미국과 서유럽의 힘이 약해지면서 기존 질서가 흔들리고, 이에 따라 해적 활동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중국 정부가 자국민의 해적활동에 대한 통제력을 확보하게 되면 상황이 달라지겠지만, 그 전까지는 이런 흐름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할 수 있다. 

오늘날 해적이 주로 출몰하는 지역은 아프리카 중서부의 나이지리아 해역, 아프리카 동부의 소말리아 해역, 아프리카와 사우디 사이의 홍해, 남아시아의 방글라데시 해역, 동남아시아의 말레이시아 해역 등이다.

과거에 서양 국가들이 통제했던 바닷길의 길목에서 해적들이 집중적으로 출현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서유럽의 바닷길 통제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증거다. 이런 추세의 영향을 받아 동아시아에서도 해적 활동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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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M101.9 (목)11시25분경. (저서) 역사 추리 조선사, 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 못하나,발해고(4권본,역서),패권 쟁탈의 한국사,신라 왕실의 비밀,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상고사(역서),조선노비들,왕의 여자,철의제국 가야,최숙빈,한국사 인물통찰,동아시아 패권전쟁 등. www.kimjongs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