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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주 동안 동성애자들이 십자포화를 맞았다. 일부 기독교 단체가 벌인 소동으로 저평가하기에는 이미 연례 행사처럼 됐고 사이버 공간에서도 동조 여론이 거세다. 이러한 현상이 어떠한 사회적 맥락에 뿌리내렸는지 원인과 대안을 다각도로 추적하고자 3편의 연속 기획을 마련했다. 1편은 동성애 혐오 담론 지형, 2편은 동성애 혐오 논리와 그 확산을 부추기는 뉴라이트, 3편은 혐오를 넘어선 사회를 위한 대안을 살펴본다. - 기자 말

천하제일 호모 포비아 축제

 물리적 공간과 사이버 공간 모두에서 동성애 혐오는 '현상'이 됐다.
 물리적 공간과 사이버 공간 모두에서 동성애 혐오는 '현상'이 됐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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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은 천하제일 호모 포비아 축제가 열린 해로 기록되어야 한다. 민주주의 축제라던 4·13 총선에서 동성애 차별을 앞세운 기독교 정당들의 득표율은 비례대표 당선권인 3%를 넘겼다. 교세가 안 나뉘었다면 동성애 차별에 앞장서는 국회의원이 나왔으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편 지난 11일 서울시청 앞 광장 일대에서 열린 '제 17회 퀴어문화축제'에는 1만1000명이 참가했다. 이와 동시에 보수 단체의 맞불 집회 참가자 1만3000명이 곳곳에서 '동성애 OUT' 등의 구호를 외치고 퍼포먼스를 벌이는 등 거부감을 분출했다.

물리적 공간에서 맞불집회가 벌어지던 11일 하루 동안, 다음과 네이버에도 각각 6건, 4건의 관련 기사가 '메인 뉴스'로 올라왔으며 각각 2860여건, 1만3780여건에 달하는 '댓글의 향연'이 펼쳐졌다. 양대 포털의 11일 동성애 관련 기사 댓글 중 추천을 많이 받은 '베스트 댓글' 100건을 추출해(다음 20%  네이버 80%) 의미망 분석을 실시했다. 분석 툴로는 케이아르케이윅(박한우 & Loet Leydesdorff, 2004)과 노드엑셀(2014) 등을 활용했다.

[STEP1] 이것은 과연 '반대'인가?

가장 먼저 확인된 사실은 논의의 중심이 되는 '성' '소수'자에 대한 누리꾼들의 생각 폭이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성소수자란 성기 중심적인 '생물학적 성(sex)' 관념을 넘어 '사회적 성(gender)' 정체성을 다양하게 갖는 소수자들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LGBT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여론이 주로 언급한 '동성애'자는 레즈비언(L)과 게이(G)만을 포함할 뿐 양성애자(B)와 트랜스젠더(T) 등은 아우르지 못한다. 동성애조차 '게이'를 주로 연상했다.

동성애를 대하는 태도는 어떨까. 의미망 중심에 '이런' '저런' 같은 핵심어는 동성애를 향한 일종의 삿대질과 비슷한 맥락이다(가령 "이런 기사 쓰지마라! 동성애가 뭐가 떳떳해? 너희들이 사랑이라고? 콧방귀가 나온다! 어디 감히 다수의 대한민국을 무시하며 더럽고 추한 축제를 서울시청에서 하냐?" "세상을 혼란을 빠뜨리는 이런 이기적 집단들" 같은 댓글).

삿대질은 상대를 타자화시키는 전략이다. 타자화란 '상대의 존재와 정체성을 이질적인 것으로 분리시키고 부각시킴'을 뜻하는 말이다. 인종차별, 왕따, 개념녀/비개념녀 딱지 붙이기 등은 타자화가 편견을 낳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① 핵심어의 크기가 클수록 출현 빈도가 높으며 ② 색이 파란색일수록 의미망 내에서 중요도가 높은 핵심어다. 중요도가 높은 핵심어들은 다른 핵심어들과의 동시 출현 빈도가 높거나 동시 출현 빈도가 높은 다른 핵심어와 자주 연결되는 핵심어들이다.
 ① 핵심어의 크기가 클수록 출현 빈도가 높으며 ② 색이 파란색일수록 의미망 내에서 중요도가 높은 핵심어다. 중요도가 높은 핵심어들은 다른 핵심어들과의 동시 출현 빈도가 높거나 동시 출현 빈도가 높은 다른 핵심어와 자주 연결되는 핵심어들이다.
ⓒ 하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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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정체성을 부각시키는 게 늘 나쁜 결과만을 초래하지는 않는다. 남이 아니라 스스로 드러낸다면. 프랑크푸르트대 사회연구소 악셀 호네트 소장은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으며 이것이 역사 발전을 이끄는 '인정투쟁'의 원동력이 된다고 설명한다.

인간은 존엄성을 무시 당할 때 느끼는 분노를 원동력으로 삼아 '우리를 인정하라'는 사회운동을 벌이며 역사를 진보시켜왔다. 인정받아야 할 정체성에도 우선 순위가 있다. 서로의 존재 자체를 우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동등하게 인격을 지닌 주체라는 점부터 인정해야 그 바탕 위에서 공론장이 성립할 수 있다(악셀 호네트 <인정투쟁> 참조).

여론은 동성애자들의 존재를 인정할까. 의미망 10시 방향에 '반대'가 있다. 찬반을 따진다는 건 원칙적으로는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성립하는 '사회적 공론'이다. 그런데 2시 방향을 보자. '헤이트 스피치(혐오, 싫다, 더럽다, 역겹다, 짓거리…)'들이 더 큰 군집을 이룬다.

'반대'가 포함된 베댓조차 헤이트 스피치가 빈번하게 동시에 출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겉으로는 '반대'를 표방할 경우에도 '혐오'를 가감없이 드러내는 등 혼란스러운 양상을 보였다. 혼란은 이성이 감정의 힘을 버티지 못할 때 자주 느끼는 심리다.

결국 동성애를 향한 공격은 '혐오'가 원체험이고 '반대' 논리는 더 적극적으로 미워하고자 덧붙이는 명분에 가깝다. 문제는 혐오가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의 판단 기준이 될 수 있느냐다. 윤리학자들은 도덕적 판단, 행위시 감정과 이성 사이에 주도권을 어느 쪽에 좀 더 줘야할지 견해가 다르다. 하지만 이성적 판단이 결핍되거나, 타인의 존재와 인격 자체를 묵살하는 경우까지 '도덕적'이라 봐주는 사례를 철학 전공자인 기자는 아직 들어본 적 없다.

법철학자 마사 너스바움은 <혐오와 수치심>에서 감정이 때때로 공적인 문제의 지침이 될 수 있지만 '혐오'는 안 된다고 설명한다. 분노는 어쨌든 분노를 드러낼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고 다가가게 이끌지만, 혐오는 상대를 벌레처럼 여기며 '생각하는 일 자체를 거부하고' 배제시키는 감정이다. 따라서 사회 발전의 발목을 잡고 혐오의 악순환을 낳는 지독한 역설에 빠진다. 상대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미 사회적 공론이 아닌 것이다.

[STEP2] 동성애는 타락하리라는 '위험한 비탈길' 논리

 ① 핵심어의 크기가 클수록 출현 빈도가 높으며 ② 색이 파란색일수록 의미망 내에서 중요도가 높은 핵심어다. 중요도가 높은 핵심어들은 다른 핵심어들과의 동시 출현 빈도가 높거나 동시 출현 빈도가 높은 다른 핵심어와 자주 연결되는 핵심어들이다.
 ① 핵심어의 크기가 클수록 출현 빈도가 높으며 ② 색이 파란색일수록 의미망 내에서 중요도가 높은 핵심어다. 중요도가 높은 핵심어들은 다른 핵심어들과의 동시 출현 빈도가 높거나 동시 출현 빈도가 높은 다른 핵심어와 자주 연결되는 핵심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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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혐오와 별개로 '동성애가 찬반을 따질 수 있는 문제인가'도 중요한 논점이다. 여론은 동성애를 공격할 때 질병 공포를 극대화하는 핵심어들을 많이 언급한다. <그림2>처럼 동성애를 '에이즈'와 연관짓든 '정신'병으로 보든 '치료'가 필요한 '병'처럼 인식한다. 동시에 윤리적 책임을 개인에게 묻고자 '후천적' '취향' '선택' 등의 어휘도 덧붙인다. 여기에 더해 충격 요법과 위험한 비탈길 논리를 조합한 결정타를 날린다.

어떤 사안이 던지는 충격을 과장할수록 사안을 묵과하면 위험한 비탈길 아래로 추락하듯 파국을 맞으리라는 선동이 잘 먹힌다. 동성애자는 '쾌락' '성욕' '흥분'을 조절 못해 '음란' '타락'에 빠져들 테고 사회는 '수간' '소아성애'도 인정해달라는 요구에 직면하리라는 식이다. 하지만 위험한 비탈길 논리는 미래에 대한 예측을 포함하므로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나오미 클라인 <쇼크 독트린>, 제임스 레이첼즈 <도덕 철학의 기초> 참조).

에이즈 보균자 중 '남성과 성교한 남성'의 비율이 높고 질성교(0.04~0.38% 내외)보다 항문 성교의 감염률(1.4~1.7% 내외)이 높은 건 맞다. 그러나 에이즈 보균자와 접촉하지 않는 이상 감염은 불가능에 수렴할 뿐더러 무엇보다 확률적 사실을 근거로 게이들이 비윤리적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도 없다. 같은 논리라면 이성애자는 레즈비언보다 비윤리적이다. 성병은 '안전한 섹스'의 문제이지 이를 근거로 성적 지향을 공격하는 건 논점을 벗어난다.

마찬가지로 동성애자의 자살률, 성관계 빈도, 관계 지속 기간 등의 통계적 사실들이 이성애자의 그것보다 불리해도 동성애가 '정신병'인 건 아니다. 같은 논리라면 이성애자는 무성애자보다 때때로 더 '정신병'자다.

이런 지표들은 차라리 동성애자들에게는 이성애자들과는 다른 삶의 방식이 행복한 삶을 위해 필요하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또한 '수간'이나 '소아성애'를 동성애와 엮는 것도 논점을 벗어난다. 동성애는 동성애 자체로, 수간과 소아성애는 그것들 자체로 별도로 판단할 일이다.

여론은 이런 사실들을 정말 모를까. 모를 수도 있고 '인지부조화'일 수도 있다. 인간은 합리적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하는 존재다. 기존의 편견과 어긋나는 상황을 접하면 심리적 불편함을 줄이려고 도리어 편견을 강화하고자 트집을 잡으려고 애를 쓴다. 이러한 경향은 종말론자 등 종교 집단 내부 극단주의자들에게서 특히 자주 관측된다는 게 심리학자들이 제시하는 참고점이다(레온 페스팅거 <인지 부조화 이론> 참조).

[STEP3] 박원순과 기자는 왜? 동성애 혐오의 숨은 맥락 '정치 혐오'

 동성애자들 만큼이나 여론의 많은 화살을 받은 주인공은 <그림5>와 같이 다름 아닌 '박원순' '시장'이었다.
 동성애자들 만큼이나 여론의 많은 화살을 받은 주인공은 <그림5>와 같이 다름 아닌 '박원순' '시장'이었다.
ⓒ 하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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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혐오를 폭발시키는 숨은 맥락은 다름 아닌 정치 혐오다. 정치는 시위, 집회, 행사, 축제, 투표, 토론, 댓글 등 무엇이든 주체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는 행위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그림3>의 핵심어들이 퀴어축제 참가자들을 향해 던지는 메시지는 한 마디로 '창피한 줄 알고 그냥 니들끼리 조용히 방구석에 숨어서 즐겨라'로 요약된다.

한편 <그림4>의 핵심어들은 성소수자들이 주류사회의 요구에 순응하지 않고 '서울' '시청' 앞 '광장'에 존재를 드러낸 데 대한 혐오다. '벗다'라는 핵심어에 주목하자. 여론은 축제 참가자들의 노출을 자주 공격한다. 그런데 댓글이 달린 메인 뉴스 10건에는 '벗다'와 어울리는 사진이 정작 한 장도 없다. 참가자 대부분은 알록달록한 반팔티와 반바지 차림이다.

'벗다'는 차라리 소수가 '길거리'에 '나와' '공개적'으로 정체성을 '내세'우며 '나대'고 '돌아다니'며 '떠든다'는 사실, 즉 수면 위로 존재를 드러냈다는 데 대한 짜증을 의미한다고 봐야 한다. 물론 현장에는 진행 스태프의 복장이나 배부 물품이 수위가 있는 경우도 있다. 이런 사례는 '건강한 사회를 위한 국민연대' 같은 데이터베이스(DB)들의 표적이 된다.

맥락없이 수집되고 확산된 사진들은 동성애에 관한 편견을 강화하고 혐오의 원체험을 극대화하는 명분으로 '덧붙는다'. 동성애 혐오자들은 이러한 DB 내의 정보 외에는 어떤 것도 직시하지도 신뢰하지도 않으면서 언제든 심기를 거스르는 동성애자가 나타나면 DB에서 무기를 꺼내 휘두를 준비를 갖춘다(아즈미 히로키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참조).

하지만 퀴어축제의 노출도 바라봐야 할 맥락이 있다. 퀴어(Queer)는 '이상한'이란 뜻이다. 즉 전 세계 곳곳에서 성소수자에게 순응하도록 요구된 다수의 질서, 즉 '평범함'을 벗어날 때마다 쏟아진 혐오의 상징을 저항의 상징으로 전복시켰다. '그래. 당신들이 보기에 우리는 이상할지 모르지. 하지만 불쾌함 따위는 존재에 우선하지 않아'라는 배수의 진을 친 셈이다.

뻔한 성교육을 반복하는 한국과 달리 독일에서 많은 사랑을 받은 청소년 성교육 교재는 제목부터가 <섹스 북>이다. 성기만 보면 음란함을 떠올리는 한국에서 성기 모양의 과자를 나눠주는 행위는 '음란은 네 마음 속에 있나니'라 선언하는 맥락 안에 있다. 물론 퍼포먼스의 형식을 현재의 다수가 수용 가능한 방식으로 바꾸자는 주장도 있다. 이는 방법 상 논란일 뿐 다수의 '불쾌함'이 소수의 '존재'를 묵살할 근거로 비약될 수는 없다.

소수는 제17회 퀴어문화축제에서 '우리 존재 파이팅'이라는 슬로건을 외쳤다. 하지만 다수는 <그림5>와 같이 정치 혐오를 선택했다. 따라서 동성애자들 만큼이나 가장 많은 화살을 맞은 이는 다름 아닌 '축제'를 '허가'한 '박원순' '시장'과 관련 '기사'를 써서 성소수자의 존재를 가시화한 '기자'들과 메인에 올려준 '네이버'가 된다.

이와 동시에 박 시장이 '표'와 '지지'를 의식한다는 공세를 퍼붓거나 '측근' 비리 의혹을 제기한다는 점에서 더 적극적인 정치가 된다는 자기모순에 빠지기도 한다. 결국 탈정치야말로 정치적이다.

[STEP4] 후손들에게 이입된 '공포', 또 다시 발목잡힌 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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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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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혐오는 무엇에 의해 지탱될까. 우선 다시 '나는 너를 혐오할 권리가 있다'는 역설이 고개를 든다(가령 "이런 소식 보고 듣지 않고, 싫어하고 반대하고, 역겨워할 권리도 인권입니다" 같은 베댓). <그림6~7>에서 볼 수 있듯 '인정'받아야 하는 건 성소수자들의 '문화'가 아닌 혐오할 '권리(인권)'이며 이를 무시하면 '역차별'이라는 식이다.

여기에 더해 에이즈 치료 비용에 '세금'이 쓰이고 서울시가 퀴어축제 장소를 '지원'해줬다는 사실이 일종의 '특권'으로 인식되면서 무임승차론이 제기된다. 동성애 혐오자들은 자신들이야말로 1등 시민이며 동성애자들은 2등 시민이라는 구색을 맞출 마지막 퍼즐 조각을 쥐게 되지만, 정작 완성된 그림은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의료 혜택과 자기 목소리를 낼 기회를 보장받는 현재보다 진보한 사회가 아니다.

그 사회는 차라리 강력한 조세 저항, 사회적 불신에 발목 잡혀 하향 평준화된 사회다. 그럼에도 <그림8>처럼 이 가치 체계는 '정상', '일반', '다수(에 의해 지지 받는 것)', '자연', '선'이라는 생각과 이러한 생각이 무너지면 '나라'가 작살난다는 '걱정'에 의해 지탱된다. 한편 지지대의 끝을 따라가보면 뜬금없이 후손(아이, 청소년, 애들, 딸, 며느리, 자식, 자손…)들이 등장한다. 이것은 무엇을 암시하는 걸까.

공포다. 한국 같은 저신뢰 사회는 사회를 진보시켜 더 나은 삶을 이룩할 수 있다는 기대가 붕괴한다. 관심사는 신변의 안전 수준으로 축소되고 현실에 순응한 군중들은 치열한 경쟁과 불투명한 미래로 인한 생존 공포를 공론장에서 해소하기보다 사적 친밀성의 차원에서 위로를 받는다. 가족주의, 즉 안정적이고 '평범한' 가족을 꾸리는 게 유토피아가 되는 문화가 출현한다(프랭크 푸레디 <공포 정치> 참조).

생존 공포는 인간 행위의 강력한 동기인 원초적 감정이다. 사회심리학자들의 '공포 관리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살고자 하는 본능이 있지만, 자신이 언젠가 죽는다는 것도 안다. 따라서 두 심리 사이에 갈등이 생기며 불안, 공포를 느끼게 되고 대처 방법을 갈구한다. 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문화'다(한국 심리학회 <심리학 용어 사전> 참조).

문화는 의미와 가치들로 이루어진 상징 체계다. 인간은 문화의 일부가 되면서 상징적인 불멸(가령, 나는 죽어도 내가 속한 대한민국은 영원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다. 영혼 불멸설을 주장하는 '종교'나, 자신들이 속한 문화를 영속시킬 자신들과 닮은 '후손'에 강한 이입을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한 문화는 옳고그름의 '잣대'를 제시하므로 이 세계관에 순응하는 사람들에게 자존감도 준다.

그.런.데. 바로 이때 습격자들이 등장한다. 동성애자들이 광장에 존재를 드러낸 것이다. 동성애자들은 다수가 따르는 종교관, 가족관과는 다른 새로운 가치 체제를 따른다. 혼란스러움을 차분하게 견딜 힘이 없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동성애를 '비정상' '병'으로 연관짓는 온갖 편견들이 고개를 들고 위험한 비탈길로 추락할 것이라는 공포가 극도로 치닫기 시작한다.

취업박람회가 열린들 모두 취업이 되진 않듯 퀴어축제가 열린들 모두 퀴어가 되진 않음에도,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이 암시되고 기성 문화와 자존감에 대한 위협으로 오인한 군중은 방어적, 공격적이 된다. 마침내 '천하제일 호모 포비아 축제'의 막이 열리고 군중은 혐오를 분출한다. 그러나 진정한 축제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사회를 성숙시킬 에너지를 충전하는 계기다(뒤르켐 <종교생활의 원초적 형태> 참조).

가치의 창출은 공론장에 새로운 존재가 모습을 드러낼 때 시작된다. 인정욕구도 인간의 강력한 본성 중 하나이며, 때때로 인정 욕구는 생존 욕구보다 강하다("인정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 반면 '천하제일 호모 포비아 축제'는 어떠한 가치도 창출하지 못한다. 그것은 차라리 우리 안의 어둠, '혐오'가 우리의 공포심을 약점 삼아 불사의 시민권을 획득하려는 몸부림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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